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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옛날에 한국이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으로 나뉘어있을때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태종무열왕 ,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했고

통일 신라시대가 시작됩니다

통일신라는 풍요와 번성을 누렸으나

점점 신라 왕족과 귀족들은 승리감에 도취해 교만해지고

사치를 하다가 나라는 점차 가난해졌습니다


그러다 통일신라도 어지러운 시대가 시작되는데

이런 시기에 왕건은 송악이라는 오늘날

경기도 개성시 지방에서 877년 1월 4일에 태어납니다


원래 왕건의 아버지 왕륭은 송악지방의 호족으로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고

왕건이 태어나기전에 송악지역에 집을 지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 보고는


<어떤 스님>기장 심을 자리에 삼을 심고 있군


하고는 혀를 끌끌 차고 지나갔습니다


이에 왕륭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스님을 따라가서


<왕륭>스님 ! 스님 !

방금 하신 말씀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


라고 했고

이에 스님은

그 자리는 집을 짓기에 적당하지 못한 곳이라며

새로운 자리에 집터를 잡아주었고

다시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이곳에 집을 지으면

앞으로 1년후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들의 이름은 건이라 하시오


아이는 어지러운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나라를 새롭게 세울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당분간 아무에게도 하지 마시오


<왕륭>,, 알겠사옵니다

스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


<스님>나는 사람들이 도선이라고 부른다오


왕륭은 놀랬습니다

도선스님은 신라에서 가장 명망이 높고

땅, 지역에서 행복과 불행을 예측하는

풍수지리설에 능했던 스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왕륭은 땅에 업드려 도선 스님에게 절을 했고

도선 스님은 유유히 다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왕륭은 도선스님이 알려준 자리에 집을 지엇고

정말 스님 말대로 얼마후 부인이 임신하고 얼마후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스님 말대로 건이라고 지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정말 잘생겼었고 왕건은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서 어린 시절에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활쏘기 연습도 열심히해서

활쏘기를 매우 잘했습니다


<왕륭>건아 너를 보니 활쏘기에 능하셨던

고구려 시조 주몽이 생각나는구나

우리 송악사람들은 지금은 신라인이지만

모두가 고구려인들의 후손이었고

우리의 조상님은 백두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어린이 왕건은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고는 했고

부유한 집 아이와 가난한 집아이를 가리지 않고 함께 놀았고

또 전쟁놀이를 할 때 활쏘기를 잘해서

왕건의 편은 항상 승리해서

아이들은 항상 착한 왕건에 편에 서고 싶어했습니다


왕건은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되서

17세가 되었는데

옛날 그의 집 자리를 알아봐주고

왕건의 이름을 지어주었던 도선대사(도선스님)가 다시 왕건을

찾아왔습니다


<도선대사>네가 건이로구나


<왕건>저의 이름은 어찌 아시옵니까 ?


그렇게 도선대사와 왕륭의 이야기를 들은 왕건은

도선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고

도선대사는 왕건에게


<도선대사>너는 혼란한 시기에 하늘께서 정해주신 명당에서 태어났으니

삼국시대 말기의 사람들이 너가 구제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라고 말하고


<도선대사>너의 무예는 훌륭하구나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을 지휘하려면 무예만이 아닌

병법과 병술을 터득해야 한다


고 말하고는

군대를 지휘하는 법, 진을 치는 법 , 지형을 선택하는 법 등

여러 군사병법을 왕건에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왕건은 도선대사의 가르침에 열심히 수련했고

점점 그에게서는 장수의 면모가 갖춰지었습니다


통일신라 말기에는 왕족과 귀족들이 저마다 왕이 되기 위해

왕위쟁탈전을 했고

이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러다 신라에는 진성여왕이 즉위하고

진성여왕은 사치와 향락과 음란에 빠져서

백성들의 원망은 나날히 높아져갔고

이에 지방에서는 수많은 도적떼들이 나타났고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신라 말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북방의 도적은 궁예였습니다


