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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체제와 자유주의 운동>

[빈 체제 이전 상황]

[빈 체제]

[빈체제에 반대한 세계 자유주의 운동]

[7월 혁명]

[레 미제라블]

[2월 혁명]

[나폴레옹 3세]

[보불전쟁]

[파리 코뮌과 제 3공화정]

[차티스트 운동]

[경제 자유 확대]

[종교 자유 확대]

<라봉봉>

 

[빈 체제 이전 상황]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국왕의 목이 단두대에서 잘렸고

프랑스 내부에서는 왕정 반대 ,

자유주의 운동이 확산됬고

유럽 왕국의 국왕들은 프랑스꼴 날까봐 두려워

프랑스를 경계하게 됬습니다

 

프랑스 혁명기간 동안

프랑스 내부에서 엄청난 숙청과 혼란이 있다가

나폴레옹이 등장해 내부 반란을 진압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며

프랑스 혁명은 끝나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다른 유럽왕국들처럼 자신이 왕이 되면

그럭저럭 다른 유럽국가들과 이전처럼 잘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이미 자유주의 운동의 불꽃은 돌이킬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었고

유럽 국가(왕)들은 연합해 나폴레옹에 맞섰고

결국 나폴레옹 역시 '나폴레옹 전쟁' 을 일으켜

유럽 연합 군대들을 격파하고 유럽을 제패하나

나폴레옹은 영국의 집요한 견제와 러시아 원정 실패로 몰락하게 됩니다

 

[빈 체제]

이에 전후수습 , 프랑스에 대한 간섭 목적으로

유럽 왕국들은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서

1814~1815년 '빈 회의' 를 개최하는데

오스트리아 수상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회의가 이루어졌고

 

메테르니히

 

빈 회의

 

빈 체제

 

빈 회의에서 유럽 왕국들은

나폴레옹이 퍼트린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 , 박애의 가치를 없애고

전통적인 봉건 , 왕실 가치관으로 회귀하려 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빈 체제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말도 안되는 시도다 !!!

 

즉 더 쉽게말하면

빈 회의 , 빈 체제의 내용은

 

'모든 것을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린다'

 

였는데

역사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었고

이후에도 유럽에는 자유주의 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게 됩니다

 

빈 체제에 대한 유럽 각국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는데

이에 왕정을 유지하기 위한 빈 체제의 탄압이 있었고

또 가장 쎈캐였던 영국은 산업혁명과 해외 식민지 진출에 집중하느라

빈 체제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고 (쿨가이)

이후 혁명이 유럽 곳곳에서 발생하다

메테르니히가 쫓겨나며 빈 체제는 붕괴합니다

 

단지 빈체제는 국제기구의 첫 사례로 보기도 한다는

의의가 있다 합니다

 

[빈체제에 반대한 세계 자유주의 운동]

하여튼간에

빈 체제에 저항하는 자유주의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항해

1821년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영국 , 러시아 , 프랑스의 지원 + 유럽 낭만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세력의 지원으로

1829년 독립하게 됩니다

 

그리스 독립전쟁

 

분열되어있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는데

독일의 부르셴샤프트 운동 ,

이탈리아의 카르보나리 당운동이 전개됬지만

각국 정부의 탄압과 오스트리아의 간섭으로 실패합니다

 

남미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각각 독립운동을 시작해 유럽에서 독립해나갔고

 

이렇게 유럽의 자유 , 민족주의 열풍은 세계 사회 곳곳에

충격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7월 혁명]

한편 빈 체제 이후

혁명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는

또다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바로 1830년의 '7월 혁명' 과

1848년의 '2월 혁명' 입니다

 

먼저 7월 혁명은

시민과 자유주의자가 주도했는데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 (프랑스 혁명때 목잘린 루이 16세의 동생) 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다시 구식 절대왕정을 추구하며

입헌정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반 왕당파들을 몰아내려고 의회를 해산시키고

출판 자유를 정지했지만

 

대중들은 샤를 10세의 말을 무시하고

프랑스 언론들은 출판을 했고

파리 군중들은 항의시위를 벌입니다

 

흔히 프랑스 대혁명 그림으로 알려졌지만 7월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또 바리케이트(임시 울타리) 가 구축됬고

