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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왕대의 관제개편,

*중앙집권화를 시작하는 백제>


(*중앙집권 中央集權 조직화된 사회집단에서 결정권이

집단의 정점 또는 중앙부에 집중되는 것)


고이왕 27년

1월(정월) 봄

내신좌평(백제 최고위관직)을 두어서

왕명의 출납에 관한 일을 맡게 하고


내두좌평을 두어서

물자와 창고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내법좌평을 두어서

예법과 의식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위사좌평을 두어서

숙위(숙직하며 지킴, 궁궐에서 군주 호위)

병사에 대한 일을 맡게하고


조정좌평을 두어서

형벌과 송사(소송, 백성들끼리 분쟁이

있을때 관부에 호소해서 판결을 구하던 일)

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병관좌평을 두어서

지방의 군사에 대한 일을 맡게했습니다


<고이왕>이 여섯(육, 6)좌평중

가장 으뜸(최고)은 내신좌평이로다 !


앞으로 우보와 좌보 직을 폐지하고

내신좌평에게 그 일을 총괄하게 하겠다


또한 각 5좌평들은 내신좌평과

짐에게 각각의 일들을 알리도록 하라 !


<백제 귀족들> ,,어라하(왕)께서

총명하시고

권력을 집중시키시니

앞으로 우리 마음대로

하기가 어려워졌군,,


또 달솔,은솔,덕솔,한솔,나솔


장덕,시덕,고덕,계덕,대덕,문독,무독


좌군,진무,극우 등을 두었습니다


6개 좌평은 모두 1품,

달솔은 2품,

은솔은 3품,

덕솔은 4품,

한솔은 5품,

나솔은 6품,

장덕은 7품,

시덕은 8품,

고덕은 9품,

계덕은 10품,

대덕은 11품,

문독은 12품,

무독은 13품,

좌군은 14품,

진무는 15품

극우는 16품 이었습니다


2월

고이왕은

6품 이상은 자주빛 옷을 입고

은꽃으로 관을 장식하고,


11품 이상은 붉은 옷을 입으며


16품 이상은 푸른 옷을 입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신라의 골품제도 이와 비슷하게

진골(왕족)들이 자주색 옷,

6두품(두번째 신분)들이 붉은 옷을,

5두품(세번째 신분)들이 푸른 옷을

입었습니다


여기서 6품 이상 관료들에게

은꽃으로 관을 장식하게 한것은

멋을 중요시한

백제인들의 성향을 알 수있습니다,,


문제는 

너무 멋내기에만 집중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제인들의 정치감각은

눈물이 앞을 가리는 정도입니다,,


<백제 귀족 1>허 앞으로는

멋있게 꾸미지도 못하겠구만,, ㅠㅠ


<백제 귀족 2>옷색깔로 한눈에

신분을 알아볼 수는 있으나

자유가 사라졌어 ㅠㅠ,,


3월

고이왕은 아우,동생

우수(부여우수)를 내신좌평으로 삼았습니다


고이왕 28년

정월(1월) 봄 초하룻날(달의 첫째 날)

고이왕이 자주빛으로 된

큰 소매달린 도포와

푸른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쓰고

흰 가죽 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 신을 신고


남당에 앉아서 정사를 처리했습니다


<고이왕>남쪽에서는 이런일이 있었고

북쪽에서는 저렇일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그렇고 저렇게 하도록 하여라 ~

(나 멋있지 ? ㅋ)


2월

진가를 내두좌평(물자,창고),

우두를 내법좌평(예법,의식),

고수를 위사좌평(숙위 병사),

곤노를 조정좌평(형벌,송사),

유기를 병관좌평(지방의 군사)

으로 임명했습니다


3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고이왕>얘네 신라놈들은 왜이리 말을

안듣는 거냐 ?


<백제 귀족들>동명왕같이

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고(신라 시조 박혁거세)

주장하는 놈들입니다

그냥 무시하시지요 ~


신라인들이 동남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서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중국과 교류가 빨랐던 백제와 달리

중국과 교역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고이왕 당시

중앙집권을 시작한 백제보다

문화,정치적으로도

뒤쳐져 있었었을 것인데도

신라인들도 자존심이

장난아니었던거 같습니다,,

백제는 그렇게 고이왕의 관제개편,

중앙집권 이후부터 삼한사회의

맹주국이 되어갑니다


<라봉봉>그렇게 고이왕 당시 백제의 관제가

개편됬습니다

백제의 관제는 초기에 좌보,우보가 있었던게

고구려의 제도와 비슷했으나

고이왕 이후부터는 좌평제도등

고구려와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던거 같습니다


내신좌평은 오늘날로 치면 총리같고

다른 좌평들은 각각의 장관 역활을 했던거 같습니다

고이왕대부터 백제에 체계적인 정치 형태가

등장하게 됬습니다


그러나 이와별개로

백제는 대체적으로 왕권보다는 귀족들의

권력이 강했던 나라같습니다,,

건국부터 10명의 건국공신 신하인

십제공신이 있었고

백제에는 8가지 성씨의

귀족들인 '대성팔족'이 있었습니다


사실 관제개편과 중앙집권화의 완성은

곧 왕권의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관제개편,중앙집권화를

시작한 고이왕 이후에도

왕들에게 잘못이나 빈틈이 있다면

곧 귀족들의 권한이 강해지는 것이고

왕이 유능하면 그만큼 왕권이 강해지는게

시대를 불문한 법칙이었습니다,,


고이왕대는 백제는 영광의 시기,

전성기대를 지나고 있었지만

백제 정치는 경상도 지역 이외에는

영토가 없었던 신라와 다르게

해양에 여러 지역(특히 왜[일본])에

발을 뻗어놓았기에

별다른 간절함이나 귀족들의 단결등이

부족했고 뭔가 물탄거같이

무능한 느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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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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