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박근혜의 어린시절>

[박근혜]

[육영수를 만나기전 박정희]

[육영수]

[군인가족]

[마지막 인사]

[공주의 희망]

[청와대 이삿날]

[마당 넓은 집 , 청와대]

[문학소녀]

[여자골목대장]

[군인의 딸 , 대통령의 딸]

[평범하게 자랄 수 있게] 

[퍼스트 레이디]

<라봉봉>

 

[박근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대통령이자

최초의 탄핵된 대통령인 박근혜 ,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 이전 마지막 대통령이었기에

그동안 써온 라봉봉 어린이 한국역사 2집 Humanism 은

박근혜 이야기로 끝날듯 하고

이전 2집에서 쓴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들이 그랬듯이

박근혜 정부의 공과 과가 아닌

이 이야기는 인간 박근혜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비록 박근혜가 금수저 , 공주에

부모덕으로 아버지 후광을 받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고

탄핵당할 수준으로 정치를 잘 못하기도 했지만

박근혜가 능력과 수준이 떨어졌다라고 비판하면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된게 완전히 뽀록은 아니기에

반대자의 말처럼 완전히 무슨 칠푼이라는 등

정신나간년이라는 등 하면서 상식 이하수준으로 폄훼될 수준은 솔직히 아니고

대충 우리가 바로 직전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래가 없는 탄핵이라는 큰 대사건을 만들어준 대통령이기도 하기에

정확히 알필요가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입니다

 

박근혜

 

[육영수를 만나기전 박정희]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박정희 일가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는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의 철권통치자가 된

야심이 가득한 군인이었고

 

 

국군 준장시절 박정희 , 1954년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좋던 싫던 20세기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던 거인이자

한국판 나폴레옹이었기 때문에

박근혜는 출생배경이나 성장환경이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던 인물이고

 

그런 아버지를 직접 보며 성장해오고

아버지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 인물이기도 하기에

박근혜는 일반적 출생을 가진 인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일단 형식적으론 박정희의 장녀이고

독재자 남편에 비해 오늘날까지도 평가가 좋은

훌륭한 어머니 육영수의 딸이기도 하나

 

박정희 원조각하는 역시 보통사람이 아닌 인물답게

이전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두명의 여자를 만나 아이를 낳은 사람인데

 

이전 박정희 일생이야기에서도 자세히 썼지만

20살때 일제시대 신식교육기관인

대구사범학교을 다니던 박정희는 아버지 강요로

17살 여인인 김호남과 결혼 ,

그녀와 딸 박재옥을 낳았고

 

박정희 첫부인 김호남(아래)

 

못배운 여자라 본처 김호남을 무시한 조선인 엘리트교사 박정희는

출세하고 싶어서 일본군대에 들어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다 해방후 군에 입대해 한국군 장교로 근무할때

 

(국적과 직업도 자주바뀌고 마누라도 자주바뀌던 박정희 폐하)

 

자신의 결혼사실을 , 딸까지 있음을 숨기고

부모님도 없고 의지할데 없는 형편의

이화여대 교육학부를 다니던 신여성 이현란에게 학비를 내주며 꼬셔버렸고

약혼 , 사실혼을 하며 동거에 들어갔는데

금혼규정이 있던 이화여대의 학칙에 따라 이현란은 중퇴처리 됬고

 

박정희 두번째 부인 이현란과 박정희

 

이현란과 결혼을 염두에 뒀던 박정희는 고향에 사람을 보내

아내 김호남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김호남은 서울에서 이혼서류를 둔 사람이 찾아올때마다

도장런을 하며 도망쳐버려 박정희는 서류상 이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에도 박정희는 동거에 들어간 이현란에게

김호남과 박재옥의 존재를 철저히 함구했고

착한성품이었지만 무식했던 본처를 무시하며

8살 연하의 이현란에게 푹빠진 박정희는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박정희는 또 하필 이전 공산당(남로당)에 가입했기에 (;;)

이승만 정부의 군부내 공산당 숙청(숙군작업) 에 딱 걸려버려서

감방에 가버렸고

그때 이현란은 1948년 11월~12월 사이에

광화문 산부인과에서 박정희의 아들을 출산했고

6개월만에 아들은 병명도 모른체 사망 ,

이현란은 박정희와 낳은 아들을 암매장했고

당시 박정희는 여순사건에 연루되 감옥에 있어

얼굴도 보지 못했고 아들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체포된 박정희는

적극적으로 숙군수사에 협조해 남로당 조직원 숙청에 적극협조했고

우여곡절끝에 일본군시절 인맥으로 숙군작업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이현란은 도저히 그런 박정희가 감당이 안됬기에

박정희를 떠났고

그렇게 남로당 가입전력때문에

사랑도 , 직업도 잃게된 박정희는

ㅈ된 삶을 살다가

이현란과 이별한지 딱 4개월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다시 소령계급으로 현역에 복귀했습니다

