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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건국한 왕은 태조왕건 왕건입니다

태조는 건국한 왕에게 붙이는 시호 같습니다 고구려 태조왕은 예외라 할수있겠는데요

태조왕건, 태조이성계 등 1대왕들을 부르는 명칭같습니다


왕건이 태어날때는 신라시대였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이후에 신라 말기가 될수록 나라에는 도적과 여러 혼란이 있었던것같습니다

이당시 지방에서는 신라가 약해지자 성주나 장군등의 호칭을 내세우고 그랬던것같습니다

이를 호족이라고도 부르는것같습니다

왕건의 할아버지는 작제건입니다 원래 1대왕이나 초기왕,왕들은 자신의 조상을 신성시해

왕으로서의 정통성 이런거를 내세우려했던것같습니다

삼국시대왕들이 알에서 나왔다는 설화나 검은 흑룡이 나타났다는 기록,,

조선시대에서는 용비어천가나 태조이성계가 쓰러진집에서 나무 세개를 들고왔다는 꿈 해석을해보니

한자 왕자와 같고 쓰러진집은 고려이다 이런 해석같이 작제건도 당나라 선종의 아들이었다고합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일수도있겠으나 도중에 작제건은 배를타고가다 바다에 버려지는데

살아서 섬에가는데 그곳에서 용왕을만나고 용왕의 두통의 원인인,,부처님으로 변신한 여우를 잡고,,

그러다가 보물을 얻고 등등,,원래같으면 이런이야기를 썼을거같은데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조상은 정말 신비로운일을 겪으시고 등등 이런거같습니다,,

그러다 작제건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을 낳고

왕륭은 송악 오늘날 개성의 성주,호족이라 할수있겠습니다

예성강에서 해상무역으로 돈을벌고 그랬던것같습니다

작제건도 배를 타고 돌아다닌거같은데 해상무역과 관련이있는것같습니다

왕건의 탄생할때 이야기입니다

그당시 도선대사라고 이곳저곳??돌아다니는 스님이 계셨는데

풍수지리로 유명하신분 같습니다

그러다가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집을 지으려는것을보고

어느곳을 가르키며 저곳에 집을 지으면 아이를얻고,나라를 얻을수있다해서

왕륭은 그것을 따르고 이후에 왕건을 낳게되었습니다

풍수지리는 조선시대 무학대사도 이성계와 한양천도에 관련한 이야기가 있는것같습니다

풍수지리 명당 이런거를 중요시하는거같은데요 비과학적인거 말고 강과 산이있고 농사가 잘되는

그런곳은 풍수지리를떠나서 ㄱㅊ을것 같습니다

이 이후 왕륭은 궁예가 신라 북부지방에서 세력을 키우자??,,궁예에게가서 항복한거같고요

궁예에게 송악을 수도로 하게 말합니다 송악은 왕륭의 땅이었는데 궁예에게 항복??하고 이곳을

수도로하라 한거보니 보통의 의도는 아니었을거 같기도합니다 또 아들 왕건을 궁예정부??에서

일하게 한거같고요


왕건은 궁예정부??에서 여러 공을세워,,오늘날 해군대장까지가고 다른 장수들의

신뢰 이런게 생긴거같습니다 왕건의 성격은 오늘날기준이아니라,,그당시기준에서는

착하고 믿을수있는 그런사람이 아니었을까싶습니다 그당시 기준이라 하는 이유는

결국 이 공이라는거도 전쟁이었을것이고요,,또 나중에 호족들과 잘지내려고

결혼동맹 이런거같이 호족들 딸과 결혼하는데 29명이라합니다,,

그당시 혼란스럽고 여러 반란이 일어나는 그런 신라말기에서는 왕건이

그래도 도덕성이나 인간성 이런게 가장 나았을수도 있지않을까싶습니다,,

그리고 궁예정부라한이유는 궁예는 나라이름을 세번 바꿉니다

오늘날??후고구려라하는 고려,마진,태봉 이렇게요

수도도 나중에 송악에서 강원도 철원으로 옮깁니다

그러다가 왕건은 왕다음벼슬 오늘날 국무총리까지 간거같고요

나중에 궁예는 호족들을 숙청,, 즉 죽이는데요,,궁예는 미륵 즉 구세주이런것을 자처하며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있다는 관심법,,으로 사람들을 죽입니다,,