궁예는 신라국왕의 서자(본 부인이 아닌 첩에게 낳은 아들)로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불길한 징조가 있다며 버려졌는데

궁예를 버릴때 신라 왕실에서는

높은 곳에서 아기였던 궁예를 던졌고

당시 궁예의 유모는 밑에서 떨어진 궁예를 받았는데

이때 실수로 궁예의 눈을 찔러서 궁예는 한쪽 눈이 없는

애꾸눈이 되었습니다


유모는 그렇게 받은 궁예를 몰래 데려와서

궁예를 숨어 살며 키웠고

궁예는 성장한 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

신라 왕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삐뚤어진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궁예는 세달사라는 강원도 지역의 절에 들어가서

승려(스님)가 되었고

이곳에서 많은 수련을 합니다


당시 신라말기에는 여러 도적들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궁예 역시 기훤이라는 도적 밑으로 들어갔으나

기훤은 궁예의 됨됨이나 능력을 알아봐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궁예는 다시 기훤을 떠나서

다른 도적떼였던 양길 밑으로 들어갔고

양길은 궁예의 능력을 알아봐주었고

궁예는 적은 병력으로 신라의 성을 함락시키는 등 전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고

부하들과 함께 고생하면서 약탈한 물건들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부하들이 그를 무서워하면서도 또한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궁예는 점점 힘이 커져 양길의 휘하에서 나왔고

신라 북방의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지역들을

계속해서 정복해나갔습니다

당시 신라 백성들은 신라 왕실에 큰 불만을 느껴

너도나도 도적이 되거나 반란 세력으로 들어갔고

이에 궁예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나갔습니다


그러다 역시 신라 북방의 송악지역에 있었던

호족이자 왕건의 아버지였던 왕륭은

궁예의 세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껴서

왕건에게,,


<왕륭>현재는 궁예의 세력이 강하다

건이 너는 일단 나와 함께

궁예의 밑에 들어가서 힘을 기르며

형세를 지켜보자꾸나


라고 했고

왕륭과 왕건 부자는 궁예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예는 당시 19살의 늠름한 왕건을 보고

그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며

왕건을 자신의 부하로 삼고 좋아했고

왕건 역시 출중한 무예 실력으로 궁예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궁예는 옛날에 양길의 부하였는데

이후 양길은 자신에게서 독립한 궁예의 세력이 커짐에 불안하다가

결국 궁예를 치려고 결심했고

궁예는 양길의 세력을 제압하고

왕건은 궁예의 명령을 받아서 양길의 본거지를 공격해서

공을 세우게 됬습니다

지혜롭고 무예 실력이 능했던 왕건에 당시 사람들은

감탄했고 궁예 역시 매우 흡족해하다가

나라를 세울 것을 생각합니다


이전에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궁예에게

새로운 터를 잡아야 한다 해서

자신의 본거지였던 송악을 추천했고

이에 왕건은 송악에 성을 쌓았는데

왕륭의 원래 의도는 궁예를 위해 성을 쌓는게 아닌

훗날 왕이 될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송악을 키우려 했던 의도였습니다

생전에 왕륭은 왕건에게,,


<왕륭>건아 송악성을 매우 튼튼하게 쌓아야 한다

훗날 너의 뜻을 이루어줄 지역이다


라고 말했고

그런 아버지의 뜻을 받든 왕건은 튼튼하게 송악성을 쌓았고

얼마후 궁예는 송악을 도읍으로 정하고

옛날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으로 후고구려를 건국합니다


이에 남쪽에서는 견훤이 옛날 백제를 잇는다는 뜻으로

후백제를 건국하고

옛날 고구려, 백제 , 신라가 맞섰던 삼국시대같이

또다시 한국은 삼국으로 갈라져서

후고구려, 후백제 , 신라로 나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됬습니다


왕건은 궁예 밑에서 충실히 장수로 일하며 공을 세웠고

왕건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항복하면 살려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왕건의 밑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왕건은 궁예에게 말했습니다


<왕건>저에게 수군을 주신다면 제가 배를 타고

후백제의 후방을 공격해서 함락시키겠사옵니다 !


