미천왕 3년

9월 가을

미천왕은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현토군을 공격해서

8천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겨 살게 했습니다


미천왕 12년

8월 가을

미천왕은 장수를 보네 요동 서안평을

공격해서 빼앗았습니다


미천왕 14년

10월 겨울

미천왕은 낙랑군을 침공해서

남녀 2천여명을 사로잡았습니다


<미천왕>드디어 선대왕때부터의

숙원(오래전부터 품어 온 염원이나 소망)이었던

낙랑군을 축출(쫓아내거나 몰아냄)해냈다 !

드디어 조선(고조선) 고토를 되찾았다 !


<고구려 장군>대왕 폐하 400년만에 찾은

우리의 조선(고조선)땅입니다 !

감격에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미천왕>낙랑군은 조선 영토의 핵심이다

이로서 우리의 후손은 풍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을것이다 !


<고구려 장군,병사들>만세 ! 대 고구려 만세 !


미천왕 15년

정월(1월) 봄

미천왕은 왕자 사유(고구려 16대왕 고국원왕)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9월 가을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공하였습니다


미천왕 16년

2월 봄

미천왕은 현토성을 격파했습니다,,

적의 사상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8월 가을

혜성이 동북방에 나타났습니다


<혜성>


<라봉봉>

그렇게 머슴생활과 온갖 고생끝에

고구려 15대왕이 된 을불, 미천왕은

즉위 이후부터 정복,또 정복을 하며

중국에 뺏긴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습니다


불과 바로 전왕인 봉상왕대에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도

미천왕 즉위 초부터 이렇게 강대국이었던

중국을 상대로 빼앗긴 영토를 찾을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당시 중국 상황이 매우 나빴습니다,,

유비,제갈량,조조,손권 등 삼국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수많은 중국영웅이 나온 위나라,촉나라,오나라 삼국시대는

뜬금없이 위나라 권신이었던

사마의의 후손이 세운 진나라에 통일됬고

이후 진나라는 암군(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이 등장해서

팔왕의 난이라는 사건이 나고 혼란이 생기며

먼 곳이나 외국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곳이 한나라때부터

고조선 영토에 설치한 군현인 낙랑군과 대방군이었고

이때를 노려 미천왕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해내고 잃어버린 옛 고조선 땅을 찾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미천왕이 이때

낙랑군과 대방군을 침공했다는

기록 이후 낙랑군과 대방군의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낙랑군은 특히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한 식민기관중

가장 크고 발달한 기관이자

한국인들에게는 중국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였기도 했고

고조선 멸망 이후부터

한인(중국인)들의 지배를 받았다가

미천왕때부터 400년만에

중국의 지배를 청산(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깨끗이 씻어 버림)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미천왕때 이곳을 수복함으로서

풍요로운 곡창지대와

수준높은 기술,선진적인 문명을 얻게됬고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미천왕은 15대 고구려 왕이었고

중시조(쇠퇴한 집안을 다시 일으킨 조상)로

그의 아들 고구려 16대왕 고국원왕부터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

고구려 마지막 왕인 고구려 28대왕 보장왕까지

모두 그의 후손들입니다


Posted by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