또 강이있고 교통이 되있는 송악,오늘날 개성에서 강이없는 강원도 철원으로 수도를 옮기고

여러 불만이 있었던것같습니다,,

궁예는 관심법이라는거로 공포정치를 하는거같고요 이 관심법이나 폭군이런이미지는원래

새로 세워진국가에서 정통성을 얻으려고 그전의 국가 왕에게 여러 덮어씌우고 우리새로운 왕은

착하시고 선하시고 그전 왕은 폭군이었다 이런게 있는거같기도한데요

궁예는 호족들을 통제하고 그러려 한거같고 관심법같은 공포정치를 한거같습니다,,

이때 왕건도 이 관심법,,에 궁예가 왕건에게 역적모의를 한다고 뭐라하는거같은데요

나는 관심법으로 왕건 너가 역모를 하려는거를 알고있다 이렇게말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당시 궁예의 의도는 왕건도 주위에서 여러 신뢰도 있는거같고 똑똑한 신하인걸 알기에

왕건의 충성심??을,, 시험하려한거일수도 있을거같습니다,,

그러다가 궁예옆에있던 최응이라는 신하가 일부로 붓을 왕건쪽으로 굴려서

그것을 주으러가다가 왕건에게 귓속말로 모반했다고 말하라합니다

최응의 의도는 왕건을 살리려고 오히려 역모를 안했다고 말하지말고

적당히 궁예의 미친짓??을 띄워주면서 궁예의 관심법은 사실이다는거같이 하면서

오히려 역모를 하려해서 죄송하다 이런식으로 말하라한거같습니다,,

왕건은 그대로 하고 궁예는 오히려 정직한 사람이라하고 왕건을 용서했다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궁예는 신하들의 신뢰를 잃는거같고 왕건은 계속 신뢰를 얻는거같습니다,,

이 일로 궁예와 왕건의 관계는 서로 불편해지는거같고요,,

그러다가 4명의 장군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이 밤에 왕건의 집에 찾아와

현재 왕은 포악하다면서,,반란을 일으키자하고요,,왕건은 주저하다가

부인 신혜왕후 유씨가 갑옷을 입혀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때 왕건을 따라 반란을 했던거같습니다,,궁문에서 북을 치고 그러다

궁예가 이소식을듣고 옷을 변장하고 도망치는데요

나중에 백성들에게 살해됬다합니다,,,


비록 궁예도 나중에 여러 잘못을 한거같은데요,,이렇게 죽고 죽이는 그런게 안타깝습니다,,

왕건은 왕이됩니다 그리고 수도를 다시 송악 오늘날 개성으로 옮깁니다


<왕건의 주변사람들>


<궁예>왕건의 고려건국하면 궁예를 안쓸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궁예는 신라왕자출신이라는데요 태어날때 불길한징조가있어 높은곳에서 떨어트려 죽이려하다가,,

유모가 그거를 받다가 한쪽눈을 실명했다고합니다,,

궁예는 유모에게 자랐고 말썽을 피우고다니다가,,유모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뉘우치고 스님이 되었다합니다,,그러다 신라말기

여러 반란이 일어나고그러자 궁예도 절에서나와서 기훤이라는 사람에 부하,,로 들어가는데요,,

기훤이 궁예를 홀대,무시한거같습니다,, 궁예는 다시

양길의 부하,,로들어갑니다,,궁예는 강원도 대부분과 여러 지역을 점령하고

이때 송악의 왕건의 아버지가 궁예에게 항복,,하는것같습니다

그리고 궁예는 양길에게서 나와서 양길의 땅까지 뺐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궁예가 사졸과 함께 고생하며,

주거나 빼앗는 일에 이르기까지도 공평무사하였다는데요,,

뭔가 로마의 카이사르가 생각나는거같습니다

카이사르도 일반군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고생하면서 여러 인기 이런게 있었다고

본거같고요,,

궁예는 송악을 수도로 정하다가 철원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러다 미륵을 자처하며 관심법이 있다면서 사람들을 죽인거같습니다,,

왕건의 반란으로 궁예는 변장을하고 도망치다 백성들에게 살해당했다합니다,,


<장화왕후와 버드나무잎 이야기>

왕건이 궁예정부때 전라도 나주를 공격해서 점령했는데요,,

이당시 행군하다가 목이말라 나주금성산쪽 우물가에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자

여인이 바가지에다가 버드나무잎을 띄워주었다합니다 이에 왕건이

왜 버드나무잎을 띄어주냐고 하자 급하게먹으면 체할까봐라하는데요

이에 왕건이 그녀의 아버지에게가 청혼을하고,, 승낙받았다고합니다,,

이는 저가 옛날에본 인상적인 이야기같습니다

비록 별로 크고 그런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장화왕후의 지혜 이런거로

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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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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