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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라 왕조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는거 같습니다,,

벌써 50대왕인데요 조선왕조가 27대 순종때 끝나고 500년 왕조라

불리는것을 보면 신라는 1000년 왕조라 불리며 조선의 거의 2배입니다

물론 세계 거의 모든 왕조들의 마지막이 그렇듯이,,신라 후기 역시

부패하고 신분제의 모순(골품제),성적 문란,내,외부 혼란 등이 심각했던 시기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신라는 매력적인 나라였던거 같고 우리나라 고려,조선 할거없이 마지막 시기를

보면 뭔가 안타까운 그런게 있는거 같습니다,, 초승달의 나라 신라 이야기가

끝나가는거 같습니다,,


<신라의 금관 사진>


49대왕 헌강왕이 죽자 그당시 헌강왕은 사냥을 하던중

길에서 만난 여자와 야합으로 유일한 아이를 낳습니다 들판에서 합친다는 의미로 오늘날에는

정치인들의 연합의미로 쓰이는거 같습니다 옛날에는 야합이라는 말은

정통적인 부인과의 관계에서 낳은 자식이아닌 이런 의미로 쓰였고

공자님도 야합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나중에 52대 효공왕이 되나 먼저 헌강왕의 동생인

정강왕이 왕이 됩니다


50대 왕 정강왕 입니다

정강왕때 한주(경기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런 반란을 막을 여력의 마지막 왕이었던거 같고요,,

51대 진성여왕부터는 신라정부에서는 지방을 통제할 능력이 없어지게 되고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는 사실상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정강왕은 즉위 1년만에 죽고 여동생 진성여왕에게 물려주고 사망합니다,,

진성여왕은 한국사상 마지막 여왕 입니다


51대 왕,여왕은 한국사 마지막 여왕 진성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은 그래도 지혜롭거나 착한 이미지들이 있다면

또 이당시 김춘추와 김유신이라는 인물들의 정치적 보호가 있던 시대였다면요

진성여왕은 그런게 없고 이미지도 남색을 탐한 암군에

이런 정치적 보호세력도 없었던 왕입니다,,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은 40~50대 중년,할머니때 즉위했다면

진성여왕은 19~20대 초반의 젊은 여왕이었다고 합니다

정강왕이 병이 들었을때 정강왕도 아들이 없어 그래도 선대에 선덕,진덕여왕 사례도 있고

여동생(진덕여왕)이 총명하니 잘할거라 하고 후계로 하는데요

진성여왕은 소행이 좋지못하고 음란했다고 합니다


숙부(삼촌) 위홍과 근친상간을 했고 여왕은 색욕에 빠져

미소년들을 징집해 음사를 즐기는데만 진력해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여왕과 관계를 맺거나 아첨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됬고

뇌물,관직매수,부정부패가 만연했던거 같습니다


진성여왕의 변호로는 신라와 이후 고려까지도 왕실에서 근친혼은 있었고

당대 신라 지식인 최치원은 진성여왕을 성군이라 표현하였고

이후 김부식이나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여자가 정치를 했기에 하며

비판한것도 있을수 있겠으나 막장적인 기록이나 신라 상황들을 봐서

명군이나 성군은 아니었을거 같습니다,,

한국 IMF경제 위기때 유행했던말이 Total Crisis 총체적 난국이다라는 말이었는데요,,

진성여왕시기를 쓰려하자니 이런 말이 떠오르는거 같습니다,,

어디부터 써야될까요,, 문란,낭비와 사치하는 젊은 여왕 말고도 가난한 여인의 당대 신라사회를 울린

효녀 지은설화부터 원종,애노의 난,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등장,

등등요,,

긍정적인 이당시 시기 이야기들이라면,, 당대 신라 지식인 최치원이 활동했던 시기였고

여왕에게 시무 10조라고 개혁정책을 올리자 여왕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최치원에게 권한을 주나,,이미 신라는 막장의 상황이었고 최치원은 자신의

능력을 펼칠수 없다하여 은퇴하고 지리산으로 갔다고 합니다,,


<진성여왕 시기의 원종,애노의 난>

농민 반란입니다 역대 중국 국가들 말기때

진나라 진승,오광의난 한나라 황건적의 난같이

원종과 애노라는 농민의 난입니다

진성여왕때 지방통제가 약해졌고 농민들은 도적이나 노예가 되거나

사람대우와 혜택들이 있는 스님들이 되어간거 같습니다,바다에서는

신라구라고 신라 해적이 된거 같고요,,그러면 농사나 물고기는 누가잡겠습니까,,

서라벌,경주 창고는 텅비었고 관리를 보내 세금을 독촉하자 이에

분노한 농민들의 봉기입니다,, 원종 애노의 난때 중앙군은

난이 커서 두려워하다 원종 애노의난은 자멸하거나

지방 호족들,새로 일어난 도적들에 흡수된거 같고요

이 사건으로 너도나도 일어나는 혼란의 시대가 시작된거 같습니다,,


<효녀 지은 설화>


한국역사에서 봤던 슬픈 사람들 이야기라고

효녀 지은설화를 쓴적이 있습니다



가난해서 부잣집 노비가 되서 어머니를 봉양한 효녀 지은의 이야기는

당대 신라사회를 울렸고 당나라에도 지은의 효성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않았고 죽어나가던 시기였던거 같습니다


여왕은 제법 똑똑했다고도 하는데요 아무것도 하지못했고

민심 수습노력도 찾아볼수가 없었다는거 같습니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이런게아니라 저는 역사적으로도

여성 리더,퀴리부인이나 가브레엘(코코) 샤넬같은 사례도 있고 잘하는 사람은 남녀 상관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진성여왕은 정말 너무 못한 사례같고요,,국민들은

죽어가는데 낭비에 미소년들과 놀아나는 젊은여왕 너무 끔찍한거 같습니다,,

진성여왕 스스로도 못하겠다 싶었는지 정강왕의 야합으로 낳은 서자,아들이었던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북쪽궁궐에서 태상황으로 물러나고 그해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물려준게 아니고 쿠데타라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도중에 최치원의 개혁안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진골 귀족들의 반대와 문란한 성관계,

혼란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을 보면 망국의 스타트를 한 왕같습니다,,


당대 신라의 지식인,유학자 최치원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야될거 같습니다,,

당나라에서 유학해 돌아와 신라 사회를 개혁해보려했으나

6두품이라는 신분의 최치원은 그당시 골품제와 귀족 사회의 반발,

무력감으로 산으로 들어가셨고 여러 책을 쓰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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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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