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봉봉 한국역사

무덤을 만들지 않은 민중왕

라봉봉 2018. 1. 2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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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무신왕이 사망하고

대무신왕의 첫째왕비의 첫째아들,태자 해우는 너무어려

정치를 할수가 없었고

대무신왕의 동생인 해색주가 백성들의 추대로

고구려 4대왕이 됩니다

고구려 4대왕 민중왕 입니다


민중왕 1년 11월 겨울 민중왕은 고구려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는 대사면을 시행합니다


민중왕 2년 3월 봄 민중왕은 고구려 신하들을 불러서

연회를 베풀었고


같은해 5월 여름에는 동쪽지방에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서 창고를 풀어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고 합니다


민중왕 3년 7월 가을에는 민중왕은

동쪽 지방으로 사냥을 나가서 흰 노루를 잡았습니다


<고구려 신하>폐하 흰색 동물은 상서로운 징조로

이는 태평성대를 의미하옵나이다

2대 왕이신 유리왕께서도

흰 노루를 잡지 않으셨습니까 ?


<민중왕>허허, 과찬이구나 ~


그해 11월 겨울에는 혜성이 남쪽에 나타났다가

20일만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12월에는 서울(수도)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중왕 4년 4월 여름

민중왕은 또다시 사냥을 했는데요

그 장소는 민중원이라는 언덕이었습니다


7월 가을에는 다시 사냥을 하다가

석굴을 보고 측근들에게,,



<민중왕>내가 죽거든 반드시 여기에 장사 지낼것이며

별도의 무덤은 만들지 말라

무덤을 크게 만들경우에는 백성들이 고생하는 법이다 !


라고 했다고 합니다,,


2개월 후, 9월에는 동해에 사는 고주리라는 사람이

동해바다에서 잡은 고래의 눈을 바쳤는데

밤에도 고래의 눈이 빛났다고 합니다


겨울 10월에는 잠우락부의 대가 대승 등

일만여 호(집)이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투항했다고 합니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에는

1만여 호,집이 아니라 1만명이라 기록되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알수없으나 고구려인들의 대규모의

집단 이주가 있었고 민중왕의 성격상 폭정보다는

흉년이나 자연재해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중왕 5년 민중왕이 사망합니다

왕후와 신하들은 민중왕이 민중원에서 사냥할때

찾은 석굴인 민중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어기기 어려워

민중굴에 장사지내고 호를 민중왕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민중왕>무덤이 크면 백성들이 고생하는 법일세 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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