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장군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열전이나

삼국유사에 자세히,많은 양으로 기록되있는거 같습니다

그만큼 중대 신라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고 신라에서는

나라를 지켜주는 영웅,수호신 이런 이미지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불교,기독교(유일신 사상)같은 고등종교들이 들어서기 전까지

신라 이외에도 로마나 고대사회에서는 이렇게 개인 숭배,개인을

신으로 모시는 그런게 있었던거 같습니다,,

이런거는 오늘날에도 이름 앞에 갓을 붙이며 보이는 현상 같고요,,

ㄱㅊ은 현상같지는 않으나,, 여러 업적이 있는 사람에대한

두려움,존경심들로 생기는 현상 같습니다,,


김유신 장군 이야기 1 에서는

김유신 장군의 어린시절,청소년,젊은시절 이야기였고

2에서는 김유신장군의 장군시절 이야기입니다,,


화랑이었던 김유신은 진평왕 시기에 장수가 되서

신라 병사들을 이끌고 고구려와 전쟁을 하게 됬습니다,,

고구려는 개마무사,조의선인(무력집단설)등이 있는 상무정신이

국가적 정신이었던 군사국가라 할수있었고,,

성에서의 방어가 공격보다 적은 병력으로 막을수 있다해도

통일 중국 왕조 수,당나라와도 맞섰던 강대국이라 할수있었습니다,,

신라역시 고구려에 왕자를 볼모로 보내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증왕때에 시장발달과 농업발달,소를 이용한 경작 우경등으로

농업생산량이 늘었고 신라 역시 이후 진흥왕대에 영토를 확장하며

한강을 요새화시키고 당대의 강국이 되었다고 할수있습니다,,

신라 중대의 전쟁양상은 상대,초기의 건장한 남자들 무리가

우와와 하며 달려가며 약탈하고 이런 초기의 부족국가적,

다른 고대국가들이 그랬듯이 하던게 아닌 상업과 농업발달,

농업 생산량 증가와 인구증가 등으로 어느새 수만대의 많은

군사등의 대규모 전쟁양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전쟁이야기이고 과학기술,농업의 발달이 이렇게

대규모 전쟁으로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고구려와 전쟁을 하게된 김유신 장군과 신라군은

분명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떠오르는,, 강국이었던 신라였으나

당연히 기존의 강대국이었던 고구려 기병,병사들에 공포감이 있었을것입니다,,

물론 이런 비유가 ㄱㅊ지는 않더라도 스포츠에서

중국이 한국과 축구할때 공한증,한국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증상이 있다는 이야기같이

이길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기존의 전통적 강팀에 도중에 이기다가

마무리를 실패해서 패배하는 경우들이 나타나는거 같습니다,,

물론 전쟁은 스포츠와 다르고 이런 비유도 ㄱㅊ지는 않습니다,,


신라군들은 고구려군에 공포감이있었고 아버지 김서현 장군을 따라

종군하셨던 김유신 장군은,,


옷깃을 들면 옷이 바로 되고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펼쳐진다고 하니, 나는 벼리와 옷깃이 되겠다


하시고 직접 나서서 적진으로 가서 적장을 베고,,

깃대를 뽑아왔다고 합니다,,

옷깃과 벼리 이야기는 비유를 하면,,

핵심,주요 사람이 될테니 겁먹지 말고 따라와라

이런 의미로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경상도 경주시에 있는 김유신 장군 기마상입니다,,>


고구려 적장을 베자 당시 표현으로 비유하면,,

신라군들이 용기백배해서 공격했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야기로는 김유신 장군이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오자 신라군은 이기는 기세를 타고 맹렬히 공격해서

5000명을 목베고 천명을 사로잡자 고구려 낭비성안의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성안에 사람들은 항복했고 고구려 낭비성은 함락됬다고 합니다,,