결국 혁명은 성공해

샤를 10세는 영국으로 망명하고

프랑스인들은 자유주의자였던 루이필리프 1세를 왕위에 올려

7월 왕정이라는 입헌군주제 왕정이 성립되고

길고 긴 부르봉 왕조는 끝나게 됩니다

 

바리케이드 , 흔히 길막용 등으로 집에 가구 ,  책상 , 보도블럭등을 떼다 임시 성을 쌓는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

또 1832년 6월에

파리에서는 힘들게 피흘렸고

비록 절대왕정은 입헌군주제로 바뀌었지만

왕이 있는건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군주제 폐지를 기치로 항쟁이 일어났는데

빅토르 위고의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장발장)' 은

이 시대를 주요 배경으로 하여 진행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레미제라블 원작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2012) Les Misérables'

 

<영화 레미제라블 OST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수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 오리라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

This is the music of the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레미제라블을 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빅토르 위고는

 

'여자는 약하다 ,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어렸을때 장발장 특유의

프랑스 감성 스릴러 분위기도 인상깊게 봤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글은

 

'하늘나라의 심부름꾼인 그대여 , 말해 주시오.

그대는 죽음이오 ? 아니면 생명이오 ?

그러자 천사가 어둠으로 제 몸을 가렸다.

하지만 천사는 빛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천사가 대답했다.

'나는 사랑이오.'

 

입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문학의 힘과 아름다움을 안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2월 혁명]

그리고 끝내 18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또다시 혁명이 일어났는데

'2월 혁명' 으로

당시 국왕 루이 필리프 1세는 비록 입헌군주제 지향에 선량한 인물이었지만

완전한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은 왕이라는 한계가 있는 인물이었고

또 1830년부터 프랑스에서는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자

세력이 커진 산업자본가 , 노동자들은 7월 왕정에 대한 불만을 품습니다

 

당시 프랑스 정치 참여권 , 투표권은 토지 보유자들에게만 주어졌는데

이로인해 정치권력은 소수 지주들에게 집중됬고

이 시기 한창 부를 쌓아가던 산업자본가들은 철저히 정치권력에 배제당했고

빈곤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산업인들은 7월 왕정에 불만을 품게 됬고

그들을 더 빡치게 한것은 철천지 원쑤인 영국놈들이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중산층들에게 정치 문을 활짝 열자

프랑스인들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합니다

 

또 1846년 유럽전역에 경제불황까지 일어나자

프랑스인들은 꼭지가 돌기 시작했고

 

결국 1848년 2월 선거권 확대와 관련해

파리 시민들이 광장에서 토론을 벌이려 했지만

7월왕정은 군대를 동원해 토론회 개최를 방해했고

프랑스인들은 파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혁명을 일으켰고

정부측에서는 병력을 동원해 성난 군중을 통제하려 했지만

이 과정에서 발포가 이뤄져 52명의 시민들이 사망합니다

 

2월 혁명

 

이에 파리 시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고

파리 전역은 1500개의 바리케이드로 뒤덮이고

이에 루이 필리프 1세는 더이상 못버티고

스스로 퇴위해 영국으로 망명합니다

 

(프랑스 왕들은 왕관의 무게를 못버티면 영국으로 째는게 전통인가 봅니다 ,

실제 쿨가이였던 영국은 자유의 나라답게 외국인 선동가와 피난민에게

관대하기로 유명해 미국과 더불어 유럽 주요 망명지였고

공산주의 아버지 마르크스도 영국에서 글을 썼습니다)

 

하여튼 2월 혁명의 결과로

프랑스에서는 왕정이 무너지고

임시 공화국이 선포됬는데

 

임시공화국 양대세력은

 

부르주아 중심의 온건 자유주의자 VS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자

 

구도였고

혁명과정에서는 힘을 합쳤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자 둘은 갈등이 커져가게 됩니다

 

어느새 새로운 지배자화 된 부르주아들

 

임시정부에서는 보통선거를 도입해

선거권 행사자 수는 30만에서 950만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새로 선거권을 받은이들은 시골 농민들이었고

이들은 총선에서 부르주아들에게 표를 몰아줬고

 

