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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멘델레예프>

[현대화학의 상징 주기율표]

[대가족과 어머니]

[화학자의 길]

[유기화학]

[두 번의 결혼]

[화학의 원리]

[카드놀이와 주기율표]

[비활성 기체]

[아슬아슬하게 놓친 노벨상]

[러시아 경제발전에 기여한 멘델레예프]

[과학과 믿음]

[주기율표의 변화]

[거대 가속기로 만든 새로운 원소들]

[코리아늄]

<라봉봉>

 

[현대화학의 상징 주기율표]

우리가 덕질이나 취미생활을 시작하면

처음엔 여유있고 널찍널찍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집품이 많아지게 되면

집이나 방을 가득 채우게 되고

넘쳐나는 수집품을

버려야하거나 체계적으로 정리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듯이

 

취미가 쌓여갈수록 늘어나는 자부심과 골치거리들 ;;

 

근대에 이르러서 근대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부아지에'에 의해 화학혁명이 시작되고

과학 , 화학자들에 의해 점차 발견되는 원소가 증가하면서

수많은 원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의 필요성이 생겨났고

이에 원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주기율표' 가 만들어집니다

 

주기율표 , 해시넷

 

주기는 '일정한 시간마다 같은 현상이 이루어지는 것' 을 의미하며

'주기적으로..' , '생리주기' 등 실생활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이고

화학에서 원자들 정리표가 '원자표' , '원소표' 가 아니라 '주기율표'가 된 이유는

원소를 원자량 순서대로 배열했을때 비슷한 성질을 지니는 원소들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나타나는 현상을 멘델레예프가 발견하고

주기율표라 이름붙였기 때문입니다

 

주기율표는 단순히 원자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만이 아닌

세로줄은 '족' 이라 하며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것끼리 나열한 체계적인 원자표이고

화학공부를 하게 된다면 주기율표로 원소의 위치나 원자번호만 보고도

원소에 대해 어느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인 표로서

 

(표만보고도 컨닝이 됨ㅋㅋ)

 

메이플스토리에 전사 , 도적 , 궁수 , 마법사가

전사=검 , 도적=표창 , 궁수=활 , 마법사=지팡이

처럼 각자의 뚜렷한 심볼이 있듯이

 

근본겜 시절 메이플 4직업

 

과학도 물리학=힘 , 생명과학=DNA이중나선 ,  지구과학=별

이라는 심볼이 있는데

 

물리

 

생명과학

 

지구과학(천문학)

 

화학은

화학=주기율표 이고

주기율표는 화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중 하나이며

화학을 처음배울때 주기도문마냥

수헬리베 붕탄질산 어쩌구 하며 20개를 강제로 외워야하듯이

오늘날 주기율표는 화학을 상징하는 심볼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주기율표는 과학 , 화학사에서 세상을 바꿨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업적이며

이번 이야기는 주기율표를 창시한 멘델레예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대가족과 어머니]

멘델레예프는 1834년 2월 8일 러시아 시베리아 서쪽 베르크니 아렘자니에서

12명의 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났고(16명이라는 말도 있음 ;;)

어마어마한 다산을 한 대가족이었던 멘델레예프네 가족이었고

 

멘델레예프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는 교사였는데 장님이 되버려서

어머니 마리아가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고

멘델레예프의 어머니는 원래 가족들이 하다 버려진 유리공장을 다시 운영했는데

아버지는 멘델레예프가 13살때 돌아가셨고

멘델레예프가 15살일때는 유리공장이 불타버리게 됩니다(;;)

 

 

홀어머니가 이끄는 대가족이 빈곤에 직면하자

멘델레예프의 어머니는 모든것을 버리고

총명한 막내아들 멘델레예프를 교육시키기로 결심했고

멘델레예프와 그의 형제자매 2명을 데리고 2000km가 넘는 대항해를 해서

모스크바로 갔는데 당시 타지역 출신에 대한 입학제한 규정이 있어서

모스크바 대학은 시베리아 출신 멘델레예프를 거부해

결국 16살의 멘델레예프는 당시 러시아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고

멘델레예프의 어머니는 계속되는 아들의 대학입학 거부에도 굴하지 않고

남편의 모교 세인트 페테르부르크 교장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아들의 입학을 부탁합니다

이에 멘델레예프는 교원 양성소(중앙 교육학 연구소)에 입학할 수 있었고

 

교원양성소에 들어간지 10주만에 불행히도 어머니 마리아는 결핵으로 죽었고

멘델레예프 어머니와 사별하는 슬픔과 동시에 결핵에 시달리면서도

침대에서까지 학업에 집중해

20살이 되자 독창적인 연구논문을 출판했고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돌아가시면서 멘델레예프에게 유언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환상을 조심해라 ,

