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왕 8년
정월(1월) 봄
이찬(신라 2등벼슬) 김예 , 김현 등이 반란을 도모하다가 처형 당했습니다
6월 여름
황룡사 탑에 벼락이 쳤습니다
(황룡사 탑은 50여 미터의 높이였고
옛날에는 피뢰침이 없어서
이런 고층 건축물들은 벼락을 자주 맞는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8월 가을
조원전을 중수했습니다
경문왕 9년
7월 가을
왕자인 소판 蘇判 (=잡찬, 신라 3등벼슬) 김윤 등을
당에 보내서 사은(은혜에 감사) 하고
동시에 말 2 필
부금 1백 냥
은 2백 냥
우황 15냥
인삼 1백 근
대화어아금 10 필
소화어아금 10 필
조하금 20필 40승
마흔새 흰 세모직 40필
설흔새모시 40필
넉자 5치 짜리 머리털 150냥
석자 다섯치 짜리 머리털 3백 냥
금비녀 , 오색 댕기 ,반흉 각 10개
응금쇄선자병분삽홍도 20개
신양응금쇄선자, 분삽오색도 30개
응은쇄선자 , 분삽홍도 20개
신양응은쇄선자 , 분삽오색도 30개
요자금쇄선자 , 분삽홍도 20개
신양요자금쇄선자 , 분삽오색도 30개
요자은쇄선자 , 분삽홍도 20개
신양요자은쇄선자 , 분삽오색도 30개
금화응삽령자 2백과․금화요자령자 2백과
금루응미통 50 쌍
금루요자미통 50 쌍
․은루응미통 50 쌍
․은루요자미통 50 쌍
계응비힐피 1백 쌍
계요자비힐피 1백 쌍
슬슬전금침통 30 구
금화은침통 30 구
바늘 1천5백개를 바쳤습니다
(왠만하면 해석을 하려했는데
너무 많기에,, '온갖 진귀한 보물들' 로 해석하면 될 거 같고
선물 폭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또한 학생 이동 등
세 사람으로 하여금
진봉 사신 (진귀한 물품[조공품]을 바치는 사신) 김윤을
수행케 해서 당에 보내 글을 배우게 하고
그들에게 책값으로 은 3백 냥을 주었습니다
경문왕 10년
2월 봄
사찬(신라 8등벼슬) 김인을
당나라에 보내 숙위(황제를 모시는 일) 를 하게 했습니다
4월 여름
서울(=수도, 서라벌) 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5월
(첫째) 왕비가 죽었습니다
(언니와 동생을 골라야했던 경문왕이 되기전의
김응렴 이야기의 대상이었던
헌안왕의 큰 딸 문의왕후 김씨[영화부인 김씨] 입니다)
7월 가을
홍수가 났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전염병에 많이 걸렸습니다
경문왕 11년
정월(1월) 봄
경문왕이 관리에게 명령해서
황룡사 탑을 개축(집이나 축조물 따위가
허물어지거나 낡아서 새로 짓거나 고쳐 쌓다) 하게 했습니다
2월
월상루를 중수(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했습니다
경문왕 12년
2월 봄
경문왕이 직접 신궁 神宮 (시조를 제사하던 성소) 에 제사지냈습니다
4월 여름
서울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8월 가을
국내의 주와 군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습니다
.
경문왕 13년
봄
백성들이 굶주리고 또한 전염병이 돌았으므로
경문왕이 사신을 보내서 백성들을 구제했습니다
9월 가을
황룡사 탑(황룡사 구층목탑) 이
낙성(완공 , 벼락에 맞아서
다시 공사를 한 거 같습니다) 되었는데
9층으로 되어 있고
높이가 스물 두 장이었습니다
(1장=10척 , 1척 = 24.5cm 이니 53.9m )
경문왕 14년
정월(1월) 봄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김정이 죽으니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위진을 상대등
인흥을 시중으로 임명했습니다
4월 여름
당희종이 사신을 보내서
황제의 말을 선포했습니다
5월
이찬(신라 2등벼슬) 근종이 모반해서
대궐을 침범하므로
대궐 지키는 군사를 출동시켜 격파했습니다
근종이 그의 무리들과 함께
밤에 성 밖으로 도주하는 것을 추격 체포해서
수레에 매어 찢어 죽였습니다
( 수레에 매서 찢어 죽이는 형벌을 거열형이라 하는데
한국사 최초의 거열형 기록이고
보통 능지처참이라 인식되나 실제 능지처참은
죄인의 살을 산채로 회뜨는 형벌이었습니다,,
하여튼 잔인한 옛 형벌입니다 )
9월 가을
월정당 月正堂 (신라 경주 궁궐의 한 전각) 을
중수(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했습니다
최치원 崔致遠 (신라 말기 지식인)이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슬슬 기록에 신라 말기 인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멸망기 당시 나라들이 그렇듯이 더럽고 추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옛날 영광의 시기와 영광의 시기 등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들도 공존합니다,, )
경문왕 15년
2월 봄
서울과 동쪽 지방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가 20일 만에 없어졌습니다
5월 여름
용이 왕궁의 우물에 나타났는데
잠시 후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 들면서 날아 갔습니다
7월 8일 가을
경문왕이 붕어(사망) 했습니다
시호를 경문 景文 (볕[빛] 경 , 글월 문) 이라 했습니다
<라봉봉>삼국유사에서 경문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며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내용중 하나라는데
유럽,아랍 지역에 퍼져있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설화로 존재하는 이야기로
이는 그리스계 국가,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하며
신라에도 퍼진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경문왕은 정치적 행적 이외에도
결혼 선택 이야기 , 당나귀 귀, 궁예 친아버지 설 등
여러 이야기를 남긴 인물이고
궁예의 친아버지일 가능성도 유력하다고 이야기 되고 있습다
정치적으로는 역시 귀족들의 반란, 재난 등
바람 잘날 없는 신라였고
나름 무난한 수습을 하려 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김응렴(경문왕)의 인물됨을 보고
사위에게 왕위를 넘겨준 헌안왕이었고
헌안왕의 유언같이
무난무난한 평이 있고
대신 결혼 선택때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같은 이야기는
경문왕의 우유부단한 면을 보여주거나 반영하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라봉봉 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강왕대의 마지막 신라 태평성대 太平聖代 (태평한 세상, 평화) (0) | 2019.02.22 |
---|---|
헌강왕대 출생한 고려 태조 왕건 , 헌강왕에게 나타난 정령들 (0) | 2019.02.21 |
못생긴 첫째딸과 결혼했던 경문왕의 세가지 이익 (0) | 2019.02.21 |
김응렴에게 딸을 시집보낸 헌안왕 (+ 궁예의 탄생) (0) | 2019.02.21 |
청해진을 없앤 문성왕 (0) | 2019.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