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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군주 대무신왕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누란지위]

[학반령 전투]

[대소왕이 보낸 붉은 까마귀]

[괴유와 마로]

[부여 정벌]

[을두지의 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신비의 북 자명고]

[호동왕자의 죽음]

<라봉봉>

 

[누란지위]

고구려 2대왕 유리왕 시절

부여의 대소왕은 사신을 보내서

유리왕에게 꾸짖었습니다

 

<대소왕의 말>우리 선왕(금와왕)이

그대의 선왕 동명왕(주몽) 과 의좋게 지냈는데

우리 신하들을 이곳으로 도망치도록 유인하느냐

 

소국은 대국을 섬기는 것이 예절이니

그대는 예절과 순리로서 우리 부여를 섬기거라

 

이에 유리왕은 고구려 신하들에게

 

<유리왕>나라의 역사가 짧고 백성과 군대는 약하기에

치욕을 참고 굴복해서 나중을 도모하자꾸나..

 

라고 말했습니다

유리왕은 결국

부여사신에게 명령을 따르겠다고 말했는데

 

그때 나이 어린 왕자 무휼은 나서서

계란바구니를 들고가서 부여사신들에게 말하기를

 

<무휼>우리 선조는 신의 자손으로서

현명하고 재주가 많았는데

대왕(대소왕)이 질투하고 해치려 했고

부왕(금와왕) 에게 말해서

말이나 기르게 하는 직위를 주며 욕보인 까닭에

불안해서 탈출한 것이다

 

현재 대왕은 전날의 잘못은 생각치 않고

오직 군사가 많은것만을 믿고 우리나라를 멸시하니

 

대왕에게 전하거라

 

'이곳에 알을 쌓아 놓았으니

만약 대왕이 그 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내가 대왕을 섬길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섬기지 못하겠다 (누란지위 累卵之危  ,

계란을 쌓아놓듯이 위태로운 형태를 뜻하는 사자성어) '

 

라고 전하라

 

누란지위

 

그말을 들은 대소왕은

 

<대소왕>이게 무슨소리야 ?

 

이에 한 노파가 대답하기를

 

<노파>아따 요즘말로

 

'선 넘지 말라'

 

라는 말이죠 후후

 

니 뚝배기가 깨지기 싫으면

함부로 남의 뚝배기 깨지 말라는데굽쇼 ?

 

[학반령 전투]

결국 이후 부여군은

고구려를 침공해왔고

유리왕은 아들 무휼왕자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부여군을 방어하라 했습니다

 

직접 출정한 무휼왕자와 고구려군은 병력이 적었기에

학반령 골짜기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고

부여군이 학반령 아래를 지나자

매복한 군사를 출동시켜 전부 그들을 죽여버렸습니다

 

이에 무휼은

유리왕에게 정식으로 태자로 인정받았고

유리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이어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 이 되었습니다

 

사극 '바람의나라' 의 대무신왕

 

[대소왕이 보낸 붉은 까마귀]

대무신왕은 총명하고 영웅호걸의 모습이 있었고

'거루' 라는 신의 말 神馬 을 타고다녔습니다

 

계속해서 고구려 침공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한

부여 대소왕이 대무신왕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부여사신은 머리는 하나이고 몸은 둘인 붉은 까마귀를

대무신왕앞에 바쳤습니다

 

<부여사신>까마귀는 원래 검은법인데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이니

이는 부여와 고구려가 병합할 징조입니다

 

고구려왕께서는 우리 부여에게 항복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

 

고구려를 상징하는 새였던 '까마귀'

 

이에 대무신왕은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대무신왕>검은 색은 북방(부여)의 색인데

이제 변하여 남방(고구려)의 색이 되었으며

또한 붉은 까마귀는 귀한 새인데

그대가 가지지 못하고 이제 내가 얻었으니

두 나라의 운명은 알 수가 없구나 !

