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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사에서 모택동,마오쩌둥은 여러 공과 과가 뚜렷히 있는

인물이나 오늘날에도 중국에서는 지폐에도 있고

국부나 위인으로 대우되는 사람입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6.25 전쟁과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고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인 인물,지도자였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전쟁 이후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단순히 사상 이상으로 심했기에 함부로 말할수는 없으나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고 오늘날

중국 건국이야기인 마오쩌둥의 대장정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어떤 중국 학자는 이렇게 평가했다고 본거 같습니다,,

그(마오쩌둥)가 건국을 하고 바로 죽었더라면 명실상부하게

국부이자 영웅이나 건국이후의 삽질,,(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등으로

때문에 어찌어찌하였다 이런 말을 남기신거 같습니다,,

물론 중국내에서도 마오쩌둥은 그래도 일제에게 사실상 지배당하던 중국인들의

지도자가 되어서 나라를 건국한 업적이 있는 인물이고

비판이 금기시 된 인물이나 이런 논란도 있는거 같고

이후 중국 지도자인 덩샤오핑,등소평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하고 농촌 노동자생활을 4년을 했으나,,

이후 중국 지도자가 되고 마오쩌둥을 공이 70퍼센트, 과가 30퍼센트라는

공칠과삼이라는 희대의 논리??로 그를 그래도 존중하며 개혁개방을 하게됩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마오쩌둥은 중국은 인구도,땅도 넓은 나라답게

정말 과도 크고 많은 인물이나 평소 책을 많이봤다는것과

만약 계속 일제강점기,일본의 지배가 계속됬다면 중국역시

더 큰 죽음이 있었을수도 있기에 중국사회의 지식인이자 사회적 인물로

생각되는거 같습니다 물론 마오쩌둥을 싫어하시는 분도 있겠으나

괜히 중국가서 마오쩌둥 초상화가 있는 천안문에서나 화폐를

조롱거리로 만든다거나 중국인들 역시 중국인들의 입장이 있기에

괜히 자극시키거나 하며 불이익을 볼거는 없는거 같습니다,,


시작,young,new,젊음 이런 말들은 언제나 새롭고

정말 신비로운 힘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대부분의 혁명이나 이상들도 시작은 의미가 있었고

그랬으나 원하는것을 이루고 난뒤에 젊음,young,new도 늙음,old가

되고 고인물이 되며 썩어가거나 부패한다는것은 역사에서도 많은

사례가 있었던 일들입니다

마오쩌둥 역시 정권을 잡고 나라를 건국한뒤에 여러 과오가 있는 인물이나

그가 젊은날 꿈꾸었던 이상들이나 도서관,책에 파묻히다싶이하며 배워왔던것은

훗날 그를 크게 돕게 되었고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게 했다고 할수있겠습니다

대장정은 그의 근성과 열정을 보여주는것으로

당시 중국 국민당이 주류였으나 미약했던 중국 공산당이

중국 사회에 확실히 이름을 알리고 농경위주 국가였던 중국에서

농민들의 지지를 확실히 받게되며 결과적으로 중국 고대사의 유방같이

나라를 세울수 있게되었던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면 마오쩌둥의 대장정 이야기입니다,,


<시기>1934년~1936년


<이유>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합작 파기,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


<과정>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국민당을 피해 여러 중국,지방 농촌으로 옮겨다니며 게릴라전투를 하게됨,,

중국 공산당군은 370일동안 9700km를 걸어서 옌안으로 탈출


<결과>중국 공산당은 지방의 농민들(당시 중국은 농경국가였습니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되고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


중국 국민당 지도자인 장제스는 중국 공산당 본거지 소비에트 지역을

70만 중국 국민당군으로 포위,압박을 하게됩니다

중국 공산당군은 생필품과 의약품 부족등으로 고통받고

결국 8만명의 공산군을 이끌고 긴 여정의 탈출,대장정을 시작하게됩니다


<대장정 지도입니다 중국답게 스케일이 큽니다,,(중국인들은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중국 한고조 유방도 쓰촨성(파촉 지방)쪽으로

항우를 피해간적이 있었고 중국 삼국지의 유비도 쓰촨성,파촉지방으로 가서

촉나라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마오쩌둥에게도 역시 모험이었다고 할수있었으나

결국 그도 책속에서 이런 사례들을 봤을것이고 어찌보면 중국 건국의

정석적인 루트를 따라갔다고 할수있겠습니다,,>


8만명도 적은 인원은 아니나 여기는 넓고 사람도 많은 중국이고,,

중국 국민당의 압도적인 물량,자원,군사력에서 8만은 매우 적은 인원이라

할수 있었습니다,,

사실 대장정 성공 이후에도 공산당은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역시 열세였으나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같이

