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베트남의 상황]
[통킹만 사건]
[베트남 전쟁 파병]
[공포의 부비트랩]
[반전여론 확산]
[히피운동과 로큰롤 음악]
[베트남의 적화통일]
[워터게이트 사건]
<라봉봉>
[당시 베트남의 상황]
냉전시기 한국전쟁 이후에도
공산군과 미군이 싸운 전쟁이 일어나는데
바로 베트남 전쟁입니다
당시 베트남은 자유 남베트남과 공산 북베트남으로 나뉘어있었고
당시 미국은 공산화를 막기위해 남베트남을 물자적으로는 지원해주기는 했지만
아시아인을 멸시하고 내정에 멋대로 간섭하는 통에
남베트남이 비록 약체 국가였음에도 엄연한 주권국가임을 무시하고
대놓고 내정에 간섭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 북베트남에는 남북베트남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민족 지도자 '호치민' 의 지휘아래 하나로 뭉쳐
남베트남을 공산화시키려했고
남베트남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폭력투쟁을 선전 , 선동하며
민심을 교란시키고 있었고
미국의 막대한 원조로 인한 눈먼돈의 유입 및 정치인 포섭 뇌물등으로
남베트남 정치인들은
무너져 가고있었습니다
[통킹만 사건]
1964년 북베트남 해군이 미 해군을 공격하는
'통킹만 사건' 이 일어났는데
이 교전의 결과로 북베트남에서는 4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미 해군에는 경미한 피해만 입고 전사자는 없었습니다
미 정부는 북베트남이 먼저 미국을 공격했다는 것을 명분삼아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군사개입을 시작했고
(1차공격은 북베트남도 인정했고
2차공격는 미국측의 착각 혹은 조작이라 합니다)
1965년부터는 폭격기로 북폭에 나섰고
미국 육군과 해병대등이 대규모로 파견되어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됩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
미국 우방인 호주 , 뉴질랜드 , 한국 등도 전투병을 파병했고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군이 주한미군을 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새로 들어선 박정희 정부를 인정하고 군장비 현대화 , 경제 지원을 하는 대가 +
이전 한국전쟁때 북한 공산군에 시달린 경험때문에 미국에 보답하고
남베트남 사람들을 선량한 민주 자유시민으로 보았기 때문에
많은 전투병력을 파병하게 됩니다
결국 베트남 전쟁은
베트콩(북베트남+소련+중국) VS 남베트남(미국+대한민국+연합군)
구도로 이어졌고
미국과 남베트남은 압도적인 화력우세앞에
전쟁을 낙관하고 상대를 우습게 알다가 붕괴합니다
(물론 미국은 단순 화력으로는 충분히 어느 나라던간 '멸망시킬 수는' 있었지만
초강대국 지위속에 국제 이해관계와 정치 , 세계 질서도 고려해야 했고
한국전쟁때나 베트남 전쟁때에도 중국이나 소련군이 개입해 확전되는
3차 세계대전 우려가 강했습니다)
당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어떤방법을 써서라도 공산화 , 합병시키려는 목표를 가졌고
반면 미군은 압도적인 전력우세임에도 북베트남을 직접 공격하면 중국이나 소련이
참전해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것을 우려해
남베트남내의 베트콩 세력을 주 교전대상으로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한곳이 무너지면 다른곳도 줄줄이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을 철썩같이 믿었기에
베트남 전쟁에 적극개입했고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때문에 ,
또 한국전쟁때 어찌됬든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았다는 것 때문에
참전여론 , 반전여론이 그리 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공포의 부비트랩]
1964~67년까지 미국내 여론은 베트남전쟁에 당연히 이기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1968년부터 미대사관이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에게 공격받는 모습이 나타났고
이에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납니다
미군은 정글에서의 게릴라전에 전혀 익숙하지 않아
언제 어떤곳에서 땅굴속에서 튀어나와 공격하고 다시 숨는 베트콩들에게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베트남군 역시 미국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려 이러한
부비트랩 , 게릴라전술을 적극 활용합니다
1967년부터 미군에는 M16 소총이 보급되었는데
초기 M16 소총은 총기 결함 , 잘못 퍼지게된 총기관리법으로 인한 고장 등으로
악평을 들었고 미군 부모들은
내아들이 M16 때문에 죽었다며 여러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반전여론 확산]
