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겍 중국의 혼란, 분열시기인 위진 남북조 시대를 다시 통일한 왕조가
나타났고 바로 수나라였습니다
수나라는 북방 유목민족 선비족 계열의 왕조였고
수나라를 통일한 첫 황제 수 문제는 중국의 명군이라 불리는
현명한 임금이어서 이당시 국력이 강화됬습니다
수문제는 과거제도가 처음 실시됬고
당시 과거제도의 의의는 구품중정제같이
인맥의 영향이 아닌 시험으로 인재를 등용하기에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한다는 의의가 있었다고 하고
이제도는 초기에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이후 한국에도 들어오고
점차 그 권위가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문제 다음황제인 수양제때는 대운하가 건설됬고
대운하는 황하강과 양쯔강을 잇는 남북을 잇는 거대한 교통수로입니다
중국 양쯔강 이남을 강남이라 하는데 이 수로로 인해
강남의 거대한 물자를 화북지역쪽으로 옮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양제는 113만 군대를 동원해서 한국 고구려를 침공했고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등
고구려의 방어로 고구려 원정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수나라는 이 어마어마한 군대 징병 등으로 인해 민심이 피폐해져서
진시황의 진나라같이 중국을 통일한 왕조였음에도 짧은 기간만에 멸망하고
이후 당나라라는 왕조가 들어섭니다
당나라 1대 황제 당고조는 무난무난한 통치를 했고
당건국에 기여한 당고조의 아들 이세민은 '현무문의 변' 이라는
중국판 '왕자의 난' 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고
당나라 2대황제가 됩니다
바로 당태종 이세민으로 이인물은 중국의 야심가이자 명군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그가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엮은 '정관정요' 라는 책이 생겼는데
이 책은 중국 황제들의 제왕학 교과서가 됬습니다
정관정요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정관정요>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옷) 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
그는 현명한 임금이었지만 그것은 중국입장에서고
한국입장에서는 수양제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원정을 한 인물이고
또 중국내에서도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는 점 등
야심가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인물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방어전 등
당태종의 침공을 막아냈지만
이후 당고종과 한국 남방왕조 신라의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합니다
수나라는 진시황의 진나라와 ,
당나라는 유방의 한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진나라나 수나라는 중국을 통일했지만 가혹한 통치등으로 짧게 유지됬고
이후 한나라와 당나라가 그 유산들을 이어받아 오랜 기간을 이어갑니다
당 역시 수와 마찬가지로 선비족 계열 왕조였고
당시 당나라에서도 도교가 유행해서 아예 당나라 황실에서는
스스로를 노자의 후손이라 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오랜 기간 번성하며 국제국가로 발달했고
유목민적 기풍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있었고
외국인들에게도 관직을 개방했던 나라였지만
일단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 전술을 사용한 나라였습니다
국제국가 당나라에
여러 한국의 발해나 신라 , 일본 , 이슬람 등 여러 외국 상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당나라는 비단길을 통해 서역과 활발히 교류했고
대표적인 당나라 유산이 중국의 도자기 기술과 서역의 염료를 합쳐 만든
컬러 도자기 '당삼채' 가 있습니다
당나라는 당삼채같이 화려한 문화들이 나타났고
화려한 귀족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당나라는 국제국가였기에
이를 배우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사신이나 유학생을 파견해 배워가기도 했고
일본의 '견당사' 파견이 유명합니다
한국 ,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당나라의 3성 6부제 같은
행정 제도인 '율령' 을 자국에 도입했고
당나라 수도 장안성을 모방한 수도 도시개발 ,
한자와 유교와 불교 등을 공유하는 등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당나라 당시부터 본격적인 '한자 문화권' 이 형성됩니다
서역으로도 팽창하려 했던 당나라는 서역과의 충돌도 있었는데
중앙아시아 탈라스 강 근처에서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슬람 제국과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당시 당나라 군 지휘관은 한국 고구려 유민출신인 고선지 장군이었고
이슬람 제국 아바스 왕조는 당나라를 물리쳐 중국의 서방 진출을 저지시킵니다
이 전쟁 당시 중국의 종이 제작기술인 제지기술이 이슬람 지역으로 ,
이슬람 지역에서 서양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비단길 지역은 오고가는 많은 상인들로 번성했는데
당나라 시대에 비단길 지역에 석굴인 막고굴 등이 지어졌고
둔황 석굴(둔황 막고굴) 이 유명합니다
당나라 6대 황제 당 현종은 양귀비라는 여인을 총애했고
양귀비는 동양 미인의 대명사를 뜻하게 됬고
미인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워졌기에
마약인 아편을 만드는 화려한 꽃을 피는 식물인 양귀비 식물의 이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현종은 양귀비에게 빠져 정치를 놓고
양귀비의 친척 오빠 양국충이나
양귀비의 친척들에게 벼슬을 나눠주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그렇게 오랫동안 번성했던 당나라는 지역의 '절도사' 라는 지역 군벌들이 일어나서
혼란에 빠집니다
안녹산이라는 절도사는 간신 양국충을 토벌하자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당나라는 큰 혼란에 빠지고 진압되기는 하나
이후에도 안녹산의 부하 사사명이 반란을 일으켜 오랫동안 번영했던 당나라도
점차 혼란의 시기로 가게 됬습니다
이에 당나라 쇠락의 시발점이라 불리는 이 사건들을
'안녹산의 난' 혹은 같이 묶어서 '안녹산 & 사사명의 난' 혹은
'안 & 사의 난' 이라 부릅니다
그러다 당나라는 결국 '황소의 난' 이라는 농민반란으로 멸망합니다
중국 반란 , 멸망 패턴이 비슷한게
그렇게 거대한 제국이자 세계적 초강대국이었음에도
멸망 패턴은 간신 혹은 내시등이 황제 가까히서 어지럽히다가
반란 , 농민반란이 일어나고 제후나 군벌들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패턴들이있고
아무리 거대한 제국이어도 백성들이 고통받는데 지속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에서는 편의상 시대를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
로 나누기도 하는데
중국사의 어디까지를 고대라 부르냐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한국은 보통 신라를 마지막 고대왕조라 하고 고려시대부터 중세라 하기에
비슷한 시기의 중국 당나라까지는 중국 고대왕조로 엮을 수 있겠고
이후부터 본격적인 중세시대가 시작된다 할 수 있습니다
<라봉봉>중국 통일왕조 수, 당나라 이야기로 특히 당나라는
동아시아에 오랜 영향을 끼쳐
일본에서는 당나라 멸망 이후에도
중국을 오랫동안 당나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군기가 빠져 오합지졸인 군대를 '당나라 군대' 라고
부르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 당나라는 선비족 계열의 유목민족 나라로
군사력이 아주 강했다고 하고
대신 당나라와 맞섰던 한국 왕조들인 고구려나 신라인들이
중국을 비하하려 사용한 용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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