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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어린시절>

[거물 정치인]

[하의도]

[아버지와 어머니]

[장원급제]

[어머니]

[일본군함]

[바다너머]

[목포상업학교]

[차용애]

<라봉봉>

 

[거물 정치인]

이전까지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 김영삼 등

소위 '거물정치인' 이라 분류되는 대통령들에 대해 이야기를 써왔고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했던 마지막 거물정치인이자

민주화의 상징 '김대중' 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

 

거물 ,

사람에게 쓰긴 좀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세력이나 학문 따위가 뛰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을 말하고

 

정치인들의 꿈이자 정치로망 '거물정치인' 을 다룬 드라마 '대물 (2010)  President'

 

대한민국 건국초기엔 조선이 완전히 파괴되어

조선시대 귀족층인 '양반가' 들도 전혀 맥을 못쓰던 시기였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부자와 양반들 , 모두 가난하게 리셋된 대한민국

 

부자 , 고위층 , 고위직들이 전부 일제강점기 , 전쟁으로

갈려나갔기 때문에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기틀을 놓을만한 거물정치인들이 쏟아졌고

특히 이렇게 고위직들이 텅텅 비어있어서

막 하얀도화지에 첫 그림을 그릴 시기였기때문에

전국 각 지역의 젊은 청년들은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정치적 패기와 야심이 넘치던 시기였고

가난하지만 젊고 어린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인데

 

26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쓴 김영삼

 

학교 교과서에서는 이런 시대 , 사회적 분위기는 전혀 말해주지 않고 있고

그저 답답하게 이런 인물들이 나와 이런 업적이 있었다고만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시기입니다

 

한국 정치인 ,

특히 대통령이라 하면 

아무리 최고위직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다 거물정치인으로 분류되지는 않고

윤보선 , 최규하 , 노태우 등 그냥저냥한 이미지가 있는 대통령도 있고

거물로 분류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당시 시대를 풍미했고 굵고 선명한 업적이 있음을 의미하고

보통 한국 거물정치인은 크게는 3명으로 분류되는데

 

안보는 이승만 ,

경제는 박정희 ,

민주화는 김대중

 

으로 분류되고 있고

 

국민들도 싫어할지언정 능력은 인정해주는 대한민국 거물정치인 대통령 4인방(김영삼은 들어갔다 빠졌다함ㅋ)

 

김영삼은 거물로도 분류되나 좀 흐릿한 성향이어서

양쪽으로 까였고

 

전두환이나 노무현 같은 경우는

거물정치인이었던

전임 대통령(박정희 , 김대중)이 쌓아논 업적을 잘 유지하고 관리했기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어도 한창 호황적이거나 안정적인 시대를 타고난

행운을 누린 정치인이었기에

국민적 인기나 임펙트가 상당히 컸기에

대충 같이 묶기도 하나

 

보통 지식인적 성향을 보이고

국제 사회에서도 코쟁이 녀석들 사이에서도

아 이놈은 좀 쎈캐다 , 호랑이급이라 여겨지는 인물로 분류된

대한민국 대통령 3인방은

역시 이승만 , 박정희 , 김대중 밖에 없습니다

 

이 세 인물은 가장 뚜렷한 업적을 남겼고

자기 분야의 스탠스가 확실했고

학문과 배움을 가까이 할때 오는 사람의 고상한 성향이 있었으며

 

 

 

 

그랬기에 많은 부하 , 국민들이 믿고 존경하기도 했고

또한 그렇기에 더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움이나 한계도 컸던 인물인데

 

김대중에 많은 기대를 걸었었던 국민들

 

안타깝게도 이 세인물보다 수준이 높은

링컨같은 '위인 겸 정치인' 은

아직 대한민국에 나온 전례가 없고

이 세인물은 편향된 성향이 강해서

업적과 한계도 뚜렷했기에

절대 한국사에서 위인으로 분류되지는 않고

그저 거물로만 분류되기도 합니다

 

