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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5대왕 미천왕

재위기간 31년 300~331년


미천왕은

호양왕이라고도 하고

이름은 을불이고

혹은 우불이라고도 했습니다


서천왕의 아들 고추가 돌고의 아들로

역시 서천왕의 아들, 태자였던 봉상왕의 동생이었습니다


예전에 봉상왕은 그의 아우 돌고가

모반할 생각을 가졌다고 의심해서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아들 을불은

자기에게도 해가 미칠것을 두려워 해서 도망쳤습니다


처음에는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에서 *머슴생활을 합니다

왕족이었으나 폭군이었던 봉상왕의 의심으로

급하게 도주했고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렇게 남의집 머슴으로 전락한

미천왕 이었습니다,,


(*머슴 주로 농가에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과 잡일을 해 주고 대가를 받는 사내)


음모는 을불(미천왕)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그에게 힘든일을 시켰습니다


음모의 집 옆의 연못에서

개구리가 울었는데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못잔 음모는

을불을 시켜서

개구리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을불로 하여금 밤마다 기와 조각과

돌을 던지게 했고


낮이면 나무를 해오라고 독촉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을불은 고생을 이기지 못하고

일년만에 그 집을 떠났습니다,,


음모의 집에서 나오긴 했으나

먹고 살아야 했던

을불은 동촌 사람 재모와 함께

소금 장사를 시작합니다


배를 타고 압록에 가서

소금을 가지고 내려와 강의 동쪽 사수촌 사람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어떤 노파(할머니)의 집이었습니다


<노파>소금 장수구만

우리 집에서 먹고 잘려거든

가지고 있는 소금을 내시게 ~


<을불(미천왕)>예 할머니

여기 소금 한말입니다


그렇게 그집 노파가 소금을 요구하여

을불은 한말 가량을 주었으나,,


<노파>더주시게 한말은 너무 적네 !


<을불>안됩니다,, 한말은 충분히 많고

우리도 팔아야 할 소금들입니다 ,,


노파는 소금을 그 이상 주기를 요청했으나

을불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노파는 을불을 미워하여

몰래 자기의 신발을 소금속에 묻었습니다


을불은 이를 모르고 소금을 지고

길을 더났고


노파가 쫒아와 신발을 찾아들고

을불이 자신의 신발을 감추었다고

거짓으로 압록 성주에게 고발합니다,,


<압록 성주>소금장수 그대는

노파의 신발을 훔쳤구나 !


<을불> ?? 저는 그런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노파>분명 저 소금 무더기에 저의

신발이 있을겁니다 파보시지요 !


<을불>네 찾아보세요 저는 결백합니다,,


그러나 노파의 계략대로

소금 무더기에서는 노파가 몰래 묻어둔

노파의 신발이 나오게 됩니다,,


<압록 성주>나를 우롱하다니 !

저 녀석의 엉덩이를 세게 치고

소금을 모두 빼앗아

노파에게 주거라 !


그렇게 을불은 성주에게 매를 맡고

석방됩니다,,


이리하여 소금장수도

못하게 된 을불은 얼굴이 여위고

의복이 남루하여

사람들이 그를 보아도

그가 왕손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됬습니다,,


이때는 봉상왕때였고

이때 봉상왕때의 국상 창조리가

폭정을 일삼았던 봉상왕을 장차 폐하고자 하여

먼저 북부 조불과 동부 소우 등을 파견하여

도주한 왕손인 을불을

온 나라에서 찾게 했습니다


그들이 비류하 물가에 도착했을때

한 사나이게 배에 있었는데

얼굴은 비록 초췌했으나

행동거지가 보통사람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소우 등은 이 사람이 을불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말했습니다


<소우>지금 국왕이 무도하므로

국상(창조리)이 군신들과

함께 왕을 폐하려고 합니다

왕손께서는 행동이 검소하고

인자하며 사람을 사랑하므로

조상의 유업을 이을 수 있다 하여

저희들을 보내 맞아 오게 하였습니다


이에 을불은 의심해서 말했습니다,,


<을불>나는 평민이오

왕손이 아닙니다

다시 알아 보시오,,


이에 소우등이 말했습니다


<소우>지금 왕(봉상왕)이 인심을 잃은지 오래여서

실로 나라의 주인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 신하들이 왕손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컨대 의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을불>,, 알겠소,,

나 을불은 황천 皇天 (하늘의 왕,하늘의 높임말)의 아들 동명성왕의

후손 돌고의 아들이오

천명 天命 (하늘의 명령)을 받들겠소 !


소우등은 곧 을불을 받을어 돌아왔습니다

조리(국상 창조리)가 기뻐하며

을불을 조맥 남쪽 인가에 머물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9월 가을에

봉상왕이 후산 북쪽에서 사냥할 때

국상 조리가 따라갔습니다


조리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창조리>나와 마음이 같은 자는

내가 하는 대로 하라 !


그는 곧 갈대잎을 모자에 꽂았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라

갈대잎을 꽂았습니다


<고구려 고분(무덤) 삼실총의

환두대도(고구려 검)를 든 무사 그림으로

중국 역사책 위서의 고구려 조에서는

고구려 인들은 절풍(고구려 모자)에

새의 깃털을 꽂아 귀천(신분)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조리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다는 것을 알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봉상왕을 폐하여

별실에 가두고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숨어있던 왕손(을불)을 맞아

옥새 玉璽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

사용하던 임금의 도장)를 올려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10월 겨울

누런 안개가 사방에 끼었고


11월

바람이 서북에서 불어와 6일간이나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렸습니다


12월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습니다


<라봉봉>

미천왕은 저가 사랑하는 고구려 왕중 한명입니다

고구려에는 주몽 동명성왕부터

대무신왕,태조왕,고국천왕,

소수림왕,광개토대왕,평원왕 등

훌륭하신 왕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천왕의 인생은

어려운 시절,밑바닥부터 고생을 했고

결국 그의 인생을 성취,진취 했다는 면에서

어찌보면 가장 고구려인 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고구려는 건국부터

주몽,동명성왕은 부여 대소왕자의 군대의

추격을 피해서 나라를 건국했고


농사를 짓다가 국상,재상이 된 을파소나

동네 바보에서 고구려인들의

존경을 받은 장군이 된 바보온달,

공주에서 온달과 결혼해

인생을 개척한 평강공주 등등


고구려인들의 인생은

이렇게 고생끝에 낙이온다는 우리나라 속담같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 진취해 온 모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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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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