선거에 참패한 사회주의세력은 임시정부에 대거 갈려나가고

진압되며 노동자들의 분노는 다시 불붙었고

 

이어 혼란한 사회속에

나폴레옹의 동생의 아들(조카)이라는

듣보잡의 인물인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 이

'위대한 프랑스의 재현' 을 부르짖으며

프랑스인들에게 나폴레옹 황제시기

향수를 자극하기 시작했고

농민들은 옛날 나폴레옹 황제의 향수에 자극받아

이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표를 몰아주었고

또 노동자들 역시 부르주아들에게 무참히 진압된 것에 치를떨며

루이 나폴레옹에게 대거 표를 던져줍니다

 

루이 나폴레옹

 

하여튼 2월 혁명은

프랑스 7월왕정이 무너지는데 그치지 않고

전 유럽으로 번져

그해 3월 오스트리아에서 메테르니히 수상이 실각해

빈 체제가 무너졌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통일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납니다

 

또 이전까지 왕과 귀족들 타도를 외치며

대중들과 함께하며 대중들의 친구인줄 알았던 부르주아(자본가)들은

막상 권력을 잡고나니 또다시 기득권화 되어

노동자 , 사회주의 세력을 탄압했기에

부르주아와 대중들의 갈등구도가 2월혁명으로 본격화됬고

 

(프랑스 혁명은 봉건제 붕괴 , 민주주의 시대 시작이라는

큰 역사적 의의가 있지만

단지 지배자가 왕과 귀족에서 부르주아 , 자본가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뒷 이야기도 있고

쉽게 비유하면 혁명으로 우리같은 쌉찐따들도 다같이 잘살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일찐들 서열싸움이었다는 느낌 ?)

 

하여튼 여러 의의와 모순도 보여주는게 2월혁명이고

2월혁명은 역사적 의의는 큰 혁명이라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성공한 마지막 민중혁명이라 합니다

 

[나폴레옹 3세]

일단 2월혁명으로

갑작이 툭 튀어나와

'나폴레옹 주의의 계승자' ,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 이라는

수식어를 내걸며 분열된 농민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은

대통령 임기동안 점차 황제같은 모습을 보여주았고

그의 정적들도 그를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에 의지하는 얼간이 쯤으로 보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임기 마지막해 삼촌처럼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며

국민투표로 황제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합니다 (역시 한핏줄 ;;)

 

그는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되어 '제2 제정' 을 시작했고

나폴레옹 3세는 강력한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펴서

베트남 침공 , 아편전쟁 , 병인양요 , 크림전쟁 , 이탈리아 통일전쟁을 치뤘고

세계 곳곳에 확장책을 벌입니다

 

단지 그는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실패한 원인이

영국과 적대한 것에 있다 보고

영국과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 영국도 국제사회나 거대한 아시아 세계에서

프랑스랑 손잡고 협력해 자신의 이권을 늘려가면 됬기에

그럭저럭 협조를 하게 됩니다

 

또 나폴레옹 3세는 빵값을 안정시키고

극빈층 노동자를 위한 복지정책과 위생시설을 갖춘 노동자주택 건설 ,

파리 개조사업 등을 벌였고

오늘날 파리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예술의 도시' , '빛의 도시' 이미지가

되는데 기여했다 합니다

 

오늘날 파리

 

[보불전쟁]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한창 군사대국으로 강성하게 일어나던

독일 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을 하게 되는데

나폴레옹 3세는 삼촌 나폴레옹 흉내를 내며

직접 전선에 출전했지만

그는 군사적 능력은 없다싶이한 인물이라

전쟁터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정처없이 프랑스 군 진지를 걸어다니며 온갖 삽질을 합니다

 

<당시 군의관>이 인간이 여기에 자살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대체 뭘 하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전 내내 어떤 명령도 내린 것이 없다.

