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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발전사를 이야기 하면 반드시 이야기 되는 인물들이 있고

사실 한국 경제발전기는 군부독재를 거치며 대체적으로 국가주도형,

군대식 병영문화의 기업들이 등장했고

이를 '재벌'이라고 부르고 물론 서양역시 재벌은 존재하지만

한국, 동양식 경제 발전은 서양 선진국들처럼 자생적으로 민간에서 아래에서

위로 퍼졌다기 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서양에서 기초 학문연구,과학 발달 등으로 새로운 상품들이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서양에 비해 과학 발전이 부족했던 근현대 동양에서는

서양식 경제,사회적 모습들을 배끼거나 따라하는 전략을 사용했기에

(비슷한 예로는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전략)

굳이 민간에서 기업들이 나오지 않아도 대충 관료나 상류층에서

서양에서 유학한 경험을 토대로 복사 붙여넣기 식만 해도 됬고

이로 인해 서양보다 훨씬 단기간에 빠른 고도성장을 경험했으며

또 그만큼 여러 양극화 문제나 사회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저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굳이 무언가를 아는척 한다거나 중얼거리려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배웠으면 실제로 써먹어야 한다'라는 생각들이 저의 속에서 외쳤다고 할 수 있고

저는 최근들어서 한국 역사, 삼국사기 이야기만 쓰고 있다 할 수 있는데

저는 한국사 공부만 한게 아니라 다방면의 역사 이야기를 공부했기도 하고

또 음식도 비싼 음식뿐만 아니라 배고플때, 먹고싶은거 먹는게 제일 맛있는 것 처럼

역사도 읽고 싶을 때 읽고 쓰고 싶을 때 써야 글이 즐거운 것 같고,,

현재 쓰고 싶은 이야기니까 쓰는것이고 사실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면 한국 경제발전사의 거인 현대그룹의 아산 정주영 회장 이야기입니다

저는 현대기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뭐 지원받고 쓰는 글도 아니지만

애초에 한국 초기 경제성장기때 한국 기업인들의 활약이 매우 커서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여도 '보이지 않는 손' 같이 이미 상관있게 살고 있고

기업 홍보도 아니고 정주영이라는 인물이 재벌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한데

저는 재벌이라는거도 별로 안좋아하고,,

그냥 단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 인물이자 배울게 많은 인물이다

라는 마음으로 쓰는 것입니다

저는 정주영 회장을 한국의 록펠러, 카네기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 발전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으라면

경제 대통령이자 군부독재시대를 연 박정희 대통령과

최태준 포스코 회장, 삼성 이병철, 이건희 부자 父子 등이 있고

물론 한국에서 꼭 국가,재벌식 경제로 성장한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저는 그런 분들을 훌륭하게 생각하나 (이분들이 조용히 존경받는 인물들이자

사실 진짜배기입니다,,)

이번 이야기같이

아마 2000년대 이전 가장 한국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기업인이라 하면

단연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라 할 수 있고(2000년대 이후로는 삼성 이건희 회장)

그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한국 경제발전사의 신화로 이야기 됩니다

솔직히 한국의 모든 집안 구석구석에도 다 모두가 현대나 삼성 제품이 있거나

관련 사업등에 엮여있다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뿌린 씨들이 너무 커서

한국인으로써 그를 단순히 존경한다기만 보다 안 알 수가 없는 환경이 되어서

(독과점등의 폐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인물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주영이라는 인물은 출신도 미약하고 워낙 입지전지적인 인물이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의 이름은 신화적인 입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누구나(흙수저여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기에

저는 그런 면에서는 훌륭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고

예전부터 써오려다가 드디어 쓰는 거라 말이 많아졌는데

그만큼 저도 예전에 많이 그에 대한 글을 읽었고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또 어느순간부터 특히 2000년대 출생 이후부터는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되게 부드러워 진 면이 있는데

저 어렸을때만해도 가정폭력,학교폭력 등이 매우 많았고,,

(지금도 물론 있는 문제지만 저 어렸을때 같이

미화되거나 적어도 양지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도전정신, 패기, 불굴의 의지 등이 실종되가는 느낌이 있는거 같기에

(즉 폭력은 사라졌으나 어떤 거친 아드레날린같은 패기있는 에너지역시

실종됬다고 생각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도전정신' , '의지의 한국인' 이라는 말에 정주영 회장이 적합한 인물이다 생각하기에

쓰는 목적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역시 쉽게 하는, 쉬운 게임만 하려 하지 않고