 

이게 육영수를 만나기전 박정희의 기상천외한 이력이었고

굳이 남 치부를 드러내듯 쓴 이유가 뭐냐면

박근혜는 단순히 대통령딸 , 독재자딸이 아니라

그런 복잡한 인생을 살았던 아버지를 두었기에

인간 자체가 단순한 권력자의 딸이 아니라

박정희 자체가 일반적 독재자가 아니라

진짜 이력이 특이하고 극좌와 극우를 넘나든 인물이라

박근혜는

태생적으로부터 아버지에게 적자생존 , 약육강식 이런거를

체화시키며 자란 인물이고

이후 최태민 일가와의 논란이 화제된 것도

이런 복잡한 아버지를 두어서이기도 합니다

 

[육영수]

이현란과 결별 이후 드디어 박정희는 박근혜 어머니 육영수를 만나서

정신을 좀 차리고 정착을 하게 되는데

한국전쟁이 터져 한국군에 복귀한

박정희는 대구시에 머무르던 시절 육영수를 소개받아 만났는데

박정희는 군인이 되기전 전국권 대가리로서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선생을 했던 인물이기에

나름 교사출신 엘리트 군인으로서

원래는 전국권 대가리의 모범생이었던 박정희는

이전 결혼실패에 대한 오답노트를 철저히 했기에

 

이번엔 육영수에게 솔직하게 서류상 아내가 있음을 솔직히 실토했고

육영수는 충청도 옥천 대지주 딸이었지만

아버지 육종권이 본처 이외에도 3명의 첩을 거느린 인물이었고

 

어마무시한 육영수 생가 , 충북 옥천군

 

<박근혜>어머니는 어릴때부터 교동 작은아씨로 불리며 성장했다

 

육영수는 부잣집 딸에 가사과목의 여교사였음에도

그런 폭압적이고 ㅈ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역시 그런 상처와 아픔이 있었던 육영수는

결국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박정희와 결혼을 강행했고

 

어린시절 육영수 ,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육영수가 박정희를 처음볼때 회상>

맞선 보던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없이 든든했습니다.

사람은 얼굴로써 남을 속일 있지만 뒷모습은 남을 속일 없는 법이에요.

얼굴보다 뒷모습이 정직하거든요.

 

(근데 결국 여자는 아버지같은 남자를 만나는건가)

 

김호남은 결국 박정희의 요구에 못이겨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었고

그로부터 1달뒤 1950년 12월 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34세 박정희와 26세 육영수는 결혼을 하였고

 

박정희 육영수 결혼식

 

1952년 2월 2일 이 이야기의 주인공

박근혜가 태어납니다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는 좀 늦은 나이에 본

첫 아이였기에 둘다 박근혜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며

박정희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육영수와 함께

아기 박근혜를 씻기는 일로 하루의 피로를 잊었습니다

 

애기공쥬 박근혜가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보기위해

근엄왕 박정희는 가끔 박근혜에게 이상한 표정을 지어

어그로를 끌기도 했고 그때마다 박근혜는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어

부모님을 당혹스럽게 했다합니다

 

하여튼 박근혜 출생 이전부터도

아버지 박정희 자체의 일생과 여자관계가

되게 복잡했다는 것으로 간단히 알아보면 되고

 

이후 육영수 만나서 그나마 좀 정신을 차리고

평범한 아버지가 된 박정희였고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긴해서 좀 묻힐지언정

그런 돌아이 박정희까지 품고 남편이 더이상 나쁜짓 못하게 꾸준히 견제했던

육영수가 대단했던 인물은 맞고

 

박정희도 ㅈ된 인생 믿고 따라준 육영수를 두고두고 고마워했고

온종일 울며 육영수를 괴롭힌 박근혜 곁에서 잠든 육영수를 보고선

그것을 한편의 시로 적어 책상에 몰래 올려두고 출근한적도 있었고

 박근혜도 아버지는 좀 두려웠을지언정 어머니는 진짜 진심으로 존경했고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도 당대 박근혜와 비슷한 심정이었습니다

 

박정희 육영수 부부

 

[군인가족]

박근혜도 어린시절엔

그냥 군인딸로 보통 군인가족들이 그렇듯이

아버지 부임지를 따라 이곳저곳 이사다니며 살았고

출생은 대구 , 첫돌은 광주셋방 , 1953년 서울 동승동 ,

1954년 광주에서 살았고

의외로 박근혜의 나와바리인 대구에서는 성장기에 짧게 살았고

실제 박근혜는 대구사투리보단

어머니 육영수의 나와바리였던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살짝 섞인 서울말을 구사했습니다

 

어린 박근혜의 기억으로는 어린시절 군인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군복을 입고 집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본 동네친구가 박근혜에게 물었습니다

 

<동네친구>너희 아버지 무섭지 않니 ? 군인들은 앞니로 대못도 뽑는다던데

 

이에 박근혜는 하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친구를 보고 빤히 쳐다보다가 나중에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박근혜>누가 그래 ? 우리 아버지는 이로 못뽑은적 한번도 없는데 !