부지런히 일하고 , 신의섭리와 과학적 진리를 찾아라

 

 

멘델레예프의 어머니 마리아 드리트니브니

 

개구장이였던 멘델레예프는

이후 늘 어머니의 유언을 떠올리며 타락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정한 화학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멘델레예프>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실때 말했다

미혹(환상)을 삼가라 ,

말에 의지하지 말고 행동(연구 , 일)에 의지하라 ,

인내하며 신의 섭리와 과학적 진리를 찾아라

 

[화학자의 길]

1855년

21세의 멘델레예프는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학교에서 과학교사 직업을 얻는데

멘델레예프는 따뜻한 지역에서 건강회복 및 자리잡기를 기대했지만

일주일만에 크림전쟁이 터져서 영국군이 해안에 상륙하자

학교는 문을 닫았고(;;)

더 북쪽에 있는 오데사에 있는 다른 학교로 옮겨지다 

곧 돌아와서 피터스버그의 세인트 대학교에서 화학석사 학위를 위해 공부했고

1856년 학위를 받습니다

 

멘델레예프는 1859년~60년 동안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유학하며

로베르트 분젠과 일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고

1860년 분젠은 세슘원소를 발견합니다

 

1860년 멘델레예프는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 최초의 국제 화학 회의인

카를스루에 의회에 참석했고

당시 회의에서는 가장 긴급한 필요성이었던 화학을 표준화할 필요성을 논의하였고

그 회의를 통해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고

멘델레예프는 이 회의에서 '아보가드로 법칙'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아보가드로 법칙>동일한 온도 및 압력에서

동일한 수의 기체 분자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같은 부피를 차지한다

(=같은 온도와 같은 압력에서 일정부피안에 들어있는 입자수는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동일하다)

 

아보가드로 법칙 ,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유기화학]

멘델레예프가 기술 연구소에서 가르치기 위해

1861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을때

멘델레예프는 화학에 대해 더욱 열정적이게 되었고

그는 러시아가 화학에 대해 독일에 뒤쳐져있음을 걱정했고

멘델레예프는 러시아어 화학교과서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27세의 화학자는 단 61일만에 500페이지 분량의 화학교과서

'유기화학' 을 출판하게 됩니다

 

겨우 27살인 이 천재화학자는

개성도 강해서 수염을 1년에 한 번만 다듬어

흐르는 수염과 길고 거친 머리카락을 가진 까탈스러운 괴짜교수가 되었고

그럼에도 멘델레예프는 여전히 인기있고 실력있는 교수여서

 

젊은시절 멘델레예프 , 그냥 톨스토이처럼 멋때매 수염기른거였음 ;;

 

'유기화학' 책 출판으로 인해 27세의 그는 큰 명성을 얻게 되는데

'유기화학' 은 화학에서 그 시대에서 가장 권위있는 책으로 여겨져서

이 책으로 그는 도미도프 상을 수상했고

명성이 퍼져 러시아 화학의 최전선에 서게 됩니다

(대충 러시아 화학 1짱이 됬다는 의미)

 

[두 번의 결혼]

1862년 28세의 멘델레예프는

누나 올가의 주선으로 6살 연상의 페오즈바 레시체바라는 여성과 결혼해

블라드미르와 올가라는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첫번째 아내 페오즈바

 

아내는 늘 연구에 몰두하는 멘델레예프의 시중을 들었는데

멘델레예프는 아내에 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같이 보내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아내는 멘델레예프의 연구에 관심이 없었고

 

둘은 행복한 결혼은 아니어서

이후 큰 과학적 성과를 냈던 멘델레예프는 아내에 줄 수 없었던 사랑을 아내가 아닌

아들과 딸에게 쏟아붓고 부부는 다툼이 계속되다 1871년부터 별거에 들어갔고

멘델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의 일을 우선시하고

아내는 모스크바 근처에서 아이들과 사는 기러기 부부가 되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사는 멘델레예프의 가사를 돌보려

누나 예카테리나가 집에 왔는데

누나는 멘델레예프의 연구를 방해하지 않으려 늘 조심했는데

어느날 미술원에서 공부하는 누나의 딸 나데주다와 그의 친구 안나 이바노바 포포바가

멘델레예프 집에 놀러왔는데

1880년 멘델레예프가 46살이 될때

그는 19세의 음악학생(+여조카의 친구) 안나 포포바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점차 안나와 가까워져 서로 사랑에 빠지는데

멘델레예프는 안나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 요청했고

안나의 아버지는 먼저 멘델레예프의 부인과 이혼할 것을 요구했고 (막장ㅋㅋ;;)

멘델레예프는 별거중인 아내를 찾아가 이혼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했고

밤낮으로 그의 맘속에서 안나가 나타났고 그의 동료들은 안타까워했고

한 동료는

 

<멘델레예프를 걱정한 친구>이런 정도라면(27세 연하녀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그는 채 1년도 살지 못할거야..

