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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자료 수집보다 저의 기억에 있는 그런 위주로 해야될거같습니다

현재 해야할게 너무 많은거같고 너무 바쁜거같습니다

이야기가 짧던가 길수도 있을거같습니다 그래도

저가 인상적으로 본 이야기들을 쓰는거라 어느정도는 보실수 있지않을까요

또 저가 들은바 기억한바로 쓰는거라 100프로 정확하지는 않을수도 있을거같습니다


혜종은 고려의 2대왕으로 돗자리 왕이라고 합니다

왜 돗자리냐면 왕건이 나주에있을때 어떤 여인에게 물을 얻어먹으려고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고하니까 바가지에 물과 버드나무 잎을 띄어서 준 여인이 있습니다

왕건이 왜 버드나무 잎을 띄어줬냐니 체하지말라해서 띄었다고해서

왕건은 여인의 지혜에 놀라워했다 이런이야기를 어렸을때 본거같습니다

이분이 장화왕후인데요 왕건이 이분과 관계를 했는데 임신할까봐 바깥에다가

했다고합니다,, 돗자리에다가 했다는데요 장화왕후가 그 돗자리에 있는거를

쓸어서 임신했다고합니다,,혜종의 얼굴에는 돗자리 자국같은게 있었다고합니다,,

그래서 돗자리 왕이라고 합니다 이는 호족들이 혜종을 경계해서 그랬을수도 있다고 본거같습니다


혜종은 왕건을 따라다니면서 장수로 있었던사람이라 유약한 이미지는 아니었던거같습니다

자객이 들었는데 직접 때려서 자객을 잡았다고합니다,,

그러다가 혜종이 사망하고요,,


3대왕은 정종입니다

정종은 서경 오늘날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서경궁궐 짓는 공사중에 벼락을 맞거나 그래서 궁궐이 파괴되고 그랬던거같습니다

혜종과 같이 정종도 재위기간이 짧습니다

혜종 2년 정종 4년입니다


4대 고려의 왕은 광종입니다

이분은 왕권을 중요시한 사람으로 스타일은 조선 태종 이방원같은 분같습니다

중국 후주에서온 쌍기라는 사람을 요직에 앉히고 개혁을 밀고나간분같습니다

호족들이 가지고있는 힘을 약화시키려고 노비안검법을 실시합니다

노비안검법은 억울하게 노비가된 사람들을 평민으로 만드는 법같습니다

나중에 고려후기 공민왕도 신돈을 시켜서 노비안검법을 실시하는데요

이역시 권문세족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려 한것이었으나

두분다 큰 효과는 보지 못한거같습니다

광종이후에는 문벌귀족,무인정권이 나오고요 공민왕 이후에는

다시 권문세족의 집권과 신진사대부가 나오는거같습니다,,


또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이당시 중국은 분열기로

잠깐 황제국 호칭을 사용했다고합니다

그러다가 외국에는 왕 국내에서는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외왕내제 체제로 가다가 원나라의 간접지배시기 사위국이라는 뜻의 부마국이 되는데요

원나라 간접지기 시기 부터 태자라는 호칭을 세자 폐하를 전하 이런식으로 해서

외왕내왕 체제로 갑니다 대한독립 만세할때의 만세도 사실

조선시대에는 일만만자의 만세가아니라 일천천자의 천세라고하다가

조선후기 대한제국으로 황제를 칭하고나서 만세라는 말을 쓰게된것입니다


공복을 지정합니다 공복은 옷이라고 보시면됩니다

이당시 왕보다 화려하게 입고다니는 신하도 있었는데 중국 관복스타일로

바꾸는거같습니다


또 과거제를 실시합니다 과거제는 중국 수나라 문제때부터 실시됬는데요

오늘날 시험이라는것의 시작같습니다

과거제는 그당시 호족들이 칼로 집권하던시기에서 문치주의를 표방하는

그런 의미도 있었던거같은데요 고려시대에는 관리가 인구 500만정도에

3천명 이하였던거같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인구 5000만정도에 공무원이 50~100만명정도

있다고 본거같은데요 나누기 10을 해서 한국인구 500만에 공무원이 5만이라해도

거기의 10분의 1도안됬던거같습니다 고려는 무인과 문인들이 있는 나라였던거같고

조선시대부터 과거제가 신분상승의 주요수단으로 인식됬던거같습니다

고려인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관리 수가 적어서 대기기간이 매우 길었던거같습니다

무인정권때 이규보라는 사람이있었는데 20대에 과거시험에 1등이라는 뜻의 장원으로 합격한거같은데요

자리가 없어서 20년동안 대기를 했던거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무인들에서

어용학자 즉 고용된 그런학자 이런거로

거기서 사무직일을 했던거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법고시 폐지 이야기나 고시,수험 이야기들을 저가 여럿 본거같습니다

시험에 합격하지못해서 자살하거나 안타까운 이야기도 본거같은데요

먼저 자살은 하면안됩니다

나관중이라는 사람은 친구는 과거시험에 합격했는데 나관중이라는 사람은

합격하지못했습니다 그래도 평소에 자주 찻집을 들어다니며 삼국지 연극보는것을

자주 했던거같습니다 이분은 과거에 합격하지못했으나 중국 유산이라 할수있는

삼국지라는 소설을 쓰셨습니다

또 청나라때 어떤분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으나 썩은 두부로,,

취두부 요리를 개발하셨습니다

시험준비하는 분들이 그래도 나도 성공해서 주변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

이런 마인드라 할수도있겠으나 자리는 한정되있는거같고

나관중의 삼국지소설이나 취두부사례같이 다른 기회도 있는거같은데요

너무 그쪽에만 올인하시면은 안될거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살이 없도록 더 다양하고 즐거운 세상으로 가야될거같습니다


또 세종대왕이 관리들이 시험공부를 열심히하고 관리가되고 독서는 소홀히한다고

지적한거같은데요 시험공부안에도 지식이 없다고할수는 없으나

공부는 매우 다양한거같고 공부는 평생 계속되야되는거같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 비실용적인거는 당장은 못없애더라도

서서히 줄여나가야될거같습니다


중국 후주에서 온 쌍기라는 사람이 과거제를 주관한거같고요

광종은 쌍기에게 집이나 온갖혜택을 주면서 관료들의 불만을 받은거같습니다

광종 초기 정치는 여러 인기를 얻은거같은데요 나중에갈수록

왕족과 신하들을 숙청하면서 나중에 최승로라는 관료도 이를 비판한거같습니다

이렇게 고려 세명의 왕을 썼습니다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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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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