어려운 게임을 하려고도 하며 어려운 것을 넘기고 많은 것을 얻을때의

쾌감을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주영 그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태어났고 그의 호이자 현대그룹에서 틈틈히 붙이는 '아산'이라는 명칭은

그의 고향에서 따온 것입니다

강원도라고 해서 그냥 평범한 한국 출생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강원도는 남북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이 반반씩으로 해서 나뉘게 되었고

(이는 경기도[북한 개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고향 강원도 통천은 일제 패망, 광복후 38선이 그어지며 북한 지역이 됬는데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분단이 고착화됬고 그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실향민 신세가 된 인물이었고

그에 고향사랑과 커진 그리움 등이 그의 호가 고향이름인 '아산'으로 변하게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소를 판 돈을 훔친 소년>


정주영 회장 하면

소 판돈 70원을 훔쳐서 서울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단골소재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잘못 해석해서

소를 끌고 서울로 도망쳐서 팔았다고 기억했는데

정확히는 '소 판돈'입니다 [저가 역사를 많이 읽었는데

이런식으로 잘못 기억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


어린 소년의 대범함, 치기어림 등 여러 미묘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먼저 그는 1915년(저 어렸을때 돌아가셨는데 되게 옛날 사람이십니다,,)

일제 강점기때 가난한 강원도 빈농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는 가난한 농촌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가출을 4번이나 했고,, (가난한 집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집 특징에 가출청소년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이는 워낙 집안환경이 안좋다보니 집안 가족들이 밖으로 나도는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정주영의 아버지는 정봉식인데(지금 현대가는 '가 家' 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대단한 집안이나 이때는 그냥 요즘말로 흙수저,빈농 입니다,,)

그는 아들이자 장남, 첫째아들인 정주영이 자신의 대를 이어

농부가 되었으면 했고 이는 비단 정주영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 조선,한국 사람들은 산업화 이전 시기라 대부분 농경과 관련이 있었기에

대부분 한국인들의 사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이 3차산업직인 유튜버한다고 할때 부모님들이

2차산업직인 의사,판사 하라고 말리는게 오히려 요즘 아이들이 더 문물적으로

깨어있어서 그렇다고도 생각되는 면도 있고

대신 옛날 부모님들의 부모님들은 1차 산업직인 농경 사회인이었고

이때에 어린시절 부모님들이 의사,판사나 공장일 같은 2차 산업적 직업 한다고 하면

1차 산업직인 농사나 지으라고 말리는게 오늘날 이런식으로 반복된게 아닐까도

생각을 해본거 같습니다 아마 저가 부모가 될때쯤에는

부모들이 유튜버 하라고 자식에게 강요하는데 자식들은

4차 산업직종인 우주산업이나 로봇연구에 빠질지도 모릅니다,,[멘트는 뻔할 수도 있습니다

~~는 돈도안되고 그건 특출난 애들이나 하는거지 너는 OO 나 해라 ! ])


또 당대 정주영 회장의 아버지는

정주영 회장이 길에서 오줌을 눌 때도 (화장실이 없었던 시절이겠지요,,)

혼내면서 비료로 쓰게 거름통에 싸라고 타박을 했고

(길에서 싸서 혼낸게 아니라 아까우니 비료로 써야한다고 혼낸것입니다,,

[화장실도, 화학비료도 없던 옛날스러운 이야기들입니다,,])


정주영 회장의 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에 여섯 남매를 키우려

그렇게 오줌 한방울도 아끼려 했고 아마 이런 구질구질한 모습 때문에

정주영 회장이 가출한 모습도 있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부전자전, 아들은 아버지를 닮은다라는 말같이

그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잘못 말하면 매우 구질구질한 절약을 했던 인물이고

(저의 집에서는 이런 유형을 '애낀다'라고 비하하며 표현합니다)

다르게 보면 또 되게 검소한 인물이었는데

부유한 인물 치고는 너무 과하다 싶은 검소가 있기에

검소하기도 했고 정도에 지나친 구질구질함 역시 있었던 그라고 할 수 있고

그러나 저는 살면서 검소한 사람보다 사치스러운 사람을 아무래도 더 많이 봤기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고

저 역시 검소하다는 평을 여러번 들은거 같으나

저는 그래도 구질구질하려 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이런 아버지를 닮은 그의 절약적인 모습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자 세계 부자 순위에 거론된 그의 생전에도

양말을 기워서 신는다거나 낡은 구두 세켤레로 굽을 갈아가며

평생을 신는다거나 하는 절약으로 이어지고

그의 검소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이야기 됩니다


<정주영 회장의 세켤레의 구두로 그의 근검절약,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이야기되나 솔직히 지나치게 아끼는 사람들이

