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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1642년

뉴턴은 영국 동부의 링컨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는데

몸이 약해서 병을 자주 앓다가

뉴턴이 태어나기전에 사망했습니다


어머니 역시 가난한 형편에 건강한 편이 아니라

뱃속의 뉴턴을 7개월째 임신했을 때 낳아서

뉴턴은 칠삭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가족중에는

산모였던 뉴턴의 어머니를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마을 여인들이 뉴턴을 받았다 하고

주민들 모두가 뉴턴의 장래를 걱정했습니다


뉴턴의 어머니는 어린 뉴턴을 홀로 키우기가 어려웠고

이웃마을의 스미스라는 목사와 재혼하게 됬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스미스 목사와 재혼을 해서 이웃마을로 떠났고

어린 뉴턴은 외할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뉴턴>할머니 엄마 왜 안와 ?


<뉴턴의 할머니>음,, ㅠ 곧 올거란다


홀로 남겨진 뉴턴이 불쌍한 뉴턴의 할머니였습니다


이후 뉴턴은 나름 무난히 잘 성장한 어린이가 됬지만

평소에도 몸이 약했고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주변 또래 어린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주변 사물을 관찰하거나 집안에서 책을 본 뉴턴입니다


어린 뉴턴은 항상 깊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이런 그의 깊게 생각하는 힘은

훗날 그가 위대한 발견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어린 뉴턴은 만들기 놀이를 좋아해서

집안에 있는 망치와 톱등을 이용해

나무토막으로 여러 무언가를 만들기를 좋아했고

또 물건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뉴턴은 사회성은 부족했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이후 뉴턴은 학교에 다니게 됬는데

뉴턴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소한 뉴턴보다 큰 아이들이 서로 종알종알 떠들때

뉴턴은 그런 것에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꼈습니다


<뉴턴>할머니 ! 학교가기 싫어 흑흑


응석받이 뉴턴은 할머니에게 학교가기 싫다고

울었고 할머니는 그런 뉴턴을 나무랬습니다


다시 뉴턴은 학교에 갔지만

역시 어울려 놀던 아이들과 달리 홀로 조용히 있었고

그런 뉴턴을 본 선생님이 뉴턴을 격려해주자

뉴턴은 선생님에게 어머니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뉴턴은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고

항상 집에 가면 물건 만들기 놀이를 했고

풍차나 바람개비 같은것을 좋아했던 뉴턴입니다


뉴턴의 공작(물건 만들기)실력은 더 높아졌고

그러다 납작한 돌에 막대기를 꽂고

해시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뉴턴은 학교에서 겁쟁이나 울보라 불렸고

항상 적응을 못했습니다

그러다 뉴턴은 자신이 만든 물레방아를

학교 친구가 무시하면서 부수자

결국 참다못해 그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고

그 친구는 도망칩니다


더이상 겁쟁이 소리를 듣지 않은 뉴턴이었지만

항상 공작놀이에 빠져서 학교 성적이 낮았던 뉴턴은

공부에서도 자신을 무시한 친구를 이기려 정신없이 공부해서

1등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뉴턴은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하고

이후 킹스 스쿨이라는 중학교를 가게 됬습니다

킹스 스쿨은 성적이 좋은 부유한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는데

이곳에서 뉴턴의 학교공부는 눈에 띄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나름 친구들도 사귀고 공작놀이도 하면서

좋은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뉴턴은 킹스 스쿨에

' 나는 뉴턴이다 I Newton '

라고 낙서를 해놨는데

오늘날에도 그 낙서가 남아있습니다


얼마후 뉴턴의 재혼했던 어머니는

또다시 남편이 죽는 사태가 벌어졌고

어머니는 다시 뉴턴의 집으로 의붓아버지와 낳은

세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뉴턴은 갑자기 동생들이 늘었고

집안 형편상 학교를 그만두고 농삿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농장에 갔는데 뉴턴은

주머니에 과학, 수학책등을 넣고

그곳에서도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뉴턴의 명언>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이 농부가 된지 2년쯤 되던 해

영국에는 역대급의 큰 태풍이 있었는데

영국사람들은 이를 '크롬웰 태풍' 이라 불렀습니다

크롬웰은 영국의 정치가로 가혹한 정치를 하는 왕을 몰아내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하며 여러 개혁을 했던 인물인데

