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 왕국의 3개의 신분들]

[삼부회 소집]

[테니스 코트의 서약]

[바스티유 감옥 습격]

[국민 의회 시대]

[입법 의회 시대]

[국민 공회 시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총재 정부 시기]

[프랑스 혁명이 남긴 영향]

<라봉봉>

 

[프랑스 왕국의 3개의 신분들]

자 이전 이야기에서

3대 시민혁명인 영국 명예혁명과 미국 독립혁명 이야기를 썼고

이번엔 혁명의 절정 프랑스 대혁명(프랑스 혁명) 이야기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내부적으로 곪을대로 곪아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왕정 하의 신분 계급은 3가지로 구분되었습니다

 

제 1신분 '성직자'

제 2신분 '귀족'

제 3신분 '평민'

 

근데 1 , 2신분은 아무것도 안한채

특권을 누리며 꿀과 혈세만 오지게 빨아먹고 있었고

그 꿀과 혈세는 제 3신분 , 농민들이 부담해야해

제 3신분의 등골이 브레이킹되고 있었습니다

 

성직자와 귀족(1,2 신분) 들을 지탱하고 있는 제 3신분

 

그런 와중 1785년 프랑스에서는 극심한 가뭄 ,

1787년에는 대홍수 , 1788년에는 가뭄과 우박 등이 있었고

온갖 자연재해들이 당시 프랑스를 년마다 강타합니다

 

또 당시 세리(세금을 걷는 자) 들은

프랑스 왕실에 돈을 빌려주고

조세권을 얻었는데

세리들은 왕에게 바친 돈의 본전을 뽑기위해

농민들을 가혹하게 쥐어짰고

과학계에서 존경받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재 과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도 악덕 세리짓거리를 하다가

프랑스 대혁명때 목이 잘릴 정도로

프랑스에서는 세리에 대한 분노심이 상당했습니다

 

천재 과학자 라부아지에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라부아지에 , 분노한 프랑스시민들은 악덕세리였던 그가 천재일지언정 관용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아인슈타인의 목을 자른 격)

 

하여튼 당시 프랑스 왕실도

영국을 견제하려 미국에 군사적 지원을 했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미국을 독립시켰음에도 얻는 것은

영국에 한방 먹였다는 자존심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프랑스 왕실은 호화스러운 사치를 즐기고 있었고

불쌍하고 가여운 프랑스 농민 , 제 3신분들은 굶어죽어 식인을 하거나 하던 시기입니다

 

또 당시 부르주아(돈많은 부유층) 들이 귀족층에 합류해

면세특권을 누리다

너무 귀족이 불어나자 프랑스 정부는

부르주아들의 귀족 합류를 막았고

부유층들은 귀족이 될 수 없고 정치권력에서 소외되는 것에 불만을 품었으며

농민들은 점점 늘어가는 세금에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일어난 특권층 '부르주아' , 오늘날 부르주아는 부자나 상류층을 상징하는 말이 됬으며 점차 유럽인들도 왕족과 귀족이 몰락하고 젠트리(신사) 나 부르주아 자본가들이 일어나자 허울뿐인 신분보다 돈이 깡패임을 인식해가게 됩니다

 

[삼부회 소집]

슬슬 프랑스 백인형들의 머리에 빡이 돌아가기 시작해서

머리에서는 부글부글 열이 올라오고 있었고

 

이런 와중 프랑스 정부에서는 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삼부회의(삼부회) 를 엽니다

 

삼부회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재정위기 타개와

귀족과 성직자를 견제할 목적으로

제 3신분인 부르주아 의원 수를 두 배로 늘렸고

 

의석수는

 

제 1신분 성직자의 의석 200석 ,

제 2신분 귀족의 의석 200석 ,

제 3신분 부르주아 의삭 400석

 

이었는데

투표안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일어납니다

제 1 , 2 신분 특권층들은 1인당 1표로 하면

돈과 세속적인 것에 가까운 부르주아 계층에 이길 수 없었고

(귀족이나 성직자들도 서로보다는

돈을 쥐고있는 부르주아에게 포섭될 수 있기 때문)

 

이에 1인 1표를 반대하지만

반대로 부르주아 계층들은 1인 1표제를 주장합니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

격렬한 논쟁끝에 결론을 못내리고 삼부회가 끝나자

부르주아 의원들은 단독으로 '국민 의회' 라는

영국식 의회를 선언했고

놀란 루이 16세는 부르주아 의원들의 행동을 제압하려

삼부회 회의장을 군대를 동원해 폐쇄시켰는데

이에 맞서 부르주아 의원들은 테니스 코트(경기장) 에서

헌법 제정까지 의회를 절대 해산하지 않겠다는

 