 

박근혜 기억에 아버지는 어린 박근혜에겐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 어떤배우보다 멋있고 근사했고

 

6군단 부군단장 시절 박정희

 

(실제로 박정희가 키는 작아도 다부지고 좀 가오넘치게 생겼음)

 

군복입은 아버지는 양복입고 출퇴근하는 다른 아버지보다 달라서

더 우쭐한 기분도 들었고 어머니가 정성껏 닦아놓은 아버지 군화가

동생 근영이나 자신의 신발 옆에 놓이면

커다란 군함처럼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근데 ㅈ같은 점도 있었는데

근검절약이 몸에 밴 어머니 육영수는

박정희의 오래된 군복바지를 줄여서

박근혜에게 바지를 만들어 입혔는데

박근혜는 바가지머리를 하고 국방색 바지를 입어

어린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참 촌스러웠고

박근혜는 그 바지를 안입겠다고 떼를 써보았지만

육영수는 단호하게 박근혜를 진압했습니다

 

근데 군인 아버지답게

집비우는 일이 잦았고

그 빈자리는 대부분 육영수가 채웠는데

박근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고구마나 튀각같은 간식거리를 준비해놨다

박근혜 손에 쥐어주셨고

겨울엔 손뜨개를 해서 털모자와 털목도리 , 털장갑을 만들어 주었고

육영수는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늘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언젠간 언론 인터뷰 중에

 

'집에 남자손을 빌려야 할때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순간 박근혜는 자신도 모르게

 

<박근혜>남자손을 빌릴 일이 뭔가요 ?

 

라고 되물었는데 이는

아마도 뭔가가 고장나면 혼자서 뚝딱뚝딱 잘고치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것 때문이었고

 

박근혜 역시 어머니를 닮아 왠만한 집안일이나 공구일은

혼자서 뚝딱뚝딱 잘했고 전구갈아끼기나 고장난 문손잡이도

드라이버로 조였고 어린날 어깨너머로 어머니의 솜씨를 배우며

평생 써먹었다고 합니다

 

박근혜 삼남매가 생일보다 더 간절히 기다린 날은

아버지가 휴가나오시던 날이었고

박근혜는 그때마다 박정희의 팔에 매달려 응석부리곤 했지만

무엇보다 서너달에 한번 시장안에 있는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 정말 특별한 날이어서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고기한점 더먹으려 경쟁하듯 집어먹을때

어머니는 먹지않고 굽기만 했고

박정희는 

 

<박정희>굽지만 말고 당신도 좀 들지

 

하면

육영수는

 

<육영수>낮에 뭘 잘못 먹었는지 얹힌 것 같아요

속이 더부룩하네요

 

하면서 박정희쪽으로 고기를 밀어주었고

눈치 ㅈㄴ 없었던 박근혜 소녀는 역시

근본이 나오듯이 (ㅋㅋㅋ)

이때에도 어머니가 진짜 고기나 외식을 싫어하신다 생각하며

마냥 행복하게 외식을 즐겼고

이후에서야 라디오에서 지오디 노래 어머님께 ,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라는 가사 노래가 흘러나오는걸 들으며

당신은 속이 더부룩하다고 내밥위에 고기를 놓아주던

어머니 손길이 떠올라 훗날에서야 가슴 한켠이 시려왔습니다

 

부모마음

 

[마지막 인사]

유능한 아버지와 선량한 어머니를 만난 박근혜는

나름 그럭저럭 행복한 어린시절이었고

그러다 야망의 군인이었던 박정희는

끝내 군부인사들과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나라를 뒤집어 엎게 되는데

 

5.16 군사정변

 

5.16 군사정변 바로전날인

1961년 5월 15일 월요일

박정희는 군사혁명(박정희 주장) 을 일으키기 전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몰랐기에 가족들을 둘러보았고

이날 육영수는 신당동집에서 주변을 정리했고

박근혜와 박근영 두 딸을 학교에 보내고

파출부 아줌마를 불러 차비를 넉넉히 주며 고향에 2~3일 다녀오라 하였고

 

박근혜 일가 신당동 가옥 , 1967년

 

이날 박정희 집에서는 김종필 , 장태화 , 이낙선 등이

박정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쿠데타 계획을 논의하고 잇었고

육영수는 이들에게 커피와 과일을 올렸습니다

 

