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가서 복호를 데려온 신라 충신 박제상, 구우일모의 유례>
눌지 마립간대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한국사의 충신으로 유명한 신라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로서
그의 이야기는 유교적 정절(절개)과도 일맥상통하기에
후대에도 특히나 평이 좋았다고 할 수 있고
오늘날 보기에도 훌륭한 인물이자 조상님이라 할 수 있는
눌지 마립간대의 큰 인물이었던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입니다,,
박제상 朴堤上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은
<김부식>혹은 모말이라고도 한다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요
파사 이사금 (박파사)의 5세손이고
조부(할아버지)는 아도 갈문왕이었으며
아버지는 물품 파진찬(신라 4등벼슬) 이었습니다
제상(박제상)은 벼슬길에 난아가서 삽량주 간 干 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실성왕(신라 18대왕 실성 이사금 김실성) 원년(1년)
임인에
왜국과 화친을 맺을 때
왜왕이 나물왕(신라 17대왕 내물 이사금 김내물)의 아들
미사흔을 인질로 요구했습니다
실성왕은 일찍이 나물왕(내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인질로 가게 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해서
그 아들(미사흔)에게 분풀이를 하고자 했기 때문에
왜왕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그를 인질로 보내게 했습니다
<신라 신하들>아니되옵니다
왜국은 고구려같이 강대한 나라가 아니기에
굳이 인질을 보낼 필요가 없는 나라이옵니다 !
<실성 이사금>(,,) 그러나 확고한 우호를 위해
인질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겠는가 ?
또한 11년 임자에
고구려에서도 미사흔의 형 복호를 인질로 요구해서
대왕(실성 이사금)이 또한 그를 (인질로) 보냈습니다
이는 사실상 친고구려파이자 내물왕에게 원한이 있었던
실성 이사금의 내물왕계에 대한 탄압이자
숙청이었다고 할 수 있었고
그러다가 실성 이사금은 다음 칼날을 결국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자이자 내물 이사금의 첫째아들이었던
김눌지에게 돌려서 사람을 보내서
그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김눌지>이로서 왕은 우리 형제들을 차례차례 죽이려 했던
것인게 드러났다,, 나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두 동생들을
인질로 보내 팔다리를 자르겠다는 심산이었군,,
결국 김눌지는 실성 이사금을 원망해서
도리어 실성 이사금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눌지 마립간>전대에 어지럽혀 진 것을
나는 다시 돌려놓을 것이다 !
왜와 고구려에 간 두 동생들을 다시 데려오라 !
눌지왕(눌지 마립간)이 즉위하자
변사 辯士 (말솜씨가 아주 능란[익숙하고 솜씨 있음]한 사람)
를 구해서 그들을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대왕(눌지 마립간)은 수주촌 간벌보말과 일리촌 간구리내와
이이촌 간파로 (여기서 간 干 은 성씨가 아니라
그들의 직위로 촌주,촌장격 이었던 거로 보입니다) 등
세사람이 어질고 지혜롭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눌지 마립간>나의 아우 두 사람이
왜국과 고구려 두 나라에 인질로 가서
수년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인 까닭에
보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지라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
세 사람이 이구동성 異口同聲 (입은 다르지만 말은 같다)으로
대답했습니다
<벌보말,구리내,파로>신들이 듣건대
삽량주 간(간 干 =촌장 격 같고 유목민족 지배자들이
칸이라는 것처럼 신라가 흉노,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이런 말이 나왔다고도 하나 아직까지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없고 대신 여러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늘 숭배사상과의 연관성으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제상(박제상) 은
사람이 굳세고 용감하며 지모가 있다 하니
그가 족히 전하의 근심을 풀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눌지 마립간은) 제상(박제상)을 불러서 앞으로 오게 하고
세 신하의 말을 전하며 고구려로 가주기를 요청하니
제상이 대답했습니다
<박제상>신이 비록 어리석고 불초하나(불초 = 매우 어리석다, 보통
겸손의 표현으로 낮출때 쓰이는 말입니다)
어찌 감히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
제상은 드디어 빙례(사신으로 갈 준비)를 갖추고
고구려로 들어가서 고구려 왕(장수왕)에게 말했습니다
<박제상>제가 듣건대 이웃나라와 교제하는 도는
성실과 신의뿐이라고 합니다
만일 인질만 서로 주고 받는 다면
이는 오패 (중국 춘추시대 다섯명의 패자) 만도 못한 것이니
실로 말세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임금의 사랑하는 아우가 여기(고구려)에 있은 지
거의 10년이 됩니다
우리 임금은 척령 鶺鴒 (할미새)이 들판에 있는 듯이
영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이 고맙게도 그를 돌려 보내 주신다면
이는 마치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마리 소에 털 한가닥이 빠진 정도) 격으로서
대왕에게는 손해될 것이 없으나
우리 임금이 대왕의 유덕함을 칭송함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여 주소서 !
고구려 장수왕은
<장수왕>(음,, 그래도 형제끼리 불쌍하니깐,,) 좋다 !
고 하면서
그들이 함께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들이 귀국하자
대왕(눌지 마립간)은 기뻐하고 위로하면서 박제상에게 말했습니다
<눌지 마립간>나는 두 아우 생각하기를
좌우의 두 팔과 같이 하는데
이제 다만 한 팔을 찾았으니 어찌 해야 하는가 ?
<박제상>신이 비록 재주가
노둔 老鈍 (늙어서 재빠르지 못하고 둔하다) 하오나
이미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끝까지 명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 다음 이야기에 계속 쓰겠습니다 -
<라봉봉>신라 충신 박제상은 한국사의 전설적인 충신으로서
그의 충심,절개등은 후대에도 모범이 되서
한국사의 바른말 하다 죽어간 수많은 신하들,
어려운 국난에 스스로 의병이 되어 나선 백성들로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솜씨가 좋은 재능을
떨어진 형제들을 만나게 하기위해 사용하였고
그의 인생은 단순히 국가적 충성심으로만 해석된다기 보다
인간으로서 할 도리 등으로도 해석 될 수 있기에
더욱 그가 한국사의 큰 인물로 해석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저가 위에서 쓴 삼국사기 기록과는 조금 다른데
이름이 박제상이 아니라 김제상이라고 하고
또 삼국유사에서는 장수왕이 설득되서 돌려주는게 아니라
고구려군의 추격을 피해서 몰래 빼왔다고 기록되있으나
현재는 삼국사기 기록위주로 쓰고 있기에
삼국사기 기록대로 썼고
그 유명한 '구우일모' 라는 말이 나오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뛰어난 말솜씨로 당대 고구려 최전성기 왕이었던
장수왕을 설득해서 복호를 데려왔고
다음에는 곧 그는 발길을 왜국으로 향해서
또다른 눌지 마립간의 동생 미사흔을 데려오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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