또 당시까지만해도 미국은 징병제였는데
베트남전쟁기는 미군 내에서 가장 구타와 가혹행위 , 부조리가 심했던 시기로
2차 세계대전 세대와 반권위주의 및 반전쟁 가치관을 가진 전후세대가 섞였던 시기라
간부와 선임병들은 폭력과 폭언으로 병사들을 다스렸고
군 내부 세대갈등도 극심했습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베트남에 끌려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무런 의지도 의욕도 없었던 베트남속 미군들은
북베트남 , 베트콩 게릴라들에게 압도적인 전력차를 보여줬음에도
막사안에서 나오지 않는다거나 공포속에 마약에 빠진다거나
게릴라들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헬기를 타는 등
여러 문제가 강했고
당장 막일어나던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징병제였지만
베트남전쟁 파병군은 고임금 지급 + 지원제 및
엄격한 심사를 거친 우수한 병사들이 보내졌고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단결해 공산주의를 막자는 생각이 강해서
군복무에 적극적이었고 미군에 비해 내부불만도 적고 용맹했기에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이 두려워했습니다
또 미군은 월맹군이나 베트콩들을 상대로 전과를 올리지 못하자
애꿎은 민간인들에 행패를 부려 베트남 내에서 여러 민간인 학살을 벌였고
정글속 나무들을 고사시켜 베트콩들의 매복을 막기위해 나무를 말라죽이는
'고엽제' 를 대량 정글에 뿌려 온갖 질병문제를 만들었고
미국의 폭압적 베트남통치에 베트남 민간인들은 대거 베트콩에 가입하게 됩니다
[히피운동과 로큰롤 음악]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내에서 젊은 청년들은 집단적으로 징집을 거부하며
반전운동 시위 , 징집 영장 불태우기 등을 벌이기 시작했고
전쟁 막바지인 69년도에는 미군의 학살과 강간 +
불병등한 징병제 (가난한 사람은 최전방 , 부유한 사람은 후방) 등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며 누구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는 여론이 확산되며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거나
히피문화(기성세대 가치관을 거부하고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 ,
낭만의 대명사지만 집단 성관계 , 마약 , 비위생 문제도 컸습니다) ,
로큰롤 음악(록 음악) 가 일어나는 등
미국 젊은이들의 반정부시위는 이때 정점을 찍습니다
특히 로큰롤 음악은 비틀즈 시대 이후
잔잔한 통기타 음악이 아닌
강렬한 전자기타로 사회 분노를 증폭시키며 정치적 이슈를 다루게 되었고
히피들 , 미국 젊은세대들은 케네디 대통령과 루터 킹 목사 암살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인권과 평화 , 자유와 사랑을 외치며 록음악에 매료됩니다
저도 10대때 록좋아하는 친구들 보면
좀 그냥 그랬는데 요즘들어 청년문화답게
저도 록음악에 심취한듯하고
근데 록커들이 뭔가 무대위의 버서커(광전사) 같은 느낌이 줜내 강한데
록커들 특징이 오늘만 산다 이게 엄청 강해서
작년에 유행한 밴드 퀸 이야기나 록커들이
매일같이 술 퍼마시고 마약하고 성관계하고 하다 몸 축나서 단명한 경우들이 많고
제가 보기에 록커들이 정신상태가 좀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혈기왕성한 록커 , 청년들도 이런 것을 조심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적화통일]
결국 1973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 미국은 파리 강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는데
이로인해 미군 철수를 조율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자 북베트남은 무주공산과 다름없는 남베트남을 재차 침공했고
결국 파리강화협정은 휴지조각이 되고 남베트남은 적화통일됩니다
베트남 전쟁 막바지 적화되는 남베트남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미군은 이들에 대한 탈출작전을 시작해 남베트남 밖으로 피난시켰고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보트에 올라탔는데 일부는 자유진영에 도착해 망명하나
대부분은 정처없이 바다를 떠다니며 죽거나 배가 뒤집어져 사망합니다
베트남전쟁 이후부터 세계사회는 급격히 변화했고
미군 내부에서는 1973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했고
금본위제가 무너지고 환율이 널뛰는 등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하게 되고
외교적으로는 냉전을 해소하는 평화무드 , 데탕트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미군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
자국민들에게 살인자라는 소리를 듣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했고
