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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명의 아들을 좌평으로 삼은 의자왕>


의자왕 17년

정월(1월) 봄

의자왕은

서자 庶子 (첩의 몸에서 난 아들) 41명을

좌평(백제 고위 관직)에 임명하고

그들에게 각각 식읍 食邑 (세금 거두어 살 수 있는 땅)을 주었습니다


<라봉봉>서자가 41명이나 됬다는 것은

수많은 후궁,첩을 두었다는 것이고

자식이 41명인것만도 힘들 것인데

여기에 의자왕이 내린 관직이 명예관직이라 가정한다 해도

자신의 수많은 아들들에게 고위 관직과 땅을 주었다는 것은

백제 국가 조직 전반과

백제 귀족사회의 큰 거부감,반발감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에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나 당나라에서

백제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려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하나


의자왕 이전 백제 왕들의 족보도 복잡하다는 점과

의자왕과 삼천(실제 삼천은 아니고 수많은의 비유가

와전됬다고 합니다) 궁녀 일화가 있듯이

여러 여인과 사치와 향락에 빠졌을 가능성은 큰거 같고

더불어 수많은 자식들을 두어서

관직,식읍 등을 주며 국정을 혼란하게 한게

백제를 멸망시킨 세력에서 지어냈다고 보기만은

어려운거 같고


만약 의자왕이 이런 모습이 없고

학문에 열심이고 신하들의 충언을 주의깊게 듣고

올바른 가족관계였다면

애초에 백제가 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망국의 왕,반정으로 쫒겨난 왕들이

사실 착한 모습과 유능한 모습이 있었고

후대 세력이 조작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여럿 있는거 같은데

물론 조작이나 정당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행위들이

역사에서는 번번히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상사는 기본적으로 인간과의 신뢰와 도의로 움직이기에

정말 착하고 유능한 모습만 있었더라면

애초에 나라가 멸망하거나 왕위에 쫒겨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백제말기의 해괴한 일들>


4월 여름

큰 가뭄이 들어서

논밭이 붉은 땅이 되었습니다


의자왕 19년

2월 봄

여우떼가 궁중에 들어 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백제 최고관직,좌평의 대표)의 책상에

올라 앉았습니다


4월 여름

태자궁에서 암탉이 참새와 교미했습니다


<백제인들>점점 기이하고 묘한 일들만 벌어지고 있구먼,,


장수를 보내 신라의 독산, 동잠 두 성을 침공했습니다


5월

서울(서울=수도, 백제 수도는 사비) 서남쪽 사비하에서

큰 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발(3발 = 3장 = 30척 = 백제에서 사용한 1척은 25cm 동진척,

즉 7.5m 정도,, 이었습니다) 이었습니다,,


8월 가을

여자 시체가 생초진에 떠내려 왔는데

길이가 18척(4.5m,,)이었습니다


9월

대궐 뜰에 있는 홰나무(회화나무)가

사람 곡하는 소리처럼 울었으며

밤에는 대궐 남쪽 행길에서 귀신의 곡소리가 들렸습니다


의자왕 20년

2월 봄

서울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습니다

서해의 조그만 물고기들이 나와 죽었는데

백성들이 모두 먹을 수 없이 많았습니다


사비하 泗沘河 의 물이 핏빛처럼 붉었습니다


(고구려 멸망 전 호랑이 아홉마리가 성안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와

평양의 강물이 3일동안 핏빛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나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들이 생각납니다

이집트 나일강이 피로 물들었고

대규모의 동물들이 해괴한 변고를 일으켰고

모두 나라에 망조가 들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이거는 종교적인 뉘앙스가 강한 이야기같지만

실제 나라 멸망전에는 그만큼 민심의 이탈 등과

행정력의 부족으로 여러 대규모 재앙이 일어난다는게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추론이 가능합니다,,)


4월 여름

두꺼비 수 만 마리가 나무 꼭대기에 모였습니다


서울(수도, 사비) 시민들이 까닭도 없이 놀래 달아나니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쓰러져 죽은 자가

1백여 명이나 되고

재물을 잃어버린 자는 셀 수도 없었습니다,,


5월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왕사와 도양사의 탑에 벼락이 쳤으며

또한 백석사 강당에도 벼락이 쳤습니다


검은 구름이 용처럼

공중에서 동서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듯 했습니다


(백제 기록에서 특히 검은 용,흑룡이 출현하면

다음 기록에 왕이나 정치 권력자[비유왕, 부여곤지]가 죽어있기에

위의 기록은 검은 용은 아니고

'검은 구름이 용처럼' 이라 기록되있으나

흑룡은 정계암투,정쟁을 암시한다 하기도 하고

매우 불길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해괴하고 불길한 일들이

멸망 직전 백제에 한 두개도 아니고

여러개로 나타나고


백제 멸망전 기록은 일본의 부모국가라 할 수 있는

백제 기록이어서인지 일본 특유의

해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도 납니다,,


이런 기괴한 이야기들은

다음 이야기때 쓸 '둥근달과 초승달' 이야기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뜩이나 백제의 인물이었던

성충의 죽음 이후 백제인들은

불안감이 급등했을 거고

나라 말기에는 민심의 이탈 등으로

행정력이 사라져간다고

할 수 있기에


또 가뜩이나 귀족권이 강했던 백제에서

의자왕은 자식 41명에게 관직과 식읍을 주는

무리수를 뒀기에 지방세력들 역시

의자왕에게 이탈해갔을 것이고


이에 행정력 부족 등으로 정부가 역활을 못하자

여러 재앙들이 대규모로 일어난거로 보입니다

(그나마 과학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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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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