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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의 *유년시절, 어린 나이에 *삼국을 *병합할 뜻을 품은 김유신>


(*유년 幼年 어린 나이나 때 , 또는 어린 나이의 아이


*삼국 三國 고구려, 백제 , 신라


*병합 倂合 =합병 , 둘 이상의 기구나 단체, 나라 따위가 하나로 합쳐짐)


신라 태대각간 太大角干 (신라 1등벼슬 각간[이벌찬] 보다 높은

김유신 장군을 위한 특별관직) 혹은 흥무대왕 興武大王 김유신

생몰년도 595~673년 7월 1일


김유신은 경주(본문에서는 왕경 王京 즉 서라벌로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 사람입니다


(김유신 장군의) 12대조 수로(김수로, 가야 시조) 는

어느 곳 사람인지 모르지만

그는 후한 건무 18년 임인에 귀봉에 올라가

가락 駕洛 (오늘날 경상남도 김해시)의

구촌 九村 (아홉 마을)을 바라보고

마침내 그곳으로 가서 국가를 건설하고

국호를 가야 加耶 라 하였다가

후에 금관국 金官國 (금관 가야) 으로 고쳤습니다


그 자손이 대대로 이어져

9대 자손인 구해 仇亥 (금관가야 10대왕 구형왕 김구해) 에

이르렀습니다


구차휴 仇次休 라고도 하는 구해는

김유신에게는 증조부가 됩니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 금천 少昊 金天 씨의 후예라고 생각하여

성을 김 金 이라 한다고 하였고

김유신의 비문(묘비에 새겨진 글) 에도


'헌원 軒轅 의 후예이며, 소호 少昊 의 종손 '


이라 하였으니,

남가야 시조 수로도 신라와 동성 同姓 입니다

(가야 김씨 = 신라 김씨라는 말)


(김유신의) 조부(할아버지) 김무력 金武力 은

신주도 新州道 (오늘날 한강유역)

행군총관 行軍摠管 (신라군 총지휘관, 사령관)이 되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왕(성왕)과

그 장수(백제 좌평[백제 1등벼슬] ) 네 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을 참수한 일이 있었습니다


(백제 성왕의 죽음인 관산성 전투)


(김유신의) 부친(아버지) 김서현은

벼슬이 소판 蘇判 (=잡찬, 신라 3등벼슬)

대량주(오늘날 경상남도 합천군) 도독

안무대량주제군사에 이르렀습니다


<김부식>김유신의 비문에


'아버지는 소판 김소연이다'


라고 하였으니

김서현이 고친 이름인지

혹은 소연이 그의 자 字 (별명)인지를 알 수 없다

이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모두 기록해둔다


처음 김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葛文王 (신라 왕실 혈연에게

주어진 명예 왕직)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만명부인, 김유신의 어머니) 을 보았을 때

내심으로 기뻐하여 그녀에게 눈짓을 하여

중매도 없이 야합(밖에서 합침, 결혼을 안한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일 등으로 쓰이는 말) 했습니다


김서현이 만노군 萬弩郡 (오늘날 충청북도 진천군) 태수가 되었을 때

만명과 함께 가려 하니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고

그녀를 미워하여 별채(별도로 지은 집) 에 가두고

사람을 두어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만명이 창문으로 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습니다


김서현은 경진일 밤에

화성과 토성 두 별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만명도 역시 신축일 밤에

동자 童子 (남자 아이) 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만명부인이) 아이를 잉태하여

스무달 만에 유신을 낳았습니다


(보통 임신기간은 10개월인데

보통 사람의 두배에 달하는 긴 임신기간은

김유신이 비범한 인물임을 나타내는 이야기이며

또 그가 대기만성[늦게 성장하는] 형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삶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때가

진평왕 건복 17년

수 문제 개황 15년 을묘였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 할 때 (김서현은) 부인에게 말하기를


<김서현>내가 경진일 밤에 좋은 꿈을 꾸어

이 아이를 얻었소


그러므로 마땅히 이 날짜로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예법에는 날자로 이름을 짓지 않게 되어 있다하오


그런즉

경 庚 은 유 庾 와 글자가 서로 비슷하고

진 辰 은 신 信 과 발음이 서로 비슷하며

더구나 옛날의 현인 중에도 유신 庾信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어찌 이를 이름으로 삼지 않으리오 ?


