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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장군시절>

[출세가도]

[수도경비사령부]

[박정희의 양아들]

[비정상적인 진급속도]

[장세동]

[베트남 비리]

[1공수특전여단장]

[준장]

[차지철]

[지휘관의 꽃]

[북한땅굴 발견]

<라봉봉>

 

[출세가도]

전두환은

5.16 군사정변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이끌고

5.16 군사정변 지지 ,

육사생도 시가행진을 벌이며

5.16 군사정변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고

 

육사생도 시가행진

 

결국 5.16 군사정변 , 쿠데타가 성공하자

장군 박정희는 청년장교 전두환을 적극 신임하게 됬고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힙니다

 

 

가난한 집안 출신에 빽없던 청년장교 전두환은

국가 실권자 박정희의 총애를 받고

출세길이 활짝 열렸고

 

<전두환>그때부터 박대통령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거야

 

박정희의 신임을 토대로

주요 요직을 거치며 쾌속승진합니다

 

1967년에는

전두환이 만든 군내 사조직 '하나회' 는

육사내에서도 소수의 인원만 뽑히는 박정희 친위대 같은 조직이었고

가입시 출세와 특혜보장 , 조직 배신시 인격말살 등을 가진

군내 암적 조직이었고

 

하나회

 

전두환과 하나회 회원들은

군장성 진급 우선혜택 ,

서로 군내 요직들을 돌려먹기해주며

정치군인으로 세력화되었고 한국군의 근본을 흔들게 됩니다

 

하나회 회원들

 

[수도경비사령부]

1967년 8월 17일 ,

전두환 중령은 

청와대를 경비하는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 30대대장(경복궁 주둔)에 임명되었고

당시 청와대에서 대통령 담당 경호는 청와대 경호실이 ,

청와대 주변 군대의 박정희 경호는 전두환과 수경사가 담당했고

이는 박정희가 전두환에 대한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는 의미입니다

 

수경사 30대대장 취임후 청와대를 방문해 박정희 일가와 기념사진 찍은 전두환 , 박정희 앞에서는 순한양이었던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이 가끔씩 산책하며 수경사 본부에 들렸는데

전두환 대대장은 단 한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었고

박정희가 부대에 나타날때는

전두환 중령은 목이 터지도록 '충성' 구호를 외치며

주변을 울리게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TV로 권투중계를 볼때마다

가까이 있는 전두환 중령을 불러서

같이 시청했는데

 

박정희나 전두환은 학창시절 당시

권투를 하던 일진학생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둘은 같이 TV 권투중계를 보며 전두환은 박정희 옆에서

구수한 입담으로 권투해설을 해주며

박정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재롱왕 전두환

 

[박정희의 양아들]

무엇보다도  전두환이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경호하던 바로 이시기

김신조 사건이 일어났는데

 

김신조 사건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공작원 31명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고

 

김신조 청와대 침투루트

 

이때 제30경비대대 전두환 대대장은

 조명탄을 무수하게 발사해 

북한 공비들의 모습과 위치를 환히 비춰주었고

조명탄덕에 북한 공비들은 놀라서 전부 흩어졌으며

이후 공비들이 사살되고 김신조가 체포되게 됩니다

 

 

전두환은 이로서

5.16 군사정변 당시 육사생도 시가행진 ,

김신조 사건 당시 조명탄 발사로

 

두번이나 위기의 박정희를 구하게 되었고

이런 것들로 인해 박정희의 신임도 더욱 두터워져서

박정희 시기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

 

이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전두환 역시 박정희의 양아들 클래스답게

이후 박정희 사후에는

박정희의 쿠데타 기술 , 통치술까지

완전하게 똑같이 따라하게 됩니다

 

[비정상적인 진급속도]

전두환은 육사에서는 체력제외

성적으로는 꼴찌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었지만

박정희의 신임을 얻고 출세가도를 달리며

육사 졸업생중 진급속도 1등을 하게 되었고

 

<전두환>나는 내 동기들 중에서

소령은 제일 늦게 달았지만

대령은 제일 빨리 달았다

 

1955년 소위인데

1973년 준장 ,

18년만에 별을 단 것이니

엄청나게 빠른 진급이었고

 

전두환뿐만 아닌 전두환과 하나회 , 육사 11기들은

소대장 시절 소령(대대장)이었던 선배와 같은 시기에 별을 단다거나 하는 등

까마득한 선배들도 순식간에 제쳐버릴 정도로

쾌속진급을 합니다

전두환과 하나회은 이처럼

박정희가 대놓고 밀어주었기에

진급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습니다

 

[장세동]

1970년 11월 ,

전두환은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월남전에 파병됬는데

당시 별을 달려면 월남전을 가야했기에

야망의 정치군인 전두환은 베트남으로 향하게 됩니다

 

전두환은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전

장세동과의 인연이 있었는데

 

장세동

 

장세동은 한국군 최초로 베트콩과 전투 , 한국군 최초로 베트콩 사살 전과를 올린

중대장이었고

 