<궁예>왕건공이 그렇다면 그리 하시오 !


왕건은 수군을 편성해서

배를 타고 후백제의 뒤를 공격해서

나주를 함락시켰고

당시 왕건이 나주에 머무를 때였습니다


왕건은 목이 말라서 나주의 우물가로 물을 마시려 갔고

우물가에는 17살 쯤의 예쁜 처녀가 있었습니다

왕건은 여인에게 물 한잔을 청했습니다


<왕건>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여인은 수줍게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물을 바가지에 가득 담았고

우물가의 버들잎을 따서 물 바가지에 넣어서

왕건에게 주었습니다


갈증이 났던 왕건은 급하게 물을 마셨으나

버들잎 때문에 빨리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천천히 물을 다마신 왕건은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왕건>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


<여인>목이 몹시 말라보이시길래 급히 물을 마시시다

체할까 염려되어 그리 했사옵니다


왕건은 여인의 지혜에 감탄했는데

왕건은 그날밤 묵을 곳을 찾았고

나주 지역의 호족 오다련의 집에 묵었는데

알고보니 그 호족 오다련의 딸은 낮에 물을 길러주었던 처녀였고


오다련은 왕건의 인물됨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자신의 딸과 혼인을 시키려 했고

왕건은 항상 전장에 나가는 자신때문에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본 오씨 여인이 말하기를


<오씨 여인>소녀, 장군께서 오시기 몇일 전에 사실

황룡 한마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와 소녀의 몸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사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왕건은 오씨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왕건은 나주지방 정복등

수많은 공을 세워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그러다 송악 지역에 실증을 느낀 궁예는

수도를 철원지역으로 옮겼고

궁궐을 신라 왕실보다 화려하게 지으며 점차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미쳐갔습니다


궁예는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자청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보살이라 칭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관심법' 이 있다고 하며

신하들을 의심하며 죽였습니다


왕건 역시 불안을 느껴 왕건도 점점

궁예가 있는 궁보다는 바깥에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우고 있었고

미쳐가고 있던 궁예는

그러다 왕건까지 의심했고

어느날 궁에 돌아온 왕건에게 칼을 빼어들고는


<궁예>짐은 관심법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왕건공의 마음에는 반란을 할 마음이 있음을

짐은 느낄수가 있도다

내말이 맞을테지 ?


이에 왕건은 깜짝 놀랐습니다


<왕건>그,, 그럴리가 있겠사옵니까 폐하 !!


그러나 이미 미쳐있었던 궁예의 의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궁예>짐은 미륵불이니라 !

짐은 관심법으로 그대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전부 읽을 수 있거늘

짐을 속이려 하는 것인가 !!


이에 옆에서 붓을 들고 있었던 문관 최응이

일부로 왕건쪽으로 붓을 떨어트려

왕건 곁으로가서 붓을 줍는 척하면서 왕건에게 말했습니다


<최응>현재 왕은 미쳐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하십시오


이에 그 뜻을 안 왕건은

궁예에게


<왕건>폐하 !

폐하의 말이 맞사옵나이다

폐하의 관심법을 속일수가 없을 뿐이니

소인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


이에 궁예는 갑자기 껄껄 웃으며


<궁예>허허허허허 그렇지

왕건 아우도 짐의 관심법을 알고있구만 ~


짐은 솔직한 왕건공을 용서하겠노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거라 !


<왕건>폐하의 은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사옵니다 !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폐하의 말씀에 따르겠사옵니다 !