한국사에서 위인으로 분류되는 정치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을 지냈던

도산 안창호 , 백범 김구 정도가 있는데

 

좌우 , 남북의 존경을 받는 한민족 대정치가 , 한국위인 김구와 안창호

 

이 두 한국위인은

법통성을 갖추었으며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고

악의 세력에겐 두려움에 떨게한

진짜 대정치가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분열된 조국의 한을 안고 사망했던 대정치가들로서

광복후 대한민국은 매우 엄격한 틀에서 말하자면

제대로된 정치가다운 정치가가 나온 사례가 없고

저번에도 제가 쓴 이승만이나 박정희 글에도 별 말도안되는 댓글들이 달리는데

제발 그냥 너무 높여서 생각하지 말고

이 인물들도 큰 업적이 있을 뿐

부패하고 악한 부분이 있었고

한계가 있는 인물이라 보면 되지

제발 이상한거로 시비좀 안걸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

김대중도 잘한것도 못한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짬밥냄새나 급식냄새가 났던 다른 대통령들보다는 

독서도 많이해서 말빨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던 인물이었고

 

 

나름 시대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인물이고

한국 건국초 나왔던 대정치가라인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로서

마지막 거물정치인이라 분류되는 인물이며

 

오늘날은 이승만은 기본적 국가 사상 , 외교방향을 놓았지만

부하들도 안키우고 혼자 독재를 하다 맥이 끊겨버렸고

 

박정희는 경제 ,

김대중은 민주화라는 뚜렷한 분야도 있고

부하들도 많이 키워놨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계는 대체로

보수계 정당(오늘날 국민의 힘) 은

박정희의 유산을 ,

 

민주계 정당(오늘날 더불어 민주당) 은

김대중의 유산을 따르는 형태이고

오늘날까지 사실상

박정희와 김대중 부하들이 정치계를 양분하는 형태이고

생전 시기때에도

자연히 김대중과 박정희는 국운을 건 라이벌 구도가 형성됩니다

 

카리스마형 지도자였던 박정희와 김대중

 

박정희 소년시절

 

김대중 소년시절

 

박정희 이전에도 이승만도 원자력 발전에 신경을 썼고

윤보선+장면 내각도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최초구상 했지만

박정희가 주도적으로 본격화시켜서 보통 경제 이미지는

다 박정희로 모이고 있고

 

포항제철 고로에 불을 붙이는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이전에도

민주당 윤보선이 박정희랑 싸웠고

김영삼이 민주당 거물정치인으로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삼종독재선물세트와

목숨을 건 투쟁을 했지만

 

윤보선은 집안이 극도의 친일전력이 있고

평소 뚜렷한 색체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해서

민주당 최초 대통령이기만 하지

허수아비 대통령 이미지에 국민적 결집을 끌어내지는 못했고

 

또한 집권하자마자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에 쫓겨난 윤보선 대통령

 

김영삼은 김대중과 더불어 민주당의 슈퍼스타긴 했는데

막판에 결국 군부독재와 타협해 3당합당 , 야합을 통해

신군부 노태우의 스폰을 받고 대통령이 됬기에

민주세력들에겐 배신감이 어마어마했고

대통령 재임중에 IMF 경제위기까지 겪어

이미지가 씹창났고 말년엔 보수정당원로로 활약했기에

민주계에서 완전히 나가리 되었고

 

결국 대통령되고싶어서 군부독재자 노태우 부하로 들어간 김영삼

 

그랬기에 최초가 아니었음에도

경제는 박정희 ,

민주화의 상징은 김대중으로 확고히 박혀버렸고

 

민주화와 북한문제 기여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김대중 대통령

 

오늘날 더불어 민주당(민주계 정당)

역시 생물학적 아버지는 윤보선이지만

부모가 민주당을 낳자마자 박정희 장군의 총에 맞고 죽어버려서

실제로 기르고 키운 양부모는 김대중+김영삼인데

김영삼은 도중에 바람나서 집에 나갔기에

김대중을 자신의 부모나 근본으로 여기고 있고

김대중이 선택한 적통 후계자였던 노무현을 맏형님 수준으로 여기고 있고

 

