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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사건과 1차 세계 대전 >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

[사라예보 사건]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1차 세계 대전]

[참호전]

[무제한 잠수함 작전]

[1차 세계대전의 영향]

[베르사유 조약]

<라봉봉>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

이전 제국주의 이야기를 썼는데

제국주의도 일찍부터 시작한 나라가 있고

후발주자들이 있었는데

 

일단 제국주의 , 팽창주의의 시발점인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네덜란드 , 영국 , 프랑스의 후발주자에 자리를 내주게 됬고

이 나라들은 미개척지이자 무주공산의 거대한 땅들을 발견 , 탐험하며

식민지를 개척하고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뒤늦게 독일 , 러시아 , 미국 , 일본도 부국강병을 이루어

제국주의 후발주자로 참여했으나

이미 영국 , 프랑스 등이 전세계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딱히 먹을게 없었습니다

 

최전성기 시기 대영제국 영토 , 전세계 주요 풍요로운 땅은 이미 영국 , 프랑스가 다 따먹었습니다

 

이에 제국주의 후발주자들은 그럼에도 힘을 기른 나라라

제국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단 미국의 경우 제국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 원주민 쫓아내기 위주로 이루어져

엄청나게 풍요롭고 광할한 자국 영토를 획득했기에

딱히 해외 식민지에 눈을 돌릴 필요는 없었는데

 

독일 , 일본 등의 후발제국주의 국가들은

군사력은 엄청나게 늘렸음에도

좁은 영토 , 빈약한 내부자원 등으로 계속해서 자국민들의 불만을

외국으로 표출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에서의 이권을 두고 벌인 전쟁 '러일전쟁'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

일단 19세기 초반부터 유럽전역에 민족주의 의식이 퍼지자

통일국가 , 민족개념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었고

범슬라브주의(러시아 , 세르비아) 와 범게르만주의(독일 , 오스트리아 , 헝가리) 가

충돌하게 됬고 또 기존 제국주의국가(영국 , 프랑스) 와

신흥 제국주의 국가(독일 , 이탈리아) 의 갈등도 쌓여가게 되는데

이 갈등은 당시 '유럽의 화약고' 라 불린 '발칸 반도' 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발칸 반도는 유럽인들에게는 유럽(기독교 세력)과 오스만 제국(이슬람 세력) 의

완충지이자 유럽 문명의 발흥지(그리스) 였기에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고

러시아 입장에서도 슬라브족이 많이사는 발칸반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발칸반도에 살았던 다양한 민족들 (반도적 불같은 성격+좁은 지역에 다민족 짬뽕이라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 로 불리게 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들로 발칸반도는 여러 세력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유럽의 화약고' 가 되었고

당시 유럽인들은 이곳에서 언젠간 한번 큰 전쟁이 한방 터질거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로 발칸반도는 위험한 지역이었습니다

 

[사라예보 사건]

결국 이러한 모순들이 폭발하는

발칸반도의 '사라예보 사건' 으로 전세계를 전쟁과 혼란에 몰고온

'1차 세계대전' 이 시작됩니다

 

이전 오스만의 동유럽 후퇴로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차지했고

황태자는 제국내 슬라브 민족(보스니아) 에게 유화정책을 펼치려 했지만

보스니아가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해 자국과 합치길 바랬던

세르비아인들에게 황태자의 정책은 큰 걸림돌이 됩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군사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는데

결국 세르비아 민족주의 조직원이 황태자를 암살했고

이로인해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한 발의 총성에서 수천만명의 죽음이 시작됬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한 '사라예보 사건'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이전 독일의 명재상이자 철혈재상이라 불린 비스마르크는

독일 , 러시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삼각동맹체제를 마련해놨는데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러시아가 동맹을 맺어 포위되는 것을 피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비스마르크 재상 은퇴후 외교체제가 개편되며

독일은 러시아를 버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랑만 친하게 지내려 했고

결국 고립된 러시아는 프랑스와 연합했고

영국 역시 러일전쟁 패전으로 러시아가 충분히 약해졌다 보고

러시아 , 프랑스와 연합하게 됩니다

 

(당시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삼국동맹 vs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연합 구도가 있었습니다)

 

1913년 삼국동맹(붉은색)

 

[1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얽히고 섥힌 동맹 , 연합속에

오스트리아가 사라예보 사건으로 즉각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자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한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렸고

이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여

이탈리아를 제외한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양측은

모두 전쟁상태에 들어가며

'1차 세계대전(World War I , 1914~1918)' 이 시작됩니다

 

1차 세계대전 사진들 , 이전 근대적 총포와 대포의 전쟁에서 잠수함과 비행기와 탱크와 기관총과 독가스 등 신무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20세기 초의 유럽은 민족주의 , 애국심 열풍이 강하게 불던때라

젊은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자원병 열풍이 불어

군대에 자원입대해 전쟁터에 나갔고

 

1차 세계대전 입대 홍보 포스터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모병 사무소에 문의하십시오.'