 

결국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에 항복해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됬고

이 소식에 파리에서는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황제는 폐위됩니다

 

독일 비스마르크와 포로가 된 나폴레옹 3세

 

[파리 코뮌과 제 3공화정]

그러나 새로 들어선 공화정부도 나폴레옹 3세와 삐까뜨는

굴욕적이고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자

 

결국 1871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

'파리 코뮌' 이 70일간 세워지기도 했고

곧 정부군의 극심한 탄압으로 처참히 무너지고

 

코뮌이 설치한 파리시내 바리케이드

 

프랑스에서는 제 3공화정이 수립되었고

제 3공화정은 유럽내에 최초로 정착되 장수한 현대식 공화정 체제로

나치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할때까지

정확히 70년이 유지됩니다

 

[차티스트 운동]

영국에서도 자유주의 개혁이 일어나는데

영국인들은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신흥 상공업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고

이에 노동자들은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며 '차티스트 운동' 을 벌였고

 

차티스트 운동

 

결국 보수적인 영국 기득권층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영국에서는 선거법이 개정되

보통선거가 정착됩니다 (물론 남성 한정이었고

여성은 이후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서야

여성 참정권이 허용됩니다)

 

[경제 자유 확대]

또 영국인들은

수입산 곡물에 관세를 매기는 '곡물법' 이

이전 곡물가가 추락할때는 지주 중심의 의회일때는

지주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지만

점차 자본가 중심의 의회가 되자

자본 , 산업가들은 노동자 임금을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깎아야 했는데

곡물가가 너무 비싸 임금을 높게줘야했기에

자본가 중심으로 반 곡물법 단체가 결성되

이 단체를 선두로 정치인들의 지원하에

1846년 곡물법은 폐지되어 경제적 자유가 확대됩니다

 

곡물법 풍자그림 , 싸게 밀을 팔겠다는 배안 프랑스인들에게 영국 지주들은 꺼지라 말하고 있고 이에 프랑스인들은 밀을 바다에 버리고 있고 영국 창고에서는 비싼 밀이 잔뜩 쌓여있는데 이 밀을 살돈이 없는 가난한 영국가족은 '헬영국 떠야지 ㅅㅂ' 이러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올리버 크롬웰때 영국 해양무역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항해법 역시 점차 강제성도 약해지고

미국의 반발로 미국 독립전쟁등도 일어났고

위법행위도 증가하자 결국 영국에서 자유무역 옹호자의 등장으로

1846년 곡물법이 폐지되자 이어서 항해법도 1849년 폐지됩니다

 

(처음엔 정부의 보호와 규제라는 옷으로 성장했지만

몸집이 커지니 슬슬 옷이 안맞게 된 것입니다)

 

[종교 자유 확대]

또 영국에서는 종교 자유도 확대되어

가톨릭교 견제를 위해 영국 국교회 이외의 사람을 공직에 못앉게 하는

심사법도 1828년 폐지시켰고

다음해인 1829년에는

탄압했던 가톨릭 교도에 대해서도 관대한 모습을 보여

가톨릭 교도 해방령을 내립니다

 

(영국 자유주의는

 

'그때는 느그들이 힘이 쎘기에 우리 이익을 위해 문을 닫았지만

이젠 느그들이 힘도 없고 우리 이익을 위해 문을 열어줄게'

 

라는 느낌입니다)

 

<라봉봉>오늘날 한국사회의

독재 , 부정부패 , 정경유착 , 부조리 , 기득권과 비기득권 , 소득 양극화 문제

등은 이미 서구 사회에서 오랬동안 겪어온 것이고

서양인들은 수백년에 걸쳐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갔다면

한국인들은 소끌고 밭갈던 농촌사회에서

수십년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기에

의식 , 민도수준이 떨어진다 이야기 되고 있고

 

제가 한국인들 비하나 폄훼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실제 제가 체감하는 바로도 한국은 서양이나 미국에 비해

민도나 의식수준이 떨어집니다

 

이에 오늘날 한국은 경제수준에서는 이미 서양 선진국들을 추월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서양인들에게 내면적 열등감을 느끼는 한국인들 같고

서양인들도 한국인들을 보며 옛날 그런 과정을 겪었던 자국민들의 모습을 느낄거 같습니다

(한국에서 옛날에 유행했던게 중국에서 유행하는 것을 보는 느낌 ?)

 

오늘날 한국사회 문제점이나 모순들이 이 시기에도 있었으며

우리가 오늘날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이런 문제 해결이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자유는 참으로 좋은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날 당연하고 평범한 행복과 자유 ,

이러한 것들을 위해 선대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어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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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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