 

죽어가는 멘델레예프의 모습을 본 아내는

 

<멘델레예프의 아내>당신과 이혼해 주겠어요

 

하자 멘델레예프는 이혼조건도 신경쓰지 않고 이혼도장을 찍었고

이혼조건은 지금 가진 집과 대학교수 급여 모두를 주겠다는 것이었고

이혼이 마무리되고 멘델레예프는 1882년 1월 안나와 재혼합니다

 

(멘델레예프가 안나에게 결혼 안해주면 자살한다 협박했다는 말도 있음 ;;)

 

당시 러시아 정교회에서 이혼은 극혐하는 상황이라

당시 교회는 법적 재혼을 하려면 최소 7년이 필요해

멘델레예프가 7년동안 다시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그는 판결을 무시하고 어쨌든 안나와 재혼했고

이로인해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못했다 합니다

 

당시 멘델레예프는 엄청난 대중적 스캔들을 일으켰는데

둘은 쌍둥이를 포함해 네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어찌됬건 해피엔딩 ?? ;;)

 

두번째 와이프 안나

 

두번째 부인 안나가 그려준 멘델레예프 초상화 (1885)

 

[화학의 원리]

멘델레예프는 카리스마 넘치는 교사이자 강사였고

1867년 33세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일반 화학교수직을 받게 됩니다

 

<멘델레예프>나는 마음 속의 자유를 얻었다 ,

두려워서 말 못할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

어느 누구도, 또 그 어떤 것도 나를 침묵시킬 수는 없다 ,

아주 좋은 느낌이다. 인간다움이란 느낌이다 ,

당신도 이런 느낌을 가졌으면 한다 ,

당신이 이러한 마음 속의 자유를 얻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나의 도덕적 책무다

 

이미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그였지만

그럼에도 화학이 너무 어려워서 당대 학생들이

이 젊은 교수를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고

멘델레예프는 사람들이 화학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명확한 시스템의 부족' 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멘델레예프는 이어서 무기화학에 관한 글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이전에 쓴 글이 유기화학(탄소 중심) 이었다면

이번엔 무기화학(탄소가 아닌 모든원소) 에 대한 글이었고

1869년 '화학의 원리' 를 출판해

러시아의 낙후된 화학을 개선시키려 노력하였고

이 교과서는 러시아에서 인기를 넘어

영어 , 프랑스어 , 독일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으로도 히트를 치게 됩니다

 

화학의 원리

 

<멘델레예프>과학 세계에서의 삶이 얼마나 만족하고 자유롭고 즐거운지 알게

많은 사람들이 출입문에 들어가기를 열렬히 바란다

 

[카드놀이와 주기율표]

멘델레예프는 '화학의 원리'를 쓰면서

더 나은 , 더 근본적인 화학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고

당시 63개의 원소가 알려져 있었는데

카드게임을 좋아했던 멘델레예프는

마치 솔리테어 카드놀이(윈도우에 기본게임으로 있는 그 solitaire ㅋㅋ)

를 하듯이 카드에 63개의 원소의 이름을 쓰고

각각 원자량을 포함한 모든 원소들의 기본 특성을 카드에 썼고

가는 곳마다 카드를 가져가며 다양한 순서로 카드를 계속 배열하고 재배열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컴퓨터시간때 지뢰찾기와 함께 한번쯤 해본 솔리테어(카드놀이)

 

멘델레예프는 원자량이 어떤 면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원자량이 증가할때마다 원소의 행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패턴을 볼 수가 없었고

무언가 발견할뻔했다고 확신한 멘델레예프는 몇 시간동안 책상에서 카드를 옮기다가 

책상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꿈에서 멘델레예프는 원소들이 필요에 따라 책상에 제자리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잠에서 깼을때 그는 꿈에서 본 것을 즉시 종이에 적었고

이것을 출판하는데는 2주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렇게 멘델레예프에 의해 1869년 주기율표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멘델레예프>나는 꿈에서 책상에 모든 원소가

필요에 따라 제자리로 떨어지는 테이블을 보았다

꿈에서 깨자 나는 즉시 종이조각에 그것을 적어내렸다

 

 

당시 출판사 마감일이 다가와서 멘델레예프는 이미 알려진

63개의 원소들을 기술할 시간이 없어서

남들이 꼼꼼하게 수집한 원자량 자료에 의지하였고

 

