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이 서울로와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했는데요,,

29명은 사살 1명은 미확인 1명 김신조 소위는 투항했다고 합니다,,

이당시 우리나라는 결혼예정이었던 여성이나 경복중학교 수위,

주한미군 등 32명 사망에 52명이 부상입었다고 합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법과 향토예비군제가 시행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에 김대중 후보(김대중 대통령)와 대선을 하는데요

박정희 후보,대통령은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고했고

김대중 후보는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또다시 당선되면 총통제가 될거라 말했습니다,,

두분의 말은 둘다 사실이 되었습니다,,

또 김대중 후보는 향토 예비군제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0퍼센트도 안되는 표차로 당선되는데요,,

1년후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박정희 대통령은 더이상 국민 선거가 아닌

허수아비,형식적인 선거로 대통령이 됩니다

이미 박정희 대통령을 뽑을 사람들이 미리 대기하고 선거하는

그런방식인데요,,장충 체육관에서

통일 주체 국민회의라는 곳에서 선거를 했습니다,,

후보도 박정희 대통령 한명이었고 득표율도 100퍼센트였습니다,,

원래 박정희 정부 2인자였던 김종필씨는 슬슬 차기 대통령이 될거라

생각하신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오자

박정희 대통령 측근들도 불안을 느끼셨던거 같습니다,,

국민들은 이에 반발했고 시위를 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군대로 이를 통제하려했는데요,,

그리고 이를 한국식 민주주의라 했습니다,,

10월 유신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메이지 유신의 영향을 받은거 같습니다

조국 근대화 이런거도요,,


이후에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계속되며

1972년~76년 3차 계획에는 중화학 공업이 중시되었습니다

1973년 석유파동이 있어서 석유난이 생길뻔했는데요

이당시 현대는 중동에가서 사업을 수주하며 오일머니라고

중동 외화를 벌어왔습니다,,이당시 석유값이 오르고

중동지방에서는 자원민족주의 이런거도 생겨난거 같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때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중동지방에서

유가가 오르자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게 벌어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려 중동지방에서 한국정부에 연락이 왔는데

돈이 많으나 중동은 덥고,물이없고,비가안오고,모래와 사막이 많은 지역이라

정주영 회장도 안되겠으면 나도 포기하겠다 했다는데요

현대 정주영 회장은 중동을 다녀오고나서 이를

더우면 밤에 공사하고,물은 어디서 가져오면되고,,

비는 안오면 계속 공사가 가능하고,, 모래가 많으니 벽돌만들수 있고,,등등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당시 현대는 중동에서 건설공사를 하며 외화를 벌어왔습니다,,

정주영 회장 이야기는 지폐에서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우리나라는

옛날에도 철선을 만들었다고 조선소 건설에 영국에 돈을 빌려왔다는 이야기나

(이는 한국정부에서 보증했다는 이야기도 있는거 같습니다)

여러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신분 같은데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써야될거 같습니다,,


중화학 공업으로

옛날같이 가발,신발공장같은 경공업 말고도

석유산업,철강,조선,자동차 산업들이 생겨났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런게 민간에서 일어난거 같은데요,,

한국과 동양에서는 이렇게 정부 주도가 가능했던것은

이를 뒤따라가서 가능했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단기간에 빠른속도로 경제 지표는 올라갔으나

국민 생활이나 이런거는 우리나라가 서양같이??,,

과학산업등이 일상화되거나 그런거는 아닌거 같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높아지고 쌀생산도 늘어나자

더이상 쌀이 부족하거나 굶어 죽는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식생활도 여러 변화가 생긴것 입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