진평왕은 재위기간이 54년으로 매우 긴왕입니다,, 재위기간이 길어

김유신,김춘추의 등장부터 여러 이야기들이 많고 이후

김유신 장군은 선덕여왕때에는 어느새 40대 후반의 장군이 되신거 같습니다,,

김유신 장군이 48세때 김춘추는 고구려에 백제군을 막을 구원요청을 하러

외교를 하러가다 고구려에게 억류되자 1만의 신라군들을 이끌고

김춘추를 구하러 국경까지 가서 무력시위??같이 하자,,

신라군의 움직임을 보게된 고구려 보장왕은 김춘추를 풀어주게 됩니다,,

이에 관련한 이야기는

김춘추가 고구려에 잡혔을때 보장왕 신하의 조언??으로,,

토끼가 용왕에게 잡히자 거짓말을 하고 풀려났다는 비유를 듣게되고

거짓말로 고구려에 풀려났다는 구토지설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김춘추와 구토지설 이야기>


젊은시절부터 김춘추와 화랑,축구를 하며 어울렸고 김유신 장군의 두 누이들은

김춘추에게 시집가고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이 되어서도

서로의 친구이자 의리를 지키는 사이였던거 같습니다,,

(사실 당시 전쟁이나 근친혼등 여러 비인간적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 50세에는 대장군이 되어 백제 7성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647년 김유신 장군 53세,선덕여왕때 당대 상대등,

오늘날 비유로는 국무총리라 할수있었던 비담은 선덕여왕은 여자는 정치를

잘할수 없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고

신라사회의 왕,선덕여왕 다음의 권력자라 할수있었던 서열 2위

비담의 난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신라군들은 경주 인근 명활성의 비담군과

월성의 근왕군,왕을 지키는 김유신 장군의 군대로 나뉘어졌고

선덕여왕은 비담의 난 도중에 두려움에 떨다가 사망하십니다,,

아직 선덕여왕이 사망하기전,, 월성으로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에 비담은


내가 듣기로 떨어지는 별 아래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다 했다

이는 틀림 없이 여주(선덕여왕)가 패할 징조다!


라고 했고 선덕여왕은 몹시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유신 장군은 선덕여왕에게


길함과 흉함은 정해진 게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 주왕은 붉은 새가 있었음에도 망했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음에도 쇠하였는데,

고종은 장끼가 우는데도 흥했고 정공은 용(들)이 싸웠지만 창성하였습니다

그러니 덕이 요사함에 이김을 알 수 있습니다

별의 변괴라는 건 두려워 할 것이 아니니

청컨대 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소서


김유신 장군은 선덕여왕에게 옛 고사,옛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시며

이런거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이런 고사를 인용하신다거나

특히 덕이 요사함에 이김을 알수있습니다 같은 말은

김유신 장군의 무인적 모습만이 아닌 지식인적 모습이 나타나는

모습이라 할수있습니다,, 당대의 김유신 장군 이야기를 잘 나타낸 영화는

역시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렸을때 영화관에서 볼때는 거시기가 거시기야 이런 거시기라는 명대사??만

떠오르는 유머적 영화였던거 같은데요,, 어른이 되고

유튜브에 올라온 리뷰들을 보니 어른이나 역사 전문가들이 보아도

섬세하다 할수있는 기획들이 있었고 명작은 명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단순히 무인적 모습만이 아닌 삼한일통,삼국통일의

장군답게 치밀한 전략적 모습이나 인간적 고뇌, 지식인적 모습이 있었던

한국사의 위인이라 할수있습니다,,

황산벌에서는 김유신 장군의 다 미친거야

(영화에서는 신라=경상도 사투리를 쓴 고증??도 있었습니다,,),

미쳐야 할수있는것이야

전쟁은 미친놈들의 짓이야라는 대사나 사실 영화속이나 역사에서도

직접 적진으로 뛰어들거나 장군들의 자식,화랑들을 백제군에게 홀로보내서

말그대로 자살공격,,을 시켜서 신라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잔학한 모습도 보여주십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이나