당시 원자량을 결정하려 과학자들은

다양한 수용액에서 전류를 흘려 원자들을 가려내려 했고

배터리 극성에 따라 어떤 원소의 원자들은 이쪽으로 ,

어떤 원소의 원자들은 저쪽으로 움직였기에

원자들은 별도의 용기에 수집되어 무게를 달았고

이 과정에서 화학자들은 상대적 무게를 정했는데

멘델레예프는 그 자료로 순위를 매겼고

 

카드게임을 좋아한 멘델레예프였기에

그는 각 원소의 무게를 별도의 카드에 적어

솔리테어 카드게임처럼 분류해

유사한 속성을 갖는 원소들은 한 열에 놓아 세트로 만들었고

원자량을 올림차순으로 하여 배열합니다

 

연구하는 멘델레예프

 

이렇게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의 모든것을 혼자 개발하지는 않았는데

이전부터 화학자들의 연구에서 쌓여온 지식을 물려받아 개발하였고

1860년 과학자들 최초의 국제화학회의에서

과학자들은 가장 가벼운 원소 수소(H) 에 1의 무게를 부여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모든 원소의 무게는 수소 원자의 무게와 비교되고

어떤 원소가 수소보다 8배 무겁다면 그 무게는 8임을 의미하고

원자량에 대한 체계적인 측정은 주기율표의 성공에 크게 기여합니다

 

<멘델레예프>사물의 모든 곳에는 세력균형으로 결정되는 중용이 존재한다 ,

러시아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소금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도 , 너무 적게 쓰는 것도 모두 안 좋다.'

정치와 사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로서 멘델레예프는 63개의 원소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주기율 법칙을 고안하게 되었고

멘델레예프는 테이블(주기율표)에 공란이 있으면

훗날 발견될 해당자리의 원소의

원자가와 화학적 특성을 정확히 예측했고(갈륨 , 스칸디움 , 게르마늄)

갈륨 , 스칸디움 , 게르마늄은 모두 1871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멘델레예프는 각각에 대한 공란을 남겨두고

원자 질량과 화학적 특성을 예측했고

이후 15년 안에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새로운 원소들이 발견되어

주기율표의 정확성에 주기율표의 과학적 인정 및

멘델레예프의 과학적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1905년 영국 왕립 학회는 멘델레예프에게 최고의 영예 코플리 메달을 주었고

같은해 그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 선출됩니다

 

멘델레예프가 쓴 주기율표 초안(왼쪽)과 출판본(오른쪽)

 

[비활성 기체]

주기율표에 따라 원소의 여러 특징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멘델레예프였지만 이후 발견된 원소 아르곤은 어느곳에 분류해도 

어느곳에도 적합하지 않았고

멘델레예프튼 처음엔 이 원소의 존재를 부정했고

헬륨 , 네온 , 크립톤 , 라돈 같은 원소도 인정하지 않았고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편협하지는 않았던 멘델레예프였기에

1902년 자신이 일부 원소들의 존재를 예상치 못했음을 인정하고

이들은 반응성이 없는 비활성 기체 , 노블가스여서 이 원소들은

주기율표상에 18족 원소 그룹을 구성하게 됩니다

 

[아슬아슬하게 놓친 노벨상]

멘델레예프는 굉장히 위대한 발견을 했고

살아생전에도 수많은 당대 세계 과학자들에게 인정받았지만

단 하나 , 러시아라는 과학의 변방국가 국적 때문에

주류였던 영국 , 독일 과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곧 그가 예측한 원소들이 계속 발견되며 현대화학의 아버지로 추앙받았고

 

노벨상이 만들어지고 1901년 첫 수상자를 결정할때도

멘델레예프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올랐지만

이제 갓 생겨난 상을 주기에 너무 위대한 사람이라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혹은 당시 신생상이이었던 노벨상에 비해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발명은 이미 수십년이 지나서

열띤 토론끝에 노벨상 위원회에서는 

열띤 토론 끝에 1표차이로 앙리 무아상의 수상을 지지해줬다 합니다

 

(멘델레예프나 모즐리 , 오펜하이머처럼

생전 노벨상을 못받았지만 조금 더 살았으면 100퍼 확정이라 하는

과학자들이 꽤있고 과학사책에선 노벨상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노벨상 받을 클래스는 다들 인정해줌)

 

[러시아 경제발전에 기여한 멘델레예프]

멘델레예프는 까탈스러운 선생이었지만 소탈한 양반이었고

천재적인 화학 , 과학적 경력에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서

멘델레예프는 실용적이게 다양한 산업의 효율성을 개선하려 시도했고

 