 

전쟁을 비판하며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겁쟁이 , 매국노로 몰리기 일 쑤였고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어

이런 분위기속 청년들은 마을에 남아있기 쉽지 않았고

청년 , 또래들은 자원해서 군대에 입대합니다

 

또 유럽 대륙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후 100년간

큰 전쟁없는 평화가 유지됬고

이전 거대한 대륙 원주민들을 우월한 과학무기로 학살하며

땅을 넓혀갔던 제국주의 시기 유럽인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별다른 공포 의식같은게 없다싶이 (잊다싶이) 했고

강력한 과학무기로 무장한 조국의 군대가

타국가를 손쉽게 혼내줄 것이라 여겼고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유럽인(전투력 100) vs 비유럽인(20) 의 압도적 격차에서는 그럴싸 할 수 있는데

이미 과학기술로 정점을 찍은 유럽인(전투력 100) vs 유럽인(전투력 100) 의

싸움이라는 것을 망각한 생각이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의 서양인들은

낭만주의와 애국심에 젖어

다들 금방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 군이 적군을 물리치고

자신들은 훈장과 포상을 받고 영웅이 되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할 것이라 여겼고

이런 생각은 다른 유럽인들도 똑같았습니다

 

하여튼 삼국동맹 vs 삼국협상의 전쟁이 시작되자

불가리아와 오스만투르크는 동맹국에 가담하고

이탈리아는 삼국동맹을 떠나 연합국으로 참전 ,

라틴 아메리카와 일본과 중국도 참전해 전쟁은 전세계로 확대됩니다

 

[참호전]

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신흥 제국주의 국가이자 과학기술 대국으로서

칼을 갈고있던 독일(동맹군)이 주도권을 잡았는데

연합군의 대응으로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독일의 전략은 실패했고

전쟁은 처음 생각과 다르게 장기전의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고

 

아예 참호(구덩이)를 파서 대치하게 되는 '참호전' 이 전개됬고

양쪽 세력이 서로의 참호를 넘으려했다가는

땅속에서 나오는 무수한 기관총 세례를 맞기 때문에

참호를 함락시키기가 쉽지 않았고

설사 함락시키더라도 또 앞에 참호가 있었기에 결국 전쟁은

엄청난 장기전으로 가게 되고

계속해서 자원이 고갈되가자

전선만의 전쟁이 아닌 모든 국민의 총력전으로 전개됩니다

 

참호전

 

참호에서 시체를 먹이삼아 엄청나게 번식한 쥐떼들 , 쥐들은 영양공급이 풍부해(시체..) 엄청나게 크게 자랐고 공격성도 많았다 합니다

 

화학전의 시작 '독가스' , 독일 천재과학자 하버는 질소비료를 개발해 인류를 식량난에서 구한 인물이지만 조국의 승리를 위해 질소로 독가스를 개발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죽음의 과학자였고 이후 독일에서 이용되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독일에 탄압받다 조국을 떠납니다

 

비온날 참호에 고인 물들 , 이로인해 병사들은 발이썩거나 고통받았습니다

 

살려줘... , 모두 전쟁을 반대합시다 !!!

 

[무제한 잠수함 작전]

또 영국은 독일에 해상봉쇄를 시작하는데

급박해진 독일은 'U보트(유보트)' 라는 잠수함을 있는대로 출격시켜

영국의 상선과 군함을 보이는대로 격침시키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 을 시작하게 됩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

 

독일 U보트

 

문제는 무제한 잠수한 작전의 대상은

협상국(연합국) 의 배 뿐만 아닌

중립국의 배까지 대상이었고

즉 협상국 뿐만 아닌 협상국 방향으로 배를 움직이기만 해도

모조리 경고없이 격침시킨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로인해 대영제국은 막대한 무적 손실을 잃고

상선 , 전함 , 순양함 등 수많은 배들을 독일 잠수함들에게 잃게 되고

절대 뚫리지 않을것만 같았던 해상제국 영국의 제해권이 위협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국은 호위함 , 구축함을 투입해 피해를 줄여나갔고

유보트 출몰 지역에 기뢰(바다 지뢰)설치 , 음탐기술을 이용해

잠수함을 사냥하게 되었습니다

 

무제한 잠수한 작전으로 미국 민간인이 타고있던 배를 격침시켜

독일은 미국에 사과하고 잠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중지했는데

이 시기동안 영국은 다시 독일에 해상봉쇄를 더욱 강화하자

독일은 다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했고

그러나 이미 영국은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다시금 독일 잠수함이 미국 상선을 또다시 침몰시키자

분노한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영국에게 큰 타격을 주었지만

국적을 가리지않는 마구잡이 격침에 그 어느나라의 편도 들지 않던

중립국 , 수많은 나라들이 독일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자국에 대한 피해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대륙의 전쟁을 지켜보던

잠자던 사자였던 미국이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자

전세는 연합국에 유리해졌고

 

당시 러시아는 전쟁중 공산혁명이 일어나 독일과의 전쟁을 중단했고

독일의 동맹국들이 항복하고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 황제가 물러나고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자

독일의 공화국 정부는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의 영향]

동맹세력은 말이 동맹이었지

사실상 '독일과 아이들' 이자

독일 VS 서양 초강대국들(영국+프랑스+미국)의 싸움이었는데

 

