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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자유주의의 확대>

[키작은 포병장교]

[반란 진압]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이집트 원정]

[통령 정부]

[황제가 되다]

[유럽 제패]

[절대정신]

[대륙 봉쇄령]

[러시아 원정의 패배]

[엘바섬 유배외 빈 체제]

[백일천하]

[워털루 전투]

[유배지의 황제]

[꼬마 부사관]

[조제핀]

<라봉봉>

 

[키작은 포병장교]

이전 이야기에서 쓴

프랑스 대혁명은

1799년 30세의 청년장교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끝나게 됩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1769년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하급 귀족 출신으로서 사관학교에 갔는데

 

프랑스의 제주도 '코르시카섬(노랑색 Corsica)'

 

대귀족 자제들의 경연장이었던 사관학교에서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사투리를 쓰는 키작은 촌놈으로 놀림 , 왕따 당했지만

나폴레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열심히 공부했고

16세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뛰어난 수학실력으로 수학적 계산이 요구되는 포병장교가 됩니다

 

(수학사에서는 나폴레옹이 나폴레옹의 정리라는

기하학 정리를 남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신은 최강의 포병대를 가진 쪽에 서는 법이다

 

프랑스 포병대

 

[반란 진압]

장교 복무중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고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되자 유럽 군주들은 자기들도 루이 16세처럼

시민들에 의해 쫓겨나고 처형될까 두려워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했고

이런 혼란한 시기 프랑스에서도 내분 , 반란이 있어

나폴레옹은 포병을 집중적으로 운용하는 전법으로

영국군을 몰아내고 반란군을 진압합니다

 

나폴레옹은 정치적 인맥을 만들며

정치군인으로서 빠르게 고속승진했고

왕당파 시위대를 진압하며

허약했던 총재정부를 보호합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그러나 나약하고 기반이 부실했던 총재정부는

사치와 오락 , 느슨한 도덕관념속에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규율잡힌 군대와 독재에 굴복해가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도 쳐부수었는데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 주둔한 오스트리아군과 싸우기 위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알프스 산맥을 넘으려 합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부관들>불가능한 일입니다 !!

 

이에 나폴레옹은 단호하게

 

<나폴레옹>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The word impossible is not in my dictionary

 

라는 말을 남깁니다

 

나폴레옹을 대표하는 그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끝내 산맥을 돌아 넘은 그는 이탈리아를 단숨에 제압하고

뛰어난 군사전략으로 1797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점령합니다

 

[이집트 원정]

이후 나폴레옹은 인도에 식민지를 가진 영국을 견제하려

이집트 원정을 원했는데

총재정부 역시 인기많은 나폴레옹을 멀리 쫓아내고 싶었기에

이를 수락하고

나폴레옹은 이집트 카이로를 점령하나

영국 넬슨제독에게 프랑스 해군이 박살나버리고

오스만 제국의 반격에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탈출해 귀국합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실패로 끝났지만

원정 당시 로제타석(로제타 스톤) 을 발견한 프랑스군은

로제타석에 이집트 상형문자 , 이집트 민중문자 , 고대 그리스어 세 문자로 쓰여진

글을 보고 잘 알고있는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성공합니다

 

로제타 스톤

 

[통령 정부]

하여튼 이집트에서 귀국한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Coup d'état 군사반란)를 일으켜 프랑스 정부를 뒤엎고

통령이 됩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나폴레옹 , 의원들의 저항을 받는 나폴레옹 장군(가운데)

 

당시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혁명으로 내부 분란 , 숙청 , 공포정치 등이

일상화되던 시기라

혼란을 종식시켜 줄 강력한 지도자 , 영웅이 나올 것을 원하고 있었고

엄격하고 카리스마 강한 나폴레옹은 이에 걸맞는 인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국민교육제도 확립 , 프랑스 은행 설립 등을 해

프랑스를 근대화시켰고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해 근현대 시민법의 시작을 알리고

대륙법의 기초를 만듭니다 (나폴레옹 법전은 이후 나폴레옹의 정복전쟁과 함께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로마법과 함께 세계사회에 큰 영향을 줌)

 

나폴레옹 법전

 

[황제가 되다]

나폴레옹은 1804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교황에게 대관을 받아 나폴레옹 1세로 등극하는데

왕정을 타도하고

자유 , 평등 , 권리(혹은 박애) 를 기치로 내건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는 황제의 탄생이라는 허무한 결과로 끝났지만

 

(왕정-공화정-제정 테크인데 어째 로마랑 비슷합니다..)