1895년 9월 에펠탑의 멘델레예프(왼쪽)

 

연료를 운송하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멘델레예프는 러시에 최초의 정유공장 건설을 도우며

 

<멘델레예프>석유로 연료를 태우는 것은

지폐로 주방 스토브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며 앞으로 석유가 불떼기 외에도

다방면에서 무궁무진하게 쓰일것을 예견하며

석유화학의 시대를 예견했습니다

 

결국 석유에서 플라스틱 및 나일론 및 폴리에스터 발명잼

 

이미 당대 최고 과학자 + 책 인세로 농장을 소유한 돈과 명예(+27세 연하녀)를 다 가진

멘델레예프였고 자신의 농장에 근대적 농법을 주변 농부들에 흔쾌히 알려주고

아울러 치즈 제조법도 알려줬으며

비료를 사용한 근대적 농법을 사용해 농부들을 도왔고

러시아 서민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가져다 주고싶었던 멘델레예프는

기차로 시골을 돌아다녔는데

늘 3등석을 타며 농부들과 만나며 일상적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 조언을 제공했습니다

 

소탈왕 멘델레예프

 

또한 다재다능왕 멘델레예프는 열기구도 타보고

세계 최초의 북극 쇄빙선 예르막을 만드는데도 도왔고

러시아에 미터법을 도입하고 가스의 임계 온도를 정의하는 등

다방면 분야에서 러시아의 경제발전에 기여하였고

 

ㄹㅇ 돈 명예 어린여자 부국강병 열기구까지 하고싶은거 다하다 죽음

 

세계최초 북극 쇄빙선 예르막도 제작잼

 

별개로 아인슈타인도 지구정복 과학승리 완료후 인디언 모자쓰고 지구관광 다녔음ㅋㅋ

 

그랜드캐니언에서 아인슈타인 , 세계과학 1짱들의 낭만 그런거랄까

 

또한 당대 이미 러시아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던 멘델레예프라

이것저것 러시아 정치 , 경제 , 교육 , 사회에 다 손을 데볼 수 있던 상황이었고

멘델레예프는 또한 보드카의 표준 도수를 40%로 설정했는데

 

러시안 스탠다드 보드카는

 

<러시안 스탠다드 보드카>1894년 러시아 최고의 과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러시아 보드카에 대한 제국의 품질 기준을 정하는 법령을 받아

'러시안 스탠다드'가 탄생했다

 

라고 광고하고 있는데

 

러시아인들의 국민술 '보드카'

 

사실 이는 구라고 이미 멘델레예프가 9세였던 1843년

러시아 정부는 이미 40% 표준을 도입했는데

워낙 멘델레예프가 겸허한 인성갑 과학자에

대중 , 과학자 , 각계각층에 인기가 좋은 인물에

실력도 러시아 과학계의 톨스토이 같은 인물이라

그냥 이것저것 좋아보이면 멘델레예프 이름을 가져다 붙여서

광고효과를 누리려는거 같고

 

(우리가 뭐만하면 세종시 , 세종과학기지 , 세종대왕급 함 붙이는것과 동일)

 

[과학과 믿음]

멘델레예프는 73세를 일기로 1907년 2월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독감으로 사망했고 죽을때 의사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멘델레예프>선생님 , 당신은 과학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멘델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볼코바 묘지에 있는

그가 평생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어머니 근처에 묻혔습니다

 

<멘델레예프>나는 평화적인 타입의 진화론자다 ,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진행시켜라 ,

일하며 평화를 추구하고 , 일 속에서 평온을 찾아라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스쳐가는 행복들 , 그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연구는 길고 영원한 기쁨을 남긴다 ,

그러나 연구는 인류를 위한 노력이어야만 한다.

 

노년의 멘델레예프

 

멘델레예프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성대히 치뤄졌고 멘델레예프의 제자들은

그가 고안한 주기율표를 들고 참석하였고

그의 관에 주기율표를 덮고 장례행진을 했습니다

 

(대충 스티브 잡스 장례식때 아이폰들고 집결한것과 동일ㅋㅋ..)

