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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대한 황룡사 절은 지어지고요,,

당나라에서 유학한 스님 자장 법사는,, 당나라에서

불교 지혜의 보살이시라는,, 문수보살을 만나면서

문수보살에게 너희나라(신라)에 외적이 침입이 잦은 이유는

여자가 왕(선덕여왕)이라서 그렇다며,,

고국에 돌아가서 절을 창건하면 부처님이 나라를 지켜줄것이다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같이 여성 비하적인거와

부처님이 나라를 지켜주신다는 호국불교 사상이 있는 말들 같습니다,,


자장 스님은 신라로 와서 선덕여왕에게

당나라 신인(神人, 문수보살 같습니다,,)에게

신라여왕(선덕여왕)은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어 주변에서 괴롭히는 것이니

커다란 탑을 세우라는 계시를 듣고 탑,황룡사 9층목탑을 세울것을 건의했다고 합니다,,


이는 자장의 건의전에 이미 짓고있었다는 추측도 있는거 같고

옛날 고대사는 오래되고 기록이 부족해서인지 순서가 안맞거나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는거 같습니다,,


그렇게 자장 스님의 건의로 신라 최대규모의 탑인 황룡사 9층목탑이 건설됩니다,,

신라 예술은 삼국중에 가장 부족했던거 같습니다,, 예술은 백제,정치는 신라,

진취적인 모습은 고구려 같은데요,, 신라 예술은 솔직히 너무 하다 싶을정도로,,

금관같은 금유물 이외에는 당시 후진국이었던,, 일본보다 못한거 같습니다,,

신라 토우들을 보면 민속적이기는 하나 너무 뭉특하고 대충만든거 같습니다,,

탑을 건축할 장인이 없었던 신라는,, 옆나라, 당시 선덕여왕때는

백제와의 전쟁이 잦았던 시기같습니다,, 적국이라 할수있었던,,

백제의 장인을 데려옵니다,,

신라로 오게된 백제장인 아비지 역시 여러 생각이 많았을것입니다,,

신라의 요청에 백제에서 파견했다는데요,,

적국인 신라에서 탑을 세워야됬고 게다가 아비지는 몰랐을수도 있겠으나,,

황룡사 9층목탑의 의미는 주변 오랑캐,나라들을 복속하고 조공받는다는 의미입니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중국),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탐라국,제주도),

5층은 응유(백제 또는 중국의 한 지역, 고구려에서 백제를 백잔이라 낮춰부른거 같이

신라에서는 응유나 응준으로 낮춰불렀을거라는

이야기가 있는거 같습니다,,),

6층은 말갈, 7층은 단국(거란), 8층은 여적, 9층은 예맥(고구려)

이렇게 신라주변 9나라들이 조공을 바치고 복속된다는 그런 의미 같습니다,,

여기에는 백제,고구려 말고도 중국이 있는거도,,

신라의 자주성을 나타냈다고 할수있겠으나,,

이후 다음왕인 진덕여왕때는 고구려,백제,일본이 압박해오자 결국 자존심이나

신라 고유의 관복,이런거를 다버리고,, 중국,당나라식으로 맞추며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게 된거 같습니다,,

옛날에는 중국은 잘사는 나라나 먼나라라는 인식이 있어서

우리도 황제국이라 한다거나 한국 독자적 연호등을 했던거 같습니다,,

이후 기술,문명의 발달로 중국은 더 가까워졌고 그러면서

눈치를 보고 중국에 독립적이나 조공하는 관계가 된거 같습니다,,


신라정부에서는 백제장인 아비지에게 5층 백제나 주변국들을 제압한다는

의미를 숨겼을수도 있다는거 같습니다,,

백제 장인 아비지도 백제와 전쟁하던 나라에,, 와서 이런거를 건설하는거

자체가 껄끄러웠을거 같습니다,,

아비지는 신라에와서 탑을 건설하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

백제 도성이 불바다가 됬고,, 사랑하는 처자와 백성들의 아우성 소리에

꿈에서 갰다고 합니다,, 이후 몸이 아픈핑계로 공사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백제로 도망치려하다가

하늘이 캄캄해지며 폭풍이 불고 무섭게 생긴 장수와

어질게 생긴 도인이 나타나서 탑주, 탑 모퉁이를 세우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에 아비지는

내가 신라에 탑을 세운다고 백제가 망하는거는 제게 달린것이고,,

오히려 내가 이탑을 세워서 부처님의 공덕이 있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탑을 완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80m, 아파트 30층정도 높이의 오늘날로도 거대한 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백제 장인 아비지는 완공 이후 이탑이 백제를 멸망시키려는,,탑인것을 알게되고

눈물을 흘리며 백제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자장법사의 말같이 거대한 탑을 짓는다고 외부에서 공격해온다기보다는,,

당대 중국,백제,고구려,에서 모두 대규모 건축물들이 유행한거 같고,,

(이후에 일본도 동대사 같은 거대한 절이 지어집니다,,)

신라에서 그런 탑을 지을정도의 능력이 있다는거를 주변국가에 과시하려는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선덕여왕은 외국의 공격보다는 말년에,,

비담의 난, 신라 귀족의 반란으로

두려워하시다가 난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신거 같습니다,,


백제 장인들은 공예나 건축솜씨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백제 유물들을 보면 화려합니다,, 백제장인들은 일본에 건너가기도 했고,,

백제 멸망이후 통일신라때 백제 출신 장인이었던 아사달은

불국사 석가탑,무영탑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 황룡사 이야기에는

황룡사에 성덕대왕 신종의 4배 크기의,, 거대한 종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모두 소실된거 같습니다,,


통일신라때부터 황룡사 목탑은 당시에는 피뢰침도 없었기에,,

80미터가 되는 목탑은 벼락을 자주맞았던거 같습니다,,

벼락으로 불타거나 그랬고 보수공사도 있었고

고려 광종때 벼락으로 소멸했다가,, 고려 현종때는 재건됬다는데요,,


이후 황룡사와 황룡사 9층목탑은 몽골의 침입때 불탔고 오늘날까지

복구되지 않고 빈 터만 있습니다,,

자장법사가 세우신 다른 절인,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거로 유명한,,

백담사는 8번이나 소실됬으나 계속 복구했다는데요,,

황룡사나 황룡사 9층목탑은 복구하기에는 규모가 너무컸고,,

불교 국가였던 고려 현종때는 복구됬으나 몽골의 침입 이후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복구되지 않았고,,

선비,사대부,불교가 아닌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에서는,,

있던 절들도 유생들에게 파괴되거나 산으로 몰려갈 때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복원 이야기도하고 2035년에

복원할거라는 이야기도 있는거 같습니다,,

물론 저는 거대건축물이 관광지가 되고 그러나

거대건축물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런게 없다 할수가 없는거 같습니다,,

고대 건축물은 자본이 많이들고 대게 옛날에는 백성들의 세금,노동으로

지어졌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유산들같이

이미 지어진거기는 하고,, 우리도 전쟁을 겪지 않고 오랬동안 유물,유적들이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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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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