오늘날 민주당의 근본이 된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반대로 국민의 힘(보수계 정당)은 박정희를 근본으로 여기는 형편인데

 

김대중은 운이 좋았던게 대통령을 4수끝에 해서

정치인중에서 고인물중의 고인물 , 거의 썩은물급에서 대통령이 됬기에

보수계 인사들 다룰줄도 알고 계속 낙선하다

뒤늦게 경제공부를 해서 의외로 시장경제나 자유주의도 받아들여

IMF 극복 , 선진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경제에서도 선방했기에

민주화+경제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도 했고

 

박정희가 가장 아낀 부하였던 김종필(왼쪽)과 박태준(오른쪽)의 지원사격을 얻어낸 김대중

 

박정희는 대통령을 너무 젊은시기 쿠데타를 통해 하기도 했고

그의 생각대로 경제가 발전하며 민주적 의식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시작이 군부독재였고

ㅈㄴ 음탕하고 음란한 말년이었기에 드러내고 존경하기도 어렵고

김대중이 좀 그나마 한국 대통령중 운도 좋았지만

시대도 잘타고나서 거물정치인중 유일하게

말년도 평안히 보냈던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김대중 이후엔 대한민국엔 소위 말하는

'거물정치인' 이 더이상 등장하지는 않게 됬지만

그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어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에

국민들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거물정치인들이 계속 나오던 시기는

반대로 불행히 그만큼 국민 의식수준이 떨어지고

전쟁 , 독재로 가득한 미개했던 시대라고도 볼 수 있기에

꼭 거물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는 시대가 좋은게 아니라

위기극복형 거물정치인들이 안나오는 시대가

평안한 시대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이순신 장군이 전쟁영웅 , 성웅이라 불리며

세종대왕과 함께 한국 제일가는 위인이지만

진짜 이순신 장군이 나오는 전란시대가 다시 나오면 안되는 것처럼)

 

또 그만큼 이젠 대한민국이 세계 10대국가 ,

선진국가에 분류되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요구하는 수준이 까다로워져서

정치인들이 옛날처럼 국가위기상황이라 힘을 몰빵받거나

무식하게 막 크지도 못하고

국가주도 , 정치인 주도 경제나 민주화도 한계가 뚜렷해졌기에

선진국들이 다 그렇듯이 진정한 민간 주도 시대가 온것이라 할 수도 있고

요즘은 정치인들도 크기전에 선량하고 똑똑한 국민들에게

과거가 탈탈 털리며 미리 싹이 잘리는 형태라고도 할 수 있고

 

(선진국 국민들은 이미 잘먹고 잘살아서

의외로 자기나라 대통령 , 정치인

누군지도 잘 모르기도 한다는 말도 있음)

 

지금 대한민국 수준에

박정희나 김대중은 다시 나와도 

절대 다시는 대통령이 되지는 못하고

절대 거물로 분류될 수 없지만

 

막 조선시대 , 일제강점기가 끝나서

의식수준과 민도도 떨어지고

왕정 , 계급적 사고관이 강하게 남아있던

대한민국 건국초엔

막 서양식 근대산업제도와

자유와 인권 , 민주주의 제도를 본격도입시킨

위기극복형 리더였던

박정희 , 김대중이 거물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세 호랑이 대통령 이승만 , 박정희 , 김대중 (+김영삼ㅋ)

 

그럼 대한민국 마지막 거물정치인 김대중의 생애를 알아보겠습니다

 

[하의도]

한국 대통령중 가장 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친 대통령 김대중 ,

김대중은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납니다

 

김대중을 키워낸 투쟁과 인고의 섬 하의도

 