'테니스 코트의 서약(혹은 맹세)'

 

로 저항합니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

 

일부 성직자와 귀족층들도 국민의회에 가세하자

루이 16세는 어쩔 수 없이 국민의회를 인정했지만

영국의 찰스 1세처럼 의회에 밀려 목이 잘릴까 두려워

국경의 군대를 베르사유와 파리일대로 진군시켜

파리 시민들의 공포와 분노를 자아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미 루이 14세대부터 왕가와 귀족들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느라

수도 파리는 수도 지위를 잃고 있었고

경제위기도 겪고있었는데

이런 와중에 국경 군대까지 파리에 진군하자

파리 시민들의 민심은 격양됬고

이런 와중에 루이 16세가 파리 시민들의 지지를 받던

삼부회 의장을 파면시키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국왕의 군대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프랑스 대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당시 쌓여가던 프랑스의 내부모순 , 민심이 폭발한 것이고

루이 16세는 바스티유 감옥 함락 소식을 듣고서는

최측근에게

 

'반란인가 ?'

 

하고 묻자

 

'아닙니다 폐하 !

혁명입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소식이 알려지자

프랑스 전역에서는 농민 봉기가 일어나

영주 , 귀족들이 살해되고 토지대장들이 불타올랐고

봉기가 들불처럼 일어나자 루이 16세는 백기를 들고

권력은 루이 16세에서 국민의회로 넘어갑니다

 

[국민 의회 시대]

1789년 8월 26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 인권선언)' 이 발표되고

(미국 독립선언서의 영향을 받음)

 

프랑스 인권선언은

천부인권 , 자유와 평등권 , 사상과 표현의 자유 , 사유재산의 자유등을

골자로 한 선언으로서 현대 민주주의에 근간이 된 중요 선언이었습니다

 

프랑스 인권선언 (맨위에 일루미나티 마크 ??)

 

내부적으로는 대혼란의 시기인 와중

국민의회는 1791년 9월 3일 헌법을 공포해

입헌군주제와 일정 이상의 직접세를 내는 성인남자에게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발표했고

국민의회는 헌법제정 후 해산되어

입법의회의 시대가 10월 1일 수립됩니다

 

[입법 의회 시대]

입법의회 시기에는

온건파인 지롱드 파가 권력을 잡습니다

 

한편 유럽 각국들은 유럽 최강국이었던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술렁술렁 혁명열기에 휩싸였고

유럽 각 국가들의 왕과 귀족들은

프랑스처럼 자신들의 왕정 체제와 이권들이

시민들에게 무너질까 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왕정 , 귀족 신분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위해

유럽 군주들은 팀을 이루어 프랑스가 내부 혼란으로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프랑스를 공격했고

 

입법의회는 10만 국민군을 파병해

프로이센(독일) , 오스트리아 군과 맞서싸웠지만

패배합니다

 

이러자 파리 시민들은 다시 들고 일어나 패전 책임자 처벌을 묻고

왕정 유지 주장의 보수파 축출을 요구하고 나섰고

파리 시민들은 대규모로 궁에 몰려가 루이 16세에게 퇴위를 요구했지만

일단 루이 16세의 의연한 태도에 시민들은 물러갑니다

 

루이 16세 , 정치에 그닥 관심없고 소심하고 자기 주장도 잘 말하지 못했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궁정안에 대장간에서 자물쇠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던 인물이며 단두대 칼날이 반월형인 것을 보고 이러면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대각선으로 개량시켰는데 자신이 개량한 단두대에 의해 목이 잘리는 인물입니다...

 

[국민 공회 시대]

혼란속에서

1792년 9월 20일

입법의회가 해산되고 국민 공회가 수립됬고

국민공회는 과격파인 자코뱅파가 주도해

왕정을 폐지하고 제 1공화정을 수립합니다

 

프랑스 왕정의 상징이었던

루이 16세 처리문제를 두고

온건파인 지롱드파는 루이 16세 처형을 반대했지만

강경파였던 자코뱅파들은 과격한 민심을 등에 업고

지롱드파를 몰아붙여 의회에서 벌여진 투표에서 승리합니다

 

<당시 나온 말>국왕이 무죄라면 , 혁명이 유죄가 된다

 

결국 루이 16세는 국고낭비와 국가에 대한 음모 등의 죄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단두대 아래의 루이 16세

 

프랑스 혁명시기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목벴던 '단두대(기요틴)' , 단두대를 발명한 사람 역시 단두대에서 사망했다거나 라부아지에가 단두대에서 죽기전 과학 실험을 위해 목이 잘린 뒤 눈을 깜빡이는 것을 세보라 했다는 무시무시한 괴담들도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자코뱅파는 공안위원회를 설치하고 혁명 재판소에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펼쳤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됩니다