진보 , 좌파계열의 외국인들에게는 미국은 악의축으로 찍히고
북베트남이나 호치민등은 미국이라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나기도 했고
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PTSD 와 마약유행 , 염세주의 풍조 유행 ,
오일쇼크 ,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미국은 한동안 베트남 전쟁의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 전쟁기인
1972년~1974년
미국내에서 엄청난 스캔들이 일어났는데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차기 대선을 준비하다
민주당 사무실이 있는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기를 넣으려다 발각했고
FBI 가 직접 수사를 할정도로 커지자
닉슨과 측근 인사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려 발악하지만
전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잘 되지 않았고
일단 대선이 본격화되자 민주당의 약세 등으로
워터게이트사건은 묻혀서
닉슨은 다시 재선에 성공하지만 대선 진행와중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는 계속되고 있었고
닉슨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할때
상원 청문회가 열려 정국에 텔레비전 생중계가 되며
핵폭탄급 증언들이 나타났고
닉슨은 행정특권(비밀 보장 특권)을 이유로 증거제출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와중에 여러 혼란이 있다가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라 발언했고
오히려 이 발언은 미국인들이 닉슨 대통령을 사기꾼이라 생각하게 만들었고
(전후 관계와 상관없이 뇌리에 사기꾼이라는 단어가 남음 ,
예를들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격 ..)
닉슨의 권한남용 및 사법절차 방해등으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어 보수층마저 닉슨에 등을 돌리게 됬고
결국 탄핵직전까지 몰리다 1974년 닉슨 대통령의 자진사퇴로 일단락 됩니다
미국은 철저하고 엄격한 신용사회로서
거짓말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는 풍조가 강한데
닉슨의 거짓말 , 위증때문에 워터게이트 사태는 더 크게 번진 것이었고
(당장 닉슨의 공화당 선배였던 링컨은 별명이
'정직한 에이브' 였고 미국사회에서 정직은 엄청 중요한 가치로서
라스베가스에서는 도박 사기꾼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잡아 매장시킨다는 말이 있다거나
미국 사회에서는 정직하지 않으면 얄짤없이 사회에서 매장당하거나 합니다)
지지자들도 등을 돌린 것은 그가 도청을 한 사실때문이 아닌
공식석상에서 도청을 안했다고 위증을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니처드 닉슨은 달착륙 ,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인 데탕트 등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무리한 욕심 및 거짓말로 사임하게 됬고
이후 이상적 도덕주의 인권 외교를 주장하던
지미 카터의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지미 카터는 미국 내보다 해외에서 크게 인기있는 대통령이었고
한국 방한때에도 평화대통령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의 열렬한 환대와 사랑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라봉봉>베트남 전쟁은 초강대국 미국이 패배한 전쟁으로 유명하며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패배했다는 것보다는 여러 모순 , 부조리로 가득한
베트남 전쟁 자체에 대한 악몽이 강했고
이로 인해 베트남 전쟁 전후로 미국의 전후 황금같은 풍요시대가 끝나고
미국 사회는 격변하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시작된 록음악이 참 좋은데
거의 힙합같이 뇌 필터링 없이 본능적으로 뭔가 쏟아내는 거친 에너지가 있는
밴드계의 힙합같은 느낌이고
어설픈 힙찔이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듯이
록도 빠순이들이 막 가수들 따라다니면서 몸주고 술퍼마시고 이런 그런 안좋은게 있어서
10대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단 직설적이고 거칠게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평화운동 , 사회운동을 이끌어냈다는 측면에서는 참 좋은 장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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