하의도는 고종황제의 고명딸(유일한 딸) 인 

덕혜옹주의 소유지였는데

덕혜옹주가 대마도 귀족가문 남자와 결혼하며

하의도 소유권은 일본제국에 넘겨져서

섬 전체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가 되었고

주민들은 순식간에 소작농으로 전락해버립니다

 

대마도주와 결혼한 대한제국 황녀 덕혜옹주

 

조선땅을 수탈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아버지와 어머니]

김대중은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장노도에서 개명) 사이의

3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김운식은 장수금 말고 본처가 따로 있었기에

김대중 어머니 장수금은 첩이였고

김대중은 첩의 아들 ,

서자였고

어린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집을 오가며 자랐습니다

 

김대중 어머니 장수금과 아버지 김운식

 

김대중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기 하의도에서

이장을 지낸 지식인으로서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낭만적 기질도 있어서 노래 부르기도 좋아했습니다

 

김대중 아버지는

하의도에서 배를 타고

목포-광주-서울을 오가며

소작쟁의(소작농이 지주에게 소작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벌이는 농민운동) 운동을 주도하고

 

소작농민들의 파업투쟁이었던 소작쟁의 , 암태도소작쟁의 사진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정치이야기를 주고받는 인물이었고

하의도의 민심을 주도하는 동네 리더였습니다

 

비록 이복형제들도 많고 혈연적으로는 꼬였지만

항일의식 , 애국심이 강하고

정치에 관심많은 아버지를 둔 탓에

어린 김대중은 어깨너머로 아버지를 보며 정치감각을 익혔고

아버지는 이장이었기에

집에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무료로 배달되었고

김대중은 신문을 접하며

꼭 신문 1면과 정치면을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항일의식이 강한 아버지는 

어린 김대중에게 역사의식을 불어넣어주었고

당시 불온문서에 해당되었던

조선왕조 계통도를 집안에 숨겨두고 종종 김대중을 불러

그것을 펼쳐 설명해주며 우리 역사의 우수성을 알려주었고

이는 훗날 민주화투쟁의 가시밭길을 걸은 김대중이 가지고 있었던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저항정신과 민족주의적 진보노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하의도는 이전부터

조선시대 유배지-동학농민운동지-일제하 소작쟁의지를 거친

저항의 고장이었고 

 

애국심과 민족적 성향이 강한

김대중 아버지가 주도했던 질서의 하의도였기에

김대중은 환경적으로 진보적 여건에서 성장하게 되었고

평생의 가치관등이 형성되게 됩니다

 

김대중은 아버지에게 정치성향과 역사의식을 물려받았고

어머니에게서는 사업가 기질을 물려받았는데

어머니 장수금은 장사수완이 좋아 집안 살림을 꾸려나갔는데

김대중도 의외로 정치입문전엔 사업가 출신으로서

사업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괜히 보수계에서도

김대중만큼은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는게 아님)

 

<김대중>아버지로부터는 예술적인 감각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검증하는 ,

말하지면 정치적인 안목을 전수받았다

 

[장원급제]

김대중은 9살에 서당을 다녔고

서당 훈장님은 김대중을 유심히 보고서는

소년 김대중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학동들에게 말했습니다

 

<훈장님>김대중은 크게 될 인물이다

 

그해 가을 김대중은 서당에서 장원(1등)을 했고

장원이라 쓴 상장을 가져가자

어머니가 김대중을 왈칵 끌어안았고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장원에 이웃과 손님들은 덕담을 건냈고

어머니는 장원턱을 내려 떡과 고기 , 부침개 , 장난감을 마련해

학동들에게 일일이 나눠주었습니다

 

한국 마지막 재래식 교육기관 '서당'

 

서당장원급제자인 김대중은

곧 10살때 하의도에 새로생긴 4년제보통학교(초등학교의 옛말) 에 편입했는데

서당에 다닌 학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2학년이 됬고

김대중은 공부를 잘했는데

특히 역사가 재밌었습니다

 

(라봉봉도 학교다닐때 그랬는데 ?!)