꼭 이상한데에 돈을 날린다는 점을 봐왔기에

이는 정도에 지나친 감도 있습니다 이거는 솔직한 저의 생각입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나름 의식있던 조선, 한국 어린이였던 정주영은

어린 시절 동아일보에서 이광수의 '흙'이라는 소설을 읽고


(당대 글을 알고 신문을 보는거만 해도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그의 학력과는 다르게 농촌사회에서 꽤 똑똑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당대에는 초졸도 못한 무학력자,문맹이 많았던 시대이고

저는 위인은 학교와는 상관이 없어도 책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소설이 진짜이야기인줄 착각했던 그는

이광수가 쓴 것 처럼 서울가서 변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서울로 떠납니다 실제 그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사법고시)에

응시해서 2번 떨어졌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거 같이

어린 시절에 가출을 4번이나 했는데

첫번째는 함경북도 청진에가서 막노동을했고

두번째는 금강산이었는데 일도 못구하고 사기만 당하고

아버지에게 끌려왔다고 하고

세번째는 그 유명한 소판돈 70원을 훔쳐서

서울에가서 부기(회계)학원에 등록했는데

또다시 끌려왔다고 합니다


<정주영 회장의 아버지 정봉식>대학을 나온 놈도

실업자가 되는 판국에(일제강점기때나 60년대나 요즘이나

이런 인식은 변함이 없습니다,,) 너 같은 조선놈이 올라간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넌 장남이고 농사를 지어야지 !


<정주영>>_< ;;


아무래도 한국인들에게 '소'는 소중하고 친숙한 동물이며

주요 당대 산업이었던 농업에 꼭 필요한 동물이자

매우 비싼 동물의 상징으로 이야기 됬기에

소 판돈을 훔쳤다는 것은 한국인들에 가장 정서적으로

친숙한 동물인 '소'라는 것과 매우 값비싼 동물 역시 소였기에

그의 대범함, 치기어림, 후회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기에

정주영, 그의 이야기를 할 때는 꼭 나오는 단골적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빈대정신>


네번째 그의 가출은 19살때 소학교(초등학교) 친구 중에 부농의 아들이었던

이웃마을 친구 오인보와 같이 서울로 가출했고

오인보는 훗날 '현대자동차공업사(1946,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모체,전신)'의

창립 멤버가 됩니다


소년 정주영의 잦은 가출로 동네에서는 부모님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는 망나니 자식이라 비난받았고

정주영의 어머니는 그가 벗어놓고 간 옷을 찢으면서

소리내어 우시기도 했다고 그(정주영)는 술회합니다

또 결국 그가 떠난 고향 아산리는 분단 이후 다시는 가기 어려운

이북 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쨋든 이후 다시 가출해 인천부둣가에서서 막노동 일을

닥치는대로 했는데 이때 합숙소에서

인부들과 함께 잠을 청했는데 빈대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당시 젊은 청년 정주영 그는 빈대를 피하고자

긴 탁자를 가져다 놓고 그위에서 잠을 자는데

(근성의) 빈대는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와

정주영 회장의 피를 빨았습니다 (근데 빈대입장에서는

얘도 먹고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 셈입니다 ㅋ,,)


이번엔 그래서 냄비에 물을 떠서 탁자 다리에 담그고 잠을 청했는데

이번에도 (근성의) 빈대는 포기하지 않고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점프해서 피를 빨려 들었고

이 때 정주영 회장은 빈대에게서 끈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원래 큰 인물들은 작고 보잘것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가 많은거 같습니다)


이 때문에 (경영자가 된) 이후 그룹 임원 중 일처리가 미숙하거나

근성없는 업무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정주영>에라이 빈대만도 못한 놈아


라고 구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인천 부둣가에서 돈을 벌며 그는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이어서 계속 쓰겠습니다-


<라봉봉>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2001년 3월 21일, 저가 어린이였을때 사망한 인물이고

아직도 저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

현재에도 그와 일했던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고

오늘날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고

'쌍팔년도'라고 불리는 1980년대 한국 경제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고 이 '쌍팔년도'가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이에 향수를 갖는 사람도,

암흑과 고통의 시절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고 이때가 있어 오늘날 2018년, 현재가 있는 것이기에

현재의 문제 역시 과거를 정확히 인식해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당대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으며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며 어린 시절에도 여러 비범하고 성실한 모습들을

보였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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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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