결국 중국 민심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중국 국민당은 타이완,대만섬으로 쫒겨가게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마오쩌둥과 그를따르는 7만~10만여명의 국민당에 비해서는

극소수였던,, 중국 홍군,공산군은 처음에는 어디라는 정확한 목표도없이

국민당의 압박을 피해서 서쪽으로 가게됩니다

초기 탈출때는 국민당의 압박으로 여러 짐들을 버리거나

잃게되고 이는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아픈 역사라고 합니다,,

국민당의 추격은 집요했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표적인 일화로는

루딩교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은 루딩교를 탈취하라 지시했고,,

루딩교는 모험만화에서 단골 소재로 나오는,,

절벽에 밑에 강이 흐르고 낡은 널판지로 된 그런 다리입니다,,

보통 만화 주인공들은 그런곳 가다가 다리가 무너지거나 하는 클리셰,패턴들이

있으나,, 실제로 중국 홍군,공산군은 일반 사람도 아니고 군대로 이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다리를 건너게 되면 당시 최신 장비였던 기관총으로 무장한

국민당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국민당은 미리 다리의

널판지를 제거해놨고 사슬만이 남은 다리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결국 홍군은 특공대를 이끌고 기관총 포화,세례속에서,,

낡은 널판지 다리를 건너고 후방의 공산군대와 같이 합류해

국민당을 쫒아냈다고 합니다,,

워낙 극적인 사건이라 오늘날에도 중국 공산당의 프로파간다,선전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사건입니다,,


<루딩교를 건너는 홍군,중국 공산군입니다

역사 기록화들은 여러 미화나 과장이 있을수 있고

북한이 생각나기도 하나 사실 미국이나 우리나라 할거없이

여러 나라에서도 그려집니다,, 또다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나

당시에는 극적인 사건이라는것은 분명하겠습니다,,>


중국 공산군은 기아,굶주림과 설산을 넘기도하고,,

여러 고난이 있었으나 결국 9600km를 건너서

국민당의 영향이 덜미치는 땅 옌안에 도착하게됩니다

역사에서 생각날법한 비슷한 사례로는 모세의 수많은 유대인들을

이끌고 자유를 찾아 이집트를 탈출했다거나 실패로 끝났으나,,

로마를 멸망시키려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생각나는거 같습니다,, 워낙의 대규모 이동,대장정이고 드라마틱한 일이라

오늘날에도 중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이때 옌안에서 남은 공산군은 7천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0분의 9가 죽어간 사건인데요,, 중국 공산당,마오쩌둥이 거둔 성과로는,,

그런 여정을 통해 중국 농민공들은 공산군들이 설파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알게되었고 더 중요한거는 국민당에 비해

약탈이나 그런게 없었습니다,,

때문에 사실상 글도 잘모르는 비유적 표현으로는 까막눈,무지렁이에,,

여러 관습과 미신들에 사로잡혀있었던 중국 농민들은 약탈과 지배,공포의

대상이었던 장제스 국민당에 비해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졌을것입니다,,


결국 마오쩌둥의 고난의,, 대장정은 그렇게 끝나고

중국 농민들에게는 그런 소문들이 빠르게 퍼졌을거 같습니다

이는 이후 중국인들이 새로운 나라에서 국민당이 아닌 공산당을

택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중국 공산당은 대장정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는 신화를 만들어내게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열세로 다수를 상대할때는 역시 중국 소설 삼국지에도 자주 나오는

'짐짓 진척하고 도망치다가,,' 산에서 매복하고있던 군대로 게릴라전을 하는

방식들을 사용하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전쟁은 더럽고 추악한것이기에

전쟁없이 서로 대화와 토론,설득등으로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유일한 선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상을 가지던,어떤 사람이던간에 국민과 민심을 배반하고서는

절대 지도자가 될수 없다는것은 당연하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 할수있겠습니다,,


대장정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최대한 2,3 이렇게 끝나지 않게

요약해서 말을 하게된거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한국전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있다고할수있고 냉전등도 있었고 공산권 서적은 금서로 됬다할수있고

실제로 공산주의 역시 여러 폐해와 폐단이 있었다고 할수있으나

오늘날에는 그래도 옛날에 비해 열린 세계라 할수있고 긍정적인 거는 덩샤오핑의

흑묘 백묘론,고양이는 검은색이던 흰색 고양이던 쥐만 잘잡으면 된다는 실리주의 사상같이

가치있는 사건들이나 그런거는 우리에게 교훈을 줄수있고 잘못된 사건들은

경계할 대상으로 알수 있을거 같습니다 저역시 원조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 사람이었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은 즐겨읽었던거 같습니다,, 물론 폐단들도 많아서

나중에 분열된 독일에서 공산주의 동독이 자유주의 서독에 밀린 이유등,폐단등의

이야기도 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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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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