 

주기율표가 그려져있는 멘델레예프 동상

 

[주기율표의 변화]

멘델레예프는 살아생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멘델레예프>앞으로 빈 칸을 채울 원소가 나타날 것 ,

주기율표의 빈 칸이 채워지면 비례가 완벽할 것이다

 

멘델레예프 사후에도 주기율표는 계속해서 개정되어서

영국의 천재 과학자 모즐리는

원자량을 기준으로 했던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규칙성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나타나자

원자번호를 기준으로 규칙성에서 어긋났던 부분의 순서를 바로잡았고

 

영국 천재 물리학자 모즐리

 

모즐리는 음극선관의 금속에 전자를 충돌시킬때 나오는 X선의 파장이

금속원소의 양성자수(원자번호) 가 클수록 짧아짐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원자 번호를 결정하고 원소들의 주기성은

원자 번호에 따라 결정됨을 발견합니다

 

이런 업적으로 차기 노벨상 수상이 '확실시' 되었던 영국의 천재과학자 모즐리는

애국심에 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해 참전하였고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오스만 제국 갈리폴리에서 전사해서

과학기술자들의 병역면제 제도인 '전문연구요원제' 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재밌는건 모즐리는 '화학자'가 아닌 '물리학자' 로 구분되는 인물인데

멘델레예프의 주기율 법칙의 발견은

화학이 과학적 예측력을 갖게 된 큰 사건으로

'양자론'의 토대가 되어 물리학과 긴밀히 연계되며

모즐리는 멘델레예프보다 후세대 과학자로서

멘델레예프와 모즐리 사이에 푸딩원자모형 , 전자를 발견한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 이 있는데

조지프 존 톰슨은 생전에 이런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깁니다

 

조지프 존 톰슨

 

<조지프 존 톰슨>원자에 대한 현대적인 개념이 정확하다면

물리학과 화학을 분리한 장벽은 제거되었다

 

멘델레예프가 제시한 주기율표는 단순 화학에서만 영향을 끼친게 아니고

물리학에도 큰 영향을 주어 원자에 대한 연구 , 나아가 전자에 대한 연구로 이어져

미시세계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이로인해 멘델레예프 시대 이후부터는 화학책에 계속 물리학자들이 나오고

물리학 공부하려면 화학을 공부해야하는게 필수가 되어버립니다

 

[거대 가속기로 만든 새로운 원소들]

이후에도 후대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주기율표를 연구하며

새로운 원소들을 발견해 주기율표에 계속해서 원소들을 추가시켰고

거대 가속기가 등장하며 우주 생성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기본 입자와 원소들을 속속 발견하는 계기가 됬는데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세계 최초의 거대 가속기 연구기관인

미국의 로렌스버클리 연구소였고 (이번 초전도체 논란때도 소환된 '그 연구소' ㅋㅋ)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는 가속기를 이용해

1937년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원소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하였고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며 비워둔 43번 원소 테크네튬(Tc) 였습니다

 

세계최초의 입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

 

현재까지 주기율표에 배열된 118개 원소 중

1번 수소부터 92번 우라늄까진 자연계에서 발견됬는데

나머지 26종의 원소는 가속기가 개발된 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가속기는 70여 년의 역사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약 20%를 배출하였고

 

(가속기 계속 돌려서 원소 하나만 발견해도 노벨상 하나 강제 당첨임ㅋㅋ)

 

이렇게 원자량 92보다 큰 원소들부터는 자연상태에 존재하지 않고

이들은 원소를 다른 원소로 충돌시켜 생성시킬 수 있고

주기율표에서 92번부터는 합성된 원소들입니다

 

이로인해 세계 강대국 , 선진국들은 더욱 크고 강한 입자가속기를 보유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 , 일본과 중국 등이 모두 2020~30년대를 전후해

기존의 성능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속기를 건설해

주기율표의 새 원소를 찾겠다는 계획이고

무거운 원소를 이온화시켜 가속하는 중이온 가속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소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서 세계 각국의 관심이 큰 분야입니다

 

여튼 주기율표에는 현재 1번 수소(H)부터 118번 오가네손(Og) 까지 발견되었고

이웃나라 일본은 2004년 9월 28일 이화학연구소(RIKEN) 에서 

80일동안 아연 원자핵을 비스무트 원자핵에 충돌시켜

니호늄 원자 1개를 발견했다 발표했고

이 원자는 0.000344초 동안 존재했다가 핵분열로 사라졌고

2016년 3월 이화학연구소에서 일본어로 일본의 발음 '니혼' 에서 따 온

'니호늄(Nihonium , Nh 원자번호 113번)' 이라는 이름을 IUPAC에 제출했고

2016년 6월 8일 니호늄이 공식 명칭으로 등록되었고

니호늄은 동양권에서 명명권을 갖는 최초의 원소가 되었고

이런 모습이 일본이 진짜 무서운 나라인 이유입니다

 

113번 원소 니호늄(Nh)을 발표하는 일본 이화학연구그룹장 , 2015년 12월 31일

 

[코리아늄]