장세동 대위는 베트콩의 매복에 걸려

오른쪽 어깨 밑 관통상을 입고 베트남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당시 전두환 중령은 월남전장에 들려 병원을 위문하다

장세동 대위를 잠깐 만나게 됩니다

 

당시 장세동은 군대생활을 더이상 못하고 끝나는 줄로만 알았지만

전두환은 장세동을 눈여겨 보고 있었고

 

이후 전두환은 장세동을 자기 부대로 데려왔고

이후 전두환은 대령으로 진급해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자

장세동 소령을 연대 작전참모로 데려갔고

장세동은 한국군 최초 월남전 3번째 참전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장세동은 베트남전에서도 몸을 날려가며

무공을 쌓았고

전두환의 심복역할을 하기 시작하던 인물이었기에

 

전두환은 원래 자신의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영남 , 경상도 출신이 주축인 것임에도

전라도 출신인 장세동을 예외로 껴주었고

 

결국 이후 장세동은

박정희-전두환(or 차지철)의 관계처럼

전두환 정부 시기

전두환 정부의 실질적 2인자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전두환의 2인자였던 장세동

 

[베트남 비리]

하여튼 ,

근데도 전두환은 정치군인답게

베트남에서 별다른 활동은 안하고

한국군 트롤러 , 보호관심장교로서 맹활약하는데

 

월남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와 백마부대 연대장 전두환 대령

 

사병들이 마실물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온수샤워를 하고

테니스나 치고 있었다거나

장교들 사이에서도 온갖 부정적 평가가 쏟아졌고

 

 

전공도 적었는데

연대장 부임 얼마후부터 너무 자주 파티를 벌이며

눈총을 샀고

 

전두환 연대가 군공이 전혀 없자

전두환은 무기밀매상으로부터

적성화기(적군의 무기)를 다수 구매해서

노획물이라 속여서 상부에 바치며

있지도 않은 군공이 있다 속였습니다

 

결국 베트남 비리건으로

전두환의 준장(원스타) 특진은 미뤄졌고

그럼에도 박정희의 총애를 받는 군인이었기에

전두환은

대령계급으로서 1공수특전여단장으로 부임합니다

 

[1공수특전여단장]

한국군 최초 미국 레인저스쿨(미국 특전사) 수료자이자

육군 특전부대(특전사) 창설 주역이었던 전두환은

공수부대 , 특전사와 인연이 유독 깊은 인물이었고

이후에도 광주민주화운동때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서

특전사를 독재정권 무력수단으로 악용하게 됩니다

 

1공수특전여단장 시절 전두환

 

당시 부터 전두환은 별을 달기위한 준비를 하며

인사와 보직청탁 등 인맥만들기에 열중했고

 

과시욕이 풍부하고 충동적이었던 전두환 여단장은

가만히 있다가 기분이 나쁘거나 빈틈이 보이면

그자리에서 영창을 보낸다거나 ,

반대로 잘한게 눈에 보이면 표창이나 특박을 보내주었고

 

이에 부하들이 그에 앞에서 충성을 바치며

쩔쩔매는 모습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전두환 대령은 장군에게도 형님하고 부르며

같이 청와대에 놀러가서 경호실장(박정희 정부 2인자 직) 과

만나러 가자 한다거나 하는 모습도 보이며

인맥질에 열중합니다

 

대령시기 전두환 레전드 짤방

 

[준장]

원래 대령이 되고나서

6~7년은 지나야 1차 장군진급 심사대상이 되는데

전두환은 4년만에 별을 달겠다 나서며

1972년부터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과 박종규 경호실장의

무한한 신임에 의해

1973년 1월 1일 꿈에 그리던 준장 , 원스타가 되게 됩니다

 

전두환은 육사 11기중 최초로 별을 단 것이었고

가장 빠른 속도였습니다

 

[차지철]

1974년 8월 15일

경축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고

사망하자

박종규 경호실장이 물러나고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됬는데

 

차지철

 

이때부터 차지철은 가뜩이나 강력했던 박종규 시절보다

경호실장 권한을 더욱 강화시키며 권력을 휘둘렀고

방 한쪽에

 

'각하가 곧 국가다'

 

라는 표어를 써붙이고

각하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며

대한민국 어둠의 2인자가 됩니다

 

1976년 6월에는 전두환 준장은

청와대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임명되며

또다시 청와대 경호를 맡게 됬고

차지철 밑에서 일하게 됬는데

 

1976년 경호팀과 기념촬영하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전두환과 차지철)

 

당시 전두환 준장

 

전두환은 한때 자기 밑에 있었던

차지철을 상관으로 여기지 않았고

육사출신이 아니었던 차지철을 은근 무시하며

서로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1977년 1월 17일 청와대의 차지철 경호실장과 전두환 작전차장보 , 여기서도 전두환은 열중쉬어 자세인 다른사람들과 달리 혼자 주머니에 손넣고 있음ㅋㅋ