이날밤

육영수는 자신과 박정희와의 아이였던

근혜 , 근영 , 지만 3남매를 안방에서 자도록 했고

밤 10시가 되자 출동준비를 하고있던 박정희에게

 

<육영수>저 보세요 ,

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

 

했고

 

(I don't wanna be without you girl~

마지막인사를 전해두길 바래 오~)

 

쿠데타 직전 밤 박정희는

그림그리는 숙제를 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박근혜를 굽어보고서는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려 출동했습니다

 

 

<훗날 박근혜>

그날 아버님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어머님께서는 집안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님께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박근혜는 그날밤 아버지가 군인아저씨들과 무슨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K-여초딩에 불과했고

총기를 들고 일어나기 직전 박정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3남매와 마누라를 한번 쓱 보고 집밖을 나가

지프차에 올랐고 그날밤 총탄이 오고가던 한강인도교를 건넌 육군소장 박정희는

일본어로 

 

<박정희>주사위는 던져졌어

 

라 중얼거렸고

 

 

박정희는 군인들로 쿠데타를 성공시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를 쫓아내고

대한민국 2공화국을 무너뜨렸고

군인들로 이루어진 비상정치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한 후

대한민국 3공화국을 열며

대한민국 5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공주의 희망]

아무것도 모르던 박근혜와 그녀의 동생들은

졸지에 어머니 손을 잡고 청와대에 들어갔고

이때부터 박근혜의 공주생활이 시작됩니다

 

윷놀이 하는 박정희 일가

 

사람들이 박근혜를 비판 , 조롱하며 공주라하지만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어린시절부터 나폴레옹 황제를 흠모한 인물로서

그의 통치술을 따라한 점도 많아

실제 당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기보다 대한민국 황제처럼 군림했던 인물이었고

박근혜는 그런 권위주의적 성향의 아버지에게서 자랐기에

실제로 일반적 영애가 아닌

실제로 공주나 황녀로 자란 인물이고 그나마

어머니 육영수가 아버지랑은 달리 인성교육은 좀 시킨 편이고

뒤 이야기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어린시절부터 실제로 공주수업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공주수업이 조롱으로 하는말이 아니라

실제로 서양왕실개념에서 '공주수업' 이라는 교육과정같은게 존재함 , 추후서술)

 

영애시절 박근혜

 

이렇게 다사다난하고 복잡한 아버지를 만났기에

대한민국 황녀로서 엄청난 혜택을 보고자란 그녀기도 했지만

독재자 아버지를 둔 탓에 엄청나게 불운한 인생을 살기도 했고

결국 박근혜는 이런 일반인과 다른 기구한 인생 속에서

'희망' 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희망이란 말을 즐겨사용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나는 희망을 선택했다

짧지 않은 내 삶을 이끌어온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는 하루도 더 버티기 힘든

절망의 순간도, 인간의 모자란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일도 묵묵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삶이 반드시 나만의 삶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의 인생에 또 다른 운명의 길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당당히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갈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바로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이다.

 

하여튼 너무어릴땐 아버지따라 이곳저곳 떠돌았던

박근혜의 인생은 보통 청와대부터 시작된다 볼 수 있는데

 

<박근혜 자서전 약력>

10 열두 살부터 지낸 청와대에서 ,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부모님의 국정 운영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국가 운영에 대한감각을 익혔다.

 

[청와대 이삿날]

5.16 군사정변에 성공한 아버지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될때

박근혜 일가는 장충체육관 건너편의 의장공관에 머물러 지냈고

이때 어머니 육영수는

청와대에 들어가기 앞서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박근혜의 동생들은 이전 신당동 집에 살던때와 별반 달라진게 없었지만

육영수는 아침부터 밤까지 쉴새없이 분주히 공관에 오는 많은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응접실에서 귀빈맞이하는 육영수

 

어머니를 좋아했던 어린 박근혜와 동생들은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뺏기는게 싫어 투정을 부렸지만

육영수는 누구에게도 피곤하거나 부담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항상 웃는 낯빛으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추운 계절이었지만 어린 근혜와 근영이 , 지만이 삼총사는 

청와대로 이사한다는 사실에 마냥 들떴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관 '청와대'

 

'거기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

 

'거기도 손님이 많이올까 ?'

 

삼남매는 재잘거리며 온갖 상상을 하느라 바빴고

 

박근혜 삼남매 위부터 근혜 , 근영 , 지만

 

이때 육영수는 청와대 이사준비에 바빠

훈장 , 철모 , 헌 군화 , 지도 등 아버지의 물건부터

가족의 손때묻은 물건은 하나도 빠짐없이 챙겼고

말끔이 집을 비우고 청소까지 맞춘 육영수는

쌀과 연탄을 배달시켜 쌀독과 연탄만 가득 채워놓았고

누군가는 육영수에게 물었습니다

 

<누군가>곧 떠나시는데 무엇에 쓰시려고요 ?