 

[어머니]

하여튼 ,

한국 정치인들이 다 그랬던것처럼

김대중도 먼거리를 걸어댕기며 통학했고

이때 다져진 체력이 일생을 뒷받쳐주었다고 합니다

 

김대중 어머니는 간척지에서 소금굽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국밥집을 해서 김대중이 공부하기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김대중은 시험만 보면 늘 최고의 성적을 받아쥐었고

시험날만 되면 어머니집 국밥이 유난히 푸짐했고

손님들도 어린 김대중의 성적표를 돌려보며 더 침을 튀겼습니다

 

어머니는 가난한 부모지만

총명한 아들을 서자로 섬에 묻혀 살게하고 싶지 않았고

김대중을 더 멀리 보게하기위해 섬밖 ,

뭍으로 나가게 하려했고

어느날은 어머니는 별이 쏟아지는 밤에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장수금>열심히 공부하거라.

어떤 일이 있어도 너만큼은 공부를 시키겠다

 

김대중은 아이들과 뛰어놀며 구김없이 자랐고

특히 바다를 그리 좋아했고

바다 건너에는 무슨 세상이 펼쳐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김대중은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낙지를 잡아먹고

콩서리(도둑질)를 하다 들켜 내빼기도 했고

언덕에선 노을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고

소를 따라가다 뒷발에 채이기도 했습니다

또 낮잠자던 엿장수 담뱃대를 훔치다

분노한 어머니에게 종아리를 맞기도 하며

추억 , 옳고그름 , 선과 악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일본군함]

하루는 하의도 앞바다에 일본군함이 나타났는데

어린 대중은 그 크기와 규모에 압도당하며

 

<김대중>일본은 저리도 힘이 세구나

 

하고 중얼거렸고

김대중은 부러움과 슬픔이 교차했습니다

 

<김대중>어째서 우리에겐 저런 군함이 없을까 ?

 

그러고선 김대중은 나무를 깎아서 장난감 군함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일제강점기때 태어난

박정희 , 김영삼 , 김대중 어린시절을 봐도

한국어린이들까지도

자신을 일본제국민으로 인식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인식했으며 일본을 적 , 외국으로 여겼음 ,

 

한국인이라면 다 차별과 핍박받던 시대였고

친일계에 속하는 박정희까지도 당시 일본에 당하고

원한을 가졌는데 점차 일제강점기 세대가 사라져가며

인터넷에서 일뽕들이 점차 역사왜곡을 하며

그때가 살기 좋았다는 등의 헛소리가 나오길래 설명을 담)

 

[바다너머]

김대중은 근데 의외로 형제중에서 가장 겁이 많았는데

큰일에는 담대했고

틈만나면 혼자서 뭍으로 나간다고 떼를 쓰며 부모를 졸랐습니다

 

결국 어린 대중의 바람대로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군 살림살이를 정리하였고

가족들은 뭍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1936년 가을 ,

커다란 꿈을 안고

어머니와 자식들이 목포에 배에 올랐습니다

 

<김대중>그런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섬에서 그저 그렇게 늙어갔을 것이다

 

전라도 최대 항구도시였던

목포에 도착한 김대중은 놀랐습니다

 

<김대중>항구에 들어섰을 때는 너무나 놀라웠다 ,

 

세상에 이런도시도 있었구나 ,

 

배마다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여기저기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마치 출전명령을 기다리는 전선처럼 보였다.

모든것이 살아서 펄떡거렸다.