궁예는 점차 세력이 커진 왕건에 불안을 느꼈으나

왕건의 인덕등에 차마 죽이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온 왕건은 자신에게까지 의심이 돌아오자

큰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궁예는 점점 미쳐서

자신의 부인이었던 왕비와 자식들까지

칼로 죽입니다


신하들은 미쳐가는 궁예에 큰 불안감을 느꼈고

결국 홍유 , 배현경 , 신숭겸, 복지겸 네명의 장군들은

밤에 왕건의 집에 몰래 찾아왔습니다


<홍유 , 배현경, 신숭겸 , 복지겸>지금 왕이 미쳐있사옵니다

왕장군께서 왕위에 오르기를 신들은 청하옵옵니다 !!


이에 왕건은


<왕건>아무리 왕이 폭정을 한다해도

신하로서 두마음을 품을 수는 없도다


이에 뒤에서 듣고있었던

왕건의 부인이 손수 갑옷을 들어서

왕건에게 입히자

결국 왕건은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네 장수와 함께

갑옷을 입고 군사를 모아서 궁예가 있는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왕건의 군사들이 궁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자

궁예는 평범한 백성들이 있는 옷을입고 도망쳤고

산에서 풀뿌리를 캐어먹다가 얼마후 백성들에게 발견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게 918년 왕건은

홍유 ,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박술희 등의 추대를 받아서

나라를 건국했고 나라의 이름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고려로 지었습니다

왕건은 얼마후 수도를 다시 송악으로 옮겼고

그렇게 한국의 500년 왕조 고려가 건국되는 것입니다


<왕건>옛날 아버지께서 송악성을 튼튼히 쌓으라는 말이

이런 의미셨구나,,


후삼국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왕건과 고려군은 후백제군과의 전쟁에서 여러 위기도 겪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어질고 현명했던 왕건의 인덕에

왕건에게 몰려들었고

후백제의 견훤은 이전에 아들들이 왕위계승문제로

다투다가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 절에 가두자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해서 왕건에게 항복합니다


당시 신라 역시 후백제의 견훤에게 학살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대세가 왕건에게 기울어지자

어질고 덕있었던

왕건에게 항복했고 신라 천년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결국 왕건은 항복한 견훤의 도움에

얼마 안남았던 후백제와 격전을 벌이고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을 완전히 통일했습니다

후삼국전쟁 시기 당시에는 발해까지 멸망해서

발해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 왕건에게 대거 유민들이

항복하기도 했고

어질고 착했던 왕건은 역시 이들을 모두 포용해서

신라와 후백제, 발해까지 아우른

한국의 유일한 정통 왕조가 되었습니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해 북방의 고구려 땅을 되찾으려 하는

'북방정책' 을 시행했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시했습니다


그렇게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일 통일한 왕건은

죽기 직전 왕건은 후손들에게

유언으로 10가지 훈계를 남겼는데


이는 불교를 중시하고 거란을 배격하고

서경(평양)을 중시해

옛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고

왕이 된 자는 공평하게 일을 처리해 민심을 얻고 백성을 위하는 등

후손들에게 마음속에 간직해 지키라고 유언했고

이를 고려 태조왕건의 '훈요 십조' 라고 합니다


죽기 직전 왕건은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왕건이 죽었는지 알고 신하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에 왕건은 눈을 뜨고


<왕건>왜 우느냐


이에 신하들은


<고려 신하들>폐하께서는 우리의 어버이신데

우리를 떠나려고 하시니 너무 슬프옵니다


이에 태조 왕건은 허허 하고 웃으면서


<왕건>인생살이란 본래 그렇게 덧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66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라봉봉>한국사 500년 고려왕조시대를 연 태조왕건의 이야기입니다

나라를 건국한 시조를 태조라 부르기에 우리는 왕건의 이름 앞에

태조를 붙여 고려 태조왕건이라고 부르는 인물입니다


그는 혼란한 통일신라 말기에 태어나서

어질고 포용적인 모습으로 인망을 쌓았고

결국 난세라 불리는 어지러운 시기를 통합했고

그가 세운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긴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되는 왕조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약 500년간 존속된 왕씨 왕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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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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