김유신 장군은 한국사회에서 세종대왕같이 비판이 금기시된

위인이라 할수도 있겠으나 재평가,현실적 평가가 있는 현대에서는

예외라고 할수가 없으실거 같습니다,,


이렇게 김유신 장군은 신라군이나 신라 선덕여왕의 두려움등에

공포심을 통제하려 했던 이야기들입니다,,

김유신 장군은 다시 불붙은 허수아비를 연에 붙여서

하늘로 날려보내고 별이 올라간거같이 꾸미십니다,,

비담군에게 우리는 이상없다라는 또 근왕군,김유신 장군의

신라군들에 공포를 통제하려는 목적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역사 기록의 표현같이,,

여왕은 두려워서 어쩔줄 몰랐다나는 표현도 있었고,

몹시 두려워하시다가,,

비담의 난이 끝나는거를 못보시고 왕성을 둔 공방전이

벌어지는 도중에 사망하십니다,,

물론 비과학적인 이야기라도 비담의 말같이 별이 떨어진곳에

불길한 징조가 있다 말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했겠습니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은 오랜 전쟁의 백전노장의 장군이었고

비담은 권력욕은 있었으나 김유신 장군이나 당대에 외교활동을 하던

김춘추 같은 실권적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결국 비담군은 불붙은 허수아비가 하늘로 올라간거를 보고

사기가 떨어졌다고 했고,,의심을 품었다고 합니다,,

비담,반란군 토벌직전에 김유신 장군은 별이 떨어진 곳에서

백마, 흰말을 잡아서 하늘에 제사를 지냅니다,,


<당대 백마는 신성하거나 그런 이미지였던거 같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백마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여러개인 장군 같습니다

천관녀를 만날때 말목을 베었던 말도 백마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렇게 백마를 잡아 제사를 지냈다거나,, 백제를 멸망시킬때

당나라 소정방 장군의 군대가 부여를 건너올때 용이 풍파를 일으켜 못건너오자

김유신 장군이 백마를 금고리에 꿰어 미끼로해서

용을 낚아서 건너올수 있게했다고 합니다,,

세 이야기다 백마가 죽는 이야기 같습니다,,>


<김유신 장군의 제사,기도>

자연의 이치에서는 양은 강하고 음은 부드러우며 사람의 도리에서는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습니다

만약 혹시 그 질서가 바뀌면 곧 큰 혼란이 옵니다

지금 비담 등이 신하로서 군주를 해치려고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침범하니

이는 이른바 난신적자로서 사람과 신(神明)이 함께 미워하고 천지가 용납할 수 없는 바입니다

지금 하늘이 이에 무심한 듯하고 도리어 왕의 성 안에 별이 떨어지는 변괴를 보이니

이는 제가 의심하고 깨달을 수 없는 바입니다

생각컨대 하늘의 위엄은 사람의 하고자 함에 따라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고 악한 이를 미워하시어

신령으로서 부끄러움을 짓지 말도록 하십시오


하늘에 기도를 하면서도 신에게 착한이를 착하게 여기고

악한이를 미워하시어,, 신에게 신으로서 부끄러움을 짓지 말도록 하십시오라는

기도를 한다는거에서 근대 철학자들의 신에대한 의심이나 그런 지식인적

모습이 생각났던거 같습니다,,

물론 그 어투나 말은 약간 거친게 있으신거 같습니다,,


그리고 김유신 장군은 근왕군,김유신 장군의 신라군들을 독려하시며

힘껏 치게해서 도망가는 비담을 추격해서 목을 베고

구족을 멸해서 죽였다고 합니다,,

보통 조선시대에 반란이 일어나면 삼족을 멸한다는 연좌죄,

가족이 죄를 지으면 다른 가족들도 죽이거나 처벌을 받게하는게 있었는데요,,

삼족(부계,모계,처계)도 많은데요,,

구족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담의 난으로 죽어갔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백제,왜(일본),고구려의 압박이 있던 신라의 외교 상황에서

신라의,나라의 상대등,왕 다음의 오늘날로 비유하면

국무총리가 반란을 일으키는

국가적 규모의 반란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숙청됬던거 같습니다,,

또 선덕여왕의 사망으로 진덕여왕의 즉위,왕권의 교체와

신라 내부 권력에서는 반란을 진압한 김유신 장군과

김춘추의 권력 장악이 있었던 계기가 된 반란이라 할수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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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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