 

육영수는

 

<육영수>새로 들어와 살 사람을 위해서요

 

[마당 넓은 집 , 청와대]

하여튼

박근혜 삼남매는 청와대에 도착한 순간

청와대의 엄청나게 큰 마당에 압도되었고

넓은 뜰을 보자 지만이는 바로 공차는 시늉을 하며 좋아했습니다

 

'와 넓다 넓어 숨바꼭질하기 최고야(부모님 속내도 모르는 동심 ㅆㅅㅌㅊ~)'

 

뛰노는 박근혜 삼남매 , 채널A

 

당시 박근혜는 장충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청와대에서 거리가 멀어 통학을 하려면 자동차로 오가야했고

대한민국이 너무 가난해 자가용이 드물던 그시절

육영수 여사는 어린아이들이 자동차로 통학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않을뿐더러

아이들에게 특권의식을 갖게할까 염려했고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는

세 아이들이 대통령의 자식이라는 특별한 아이로 주목받으며 자라기보다는

어느 부모들이 그렇듯 그저 평범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랬습니다

 

결국 고심하던 육영수는 박근혜와

박근영(박근혜 동생으로서 본명 박근영 , 박서영으로 개명했다

2004년 박근령으로 이름을 바꿈) 을

외할머니 집으로 보냈고

두 자매는 외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박근혜 박정희 박근영

 

몇해가 지나고 박근혜가 성심여중에 입학하던 해

박근혜 가족은 다시 청와대로 모였고

여동생 근영이는 청운초 4학년으로 전학갔고

함게 어울려 놀 친구가 없어 청와대 생활을 지루해했던 남동생 지만이는

가까운 유치원에 들어가며 일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박근혜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뉴스소리가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왔는데

아침마다 라디오와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듣는

어머니 육영수를 보았고 (육영수도 평범한 영부인은 아닌듯)

청와대에 온뒤에도 어머니의 하루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켜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대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

 

박근혜에겐 청와대 생활은 이전 생활과 크게 다르진 않았는데

단지 청와대 크기가 넓어

박근혜 삼남매는 각자의 방이 생기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집무실이 있다는게 이전 생활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었습니다

 

청와대시절 박근혜 일가

 

(박근혜는 자서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라 안쓰고 어머니와 아버지라 쓴걸 보면

확실히 어머니를 더 좋아한듯 합니다 , 아버지는 그냥 좋아하기가 좀 어려운 분이죠)

 

청와대는 가족실 , 집무실 , 아이들 방같이 거창한 이름이 붙어 화려했을것 같았지만

사실 박근혜 가족이 사용하던 공간은

소박하고 깔끔한 육영수 여사의 성향대로

모두 실용적이고 단촐하게 꾸며졌고

화려한 가구나 값비싼 장식품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단 박근혜 삼남매는 아버지가 아버지기도하고

청와대라는 공간에서 또래랑 어울리질 못해 곧잘 불만이 많았기도 했습니다

 

[문학소녀]

어린시절 박근혜는 교사부모님이나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문학소녀로 자랐는데

 

(박정희가 군인하기전엔 교사출신이기도 하고 어렸을때

역사책같은 책을 엄청나게 읽었음)

 

초등학교 시절 박근혜는 전투이야기가 나오는 역사소설을 참 좋아했고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 를 읽을때 설렘과 흥분에 사로잡혀

도대체 몇번을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었고

총사대의 끈끈한 의리가 멋졌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삼총사와 달타냥의 용기에 들뜬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생생했습니다

 

삼총사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실제로 어렸을때부터 나폴레옹 전기 , 플루타크 영웅전 , 삼국지 ,

안중근 , 난중일기 등을 읽으며 역사책 등을 곱씹어 읽으며

권력과 인간의 원리를 터득하고 영웅심에 심취하며 자랐는데

그 아버지에 그딸이기도 했고

 

딸이 삼총사 같은 책을 읽는게 재밌었던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박정희>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근혜가 좋아할 것 같다

 

며 박근혜에게

삼국지를 추천해 주었고

삼국지를 손에 잡던날 어린소녀 박근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고

학교 수업시간에도 빨리 집에가서 책을 읽고싶은 마음에 조급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때 어린 문학소녀 박근혜는 조자룡에 심취했고

첫사랑이 조자룡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조자룡이 등장할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였습니다

 

ㅅㅂㅋㅋ(뭔가 오글)

 

(저도 어렸을때 삼국지 만화 , 소설 시리즈별로 엄청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 원픽이 제갈공명이고 만두만든 삼국지 제일의 천재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이야기를 쓴 중국 셰익스피어인 나관중이 제갈량급 천재라는 생각이고

본명 '나본' 인데 라봉봉 , 나봉쓰와 비슷해서 뭔가 애착도 갑니다)

 

아버지는 박근혜에게 물었습니다

 

<박정희>근혜는 삼국지 인물들 중 누가 제일 좋으니 ?