대한민국 과학계도 주기율표 119번째 새 원소에 당당히

'코리아늄' 을 올리려 노력하고 있고

가속기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한 우리나라도

1990년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시작으로

경주 양성자가속기 , 부산 중입자가속기 등 중소형 가속기를 운영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때 장기적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노벨상 산실'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모델로 만든

대한민국 '기초과학연구원(IBS)' 에서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제과학로에

대한민국 최초의 중이온가속기 '라온' 을 건설하고 있고

라온은 2027년 구축될거로 예상되고 있고

 

한국인의 민족의 염원이 담긴 '라온'

 

라온은 새로운 원소의 발견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전까지는 관련 실험시설이 없어 남의나라 연구에 더부살이 해오던

한국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중이온 가속기 라온을 마음껏 활용해

새로운 원소발견에 몰두하게 될 것이고

라온은 현재 운영중이거나 비슷한 시기에 가동을 시작할 세계의 중이온가속기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양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속기 보유국에 합류하게 될 것이며

대한민국 과학자들은 만약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면

'코리아늄(Ko)' 이름을 붙이겠다 표명했습니다

 

제발 초전도체나 코리아늄 발견해서 민족의 염원 ㄱㄱ..

 

코리아늄 가즈아 ! (발견후 김치전사 갑옷재료로 쓰일 예정)

 

만약 코리아늄 발견되면 발견한 학자는

일단 노벨상 확정에 한국의 아인슈타인으로 여겨져

한국 위인전에 등록되고

갑자기 문중에서 한복입은 모르는 할아버지들이 족보들고 찾아올거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노래 마지막에

'날자꾸나 이상 황소그림 중섭 역사는 흐른다' 다음 가사로 개정가사판으로

'코리아늄 철수' 이런 식으로

추가될 것이며 두유노클럽에 면상이 제일 크게 박히고

미국에서 눈치보면서 전전긍긍 귀화해달라 구애하며

국정원에게 대통령보다 더한 특별신변보호관리를 받고

최상위 존예존잘 K팝 아이돌 멤버(뮤직뱅크 1위 , 만 20세)의 비밀구혼 DM을 받게 되며

대충 자서전 집필하고

전국팔도로 순회강연만 졸면서 몇번 돌아도 재산 기본 100억 찍힐겁니다

 

여튼..

탐험가들이 자기 마음대로 최초로 발견한 지역에 이름을 붙일 권한이 있듯이

과학자들도 자기가 처음 발견한 물질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이 존재하고

퀴리부인은 자신이 고생해서 발견한 84번째 원소에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

'폴로늄' 이라 이름붙였고

폴로늄 발견 5달뒤 발견한 88번째 원소에 빛을 발산한다는 의미로

'라듐' 이라 이름붙였고

이외에도 후대 과학자들은 선배 과학자들에 예우를 표하기 위해

99번째 원소에는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과학을 연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딴 아인슈타이늄 ,

104번째 원소엔 원자의 현대모델을 개발한 물리학자 러더퍼드의 이름을 딴 러더퍼듐

이름을 붙였고

주기율표의 아버지답게 원자번호 101번에는

멘델레비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1955년 발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원소 주기율표를 채울 수 있는 원소 수는 최대

137개라 예측했는데

 

천재 물리학자의 대명사 리처드 파인만

 

그 이상의 양성자는 허수로만 정량화 가능한 에너지를 생성하게 되고

다시 말해서 원자번호 138번과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원자핵 내부에서 핵의 상태를 유지하는 힘은 핵력인데

아무리 핵력이 강해도 원자핵 내부에는 중성자와 양성자가 존재하기에

양성자 수가 많으지면 같은 양성자간에 전기적인 척력또한 강해지므로

원자는 붕괴하게 되고 파인만의 계산이 틀린다 해도

그 숫자가 틀릴뿐 정확한 예측이라 합니다

 

근데 포켓몬은 300마리 넘게아는데 118개 주기율표는 ㄹㅇ 너무 외우기 어려움 주기율표 모에화된 만화나 게임좀 나와라 !!