 

의외로 선하게 생긴 로베스피에르

 

아울러 루이 16세의 황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사형판결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공포정치는 반혁명 혐의자 , 무고자까지

약 1년간 1만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와 국민생활통제로 민심을 잃었고

혁명가들도 초심을잃고 권력남용에 맛을 들이자

반로베스피에르 국민공회 의원들은 은밀히 음모를 꾸며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세력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생포해

단두대에서 처형시킵니다

(남들 단두대에 보내다 자기도 단두대에 간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이 사건을 '테르미도르 반동' 이라 부르고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프랑스는 총재정부가 수립되어

5인의 총재가 국정을 주도합니다

 

[총재 정부 시기]

근데 총재정부는 약하고 무능한 정부였고

또다시 프랑스가 혼란에 빠지자

젊은 야심가였던 프랑스 군부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뒤엎어 버린 후

자신이 통령이 되어 통령정부를 수립한 후

 

<나폴레옹>혁명은 끝났다

 

선언했고

프랑스 혁명은 완전히 끝나고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어 프랑스 제1제국이 시작됩니다

 

(근데 프랑스놈들이 뭔가 낭만 , 감성충 , 지적 허세 성향이 강해서

제 1 , 제 2 이런거를 많이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참 복잡한 구석이 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혁명이 남긴 영향]

프랑스 혁명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조용했던 영국 명예혁명 ,

내부적으로는 똘똘 뭉쳐 영국과 전쟁을 한 미국 독립혁명과 달리

엄청나게 내부적으로 숙청 등도 많고 과격한 성향이 짙었고

또 과학자들도 대거 숙청되고 과학자들도 외국으로 망명해

프랑스는 이 시기부터

과학대국 타이틀을 영국 , 미국이나 독일에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라부아지에 제자 뒤퐁이 프랑스 대혁명을 피해

미국에 건너가 나일론과 테플론으로 유명한 화학 대기업 듀폰사를 세웁니다)

 

세계 사회에 여러 충격과 영향을 준 프랑스 대혁명이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3대가치인 '자유 , 평등 , 우애' 의 이념아래

왕정 , 봉건사회가 사라지고 시민 사회 성립했다는 큰 의의가 있고

프랑스 혁명시기 노예 해방 , 인권선언은 전세계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대표하는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실제로는 7월혁명이긴 한데 대충 프랑스 대혁명 그림이라 이야기 됩니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6월 봉기를 다룬 레미제라블[장발장] 도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은 정부를 전복한 후

'혁명은 끝났다' 말했지만

아직도 프랑스에 혁명은 끝나지 않았고

프랑스의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이후에도 자유를 얻기위한

혁명을 계속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 나갑니다

 

프랑스에 민주주의가 정착할때까지 프랑스인들은 이후에도

여러 혁명 , 홍역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라봉봉>한명의 프랑스인은 예술을 한다.

두명의 프랑스인이 모이면 사랑을 한다.

세명의 프랑스인이 모이면 혁명을 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은 낭만과 갬성의 민족으로

과격하고 급진적인 혁명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프랑스는 유럽에서 시위로 유명하며

유럽내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과격하고 격동적인 나라로 유명합니다

 

프랑스는 유럽 최강대국이자 종주국 지위를 오랬동안 누려왔고

오늘날도 영국 , 독일과 함께 유럽 3대장인데

이는 프랑스인들이 단순 빨갱이여서라는 논리로 혁명을 즐겼다라 해석할 수도 없고

프랑스에서 혁명이 자주 일어난 이유는

일단 나라자체가 비옥한 농경지가 많아

배가 부르니 춥고 척박한 영국 , 독일보다 더 과격하고 급진적 모습을 보인

프랑스인들 같고

오늘날에도 프랑스는 유럽내에서

농경 , 대륙국가적 성향이 가장 강한나라입니다

 

(쉽게말해 나라가 풍요로워서 내부적 지랄을 해도 영국 , 독일인들보다 타격이 적었고

원래 낭만충들 특징이 최소한의 생존 정신줄이 있어서

자금줄이 끊기면 정신이 돌아와 급 이성적이게 된다 합니다 ㅋ)

 

프랑스 대혁명은 폭동이라고 비하되기도 하지만

세계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준 혁명이 맞긴 맞고

대신 너무 과격해서 이런 오명들이 나타나고 또

프랑스 과학계에서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인 것처럼

(라부아지에 참수 ;;)

뼈아픈 시기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혼란이 너무 강하자

내란 , 내분을 종식시켜줄 강력한 통치자를 원하고 있었고

결국 황제 나폴레옹이 출현해 유럽사를 뒤집어 놓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