 

오랜 혼란에 지쳐 안정적 정권을 바라던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옹의 즉위를 적극 지지합니다

 

나폴레옹은 근데 국민투표로 황제가 됬는데

350만 찬성 vs 2500명 반대라는 압도적 찬성표로

황제가 됬고

지식인들도 로마 공화정이 로마 제정으로 바뀐것을 근거삼아

프랑스 제정성립을 합리화 합니다

그렇게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카이사르같이 된 것입니다

 

(애초에 프랑스 혁명은 왕정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민생파탄에 대한 불만 성격이 강했음)

 

옥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거창한 대관식을 한 나폴레옹은

이전 교황이 황제에 씌워주는 것과 달리

직접 자신의 손으로 관을 집어 자신의 머리에 썼고

이 사건은 왕권신수설의 몰락 , 왕권과 종교권의 분리를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직접 왕관을 쓰는 나폴레옹

 

당시 유럽인들은 나폴레옹이 자유주의와 혁명 이념을 전파하고

혼란을 종식시킬 영웅으로 보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됬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실망했고

 

프랑스 대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혀있었던

독일의 천재음악가 베토벤은

 

일개 포병 지휘관에서 반란군을 평정하고

최고 사령관이 된 나폴레옹은 당시 희대의 영웅이었기에

나폴레옹이 자유 , 평등 , 박애를 구현해줄 영웅이라 여기고

나폴레옹을 흠모해 그를 위해 (헌정곡)

'보나파르트' 라는 3번 교향곡을 썼는데

점차 독재자화 되는 나폴레옹을 의심스럽게 보다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됬다는 소식을 듣자

개빡쳐서 보나파르트 표지를 갈갈히 찢고

제목을 '에로이카 (영웅)' 으로 고쳐 영웅 교향곡을 만들게 됩니다

 

<베토벤의 친구>베토벤 ,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네 !

 

<베토벤>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

 

베토벤

 

베토벤 3번 영웅 교향곡 자필악보에서 거칠게 지워진 나폴레옹의 이름

 

만민의 평등을 꿈꾸며 일어난걸로 여긴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가 독재자 , 황제탄생이었고

 

나폴레옹의 의도는 자신이 황제가 되어 혁명을 끝내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왕실 , 지배질서에 스스로를 편입시키려 한 것이었지만

이미 시민혁명의 불꽃은 돌이킬 수 없이 계속 퍼지고 있었기에

유럽 왕실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퍼트리는 프랑스와

나폴레옹 자체에 반감을 가지며

나폴레옹의 즉위를 그저 찬탈로 여겼고

결국 나폴레옹은 유럽 구체제 국가들과 계속 전쟁을 하게 됩니다

 

[유럽 제패]

프랑스 육군은 오스트리아 군을 물리치고 빈을 점령했고

또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도 격퇴해

두 강대국을 홀로 능숙하게 제압한 프랑스 육군은

유럽 지역을 제패합니다

 

세계 최강 영국해군에 맞서

프랑스도 급하게 해군력을 강화시켰지만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던 섬나라 , 폭도와 해적의 본고장(칭찬인가 ;;) 영국답게

프랑스 대륙놈들이 산업혁명으로 강성하게 일어나고 있던

영국남자들에게 비빌 수는 없었고

 

일단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강력한 육군 ,

영국은 넬슨 제독이 지휘하는 강력한 해군 구도로

유럽은 대립각을 세워갑니다

 

프랑스 함대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넬슨 제독에게 뚜두려 맞아서

제해권 장악 및 영국 점령은 수포로 돌아가게 됬습니다

넬슨제독은 이곳에서 영국을 구하고 전사해

세계 해전사의 인물이자 영국의 이순신 장군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트라팔가르 해전