덩달아 내 가슴도 뛰었다

 

일제강점기 시기 목포

 

그러나 ,

가난한 김대중 가족은 목포에서

고난이 시작됬는데

 

어머 하의도에서 처분한 재산으로 작은 여관을 구입해 운영했는데

여관에는 샘도 없어서

소년 김대중이 자주 물을 퍼날라야했고

시골에서 온 촌놈이라며

전학간 목포북교공림심상소학교에서 친구들에게는 왕따도 당했고

어울리지 못해 쉬는시간이면 화장실 옆 공터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습니다

 

 

김대중은 일본인 학생들의 따돌림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학업에 전념해

1937년 수석으로 졸업 ,

목포일보 사장상을 받았고

1939년 5년제(중학교+고등학교) 목포상업학교에 입학합니다

 

목포북교초등학교 시절 김대중 , 맨뒷줄 오른쪽에서 네번째 , 1937년

 

[목포상업학교]

김대중은 은행에 취직할것을 목표로 했고

학생 절반이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3학년까지 반장을 할 정도로 뛰어난 통솔력을 보였고

독서광이면서 영어에 관심이 많아

작문과 역사성적이 뛰어났고

웅변에도 소질을 보였습니다

 

<김대중 고교시절 학적부>

언변은 늘 정확 , 명료하다

 

3학년때부터 학교측 정책으로

취직반과 진학반이 나뉘었는데

김대중은 은행취업을 하려 취직반에 갔지만

이내 대학진학으로 진로를 변경해

취직반 반장을 그만두고 진학반으로 옮기게 되나

곧 대학진학을 포기하게 됩니다

 

김대중은 4학년이 되며

독서로 인해 넓어진 견문탓에

반일사상이 생겨나 일본인 학생들과 갈등을 빚게 되며

전과목에 걸쳐 성적이 떨어졌고

반일 작문이 큰 문제가 됩니다

 

(원래 학교 공부좀 하는애들도

독서에 맛들리면 세상보는 눈이 생기기에

자연히 마음속으로

학교에 비판을 가지거나 학교 다니기 싫어지는게 순리임)

 

<김대중>나는 자신의 행동만큼은 항상 주의를 했기 때문에

학교로부터 문제삼을 만한 일은 사실 없었다.

그런데도 일본인 상급생들은 툭하면 나를 불러다 뭇매를 가했던 것이다.

내가 사상이 나쁘다는 이유에서였다.

 

매번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바로 나라 잃은 슬픔이었다.

당시는 조선 민족의 역사를 입에 담기만 해도

위험한 사상을 가진 것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그리고 한번 사상이 나쁘다고 눈총을 받게 되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없었던 것이다. 

 

목포상고시절의 김대중

 

목포상고 5학년시절 김대중 학적부 , '독서를 좋아하나 사물을 비판적으로 보니 주의가 필요함' 이라 써있음 

 

김대중은 일본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미국 해군의 해상봉쇄정책으로 여행허가가 어려웠고

학비가 무료인 만주국 건국대학에 진학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진학해봤자 일본군 징집될것이 뻔하기에

1943년 19살 청년 김대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운회사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한명이라도 더 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끌고가려 혈안이었고

김개중 아버지가 꾀를 내어 호적나이를 1년 늦추어

김대중은 간신히 징병을 피했고

다행히 1년이 지나가기 전인 1945년 전쟁이 끝났고 일본은 패망하게 됩니다

 

광복에 기뻐하는 대한인들

 

[차용애]

징용을 피하기 위해 일본인이 경영하는 회사를

다니던 20살 청년 김대중은

어느날 회사 밖에 나와 바람을 쐬다가

양산을 쓰고 지나가는 젊은 여성을 보게 되었고

그 여성은 김대중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 놓았는데

 

<김대중>운명이란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녀가 귀국한 얼마 되지 않았을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목격했다.

또한 운명이리라.

그녀는 하얀 원피스차림에 꽃무늬가 있는 양산을 받쳐 들고는

마치 잰걸음이라도 세고 가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모습을 보고 나서 그냥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

단정한 머릿결이며 하얀 피부색이

어수선하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피어난 

백합같다는 그느낌 그대로였다

 

큰일남

 

알고보니 같은 목포상고 동창생의 동생 차용애였고

김대중은 동창생 만나러간다는 핑계로 그 집에 자주 방문했는데

차용애 역시 오빠 친구이자 목포 명문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잘생긴 남학생 소문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둘은 서로 눈이 맞아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하게 됩니다