과학 전성기였던 당시 독일이

생각보다 미친듯이 강하자 연합국은 독일을 엄청나게 경계하게 됬고

 

(군국주의 국가였던 당시 독일과 별개로

이전부터 독일은 식민지나 풍부한 자원이 없었기에

국가적으로 과학에 몰빵하는 정책을 사용해

당시 그냥 역사책에 나오는 천재과학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은 패전했음에도

자신들의 힘이 생각보다 미친듯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한번 더 전쟁(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

 

1차 세계대전은 기존 전쟁양상과 달리

엄청난 장기전 및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은 세계전쟁이었고

1차 세계대전동안

6500만명이 전쟁에 동원 , 사상자 비율이 51.7%에 이르렀기에

 

점차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풍조로 유럽사상 유례없는 군비축소조약 , 전쟁 반대 등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승전국이었음에도

전쟁 이후 식민지와 연결이 끊어지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어

제국이 점차 해체하기 시작됬고

전쟁터에 많은 상류층 , 귀족들이 하급장교로 참여하는 바람에

귀족들의 대가 끊겼고 귀족 계층이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노벨상 수상이 확실시 된 인물인데 귀족 출신으로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영국 천재과학자 '헨리 모즐리' , 모즐리의 스승은 그의 전사 소식에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영국에 입힌 최대의 타격' 이라 크게 슬퍼했고 이 인물로 인해 과학자들이 군대에 못가게 하는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생겨납니다

 

프랑스는 성인 청년의 1/3을 잃어 전쟁 휴유증이 극심해

이후 점차 옛날의 위치에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승전국이며 본토 피해가 없었던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막대한 물자를

유럽에 팔아서 엄청난 부와 전쟁 이권들을 얻었고

전쟁 특수를 본 졸부 , 벼락부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베르사유 조약]

1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들은 '파리 강화 회의' 를 열어

세계평화라는 거창한 표의 아래

승전국 중심의 전후 이권 회의가 벌어졌고

 

파리 강화 회의(베르사유 조약)

 

패전국 독일에서 이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을 재기 불능을 만들려

'베르사유 조약' 을 통해

독일에 엄청나게 가혹한 전쟁 배상금을 강요했고

독일인들은 소 , 말 , 양 등의 가축은 물론

시멘트 , 강철 , 벽돌은 물론 집안의 가구들까지 승전국에 바쳐야 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풍자한 그림 , 연합군: 3월 7일 월요일까지 우리의 제안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시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추신: 우리가 전쟁에 이겼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처음 영국 대표단의 일원도

독일은 지급능력이 없다며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금 요구에 반대했지만

(독일에 대한 전쟁배상금이 너무 과도해 독일이 복수에 나설것 이라 생각함)

이러한 요구는 묵살되고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을 내야했습니다

 

독일은 이로인해 물가가 폭등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독일 지폐는 불쏘시개로 써졌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자

독일 경제는 완전 붕괴하고 이로 인해

절망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등장한 '아돌프 히틀러' 는

독일인들의 분노를 자극 , 선동하며 정권을 잡았고

독일은 파시즘 , 군국주의 국가로 변신해

다시금 전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궁서설묘 窮鼠齧猫 라고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당시 승전국들이 너무 가혹하게 독일을 조진게 있습니다)

 

<라봉봉>사라예보 사건과 1차 세계대전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남겼고

근대 전쟁이 점차 현대 전쟁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그럼에도 민간인 학살보다는

군인들끼리의 교전 , 참호전으로 인한 장기간의 대치로

2차 세계대전보다는 덜 죽은 것이었고..

 

1차 세계대전간동안 홀로 남겨진 여성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되거나 했고

전쟁은 이전같은 양상이 아닌

민간인까지 전쟁에 동원되는 총력전 체제로 변화합니다

 

엄청난 과학 신무기들이 등장해 대량살상 시대가 시작됬고

이로 인해 '전쟁은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켜준다' 라는 근거없는 믿음도 생겼지만

실제로는 이전부터 있었던 과학기술력이 전쟁에 총동원된 것에 불과했고

실제 전쟁은 꿈꾸는 과학자들을 죽게 만들고 과학을 발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당시 독일이나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엄청난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연합국을 떨게했는데

전쟁 이후 많은 독일 과학자들이 미국 등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납치됬고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과학기술대국으로 세계 3~4위권의 경제 , 선진대국이자

유럽 맏형노릇을 하고있으니 참 무시무시한 나라기도 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원들은 독일을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제대로 조지려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독일에 유화적 입장을 보이지도 않고

그저 독일에 비현실적인 배상금을 요구했기에 독일인들은

또다시 재무장을 하게 되었다는 점은

사실 연합국은 승전국이고 독일은 패전국이기에

독일도 마땅히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쥐도 궁지에 몰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듯이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에게서 유행한 '형식적 법치주의' , 실정을 무시한채

그저 힘의 논리로 누르려는 논리들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고

 

유럽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의식 없이

계속해서 식민지 수탈등을 자행했고 이어

또다시 거대한 대전쟁을 맞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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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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