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유서깊은 귀족집안의 무신이었던 최충헌은

제멋대로 굴던 천민 출신 무신 최고권력자 이의민을

고깝게 여기다 살해하고 고려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사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권신이라 불리는 최충헌 !

그는 왕이 될 수도 있었음에도

일단 세력기반이 무력 이외에는 부족했고

고려 백성들도 딱히 어떤 무신집권자가 됬건

좋아하지는 않았던 상황이라

그런 상황속에서 최충헌은 왕보다는 가장 강한 신하로 남겠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최충헌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권력이 강력한 신하였다 불리게 되었고

그의 아들들까지 최씨정권은 4대 60년이나 가서

고려왕국내의 또다른 최씨왕국을 건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충헌은 처음엔 유서깊은 집안 출신으로 글을 배워

음서(자손 특별채용)로 문관 벼슬직을 하다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무인으로 탈바꿈한 인물로

당시 평민이나 천민 출신에 글도 모르던 무신들이 대다수였다 하니

그런 무신들 사이에서 그런 그의 독특한 이력은

그가 권세를 잡는데 큰 역활을 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의민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1208년 '교정도감' 을 설치해

그곳에서 고려 조정, 나랏일을 운영했고

그의 권세는 고려국왕 이상의 권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충헌은 나름 무신정권을 체계적으로 조직해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이보다 전인 최충헌이 고려 최고권력자가 된 후 얼마 안된 시기인

1198년 최충헌의 집 노비 '만적' 은

다른 노비들과 개경 뒷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적의 연설>정중부의 난(무신정변) 이래로

나라의 공경대부는(높은 벼슬아치) 노예계급에게서도 많이 나왔다

왕후장상(왕과 제후와 장수와 재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

··· 우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

 

<만적의 연설을 들은 노비들>옳다 만적의 말이 옳다 !!

 

그렇게 만적은 다른 노비들을 모아

주인들을 죽이고 거사를 치뤄 자신들이 집권하자 약속했는데

당일날이 되자 정작 몇백명밖에 모이지는 않았고

이에 다음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는데

이때 한충유의 노비였던 순정은

평소 한충유가 자신을 잘 대해주고

한충유의 주선으로 결혼까지 한인물이라

정말 한충유를 배신해야 하냐는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그가 집에 돌아와 고민하자 아내가 왜고민하냐 묻자

결국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고

망설이던 순정은 결국 주인 한충유에게 만적이 난을 일으키려한다는 사실들을 말했고

한충유는 곧바로 최충헌에게 보고했고

결국 최충헌에 의해 만적과 반란을 일으키려했던 노비 백여명은

산채로 포대자루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졌고

반란을 밀고한 순정은 그 대가로 양인으로 풀려나고 백금 80냥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만적의 난' 은 같은 노비였던 순정의 밀고로

허무하게 끝났지만 순정의 고민과 행동 역시

나쁘다고만 말 할 수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만적의 난은

한국사 최초의 노비들의 목적이 뚜렷한 신분 해방운동이라는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이고

수천년동안 있어왔던 한국사의 노예제가

만적에 의해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고 생각됩니다

그 역시 현실성이 부족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있겠는가 ?'

 

는 원래 중국에서 나온 말이지만

덕분에 더욱 유명한 말이 되었고

그보다 그 뒤에 말한

 

'우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 '

 

이라는 그의 발언은

고사성어 인용이 아닌

만적의 순수하고 고결한 생각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여지고

비록 그가 주인들을 죽이고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자라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노예제를 없애려한 그의 고결한 생각 등으로

'만적의 난' 은

한국사의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이자

무신정권 시기 활발한 농민 , 천민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할 수 있습니다

 

<라봉봉>최충헌은 상당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생각되지만

그러나 그 역시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안위에 집중하다

사망한 다른 무신권력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고

그의 대부터 무신정권시대의 길고 긴 최씨정권이 시작됩니다

 

그의 집 노비 만적은

노비가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난을 일으키려 했고

비록 밀고로 잡혀 난은 끝났지만

그의 순수한 이상향 등은

동학농민운동의 녹두장군 전봉준이

생각나기도 하고 만적이나 전봉준 역시

노예제나 봉건제의 모순속에 고통받는 백성들 중 하나였고

그 족쇄들에 맞선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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