 

박근혜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박근혜>조자룡이요

 

이때부터 삼국지 빠순이가 된 박근혜 소녀는

친구들과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개구쟁이처럼 놀게 되었습니다

 

 

공주마마를 구하라 !! (Wls)

 

[여자골목대장]

신당동에 살던때는 박근혜 소녀는

동네친구들과 모래주머니 놀이 , 공기놀이 , 고무줄놀이 , 숨바꼭질을 즐겨 했는데

그때마다 승부욕에 불타 열심이었고

공기놀이 동네 챔피언이 되기 위해 동생 근영이와 집에서 공기연습을 했고

고무줄놀이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 얼굴이 벌게질때까지 숨을 참으며

깡충 뛰기도 했고

자연히 박근혜는 골목대장이 됩니다

 

(한날 여자골목대장이었던 내가 이세계에선 여자대통령?!) 

 

개구쟁이였던 박근혜는 청와대에 들어가며 차분해졌고

성심여중에 들어가며 1학년때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이를 통해 규율과 화합을 자연히 익혔습니다

 

성심여중 시절 박근혜

 

친구들과 여러 책을 돌려보면서 독서편식도 사라져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되었고 생각의 깊이도 달라져

점차 개구쟁이에서 차분한 소녀로 탈바꿈했습니다

 

[군인의 딸 , 대통령의 딸]

특히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것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 박근혜 삼남매의 언행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 어머니의 교육이었고

평소 육영수는 다정했지만 잘못한 일엔 단호했고

책임감과 신중함을 늘 강조했으며

어리광과 엄살을 받아주지 않았고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지 않으면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실제로 육영수는 정말 유능한 교육자였고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려 했습니다

 

<육영수>공부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마음만은 바르게 써야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위화감이 생길까봐

비싼 학용품이 선물로 들어와도 아이들이 쓰는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육영수는 여러차례 삼남매에게 당부했습니다

 

<육영수>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 가족은 언젠가는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 .

청와대에 산다고 해서 우월의식을 가져서는 된다.

이곳은 잠시 빌려 사용하는 곳이야

 

박근혜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매일밤 일기를 쓰게 되었고

박근혜는 부모님을 존경했지만 특히나 어머니가 자신의 우상이었고

매사에 사려깊고 부드러우며 확신에 찬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박근혜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박근혜는 어머니를 따르고 모방하면서 그렇게 사춘기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박근혜는 점차 군인의 딸이 아닌

대통령의 딸로 살아가게 됩니다

 

<박근혜>청와대에서 산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자랄 수 있게] 

하지만 어린 박근혜에게 청와대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청와대 생활은 하지 말아야 할 금기상황이 빼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 경호원들인 태우오빠 , 두환오빠 , 지철오빠 (캡무서운 오빠들)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것을 남에게 자랑해서는 안된다며

이런 지침을 당부하셨고

어렵던 시절(박정희 정부시기는 대한민국이 후진국 , 가난한 나라였음)

대통령의 딸이라는 자리는 자칫 우쭐한 특권의식을 채워줄 수 있는

위험한 명함이었습니다

 

성심여중을 다니던 어느날 단짝친구 몇명이 청와대에 놀러왔고

가족실과 방을 둘러본 한친구가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친구>뭐야 우리집하고 다를게 없잖아 ?

공주처럼 꾸며놓고 사는 줄 알았는데

 

성심여중시절 평범한 여중딩이었던 박근혜 , 스포츠서울닷컴

 

점심시간에도 친구들은 박근혜의 도시락반찬은 좀 다를거라 여기며

흘낏 박근혜 반찬통을 훔쳐봤는데

박근혜를 다른 소녀들같은 평범한 소녀로 키우려했던 육영수의 의도답게

박근혜 반찬통도 다른친구들과 다를 바없었고

보리가 섞인 잡곡밥에 달걀말이 , 콩자반과 깍두기 정도였습니다

 

 

그시절 보일러와 도시락

 

당시 성심여중은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학교였는데

그곳에 학생 기숙사가 있었고

 

육영수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톨릭 세례받는 성심여중 박근혜 , 1965년 6월 세례명 율리아나

 

육영수 여사는 박근혜가 기숙사 생활이 꼭 필요하다 판단하고는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벗어나 1년동안 학교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잠자며 어울려지냈습니다

 

잠은 한방에서 여러명이 자도록 되있었는데

칸칸히 커튼이 쳐있었고

취침시간엔 선배들이 커튼너머로 빵이나 과자 , 순정만화책을 던져줬고

박근혜와 소녀들은 수녀님 몰래 야참을 먹으며

소근소근 수다도 떨었습니다

 

1960년대 순정만화

 

수녀님들은 학생소녀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모른척 눈감아 주실때가 많았습니다

 

(근데 근혜학생은 아빠가 박정희라 사실 혼내면 수녀원 폭파됨ㅋㅋ)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하며 선생님이 학생들 패는 영화 '친구' 패러디에서 박근혜 학생이 나와버린 풍자개그 , tvN SNL

 

박근혜가 2학년으로 진급할때쯤 학교는 교실을 확장한다며

기숙사를 폐쇄한다 했고

박근혜는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 엄마가 해준밥을 먹으며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서울시민의 발이었던 전차 , 뉴스포스트

 

썸도 한번 타줘야쥬 ?

