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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 백제 충신 흥수>


그렇게 의자왕 20년

6월

둥근달과 초승달 이야기 바로 다음 이야기에는,,


당나라 고종이 조서를 내려를 내려서

좌위 대장군 소정방을

신구도 행군 대총관으로 임명해서

좌위 장군 유백영과 우무위 장군 풍사귀와

좌효위 장군 방효공 등과 함께

군사 1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로 와서

공격하게 했습니다


아울러 신라왕 김춘추(신라 29대왕 태종 무열왕의 이름)를

우이도 행군 총관으로 임명해서(신라와 당나라의 동맹,

연합인 나당동맹,나당연합군)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게 했습니다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에서 바다를 건너

나라 서쪽 덕물도에 이르자


신라왕(태종 무열왕)이 장군 김유신을 보내서

정예 군사 5만명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게 했습니다


의자왕이 이 소식을 듣고

군신들을 모아서

공격과 수비 중에 어느 것이 마땅한지를 물으니

좌평 의직이 나서서 말하기를


<의직>당나라 군사는 멀리서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들은 물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배를 오래 탄 탓에 분명 피곤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상륙하여 사기가 회복되지 못했을 때

급습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라 사람들은 큰 나라(당나라)의 도움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경시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만일 당나라 사람들이 불리해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주저하고 두려워서

감히 빨리 진격해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당 군사와 결전을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달솔 상영 등이 말하기를,,


<상영>그렇지 않습니다

당나라 군사는 멀리서 왔으므로

속전하려 할 것이니

그 서슬을 당할 수 없을 것이며,

신라 군사들은 이전에 여러번 우리 군사에게

패하였기 때문에

우리 군사의 기세를 보면

겁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계책으로는

당나라 군사들이 들어 오는 길을 막아서

그들이 피곤하여지기를 기다리면서

먼저 일부 군사로 하여금 신라 군사를 쳐서

예봉 銳鋒 (날카롭게 공격하는 기세, 사기)을 꺾은 후에

형편을 보아 싸우게 하면

군사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즉 백제 조정에서는 당나라 군사를 먼저 막자 vs

신라 군사를 먼저 막자 로 나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개로 백제인들도 부여,고구려의 후예여서인지

신라에 비해 중국과 당나라에 굽힘이 없었던거로 보입니다)


의자왕이 주저하면서

어느 말을 따라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의자왕>누구말이 맞는거냥께,,


<백제 신하들>어라하(왕) !

시국이 급하고 형세가 위태로우니

빨리 결정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


<의자왕>으으,, 가만있자

흥수에게 사람을 보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아오라 !

죄를 지었지만 머리는 영민한 자였으니,,


이때 좌평 흥수는 죄를 지어서(흥수도 유능한 인물인데

성충같이 바른말 하다가 의자왕의 미움을 산거 같습니다,,)

고마미지 古馬彌知 (전라남도 장흥군 지역, 뭔가 이름이

일본느낌이 나고,, 실제 일본어에는

백제어의 영향이 있다고 합니다)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있었는데


의자왕이 그(흥수)에게 사람을 보내서 물었습니다


<의자왕이 보낸 사람>사태가 위급하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


흥수가 말했습니다


<흥수>당나라 군사는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군율이 엄하고 분명합니다


더구나 신라와 함께

우리의 앞뒤를 견제하고 있으니

만일 평탄한 벌판과 넓은 들에서

마주하고 진을 친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백강 白江 과


<김부식>혹은 기벌포 伎伐浦 라고도 한다


탄현 炭峴 은


<김부식>혹은 침현 沉峴 이라고도 한다 (성충이 말한

침현 沈峴 과 한자가 조금 다른데 같은곳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요충지로서

한 명의 군사와 한 자루의 창을 가지고도

만명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니

마땅히 용감한 군사를 선발하여

그곳에 가서 지키게 하여

당나라 군사로 하여금 백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라 군사로 하여금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면서

대왕께서는 성문을 굳게 닫고 든든히 지키면서

그들의 물자와 군량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피곤하여질 때를 기다린 후에 분발하여

갑자기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대신들은 믿지 않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흥수의 말대로

정말 한명의 군사와 한자루 창으로

만명을 이긴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겠으나

성충과 비슷한 말을 하는거 같고

식견이 있었던 인물로 보이고

요충지를 지키며 처음에 잘 대비를 해야된다는 거로 보아

실제의 의미는

'불이 커지기 전에 빨리 꺼라'

이런 의미 같겠으나

결국 의자왕은 이런 말을 듣지 않다가

백제 700년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됬습니다,,)


<백제 대신들>흥수는 오랫동안

옥중에 있으면서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니

그 말을 따를 수 없습니다


차라리 당나라 군사로 하여금

백강으로 들어오게 하여

강흐름에 따라 배를 나란히 가지 못하게 하고,

신라 군사로 하여금 탄현에 올라가서

소롯길을 따라 말을 나란히 몰 수 없게 합시다


이때가 되어

군사를 풀어 공격하게 하면

마치 닭장에 든 닭이나

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의자왕은 이 말(대신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의자왕은 또한 당나라와 신라 군사들이

이미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군 계백(백제의 충신,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군대에

5천 백제 결사대로 황산벌에서 맞선 백제의 명장)을 시켜서

결사대 5천명을 거느리고 황산 黃山 으로 가서

신라 군사와 싸우게 했는데

4번 싸워서 모두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마침내 패하고 계백이 사망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기이하고 괴이한 일들이

백제에 일어나고 곧바로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해왔는데

신라 5만,당나라 13만 규모의 대군이었고

이정도 규모면 기존의 성을 함락시키는

국지전,공방전이 아닌 국가 멸망급의 대위기였다고 할 수 있었고


이에 백제 조정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나타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생전에 의자왕에게 바른말 하다가 미움을 받아서

옥에 갇히고 충언을 하고

죽었던 유능한 인물이었던 성충의 죽음 이후에


(일본의 역사서  등씨가전 藤氏家傳 에는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고구려에는 연개소문, 당나라에 위징과 더불어

당대의 준걸로서 이름을 만리에 진동시켰다'


라는 언급이 있을 정도로

성충은 당대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백제 대신들은 여러 갈팡질팡하며

서로의 의견을 내놓게 됬고


이에 의자왕은 옥에 갇힌 흥수에게

나당연합군을 막을 방법을 묻자

흥수는 역시 성충과 같은 말을 했고

결국 의자왕은 그 말들을 듣지 않다가

나당 연합군은 백제의 요충지인

백강과 탄현을 넘게되었습니다,,


결국 의자왕은 나당 연합군이

이미 백강(당나라군)과 탄현(신라군)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계백 장군을 시켜서 5천 결사대를 거느리고 황산으로 가서

신라 군사와 싸우게 했으나

결국 황산벌 전투는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 군대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데

황산벌 전투는 백제 멸망 전 최후의 전투라 할 수 있고

백제 계백 장군은 이 전투에서 또 신라 김유신 장군 역시

이 전투에서 양국의 운명을 걸고

서로 한치의 물러섬없이 싸웠고

결국 황산벌 전투는 한국사의 전설적 전투가 되었는데

이 전투는 다음 이야기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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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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