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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는 세계적으로도 알려지신 한국불교계의 전설적인 사람이나

파계승이기도 했습니다,,

파계승이란 불교의 계율을 어겨 죄를 지은 스님을 말하는 말로

원효대사는 스님이었으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그렇다고 이단이나 사이비라 하기에는 원효 스스로도 신라사회

지식인,대학자였기도 했고요 원효대사 저서는 당대 최고 불교 논문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불교 스님은 천주교 신부님들같이 결혼을 못하시는거 같습니다,,

이 외에도 불교에서는 부처님 스스로는 사실 출가전에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사실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십니다 또 공양받은 음식들도 가리지 않고 드신거 같고요

물론 오늘날 불교에서는 고기같은경우는 살기위해서 또 살생을 직접 하지않는선에서

조용히 드시기도 하는거 같으나 지식인이었던 원효대사님은 그런 금기에도

결혼을 하신거 같습니다,,불교에서는 술도 금하나 원효대사님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일체유심조 사상,해골물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이거는 물이라면서 술도 드셨습니다,,


사실 술,고기,결혼 자체가 나쁜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술,고기는 생존에 필요할수도 있는거 같고,,

무분별하게 마시면 안된다거나 가려서 해야할거 같고요,,

결혼 역시 재물이나 이익으로 결혼하는것이 아닌 사랑으로 결혼하는것은

가치있는 일 같습니다,, 이런거에 원효대사님은 정면으로 가신거같고,,

당대 신라사회에서는 꺼려지는 면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오히려 개방적인 성풍속이나,,개방적이기도 한 일본사회에서

원효스님은 특히 존경받고 그러셨던거 같습니다,,


그러면 원효대사의 결혼 이야기,, 또 결혼해서

역시 신라의 훌륭한 인물 이두표기를 만드신 설총을 낳으신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요석공주와의 결혼이야기>


그렇게 당나라로 가려다 해골물을 마시고,,

마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신 원효대사는

미친사람,거지 행세를 하며 신라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돌아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알기쉽게 화엄경,불교들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원효대사는 거리에서


수허몰가부위작지천주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내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려 하네


라고 외치셨다고 합니다,, 뭔가 이상야릇한 말같습니다

분명 분위기상??,,성적인 표현같긴 한데요,,

역시 대부분 신라 사람들은 그뜻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뜻은 당시 신라 태종 무열왕이 알아챘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상한것은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문무왕1년에

당나라에 가려했고 이때 해골물을 마시고 원효대사가 돌아오시는데요,,

돌아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당시 이야기에서

왕은 무열왕이었습니다 문무왕은 무열왕의 첫째아들로 무열왕 사후

왕이되시는데요 옛날 이야기라 시대상이나 그런게 약간 이상할수도 있는거 같습니다,,


태종 무열왕은 이를 원효가 귀한집딸을 얻어서 어진 자식을 낳으려는 거라며

자루없는 도끼=과부 라고 해석하신거 같습니다,,


이때 무열왕은 문희,문명왕후 이외에도 문희의 언니

보희와도 결혼을 해서 자식이있었는데요,,

즉 김유신 장군의 두 누이와 결혼을 했습니다,,


보희부인과의 딸 요석공주를 낳아서

요석공주는 김흠운이라는 사람에게 시집갔으나 3일만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죽어서,,

과부가 됬다고 합니다

또 무열왕 스스로도 원효의 똑똑하고 뛰어난 능력에 자주 궐로 불러서

조언을 구했을때 요석공주도 원효를 흠모하고,,옷과 꽃을 준적이 있다고 합니다,,


즉 수허몰가부위작지천주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라는 뜻이 어려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와 결혼하기전에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노래를 시켰다는 서동요같은 공개적인

잘말하면 구혼,못말하면 희롱스러운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거를 무열왕이 알아챘고 관리를 보내서 원효를 데려오려 하나 원효는 이미

그렇게 될줄 알고 미리 문천교 다리로 갔다고 합니다,,

관리가 원효를 발견하자 원효는 일부로 다리밑 냇물로 발을 헛디딘체 하며

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리가 원효대사를 무열왕에게 데려오자

무열왕은 원효를 보고 놀라서 요석공주에게 원효대사 옷을 갈아입히고

잘 모시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저도 현재 저가 고결한 스님,역사이야기를 쓰는것인지

성인 소설을 쓰는것인지 이상한거 같은데요,,수위가 있는거 같습니다,,


원효는 젖은옷을 벗고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궁궐에 머물렀고

요석공주는 어이가 없었으나 스님의,, 자유분방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원효스님은 아름다운 요석공주와 3일동안 뜨거운 사랑을 하신거 같습니다,,


