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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국 삼국시대 말기 신라인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은 세계적 선진국이었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시게 됩니다

두 스님 역시 한국 종교계의 위인이라 하실수 있겠는데요

이당시 신라는 정치를 잘해서인지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던거 같습니다,,


저에게 역사는 쓰면 쓸수록 즐거운거 같습니다 저가 어렸을때,옛날에 보던 이야기를 쓰는데요

그래 이런 이야기도 있었어~~ 하는 그런게 있는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타국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나라라는 그런거는 아니어도

우리 고유의 즐거운 이야기들이 있는 우리의 역사가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이

다시 생각나는거 같습니다,,


한국 불교 역사에 매우 중요한 분이라 하실수있는 원효 스님,원효 대사의 이야기입니다

대사는 큰 스승이라는 스님을 높여부르는 말이나 저는 스님이라는 말이

더 정적이고 ㄱㅊ은거 같습니다,, 단군왕검이라기보다 단군 할아버지라는 말이

더 정적인거 같고요,, 해골물 이야기 이외에도 원효대사는 다른 이야기도 있으신

불교계의 분명 독특한 분이시고 보통의 승려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셨으나,,

그렇다고 고려 신돈같은 요승이미지라기보다는 한국 불교계의 중요한 분 같습니다,,


< 원효대사와 해골물 이야기 >


삼국시대 말기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당나라 불교 유학을 가게됬습니다

그당시에는 고구려가 있었기에 육로로 고구려를 거쳐

신라의 두 스님이 떠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수비대에게 정탐자로 오인받아서 잡혔다가 수십일만에 풀려나고

10여년뒤  해로,바닷길로 다시 두 스님은 당나라 유학길을 가게됩니다

이당시 중국으로 가려면 오늘날 인천이나 부산같은 항구도시가 외국으로

오고가는 교역 주요도시인거 같이 이당시에는 경기도 화성시에있는 당항성이

중국으로가는 관문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무왕 1년에 두 스님은

당항성을 다다를때 비가와서 토굴,바위에서 자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효대사는 잠결에 목이말라서 바가지와 그안에 물이 있어서 갈증에 즐겁게,,마시고

다시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바가지를 확인해보니 알고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머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효대사는 구토를 했고

분명히 잠결에 모르고 마셨을때는 시원하게 마셨으나

확인해보니 해골바가지라 진리는 밖에서 찾는게 아니라 모든것은 마음에

달려있다(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는 것을 깨달으시고,,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하셨다고

합니다 이때가 원효대사 45세,의상대사 39세였는데요,, 원효대사는 그렇게

도중에 다시 돌아가시고 의상대사 홀로 당나라에가서 지엄 스님에게

10년간 화엄종 을 배우고 돌아오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상대사가 부족했다기보다는 당나라에서 배워온 선진적인 화엄종을

신라사회에 신라 풍토에 맞게 설파하신 분으로 두분다 훌륭하신 스님 같습니다,,

물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기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해서

신라의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기록되있는거 같은데요,, 그러나

실제로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유들이 이런 분들이 많아서 그런거 같습니다,,

의상대사도 훌륭한 분이신게 나중에 문무왕이 경주에 성을 쌓으려하자


들판의 띠로 엮은 집에살아도 도를 행하면 복이되나 그렇지 않다면

제아무리 사람을 힘들게 하여 성을 쌓아도 이익되는 바가 없다는 간언을 하셨고

문무왕도 이 말을 듣고 그만두셨다고 합니다

신라인들 이야기에서 저는 지증왕같은 분은 잘 유명하지는 않으시더라도

세계적인 업적을 남기고 가신거같고,, 이사부 장군,백결선생,이차돈,박제상 이야기나

진평왕에게 계속 무덤에서까지 그만 사냥다니시고 정치하시라고,,하던

김후직 이야기나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신라 지식인 강수 이야기,김춘추,김유신 장군,문무왕

할거없이 신라에 훌륭하고 인상적이게 본 위인들이 많으신거 같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의상대사,원효대사 두분이 같이 유학길에 오르려 다니시는거도