크롬웰 역시 정권을 잡은 후 독재정치를 가혹하게 해서

국민적 원망을 사고 있었고

크롬웰이 죽고 얼마후 이런 큰 태풍이 불자

사람들은 크롬웰의 영혼이 태풍이 되서 사람들을

괴롭히러 왔다는 저주를 믿고 이를 크롬웰 태풍이라 부른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날아가는 자재들을 고정시키려 하고

집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는데

호기심 강했던 뉴턴은 바람의 힘을 느껴보려

거센 태풍에도 마을 언덕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뉴턴은 바람속에서 달리며

바람이 등에 맞으면 언덕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바람이 배에 맞으면 언덕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느려졌음을

파악했습니다


이런 뉴턴의 모습들을 본 가족들은

다시 뉴턴을 킹스 스쿨에 보내게 됬습니다

뉴턴은 킹스 스쿨에서 매우 열심히 공부해서

1등으로 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1661년

19살의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뉴턴은 이곳에서 케플러가 쓴 '광학' 이라는 책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학문적 기초가 되는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뉴턴은 가난했기에 학교에서 등록금과 식비를 내주는 대가로

부유한집 아이들의 시중드는 일을 했다 하며

어렵게 공부하면서도

광학과 수학 연구등에 집중했습니다


1665년

페스트가 전국적으로 퍼졌고 이에 학교들은 모두 휴학됬고

뉴턴도 고향으로 내려오게 됬습니다

연구할 도구나 물품은 없었던 이곳에서

뉴턴은 여러 사색에 잠기며 앞으로 할 연구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다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사색하고 있었는데

나무 위 사과 하나가 뉴턴앞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때 뉴턴은 땅으로 떨어진 사과를 보고

왜 지구의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 등을 생각하다가

결국 '만유인력의 법칙' 을 발견하며

역사적인 대발견을 했습니다



또 뉴턴은 아주 뛰어난 성능의 반사 만원경을 만들게 되서

이로 인해 대학에서 연구비용을 지원해줘서

옛날보다 돈걱정도 줄고 여유가 생겼고

추천을 받아 27세의 나이로 대학 교수가 됬습니다

또 30세에는 왕립 학회 회원이 됬고

점차 유능함을 인정받은 뉴턴은

학자로서 출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턴은 항상 연구에 집중했고

달걀을 삶아먹으려다가도

골똘히 생각하느라 냄비에 달걀대신 시계를 삶아버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뉴턴은 항상 소심한 성격이어서

중요한 발견을 해도 측근들에게만 말하거나

항상 발표하지 않거나 했고

이런 버릇들로 인해 미적분을 발견해놓고도 발표를 하지 않아

독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발표하자

뉴턴은 내가 먼저 발견했다면서 이에 여러 논쟁을 벌인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괴짜기질이 있었던 뉴턴인데

이외에도 물질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에 심취해서 그의 친구들은

그의 관심사를 연금술에서 물리학이나 수학쪽으로 바꾸려 여러 고생을 했다 합니다,,

그는 마지막 연금술사라고도 불립니다


뉴턴은 45세에 프린키피아라는 훌륭한 과학책을 펴냈고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연금술사일도 해보고 국회의원도 해보고

돈찍어내는 조폐국장일도 해보고 주식도 하다가 망해보고

평생 이것저것 여러 일도 많이 했습니다,, 

과학자였던 그가

국회의원이나 연금술이나 조폐국장, 주식일 등을 한 이유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대한 상처로 인해 했던것으로 추측되고

대신 이분야들에서는 평이 좋지는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다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이 위대한 물리학자 뉴턴은

1727년 3월 20일

85세를 일기로 런던의 집에서 조용히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기전 제자들이 뉴턴에게 말했습니다


<뉴턴의 제자들>선생님께서 이루신게 참으로 많습니다


<뉴턴>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나도 잘 모르네

하지만 나는 진리라는 거대한 바다를 앞에 둔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을 주운 소년에 불과하다네


그는 영국의 위인들이 묻힌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뉴턴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뉴턴의 묘비>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신께서 '뉴턴이 있어라' 하시자 모든 것이 밝아졌다

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라봉봉>뉴턴으로 인해 이성의 시대가 열렸다고도 하고

뉴턴은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인물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과학, 수학이론들이

그가 고안해낸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살아생전 수많은 대발견을 한 위대한 학자임에도 스스로 말하길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을 줍는 소년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닌

자연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위대한 발견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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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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