 

아침마다 청와대에서 효자동을 거쳐 원효로로 가는 전차를 탔습니다

근데 대통령의 영애가 전차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전차 차장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지면서

대통령의 딸이 누구일까하며 성심여중학생들을 한명한명 눈여겨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하루는 성신여중 뱃지를 본 차장이

박근혜 학생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차장>너희 학교에 대통령의 딸이 다닌다면서

 

<박근혜>네

 

<차장>전차타고 다닌다는데 사실이니

 

<박근혜>그렇다나봐요

 

<차장>예쁘게 생겼니

 

<박근혜>글쎄요(ㅋㅋ)

 

<차장>공부는 잘하니

 

<박근혜>잘하나 봐요(ㅋㅋ)

 

<차장>키가 얼마나 하니

 

<박근혜>저만할 거에요

 

박근혜 공주아니 박근혜 학생은 신분을 숨기고

시치미를 뚝 떼며 대답했습니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 박근혜였고

그날밤 식구들이 모인 저녁식탁에서 등교길에 겪은 이야기를 했더니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겉으로는 웃으시면서도

사람들이 박근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걸 다행스럽게 여기며

안도하는 눈치였고

어머니는 박근혜가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칭찬했습니다

 

<박근혜>봄 여름 가을 겨울

몇번의 계절이 지나고 어느덧 청와대에서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추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점차 대통령의 딸이 뭘 해야하고 뭘 해야할지를 배워가며

적응해가던 박근혜 소녀였는데

 

[퍼스트 레이디]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인 박정희 못지않게 바쁜 하루를 보냈고

청와대 사람으로부터 신문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편지 한통도 소홀히 하지 않고 직접 챙겼고

조용히 여기저기 시찰을 다녔습니다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영부인) 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육영수 여사

 

아쉬운 점은 청와대 퍼스트레이디(영부인)였던 어머니가 너무 바빠져서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는 횟수가 점차 줄어든 것이었고

 

(세금낭비라 생각되지만 청와대는 전속요리사가 있음 ㅋ)

 

그래도 가족들이 모이는 휴일저녁식사만은 손수 장만했고

봄이면 쑥국이나 냉이국을 , 여름엔 냉면을 준비해 식탁을 손수 올렸습니다

매일밤 박근혜 삼남매의 저녁간식을 챙기는 것도 육영수의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어머니는 박근혜가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 있으면

토마토를 직접 갈아 내오시거나

떡 한두조각에 국화차같은 전통차를 준비해 주셨고

 

신당동 살던때 박정희는 무엇보다 육영수의 요리솜씨를 자랑스러워했고

손님이 찾아오면 육영수는 수산시장에 나가 싱싱한 횟감을 구해

직접 떠줬고 순대나 약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었습니다

 

<박근혜>어머니의 별미요리를 먹어본 사람들은 두고두고

어머니의 음식맛을 잊지 못했다

 

 

 

육영수 여사는 평소

 

<육영수>남편이 부정을 저지른 책임의 태반은 아내가 져야 합니다

 

하며 청와대 안주인으로서 사명감이 매우 높았고

 

(육영수가 일반적인 퍼스트레이디가 아니었음)

 

박근혜가 보기에 어머니 육영수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라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셨고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했습니다

 

 

 

 

그시절 각계각층의 존경을 받았던 육영수

 

남편을 따른 해외순방길에서도

해외에서 절대로 쇼핑을 하지 않았고

해외순방이후 자녀들에게 선물하나 주지 않았습니다

 

해외순방 당시 박정희일가 , 뉴시스

 

해외순방 당시 자료들 , 조선일보

 

또 해외순방길에

하루종일 서있는 날이 많아

저녁에 숙소에 가면 발이 퉁퉁 부어있었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든 구두는 신축성이 떨어져

딱딱한 구두를 신고다닌다는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육영수는 발이 심하게 부어 편한구두를 한켤레 구해오겠다는 말에도

혹 국산구두가 질이 나쁘다는 소문이 나면 어떻겠냐며

단박에 거절하고 고생하면서도 티를 안내려했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것들을 항상 어깨너머로 본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후 취임식에서 국산차를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한 최초의 대통령이 됬고