 

영국의 이순신 장군 '넬슨 제독'

 

[절대정신]

유럽 대륙 중앙부를 제압한 나폴레옹은

1806년 1000년대의 역사를 가진 신성로마제국(독일) 을 해체시키고

이에 반발한 프로이센(독일) 이 프랑스에 맞서자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을 물리치고 베를린에 입성해

유럽의 패자가 됩니다

 

당시까지만해도 유럽인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나폴레옹이

유럽을 해방시키는 희대의 영웅으로 여기고 있어

순순히 나폴레옹을 반기며 빗장을 열어주었고

 

나폴레옹이 베를린에 입성할때는

독일 철학자 헤겔은 나폴레옹의 행진을 보고

그가 적국의 수장임에도

 

<헤겔>저기 절대정신 (絶對精神 , absolute spirit , 시대를 이끌어가는 힘 혹은 인물) 이 걸어간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베를린을 행진하는 프랑스군

 

독일 철학자 헤겔

 

(당시 독일은 무거운 세금 , 지식인 체포 , 국민인신매매 등으로

헬파티여서 나폴레옹은 독일 지식인들의 희망으로 여겨졌음)

 

[대륙 봉쇄령]

나폴레옹은 영국에 제해권을 내준 대신 1806년 대륙봉쇄령을 해서

유럽 대륙국가들이 섬나라로서 무역으로 먹고살던 영국과

교류를 못하게 제재를 가했는데

영국은 압도적 해군력과 식민지 무역으로 버텨나가고

오히려 영국과 교류하던 유럽 국가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대륙 봉쇄령(영국 왕따) 에 참여한 나라들(파란색)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강화하려

포르투갈 , 스페인을 먹어

스페인 민중들의 반감을 샀고

 

나폴레옹 제국의 영토

 

이에 영국이 지상군을 이베리아 반도(포르투갈 , 스페인) 에 파견해

나폴레옹을 괴롭혔습니다 (나폴레옹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30만 병력을 잃음)

 

[러시아 원정의 패배]

영국과 무역으로 먹고살던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계속 영국과 통상을 나서자

나폴레옹은 61만 대군을 일으켜 러시아 정벌에 나서며

프랑스군은 스페인 , 러시아로 두개의 전선이 나뉘게 됩니다

 

러시아군은 일부로 프랑스군을 거대한 러시아 얼음왕국속으로

깊게 끌어들이고 있었고

텅 빈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서 한달동안

차르(러시아 황제) 가 항복해오길 멍하니 기다리다

추위와 식량부족 , 보급부족의 상황속에

러시아 군의 반격에 뚜두려 맞았고

 

결국 러시아 원정으로 40만이 희생되고

10만명이 포로로 잡히며 프랑스 육군과 나폴레옹은 몰락 테크를 탑니다

 

러시아에서 퇴각하는 나폴레옹

 

[엘바섬 유배외 빈 체제]

나폴레옹의 힘이 빠져가자

쭈구려 있던 유럽국가들은 다시 동맹을 맺었고

 

영국 , 러시아 , 프로이센(독일) , 스웨덴 , 오스트리아 등이 대불동맹을 맺어

나폴레옹을 조지려 했고

이와중에 나폴레옹은 새로운 군대를 양성하나

나폴레옹의 강력함을 파악한 동맹세력들은

나폴레옹과의 교전은 피하고 다른 장군들을 각개격파해

프랑스의 총전력을 약화시켜나갑니다

(한니발에 파비우스 전략[지구전]으로 대처한 로마인들과 비슷)

 

나폴레옹은 동맹군 병력에 맞섰지만

사방팔방에서 밀려드는 동맹군을 맞설 수 없었고

결국 1814년 4월 나폴레옹은 연합군에게 투항했고

연합군은 나폴레옹을 극심히 두려워하며 그를

엘바섬에 유배시켜버립니다

 

포도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은 섬(실제론 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큼) '엘바섬'

 

나폴레옹을 엘바섬에 오배시킨 뒤

유럽 제국들은 프랑스와 유럽세력 재편 논의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빈 회의' 를 열었고