 

대무신왕의 지혜에 놀란 대소왕은

붉은 까마귀를 보낸 것을 후회했습니다

 

[괴유와 마로]

결국 대무신왕은 부여를 공격하기로 했고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는데

그때 한 사나이가 대무신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사나이는

키가 매우크고 얼굴이 희고 눈에서는 빛이 났습니다

 

그 사나이는 자신의 이름이 괴유라 했고

괴유는 대무신왕에게 절하며 말하기를

 

<괴유>듣건대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치신다 하니

제가 따라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에 대무신왕은 기뻐하며 이를 허락했고

이번엔 마로라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마로>제가 긴 창을 들고 부여로 가는 길을 인도하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했고

대무신왕은 또한 이를 허락했습니다

 

[부여 정벌]

대무신왕과 고구려군이 부여 남쪽에 도달했는데

그곳엔 진흙 수렁이 많았기에

대무신왕은 평지에 진영을 만들었습니다

 

진흙수렁

 

이에 부여 대소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 부여군을 동원해 출전했고

고구려군을 급히 공격하려다

진흙 수렁에 빠져서 이도저도 못했습니다

 

이에 대무신왕은 괴유를 출동시켰고

괴유는 칼을 들고 고함을 지르자 (사자후)

부여 1만 군사들은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이때 괴유가 달려가 대소왕의 목을 베었고

부여군은 왕을 잃고 기세가 꺾였지만

다시 힘을 모아 고구려군을 포위합니다

 

고구려군이 위기에 빠지자

대무신왕은 어찌할바를 모르다 하늘에 기도를 올렸고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안개가 끼었습니다

 

 

이에 대무신왕은 풀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군사로 보이도록 꾸몄고

그 사이에 몰래 후퇴해 고구려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괴유가 병상에 누웠습니다

 

괴유가 병상에 눕자 대무신왕은 직접 괴유에게 문병갔는데

괴유가 말하기를

 

<괴유>저는 미천한 사람으로서

폐하의 두터운 은혜를 여러번 입었습니다

 

비록 죽더라도 살아서같이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괴유가 죽자

대무신왕은 그를 장사지내고 관리에게 철마다 괴유에게 제사지내게 했습니다

 

이후 대무신왕은 직접 개마국을 쳐서 개마국 왕을 죽이고 멸망시켰고

구다국왕은 개마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죽을까봐

대무신왕에게 나라를 바치고 항복합니다

 

점차 옛날 한국의 소국들을 합병하던 고구려는

대무신왕대부터 점차 영토가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을두지의 꾀]

이후 고구려에 중국 한나라의 요동태수가 쳐들어왔고

대무신왕은 강성한 중국군에 어찌해야할지 신하들과 의논하다가

신하 을두지의 말을 듣고

성안에서 방어하기로 결정합니다

 

대무신왕은 위나암성에 들어가서 버텼는데

수십일이 지나도록 한나라 군사들은 포위를 풀지 않았고

이에 을두지는

 

<을두지>그들은 우리가 산성에 있기에

물있는 샘이 없다 생각해

오랫동안 포위해 우리를 굶겨죽이려 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연못의 잉어를 잡아

수초로 싸고 맛좋은 술을 한나라군에 보내 달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대무신왕은 잘못했다는 편지와 잉어 , 술을 한나라 진영에 보냈고

이에 한나라 장수는 잉어를 보고나서는

성안에 물이 있으니 빠른 시간안에 점령할 수 없다 판단하고

군사를 물리게 됩니다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 '바람의 나라' , KBS 2TV 수목 드라마 : 바람의 나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대무신왕의 왕자 호동이

옥저에서 유람하다가

낙랑왕 최리는 잘생긴 호동왕자의 외모를 보고서는

호동왕자에게 말했습니다

 

<최리>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데

어찌 고구려의 왕자가 아니겠습니까 ?