 

그러나 전두환은 그렇게 청와대 권력 중심부를 맴돌며

박정희와 박정희 측근들 , 2인자들 등을 직접 눈으로 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의 메커니즘을 터득하게 됩니다

 

전두환은 부지런하게 박정희가 나설때마다

현장 책임을 맡으며 박정희 경호에 열성이었고

박정희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 핵심부 곳곳에

자신의 인맥을 심어둡니다

 

[지휘관의 꽃]

부지런하게 열일 + 인맥질 하던 전두환을 신임한 박정희는

결국 1977년 2월 1일 전두환을 육사 11기 동기생중 처음으로

육군 소장 , 투스타에 진급시킵니다

 

박정희는 전두환에게

사단장을 꼭 할필요가 있냐면서

청와대에서 자신을 도우라 했지만

 

전두환은 실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의 꽃'

 

이라 불리는 사단장을 하고 싶어버렸고

사단은 단독작전이 가능한 최소단위 부대로서

이 시기부터 산도 하나 옮기라면 옮길 수도 있고

박정희도 소장때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던 것처럼

쿠데타가 가능한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직책이었기에

투스타 , 사단장 등은 지휘관의 꽃이라 불립니다

 

어느날 박정희 , 김재규 , 차지철 , 전두환 이렇게

박정희 유신정권 핵심 4인방들은

같이 골프장에서 저녁을 먹는데

박정희는 전두환에게

 

<박정희>사단장 꼭 해보고 싶은가

 

하고 물어서

전두환은

 

<전두환>군인 희망사항이 사단장이고

군장성의 꽃이 사단장 아닙니까

 

하니

박정희는 그자리에서 승인을 해주었습니다

 

[북한땅굴 발견]

결국 전두환은 자신의 경호실 작전차장보 자리를

노태우에게 물려주고

1978년 1월 1일 육군 사단 핵심직인

보병 제1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전두환은 당시 국민적 관심사였던

북한의 남침 땅굴 탐색작업에 나섰는데

 

전두환은 작전지역에서 직접 먹고자며 부하들을 독려했고

구멍을 뚫어대다 물이 솟아나자

집중적으로 파내려가도록 지시 ,

결국 굴속으로 물을 쏫아붓는 북한의 방해공작을 물리치고

마침내

1978년 10월 17일 북한의 땅굴을 발견해버렸고

 

북한군 남침땅굴을 발견한 전두환 사단장

 

전두환은 이 땅굴발굴 공로로

5.16 민족상을 수상합니다

 

전두환 장군은

노력파 지휘관으로서

평소 고위급 장교들과 인맥질에 여념이 없었지만

계속 쭉쭉 진급해서 자기 윗대가리가

박정희 , 차지철 , 김재규 삼인방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해버리자

전두환 장군은 그때부터는 병사들과 주로 놀게 되었고 (ㅅㅂㅋㅋ)

 

군생활 할만한가 ? (사실 대대장 시절 전두환 사진임)

 

정초가 되면 전방 철책선을 지키는 모든 병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관등성명을 묻고 신년인사를 해주었고

최대한 많은 부대 장병들과 만나며 일체감을 조성하려 했습니다

 

<전두환 사단장>나는 모든 병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싶다

모든 병사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독재와 비합리의 끝을 달려가던

박정희 유신독재 , 유신정권 말기 ,

 

이 시기 전두환은

박정희의 끔찍한 신임을 독차지하며

군생활 리즈시절을 즐기게 되는데

 

유신이라는

국내법 , 국제사회 상식에서 말도안되게 어긋나는 독재를 벌이며

점차 맛탱이가 가고 있었던 당시 박정희였고

점차 박정희 주변이 심상치 않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운명은 또다시 전두환을 청와대로 이끌게 됩니다

 

<라봉봉>전두환은 정치장교이기도 했지만

상황판단력이 좋아서 위기시 박정희를 보호하는데 앞장선 인물이었고

 

베트남전 당시 오욕은 있었지만

위기시 박정희를 도운 공들이 여럿 있어서

전두환 폄훼론자와 달리 실제 군인으로서는 당시 ㅅㅌㅊ는 해줬던 인물이고

괜히 박정희가 믿고 쓴게 아닙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주변 사람들이나 병사들을 한명한명 챙겼다거나

유머감각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실제 전두환은 본성적으로는 사회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었는데

 

이게 청탁 , 부패 , 인맥질로 발전했기에 전두환은 

전형적인 부패한 정치군인 , 암적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당시까지만 해도

군장교들사이에서나 전두환이 난놈으로 통했지

국민들은 군안에 있는 전두환이 누군지도 몰랐고

 

전두환 역시 박정희 밑에서 대통령이 되야겠다거나

하는 야심을 품고있지는 못했던 상황인데

갑자기 박정희가 급사하고 2인자였던 김재규 , 차지철이 전부 무력화되자

전두환은 급격하게 대한민국의 모든 실권을 쥐는 상황을 맞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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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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