유럽 제국들의 빈회의는 자유주의 확산을 막고

 

'모든 것을 프랑스 혁명 이전상태로 되돌리자'

 

 결정 합니다

 

자유주의 확산 방어 및 프랑스 처리를 논의한 '빈회의(빈체제)'

 

결국 황제 나폴레옹이 퇴위되자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때 처형당한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일천하]

그와중에 프랑스에 대한

유럽 제국들의 밥그릇 싸움 및 프랑스 내부의 혼란이 일어났고

이 와중에 영국은 유리한 패를 가지기 위해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하는 것을 방조하고

(설계 , 프랑스를 더 씹창내서 영국 독주체제로 가기 위한 큰그림)

 

나폴레옹은 (영국의 의도대로) 엘바섬에 탈출해

외국군의 간섭을 받으며 자존심 상해있던 프랑스인들을 규합합니다

 

나폴레옹을 막기위한 루이 18세의 토벌대가 보내졌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병사의 총구로 더 다가가서

 

<나폴레옹>병사들이여 ,

병사들의 황제는 여기있다.

어서 쏴라!

 

라고 호통치자

그의 카리스마 , 위엄에 눌린 병사들은 대거 항복합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이야기>

'제5보병연대여! 짐을 알아보겠는가 ?'

'예, 폐하.

'짐이 자네들의 꼬마 부사관(키작은 나폴레옹의 별명)이다.

자네들 중 짐을 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여기 짐의 가슴이 있다!'

이에 병사들이

'황제폐하 만세!' 를 외치며 백색휘장을 떼어내고

황제의 손을 만지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이제 혼자 남겨진 그들의 지휘관을 향해 나아갔다.

'무슈 레자르, 짐은 자네를 잘 아네. 자네를 대령으로 만든게 누구인가?'

'폐하입니다.'

'그러면 그 전에 자네를 중령으로 만든게 누구인가'

'폐하입니다.'

'그런데도 짐과 싸우기를 원하다니!'

'전 오직 그러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이에 나폴레옹은 레자르의 칼을 돌려주고 

항복한 제5연대를 규합해 그르노블로 전진을 재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폴레옹이 복귀하자 외세와 내부혼란 , 왕정 부활에 지쳐있었던

프랑스 국민들은 환호했고

프랑스 전역에서 나폴레옹 복귀를 환영 , 항복해

나폴레옹은 파리로 귀환해 다시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복귀하는 나폴레옹과 그를 환호하는 프랑스 병사들

 

이에 영국 , 프로이센은 다시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프로이센+네덜란드 연합군에게

패배를 당해 황제에서 퇴위했고

 

워털루 전투

 

다시 미국 혹은 영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다

영국이 거부했고 영국은 나폴레옹을

아프리카 왼쪽의 오지중 오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시켜버리고

나폴레옹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황제 재등극은

95일만에 끝났기에

'백일천하' 라 불립니다

 

[유배지의 황제]

더이상 재기가 불가능한 것을 파악하고

체념한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회고록 구술 , 산책 , 카드놀이 등을 하며 시간을 때웠고

 

세인트 헬레나 섬

 

어느가족의 노예의 일생을 듣고 매우 분노하며

그에게 자유를 주겠다 약속하기도 했고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친절한 신사(젠틀맨) 이라 생각했지

그가 한때 프랑스와 유럽을 제패했던 황제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합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말년에 정원사로 일하던

청나라 , 만주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생각납니다)

 

나폴레옹은 그렇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농사도 짓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6년간의 유배생활끝에 위암으로

1821년 52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그는 죽기전 유언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폴레옹>프랑스, 군대(육군), 선봉, 조제핀(나폴레옹의 첫사랑)

France, armée, tête d'armée, Joséphine.