 

이에 최리는 호동왕자를 데리고 낙랑국에 가서

자신의 딸 , 낙랑공주와 혼인시켰습니다

 

사극 '자명고' 에서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신비의 북 자명고]

이후 호동왕자는 홀로 고구려로 돌아와

아버지 대무신왕에게 낙랑공주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말했고

이에 대무신왕은 호동왕자에게 말했습니다

 

<대무신왕>흐음.. 낙랑국에는 '자명고' 라고

외국이 침입해오면 스스로 울리는 북이 있다고 하는데

만일 낙랑공주에게 자명고를 찢게 하고

고구려가 낙랑국을 멸망시킨다면

내가 너희의 결혼을 허락해주겠다

 

결국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몰래 편지를 보냈습니다

 

<호동왕자>네가 너의 나라의 자명고를

부셔버릴 수 있다면

내가 정식으로 너를 신부로 맞이할 것이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를 신부로 맞이하지 않겠다

 

낙랑공주는 고심하다가 결국 칼을 들고

몰래 무기고에 들어가서

자명고를 찢어버리고

호동왕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자명고를 찢는 낙랑공주

 

이에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에게 말하고

고구려군을 이끌고 낙랑국을 습격했고

 

낙랑왕 최리는 자명고가 울리지 않아 방비를 하지 않다가

고구려군이 당도한 사실을 보고

뒤늦게서야 자명고가 찢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최리는 딸이 자명고를 찢었음을 알고서는 분노하며

 

<최리>네가 자명고를 찢었구나 !

 

하고서는 낙랑공주를 죽이고

고구려군에 항복했습니다

 

낙랑국이 항복하자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부터 찾으려 했지만

낙랑공주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고

호동왕자는 울부짖었습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다룬 사극 '자명고' , SBS 월화 드라마 자명고 (2009) Princess Ja-Myung

 

[호동왕자의 죽음]

이후부터 항상 밝게 웃던 호동왕자는

말수도 없어지고 어두운 표정이 되었는데

 

원래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둘째왕비의 아들이었는데

호동은 얼굴이 잘생기고 착한 성품이었기에

대무신왕은 아이이름을 '좋은 아이' 라는 뜻의

호동 好童 이라 지어준 것이었고

 

첫째왕비는 이런 호동이 다음 왕이 될까봐 두려워

대무신왕에게 호동을 모함했습니다

 

<첫째왕비>호동은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며

나를 유혹했습니다

 

이에 대무신왕은

 

<대무신왕>호동이 그럴 아이가 아니잖소 !

너는 호동이 다른 사람의 아들이라 미워하는 것이냐 !

 

라고 꾸짖었는데

 

첫째왕비는 대무신왕이 이를 빌미삼아 자신을 공격할까봐 두려워하면서

울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첫째왕비>만약 거짓이거든 내가 죄를 받겠습니다 ㅠㅠ

 

이에 대무신왕은 결국 호동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호동에게 죄를 주려했습니다

 

이미 낙랑공주를 잃고 상심해있던

호동은 죄가 없음에도 자신의 무고함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고

이에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왕자께서는 왜 죄없음을 해명하려 하지 않사옵니까 ?

 

이에 호동은

 

<호동>내가 만일 해명한다면

이는 어머니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며

폐하에게 근심을 주는 것이니

이것이 어떻게 효라 할 수 있겠는가 ?

 

곧 호동은

칼을 품고 엎드려서 자결했습니다

 

<라봉봉>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은

한자부터 큰 무예의 신 왕이라는 뜻의

엄청나게 강력한 이름의 왕이고

 

그는 이름같이 고구려 최초의 정복군주로서

여러 지역을 정복하고 영토를 넓힌 인물입니다

 

대무신왕은 상당히 냉철하고 엄격했던 인물로 보이고

그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참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랑에 조건을 건다는 것이나

또 사랑에 눈먼 남녀의 파멸을 보면

참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이고

 

항상 조건을 건 사랑은

조건을 맞춘때가 되면 정작 사라지는 그런게 있나봅니다

 

남녀간에 아무런 조건없는 , 순수한 사랑은 없는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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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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