정부기관은 내수진작과 산업진흥을 위해 국산품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중 하나라

 

(대한민국 군대도 식재료 최대한 국산쓰려함)

 

대한민국이 1970년대부터 국산자동차를 만들 기술을 가졌음에도

그간 대통령들이 국산차를 타지 않았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고

박근혜는 당당하게 대한민국 자동차기업인

현대 에쿠스 리무진을 탔습니다

 

독일 BMW 탔던 노무현 대통령

 

미국 GM 캐딜락탔던 노무현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때 한국 현대 에쿠스탄 박근혜 대통령

 

브라질 순방때 한국 현대 에쿠스 탄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가 자서전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박근혜 일생에 가장 믿고 존경했던 가장 큰 핵심적 인물은 결국

박정희도 , 최태민도 아닌 결국 어머니 육영수였는데

 

박근혜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박근혜의 마음안에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여인으로

어머니 육영수가 자리잡았고

어머니의 언행과 훈육방식이 일관되지 않았다면

청와대에서 사춘기를 지내는 동안 박근혜의 자아는

적지않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고

덕분에 박근혜는 사춘기도 무난히 지나갔습니다

 

 

<박근혜>짜여진 규율 안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내는 생활은 숨막히는 일이었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남들에게 공주처럼 보이겠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감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주변 환경에 동요하지 않고

자식들이 평범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교육때문에 무리없이 사춘기를 지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라봉봉>박근혜가 부모가 나름 능력있는 엘리트 아버지 + 현모양처 어머니 조합이였기에

엄청난 복이라면 복을 타고났었지만

아버지 능력이 그냥 능력이 아니라 한국사 중심에 있었던 철권독재자 박정희였고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이상 더이상 평범한 가족으로 살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가 일반사람들 , 민중의 눈으로 보기엔

유능한 대통령 혹은 무서운 독재자였지만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보면

지극히 박근혜 중심으로 당대 청와대의 분위기와 대통령과 영부인이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말을 , 무슨생각을 했는지 나타나있고

한편으론 아버지도 딸이 권력의 무서운 진실을 알지 못하게

중요한 것은 많이 숨긴거 같기도 하고

어머니 역시 더이상 평범하지 못하게 된 가족이었기에

딸이 자신들같은 불운한 운명은 피할 수 있도록

그저 평범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기원했던 느낌이고

 

육영수가 특히 남편보다 나은점도 많이 있었고

현명하게 자녀교육과 인성교육을 시켰고

최대한 삼남매를 현실적이고 지혜롭게 키워냈다는 느낌이고

박근혜 역시 육영수여사를 일반적 엄마가 아니라

진짜 정신적 지주나 존경하는 롤모델로 깊게 의지하고 따랐습니다

 

제가보니 육영수 여사가 일반적 영부인과 확실히 다르다는 모습이고

너무 나대지도 , 은둔하지도 않고 적당히 교양과 기품이 있었던 인물이라 생각되고

뭔가 만화 이누야샤에서 마을을 지키며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비운의 무녀 '금강(키쿄우)'

현실판이라는 느낌이고 박근혜 역시 육영수를 일반적 엄마로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귀티가 확실히 있긴 있습니다

 

그냥 내조하는 현모양처라기보다 박정희가 부족했던

사회문제 , 약자에 대한 배려 같은게 있었던 인물이라

실제로 폭군 남편을 잘 다독이며

청와대의 야당역할을 하며 청와대의 야당 별명을 가졌던 육영수였고

 

노동자 전태일 역시 박정희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박정희는 읽지 못했고

전태일 열사 사후 육영수가 전태일의 뜻을 받들어 노동자 권익을 챙겼다 할정도이고

확실히 경제제일주의자였던 박정희와 사상적으로도 달랐던 인물이라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것은 일반적인 영부인 사망이 아니라

왠만한 유능한 거물 야당 영수정치인 한명이 죽었다 볼 수 있을정도로 국가적 타격이었다 생각되고

그로인한 박근혜의 정신적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극히 박근혜 입장의 기록이기에 좀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대충 봐도 진짜 현명하게 자신의 딸을 일부로 평범하고 검소하게 키운 것이었고

박근혜가 아버지의 유능함과 어머니의 따뜻함을 제대로 배웠다면

진짜 월클 정치인으로 성장했을텐데

에휴 레이디 가카 ㅠㅠ

 

반응형

'어린이 한국역사 > 2집 Human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근혜의 청년시절  (2) 2022.02.08
박근혜의 학생시절  (3) 2022.01.23
인싸 이명박  (7) 2021.12.09
샐러리맨 신화 이명박  (8) 2021.10.10
뻥튀기 소년 이명박  (4) 2021.10.06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