 

나폴레옹의 유산으로

유럽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전파되었고

유럽 각기에서 독립국가 ,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게 됬습니다

 

[꼬마 부사관]

나폴레옹은 얼굴은 잘생긴 편이었으나

키가 작은 인물로 유명하고 (한국 박정희도 자신의 키작남 컴플렉스때문에

나폴레옹을 특히 좋아했음)

 

키작남 나폴레옹 (ㅠㅠ)

 

나폴레옹은 키는 작았지만 그 야망은 엄청나게 컸던 인물로 이야기 되는 인물인데

이전 로마의 카이사르처럼

카리스마와 매력이 강해서 프랑스인들에게 여러 사랑받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남긴

인물이기도 합니다

 

<나폴레옹의 일화>

한 포병장교가 4년 동안 똑같은 계급을 달고 있는 것에 불만이 생겼는데 ,

나폴레옹이 군대 점검을 위해 한 요새를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나폴레옹에게 승진을 청원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폴레옹이 시찰을 위해 요새에 도착하였는데

장교는 새삼스레 쑥스러워져서 나폴레옹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결국 나폴레옹이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제야 장교는 허겁지겁 달려가 떠나려는 나폴레옹을 불러세웠다.

장교) 폐.....폐하, 폐하!

나폴레옹) 왜 그러는가?

장교) 저는 14년 동안 복무했으나 4년 동안 대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내년에 있을 진급평가때 명단에만 올려주시면..

 

이에 나폴레옹은 수행원의 소령 계급장을 떼어

그에게 손수 소령 계급장을 달아주며

 

나폴레옹) 지금부터 소령.

 

그리고 나폴레옹은 다시 갈 길을 갔다

 

나폴레옹의 인물됨에 대해

적국의 인물들도

 

'황제(나폴레옹)와 이야기할때마다 매혹당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할 정도로 나폴레옹은 매력이 강한 인물이었고

(일단 나폴레옹은 독서를 많이해서 지능이 높았음)

 

졸고있는 초병대신 직접 보초를 서주었다거나

잘하는 부하에게는 아낌없는 칭찬 ,

잘못한 부하에게는 무자비한 갈굼을 했다고도 하고

군사학계에서도 천재 군사전략가라 불리며

많은 이야기를 남긴 인물이 됬습니다

 

[조제핀]

나폴레옹 이야기에서는 그의 첫사랑 조제핀 드 보아느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조제핀은 원래 프랑스 장군의 아내였는데

남편이 왕당파로 찍혀 로베스피에르에게 처형당했고

이후 인맥으로 파리 상류층에 들어가 사교계에서 이름날립니다

 

나폴레옹의 첫 황후 조제핀

 

당시 전도 유망했던 청년 나폴레옹은 조제핀의 미모에 푹 빠져있었고

상류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그녀는 볼품없고 키작은 군인 나폴레옹에게

큰 애정을 보이지 않다 나폴레옹의 장래가 유망하다는 주변의 설득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할때에도

대놓고 여러 상대와 바람을 피웠고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에서 귀환한 후

아예 이혼을 생각했지만

당시 복잡한 정치상황과 조제핀의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는 바람에 화해했다 합니다

 

당시 조제핀은

 

'승리의 부인(마담 드 빅투아르)'

 

이라 불리며 프랑스 병사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조제핀과 함께하던 시기는

나폴레옹-조제핀 부부와 프랑스가 가장 잘나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나폴레옹은 더이상 조제핀에게

열중하지 않고 유명 여배우나 귀부인들을 총애했고

낭비벽이 심한데다 후사도 없었던 황후 조제핀은

결국 1810년 나폴레옹과 이혼하는데

나폴레옹은 정치적 입지를 위해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한 뒤부터

프랑스 국민들은 마리 루이즈를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까기 시작했고

대외적으로도 러시아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며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조강지처 , 첫사랑을 버리고 새장가를 들면

사회 , 대중들도 등을 돌리게 됩니다)

 

자신의 무수한 바람과 냉담함에도 자신을 기다려주는 나폴레옹에 감동한 조제핀이

마침내 정말 나폴레옹을 사랑하게 됬을때

그녀에 대한 애정이 식은 나폴레옹은 그녀에게 이혼통보를 보냈고

그녀는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졸도(기절)하는 척을 하며

이혼하지 않겠다 버텼고

 

이혼통보에 졸도쇼하는 조제핀

 

이후에도 나폴레옹은 그녀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

그녀가 풍족히 살 수 있도록

그녀를 황후로서 지위와 의전 절차를

계속 유지시켜주긴 했다 합니다

 

<나폴레옹>난 내 아내를 사랑하지 , 하지만 존경하진 않는다.