라 하고 마침내 이름을 유신이라 했습니다


<김부식>만노군은 지금(김부식님 당시 고려시대)의

진주 鎭州 (충청북도 진천군 鎭川郡 의 고려시대 이름)인데

애초에 유신의 태를 높은 산에 묻었으므로

지금도 그 산을 태영산 胎靈山 (태령산, 오늘날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산) 이라고 한다


공 公 (김유신 공) 은

15세 때 화랑 花郞 (신라 청소년 군사 집단) 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기꺼이 따르며

용화향도 龍華香徒 (김유신이 이끌던 낭도[화랑] 집단)라고 불렀습니다


진평왕 건복 33년 신미

(김유신) 공의 나이 17세 때

고구려, 백제, 말갈 등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슬프고 분 憤 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음) 하여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혼자 중악 中嶽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으로 추정)

석굴 石崛 (돌 굴) 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목욕 재계 齊戒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 하고

하늘에 고하여 다음과 같이 맹세했습니다


<김유신>적국이 무도하여

짐승같이 우리의 영역을 소란케 하니

편안한 해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일개 미약한 신하로서

능력을 생각치 않고

나라의 환란을 없애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하늘은 굽어 살펴(굽어 살피다, 아랫사람의 사정 따위를

아주 상세하게 헤아리다) 저를 도와 주소서 !


(김유신이 석굴에 들어간 지) 4일이 지나자

갑자기 한 노인이

갈옷(털옷 혹은 거친 삼배옷 혹은 누더기 ??) 을 입고 와서 말했습니다


<누더기 입은 노인>여기는 독충(독벌레)과 맹수가 많아서 무서운 곳인데

귀소년 貴少年 (귀한 소년)이 여기에서 혼자 거처하니 무슨 일인가 ?


(김유신)공이 대답했습니다


<김유신>어르신께서는 어디서 오셨는지

존함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


노인은


<누더기 입은 노인>나는 일정한 주거가 없고

인연 닿는 대로 가고 머무나니

이름은 난승 難勝 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김유신)공이 이 말을 듣고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재배 再拜 (두 번 절) 하고 말하기를


<김유신>저는 신라인 新羅人 으로서

나라의 원수를 보니 가슴이 아파

여기에 와서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어르신께서는 저의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방술 方術 (방법과 기술) 을 가르쳐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묵묵히 있었습니다


(김유신)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예닐곱(6~7) 번이나 거듭 열심히 간청했습니다

노인은 그 때서야 말했습니다


<누더기 입은 노인 난승>그대가 어린 나이로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을 병합하려는 뜻을 품고 있으니


(子幼而有幷三國之心 자유이유병삼국지심)


이 또한 장하지 않은가 !


노인은 말을 마치고

곧 비법을 가르쳐 주면서


<누더기 입은 노인 난승>부디 함부로 전하지 말라 !

만약 이를 의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으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말이 끝나자 작별을 했습니다


노인이 2리(약 0.78km ??) 쯤 갔을 때

(김유신은) 뒤쫓아가 그를 찾아보았으나

그는 흔적이 없고

오직 산 위에 오색 찬란한 빛이 서려 있었습니다


(진평왕) 건복 34년에

인접한 적국의 침략이 점점 긴박하여지자

(김유신)공은 더욱 더 장한 뜻을 품고

보검 寶劒 (보배로운 칼)을 차고 홀로

인박산 咽薄山 (오늘날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향을 피워 놓고 하늘에 고하며

중악 中嶽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으로 추정) 에서와 같이

축원(기도)하고 맹세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때 천관신 天官神 (하늘 천, 벼슬 관자니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천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 빛을 비추며

보검에 영기(신령의 기운) 를 쬐어 주었습니다


(인박산 골짜기 기도) 3일째 되는 날 밤에

허수와 각수 두 별자리의 빛이 환하게 내려오자

칼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묵묵히 수련을 하며

공격력 攻擊力 (힘) 을 높이고 있는 김유신 장군입니다,,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은 한국의 위인이자

신라의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인물로

문,무를 겸비한 지혜로운 명장이자 충신이었으며

태종 무열왕 김춘추, 문무왕 김법민과 더불어

삼국통일의 주역입니다


20달동안 뱃속에 있었다거나

노인과의 수련 ,

천사님 ?? 이 김유신의 검에 신령스러운 기운을 쬐어 주었다거나

하나같이 비범한 기록입니다


일단 당대 어린 청소년이 산에 들어가 수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는데

오늘날에도 위험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누더기 입은 노인 난승이 말하셨듯이 독충과 맹수가 많다는것은

굳이 독충과 맹수가 뭔지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옛날 한국에는

산마다 '호랑이' 가 살고 있었고

그 사실 하나만 해도 청소년이 홀로 산에 들어갔다는 점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김유신 장군 기록은

한국사 위인이자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 답게

삼국사기 본기, 왕이야기가 아닌

개인, 일반인 이야기인 삼국사기 열전 처음 기록에 등장하고 있고

기록 자체 상당히 고전적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이상적인 신하이자 이상적인 장수의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할 수 있고

수련을 위해 죄없는 말의 목을 벤다거나

첫사랑 천관녀를 버리고 근친혼을 하는 등

비판할 점도 없다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는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 백제 계백장군,

고려 강감찬 장군이나 최영 장군 ,

조선 이순신 장군같은 나라를 위해 몸바쳐 싸우신 영웅이자

비판이 금기시된 인물로 이야기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유신 金庾信 , 그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신라인들에게는 자부심이자 든든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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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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