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거상이란말은 큰 상인이란말로 조선시대에 거상이라 불린사람이

인상적이게 본분이 몇몇분 있는것같습니다

제목에 여자거상이라 붙인이유는 그당시는 조선시대였고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활동이 별로없던시기여서 그렇습니다


김만덕은 제주도 사람으로 10살때 부모를 잃고 고아였다는데요,,

두 오빠는 목동이되고 김만덕은 오갈데없어 늙은기생에게가서 살아서

기생이됬다합니다,,

만덕은 악기를잘타고 미모가뛰어나,,제주도 삼기,,로 유명했다합니다

삼기면 세명의 기생일까요??,,

그러다 김만덕이 나이가 들자 관에서는 그녀를 기생명단에 올렸다는데요

그당시 조선시대 기생은 천민신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살이후에 원래양인이었다고 관에 호소하여 다시 양인이되었다합니다

김만덕은 제주도에서 식당을 해서 돈을벌고 이 식당이라는게 그당시 객주같은데요

객주는 제주포구에서 상업주선,창고업,금융등 일을 하는것같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양반들을 대상으로 녹용같은 약재나 양반여인들을 대상으로

사치품등을 판매합니다 상업이라는게 원래는 저가,중가로 판매하다가 돈을벌고나면

사치품,고급품이런거도 가는거같은데요 오늘날 보기에도 김만덕은 상업의 생리??를

잘 안거같습니다 여러 시세차익을 남기며 돈을번거같고요

중간에 관리들과 결탁한 상인들 즉 이런것을 정경유착이라하는데요 정경유착은

고려시대에도 여러 사례가 있었던것같습니다

이런 상인들에게 여러 고생도 한거같은데요 그러나 김만덕은 정직하고 성실했고

10년도안되서 제주포구의 거상이 되는거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상인들을 농민들같이 어떤것을 재배하거나 그래서 사는게아니라

타인의것을 교환하면서 시세차익을 남기는거라 상인들을 무시한거같습니다

이를 사농공상이라 하는데요 사는 선비 농은 농민 공은 공예품만드는사람 상은 상민으로

맨뒤에 있듯이 무시한거같습니다 또다른거상 임상옥은 집을 너무크게지었다고

위리안치 유배 비슷하게 된거같습니다 물론 저는 상인들도 상도가 있어야되는거같고

좁은땅나라에서 큰땅을 독점하고 땅에서 아무것도 안하는거도 문제가있는거같습니다

또 개발,상업이 만능이아니라 환경도중요한데요

그러나 이당시 조선시대에는 너무 상업을 무시하고 그런거같습니다

나중에 조선후기에 외국인들이 이나라사람들이 더럽다고 뭐라한거같은데요

조선재정 총수입 800만냥중 600만냥이 인삼판매였다는데요 상업을 무시한결과 인삼하나에만

의존하고 가난해진게 아닐까싶습니다,,


그래도 김만덕은 조선시대 여자에 상인이었어도 정직,성실로 거상이 된거같습니다


이당시가 1792년 조선시대 정조때였는데요 제주도에서는 큰 기근 흉년이 듭니다 이당시 매우 심각한 흉년이었던것같습니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제주도 인구가 6만명정도인데 1년만에 1만8천명이 굶어죽었다합니다,,

또 국가에서 보내준 구호물자도 풍랑으로 제주도에 도착하지못했다합니다,,


김만덕은 재산을 써서 제주도와가까운 전라도상인에게 쌀을 사달라하고 제주도로 보내게합니다

일부는 자기 친척을 살리고 나머지는 관에보내 제주도민 모두에게 혜택이 가게했다합니다

이당시 천금을 써서 쌀500석정도를 샀다는 말이 있는것같습니다


제주목사는 즉 오늘날 제주도지사는 정조임금님에게 보고하고 만덕에게 상을 주려하는데요

만덕은 거부하고 금강산유람을 하고싶다합니다

정조는 그것을 허락했고 원래 그당시법에 제주도민 여자는 육지로 가는게 금지였다합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정조임금을 만나는데요 그당시 법적으로 기생과 왕이 만나는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오늘날 국무총리인 영의정 채제공은 아이디어를??내서 제주도에서 유명한??의녀들이 자주나오니

김만덕을 의녀벼슬을줘서 만나게 했다합니다

정조임금님은 김만덕의 손을 잡아주고 금강산구경 잘하라 했다한거같습니다

김만덕은 임금의 손을 잡았다해서 명주천으로 손을 감고 금강산을 올랐다는데요

사실이라면 상당히 불편하지않았을까요?????!!

서울에서 정조임금과 만나고 그당시 기생,제주도 여성으로 유례가없는 일이었던것같습니다

이당시 조선시대 관료들도 김만덕을보고 당시 영의정 채제공은 만덕전이라는 글을썼습니다

정약용,김정희등 관리들도 김만덕 시와 글을 썼다합니다

서울 관료사이에서 김만덕은 유명해졌고 박제가도 김만덕 시를 썼다합니다

시내용이 천년동안 귤만바친 제주도에서,,귤밭 깊은숲속에서 태어난 여자인데

의기가높아 백성은 굶주리지않았다 이런내용같은데요

그당시에도 역시 제주도는 귤이었던것같습니다


넓은 천지 바다밖에는 못나가니
넓다한들 뉘라서 시집장가 끝내랴
제주라 섬나라 이웃은 일본
사또는 천년세월에 귤만 바쳐왔네

귤밭 깊은 숲속에 태어난 여자의 몸
의기는 드높아 주린 백성 없었네
벼슬은 줄 수 없어 소원을 물으니
만이천봉 금강산 보고 싶다네

의젓이 다듬은 몸매에 돛대도 높이
남쪽별은 빛나 임금님도 기쁨을
바삐 말에 올라 금강산으로 향하니
햇빛도 바람결도 노리개에 찬란타

정녕 깨달았으리 신라와 마음은 하나
생김도 달라 여자몸 눈동자가 겹이라
이제사 알겠노라 바다 건너온 뜻은
잣다란 세상일에 있지 아니했음을.


만덕은 1812년 74세로 사망합니다

김만덕이 죽은후 제주인들은 그녀를 기생이라하지않고

만덕할망이라합니다

장례는 고으니모르라는 곳에서 치뤘는데 현대에

제주시 건입동 노블레스 오블리주사라봉오름 근처로 이장했다는데요

제주도언어는 섬이라그런지 특이한것같습니다,,

제주도 모충사에는 오늘날에도 김만덕 기념관이있다고합니다


거상이라 불린 김만덕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상김만덕이 서울에 왔을때 서울의 유명한 기녀 홍도가 쓴시라합니다


만덕(萬德)

여의행수 탐라기녀가(女醫行首耽羅妓)
만 리 물결에 바람 두려워하지 않았네(萬里層溟不畏風)
또 금강산 깊은 곳 향해가니(又向金剛山裡去)
향기로운 이름 교방에 남으리(香名留在敎坊中)

반응형

'개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대왕 이야기2  (0) 2017.07.11
세종대왕 이야기1  (0) 2017.07.09
코코샤넬이야기5끝  (2) 2017.05.30
코코샤넬이야기4  (2) 2017.05.29
코코샤넬이야기3  (2) 2017.05.29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