 

이후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하자

조제핀은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의 방문을 받기도 했는데

알렉산드르 1세는 조제핀을 여전히 황후인것처럼 매우 공손히 대했다 하며

그녀는 그렇다고 나폴레옹에 대한 배신행위를 단호히 거부하고

나폴레옹의 몰락을 무척이나 슬퍼합니다

 

<조제핀>때때로 나는 우울해서 절망감에 죽을 수도 있을 지경이다. 

나는 보나파르트의 운명을 견딜 수 없다

 

그 와중에 조제핀은 알렉산드르 1세와 같이 승마를 하던 중

폐렴에 걸려 앓아 누웠고 유언으로

 

'보나파르트(나폴레옹) , 엘바(나폴레옹의 유배지) , 로마왕(나폴레옹의 지위)'

 

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합니다

 

(이 여인도 나폴레옹 냅두고 ㅄ짓을 많이 했지만

죽기전 유언을 보니 평생 나폴레옹만 생각하며 살았다고 생각됩니다)

 

조제핀의 죽음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폴레옹>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 자상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공감과 사랑 ,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오.

 

(있을때나 잘하지 그니깐 왜 이혼을 하고 ㅈㄹ임 ;; 불륜충 새끼들 ;;)

 

결국 한때 유럽을 제패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초라한 유배지에서 죽기전 마지막 말로

 

'조제핀 Joséphine.'

 

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외치고 사망했습니다

 

<라봉봉>서양사에서 '황제' 라는 말에 걸맞는 인물은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 , 로마 카이사르 , 프랑스 나폴레옹 정도라 생각됩니다

 

배짱+비범함+카리스마+통솔력의 결정체였던 인물들이라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서양 독재자들의 우상이 되기도 한 인물들이기도 하고

당대에도 자국민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죽인 인물이라

평가가 썩 좋은 인물은 아니기도 합니다

 

이런 카리스마형 야심가 인물들을 너무 좋게 봐서도 안되고

단지 인간의 의지 , 개척정신적 모습으로 선을 긋고 보면 좋을거 같고

 

황제자리에는 양날의 칼(부귀영화+독재) 이 있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황제를 꿈꾸면서도 꺼려지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폴레옹으로 인해 프랑스는 잠시간 안정을 찾았지만

곧바로 외국과의 전쟁에 휘말려

많은 프랑스인들이 전쟁터에서 사망했기에

나폴레옹은 오늘날에도 평가가 크게 갈리는 인물이고

옛날에는 어린이 위인전에 있었지만 요즘은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본 위인전속 나폴레옹 이미지는

두려움 없고 용감한 군인 , 지도자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요즘들어서는 그와 그의 주변인물들 , 그의 인물됨과 사랑이 보이는 거 같고

특히나 조제핀의 이야기는 마치 코코샤넬의 첫사랑과 삼각관계같이

난잡하고 문란한 경향이 강한데

 

내로남불과 낭만주의에 젖은 프랑스인들은

발정난 가랑이를 통제하지 못하다

대를 못있거나 파멸하는 경우가 많아보입니다

 

역사에서는

세상을 다 가진것같은

야심가들이 정작 사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야 된다 생각하고

지금 제 머리속에서는

 

'사랑을 위해 황제 자리를 포기할 수 있는가 ?'

 

라는 질문이 떠오르는데

저는 그러한 질문을 받는데면

주저하지 않고 'YES' 라고 말할 것이고

단지 한국사회에서는 'NO' 라고 외칠 사람들이 많아보여

안타까울뿐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죽은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마지막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서로 붙어있을때 서로에게 한짓을 생각해 보면

죽어서 후회한들 뭐하나 있을때 잘해야지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사랑의 아픔속에 우리는 어른이 되고 또다시 성장하겠지요

날도 춥고 답답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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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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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0002467 2021.09.19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