 

<라봉봉>멘델레예프는 화학사에 라부아지에만큼 거대한 비중이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태생이 러시아라서 그런지

오늘날 근현대 과학계도 영미 , 프독이 주류라

이외 국가 인물들은 과학사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고있고

(안습 ;;)

 

저도 멘델레예프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 많이 보지는 않았는데

이번 이야기를 쓰며 여러 이야기를 읽어보니 역시 대단한 인물이고

 

의외로 톨스토이나 멘델레예프가 수염도

털보수준을 넘어서 너무 꾀죄죄하게 하고 다니는 것과 달리

자기 개인 농장이 있을 정도로 살아생전에 굉장히 순탄하고 유복한 삶을 살았고

그냥 꾸미는것에 관심없고 좀 수염괴짜 이런 타입이었을 뿐이지

이미지와 달리 현금부자 , 땅부자였고 러시아 교회 말도 잘 안듣고

마이웨이의 삶 + 범 국민적 존경을 받은 러시아 문이과 끝판왕들입니다

 

멘델레예프가 사진만 보면

뭔가 고흐처럼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거 같은 거같은 이미지인데

의외로 살아생전 학자로 이미 성공했고 인세도 짭짤해서 하고싶은거 다하다

고령으로 자연사한 양반인게 신기했고

톨스토이나 멘델레예프는 부와 명예를 다 가졌음에도

조용하고 소탈 , 겸허하고 평화롭게 살아서

굉장히 리스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고안한 주기율표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솔직히 저도 어렸을때 삼국지 인물들 , 일본 전국시대 인물들 ,

한국 장수와 재상들 막 나열해놓고 능력치나 스텟 이런거 생각해본게 많은데

 

수학이나 과학계도 다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가는듯하고

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붕소 탄소 질소 산소 이런거 다 나열해놓고 능력치랑 효과 , 상성 비교 하면서

변태같이 씨익 웃음짓는 이공계인들의 모습이 상상되고

 

옛날에 초등학교때 유희왕카드에서도

종족 , 레벨 , 효과 , 상성 등이 다양하게 존재했고

옛날에 제가 중학생때 엄마한테 졸라서 15만원에 산

닌텐도 DS와 포켓몬스터 DP 를 처음 할때가 생각나는데

이전 닌텐도 게임보이의 골드버전과 달리

AG , DP로 넘어오며 포켓몬 세대가 더 높아지면서

포켓몬 구분 , 분류가 더 엄격해졌고 지금봐도 일본인들의 섬세함이 대단하다 생각하는데

포켓몬들이 고집 , 조심 , 겁쟁이 , 명랑 등 성격에 공격 , 특수공격 , 스피드 등이 연계가 되었고

종족값이 전부 존재하고 노력치라고 특정 몬스터를 잡아야 특정 스텟이 오른다거나

개체값이 있어서 같은 포켓몬이어도 개체값이 맥스인 포켓몬이 있다거나

개체값이 높은 포켓몬끼리 교배시켜서 더 높은 개체값을 뽑아내거나 하는 등

GBA에서 DS로 넘어오며 이전 골드버전과 다른 새로운 시스템이 많이 적용되서

정밀함과 섬세함에 깜짝 놀랐고

 

사실 포켓몬은 무인편 꼬북이 리자몽같은 151마리가 근본인데

후대 세대로 넘어오며 포켓몬의 수가 151마리에서 300 , 400 , 500마리로 점차 늘며

그것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새로 정립되었고

포켓몬끼리의 물>불>풀>물 엘리멘탈 상성은 너무 유명해서

수많은 애니와 게임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에도 각자 잘 보이지 않는 세밀한 성격 , 개체값 등이 추가되어 더 정교해진게

근대에 이르러 점차 원소가 발명되며 원소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주기율표라는 새로운 정립이 생긴 발전과정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지금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맞나싶은 굉장히 어려운 비유지만 맞는말 같음)

 

포켓몬 제작자 타지리 사토시가 실제로 자연과학 덕후였음을 감안하면

포켓몬이 실제로 내면을 파고들어보면

굉장히 과학적이고 물화생지와 수학적인 게임 , 애니이고

솔직히 DP 이후론 너무 이상한 시스템이 생기고 어지러워서 안했지만

지우형이 수십년 고생하다 마지막에 감동적으로 우승시켜줘서

잘 마무리한 애니였다 생각하고

포켓몬이 의외로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인게 강한 게임 , 애니라

괜히 피카츄가 미키마우스도 제치고

세계 수익랭킹 1위한 일본 대표 문화컨텐츠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

주기율표의 발전을 보면 단순히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었고

이전부터 업적과 원소들이 계속 발견되며 쌓여버리자

누군가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졌고 그 자리를

화학을 좋아하던 멘델레예프가 채운 것이었고

 

저도 최근들어 집에 물건들이나 잡동사니 , 연장들이 너무 많이 쌓여

버릴거 버리고 닦고 방청소정리하고 집안 대청소를 굉장히 오래했는데

역시 청소정리는 기본이고 청소정리가 깔끔히 이뤄져야

복이 들어오고 작업 생산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별개로 주기율표으로 메이플이나 포켓몬같은 상성게임 , 애니메이션 만들면

어린이들 공부도 되고 재미도 있고

일석이조인데 누가 구국의 결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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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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