비록 다른 길을 가셨으나 신라인들에게 불교를 알리시고 두분다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개인적으로 고구려나 백제가 매력이 더있었던거 같았는데요 신라 역시 알고보니

괜히 삼국통일을 한게 아닌거 같고 삼국통일 이후에는 통일신라의 황금시대라는곳을

신비하고 영화로운 신라를 상상해보고 그랬던거 같습니다,,


너무 말이 길었나요,, 다시 제목같이,,원효대사님 이야기로 가서

원효대사는 이렇게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으시고 다시 돌아오시고

의상대사는 유학길을 가게됩니다,,

여기서 해골물 이야기는 토굴로 알고 편안히 잤는데 알고보니 무덤이었다는,,버전도

있고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여기서 원효대사는 세상의 현상들은 마음에서 일어나고

여기서 인식이라는 외적 현상보다는 본질이나 내부적인 것을 중요시 봤다는

그런 의미 같습니다,, 원효대사는 과거에 유학을 공부하시기도 하고

화랑생활을 하시다가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삶과 죽음을 고민하다

황룡사,불교에 가셨다고 합니다,, 의상대사가 모범생 스타일이셨다면

원효대사는 여러개를 해보시고 금기나 어려운것을 푸시고 간분 같습니다,,


원효대사는 신라로 돌아와서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수 있습니다


라는 가르침으로 누구나 불교에 귀의할수 있는 불교 대중화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대중화라는것은 단순히 재밌게만 한다거나,,수준을 떨어트리며 알리는게 아니라

여러 경험과 인생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거 같습니다,,

친근한척 하며 욕을 섞으며 알려주는거는 대중화라 할수는 없는거 같은데요,,

원효대사의 저 짧고 간단한 말은 수준 낮다고 생각되지는 않고

당시 신라 사회 수준은 실제로도 오늘날같이 문맹자가 거의 없다싶이한 우리나라

한국이 아닌 귀족,지배층이 아니고서는 글자,한자도 몰랐고 민도도 현재

우리가 자조하며 우리나라 민도가 낮다해도 고대인들의 민도는 더 낮았습니다,,

그런 고대인들의 눈높이와 또 원효대사의 인생철학,삶들이 있는 가르침으로

오늘날 보기에도 촌스러운거 같지가 않습니다,,

또 원효대사의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할때

단순히 여우가 포도를 못먹고 저 포도는 실거라는

심리학의 신포도 기제나 자기방어,합리화,정신승리적 말이라 생각되는거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불교는 고등종교라고도 불리며 어려운 교리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뜻이 어떤것인지도 잘 모르면서도 불교에서

평안과 평화를 찾으려 했다는 말을 인상적으로 본거 같습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이렇게 도중에 다른 길을 가셨으나

신라로 돌아오셔서 신라인들에게 불교를 알리시고

마음의 평화와 치유, 그리고 전쟁에 지친 신라인들에게,,

정신적 안정과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알려주고 가신분 같습니다,,

의상대사가 모범생 스타일의 모범생이라면

원효대사는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어도 모범생이라고 하실수 있겠습니다,,

실제로도 퀴리부인은 의상대사 같은 성향의 위인이셨던거 같고

아인슈타인은 이것저것 하기도한 고리타분한 과학자라기보다

개구장이나,,원효대사 스타일의 위인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것은 원효대사의 해골물,원효대사의 모든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라는 말같이 외형적인 이미지 보다는

본질이 중요한거 같습니다,,

사실 원효대사는 위인들 중에서는 유명한 분이라 하실수있어서

어린이 개인이야기에 쓸까도 싶다가 개인이야기에 썼습니다,,

원효대사 이야기 2에서는 요석공주와의 결혼이야기를 써야 될거 같습니다,,

원효대사는 스님은 결혼을 안한다는 금기에도 결혼을 하셨으나,,또 이단이나

사이비라 불리지는 않는 분이라 하시는게 독특한 일이라 하실수 있겠습니다,,


<원효대사 표준 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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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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