그리고 요석공주는 임신하게되고 원효대사와의 아이 설총을 낳게됩니다,,

성이 설씨인 이유는 원효대사도 설씨인데요,,원효대사의 이름은

'설사'입니다,,


그렇게 원효대사,요석공주의 아이 설총은 어렸을때부터 역사와

유학에 통달했고,,설총은 한자로 우리말을 쓸수있는 이두문자 표기를 만드신 분입니다,,


원효대사는 이후 요석공주와의 아이를 낳은뒤 '파계승'이 되어서

속세사람들이 입고다니는 옷을 입고다니셨다고 합니다,,

이는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왕복이 아닌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다니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거 같습니다,,진흥왕은 정복군주,살생때문에 말년에

이렇게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으신거 같고,,

원효대사는 승려였으나 요석공주와 아이를 낳으셔서 이후

승복이 아닌 속세사람들의 옷을 입은것일까요??,,


이후 요석궁을 뒤로하고 원효대사는 요석공주를 떠났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원효대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거는

사람이기에 그럴수 있거나 또 별 문제가 없는거 같은데요,,

아이를 낳고 이렇게 떠나버리는거는 문제가 있는거 같습니다,,


요석공주는 눈물로 원효대사를 떠나보내고,,

요석궁에서 홀로 설총을 원효대사를 떠올리며 훌륭하게 키웠으나

먼 발치에서 몸을 숨기며 원효대사의 소식을 들으며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의 업적이야기는 3에서 해야될거 같습니다,,

원효대사는 이후 파계승이라 불리며 신라사회에서 배척받거나

고깝게 보거나 죽이려는 사람도 생겼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가는곳마다 매를 맞거나 파계승이라고 쫒겨나고,,

거지,땅꾼들과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물론 원효대사는 왕실부터

민간,거지 할거없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성격이셨을거 같고

또 광대들이 들고 다니는 둥근박에 여러가지 도구들을 붙여

무애라고 이름짓고, 다니면서 춤추고 염불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광대들에게 호리병 하나를 얻어서 병끝에 방울과

오색비단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원효대사는 불교의 가르침을 노래로 풀이해서

무애가,무애무라는 노래와 춤을 지으신거 같습니다,,

이로인해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이들도 '나무아비타불'이라는 말을 알게됬고

갓난아기들까지 '나무아비타불'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신라인들은 누구나 '나무아비타불'을 염불하였고 백성들은

고달픈 삶에 위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거나 이런 이야기는 민간에 친근하게

다가가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시려는것도 있었겠으나

자식과 부인을 냅두고 혼자 저렇게 떠났다거나,, 그런거를 볼때

신라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본 그런거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요석공주도 원효가 있는 주변에 별궁을 짓고 아들 설총과

원효대사를 연모하며 만나지는 못하고 그렇게 사신거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진 어느날 역시 훌륭하게 자란 설총은

아버지 원효대사에 그리움에 못이겨 아버지가 계신곳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사실 설총은 자라면서 파계승의 아들소리나 그런거 때문에 아버지 원효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모의 정이 더 커서 아버지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원효는 절에서 거지소년과 살고있었고,,

거지소년은 원효와 이야기하는것을 설총은 나무뒤에서 엿듣습니다,,


<거지소년,,>대사님 감이 열려있는데 다른 스님들이 못따먹게 합니다

따먹으면 안됩니까??,,


<원효대사>왜 안되겠느냐 따먹어라

 

소년이 신나서 감나무로 가자 원효대사는,,


<원효대사>얘야 까치란 놈이 먹을것 두어개는 남겨놓아야 되느니라


하셨다고 합니다,,

이때 설총은 아버지!!하며 나무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설총>아버지 여쭐게 많습니다,,


원효대사는 말없이 절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설총에게 줬다고 합니다,,

원효대사는 뒹구는 낙엽을 가르키며,,


<원효대사>먼저 마당을 쓸거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해서 설총은 성실하고 깨끗하게 마당의 낙엽을 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에서 나온 원효대사는

낙엽하나없이 깨끗히 잘 쓸었구나 하고는 쌓아놓은 낙엽더미에가서

낙엽을 집어서 다시 뿌리며


<원효대사>총아(설총), 가을마당은 이렇게 낙엽이 좀 있어야 제멋인거야


하고 어디로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설총은 가슴이 아팠으나 아버지가 남긴 말의 의미를 깨닫고

멀어지는 아버지를 향해서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설총도 아버지도 훌륭하신 분이나 안타까운 이야기 같습니다,,

원효대사 이야기는 3에서 끝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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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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