 

나름 까리했던 젊은시절 김대중

 

김대중이 평생 가슴에 묻었던 첫번째 부인 차용애

 

징병에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에

차용애 아버지는 두 사람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베토벤 운명 BGM 빠바바밤~)

 

친구 , 처남 , 장모 , 다른가족들은 김대중편이었고

무엇보다도 차용애 본인의 강한 의지로

1945년 4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불안한 신혼신랑 김대중은

하루하루 일제의 징병소집영장이 날아올 수 있다는 공포감에

불안불안하다가

여름날인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하고 패망하였고

한국은 해방이 왔고

김대중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컸습니다

 

<김대중>나는 그때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집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

설마하니 일본의 패전을 알리는 방송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많은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전쟁에 대한 새로운 결의 표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천황의 육성방송은 일본의 항복을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당시의 감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엉엉 울고 있을 때 ,

나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거리로 뛰어 나갔다.

나는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 , 

이제 곧 독립할 것이라는 글귀를 쓴 포스터를 만들어

거리거리에 붙이며 돌아다닌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만 해도 일본군인이 아직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서 열심히 포스터를 붙이며 돌아다녔다

 

<라봉봉>제가 한국대통령들 이야기들을 디테일하게 쓰다보니

의외의 이야기들도 많이 알게됬고

 

원래 대부분 고위직들은

역사를 공부를 한 사람들만이 올라올 수밖에 없어서

그들이 느낀 감정이나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일단 김대중은 다른것보다 대단한점이 어렸을때부터

꾸준히 다독을 습관화해서 머리에 든게 많은 인물이었고

그럼에도 대학에 못간 학벌컴플렉스가 극심했던 인물이긴 합니다

 

(이후 '서울대'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게 그런 영향도 있어보이고

진보적 성향의 '판사' 인 추미애 영입한게 그런거 때문이라고도함)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진실을 알게 되있고

말빨이 세지며 더 나아가면 선동력도 갖춰지게 되는데(ㅋ)

 

김대중은 대한민국사에서 천재적인 선동가로 유명하고

그게 옳던 설사 옳지 않은 말이던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의 가슴뛰는 연설을 들으며 흥분하고

감명을 받은 것은 팩트입니다

 

정치인이던 뭐던 사람이라면

뭐가 됬던 책을 항상 읽는 자세가 필요하고

ㅎㅌㅊ 세계에선 학벌이 갑이겠지만

 

사람의 인생과 국운을 책임지는

권력 , 고위직 인물을 평가할 수록

제한된 지식을 암기해서 시험쳐서 얻어내는 학벌보단

무조건 독서력을 봐야하고

저나 대부분 사람들이

서울대 나온 김영삼보다 

고졸 김대중을 더 거물 정치인으로 높게 쳐주는 이유입니다

 

또 김대중같은 진보적 정치인 , 진보적 인물들로 갈수록

아무래도 국가 기록에 체계화되어 기록이 남고

안정 , 보수적 성향이 매우 강한 관료 , 공무원 출신들에 비해

체계화된 직업이나 생활을 하지못한 경우가 많아

사실 쓰기 어렵기도 한데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이끌고 빛낸 한 축임은 분명하며

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고뇌와 흔적이 아름답게 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 보통 김대중 부인으로

이희호 여사가 유명하지만

그전에 김대중이 첫번째 결혼을 해서

일찍 사별했던 차용애라는 인물을

김대중은 정말 사랑했다하고

실제로 차용애 역시 심성이 참 선한 인물이었다고 보여져

거의 파우스트의 그레트헨마냥

김대중이 출세하기전 고생만하다 죽은 가여운 인물이고

김대중에게 큰 뜻을 불어넣고 사망한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사실 단정한 느낌에

목련이나 에델바이스꽃 같은 여성이 이상형인데

저랑 똑같은 생각과 표현을 회고했다는 점이 참 신기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랑 비슷한 스타일을 좋아하셨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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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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