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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는 도중에 한번 망해서

왕망이라는 인물의 신나라라는 나라가 짧게 건국됬다가

이후 한나라 후손 광무제 유수가 다시 한나라를 건국해서 왕조가 이어지게 됬고

이에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전한 , 광무제 유수가 세운 한나라를 후한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후한 말기 태평도라는 종교를 믿는 농민들의 농민봉기가 일어났는데

농민들은 머리에 황색 두건을 쓰고 있었고 이에 이를

'황건적의 난' 이라 부릅니다

 

황건적의 난

 

이시대를 배경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소설 '삼국지' 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시작됬고

전국의 군웅들이 다시 일어나서 다투던 시기이였고

대표적인 세세력이 위나라 조조 , 촉나라 유비 , 오나라 손권 으로

삼국시대가 시작됩니다

당시 제갈량 혹은 제갈공명라는 인물이 활동하던 시기였고

제갈량은 삼국지 소설에서 천재적인 재능과 청렴함 등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중국 인물이자

제갈량의 남만정벌중 밀가루 안에 고기를 넣어 찐 '만두' 를 만든 인물로 유명합니다,,

 

제갈량

 

제갈량이 발명했다는 만두

 

당시는 여러 일화가 있는 소설과 달리 전쟁과 혼란으로 백성들이 죽어가던 극한의 시기였고

오죽하면 실제 삼국지 소설과는 달리 당시 남은 것은

제갈량의 '만두발명' 밖에 없었다 는 우스개소리도 있습니다

하여튼 소설 삼국지의 영향이 큰 시기인데 실제 삼국지 소설은

큰 줄기는 역사를 따르고 있기는 하나

실제 당시 중국 삼국시대 역사와 다른 면이나 재미를 위한 창작도 들어가 있어

그대로만 믿지는 말고 당시의 분위기나 시대상을 보는 정도로 보는게 좋은거 같습니다

 

한나라를 계승했다는 촉나라의 유비가 제갈량과 함께 촉지방에서 열심히 버텼으나

생산력이 높고 좋은 지역에서 자리잡았던 위나라에 비해 힘이 밀렸고

그러다 촉나라 제갈량의 라이벌이었던 위나라 신하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권력을 잡고 사마의의 후손들이 세운

'진' 이라는 나라가 삼국을 통일했습니다

 

중국 삼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초대황제 사마염

 

그러나 진나라 역시 일단 사마씨가 힘으로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긴 한데

힘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정통성이 없었고 결국

'팔왕의 난' 이라는 전국적 반란을 시작으로 중국은 또다시 분열하고

'오호십육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오호는 다섯 북방 오랑캐를 뜻하고

십육국은 16개로 나뉜 나라를 뜻하는데 당시 세워졌다 멸망한 나라들은

16개가 넘기에 많은 나라를 뜻합니다

 

중국이 혼란해지자 북방에서는 흉노, 선비등의 유목민족들이 대규모로 남하하기 시작했고

역시 중국 남쪽에서도 중국왕조들이 일어났고

상당히 많은 혼란이 있어서 중국의 막장시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학자들도 짧게 존속된 나라들도 많고 해서 분열기니깐 대충넘어가자는 경향도 있다하고

여러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다 북방에서는 선비족 계열 왕조 '위'가

남쪽에서는 한족(중국인) 계열 왕조들이 일어났는데

이에 이를 남북조 시대라 불리고

 

조조의 위나라 + 사마씨의 진나라 + 오호십육국 + 남북조 시대

 

를 통틀어서

'위진남북조 시대' 라 이야기 합니다

 

위진남북조 시대

 

당시 한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투닥거리고 있었고

나름 중국의 분열을 틈타 중국에 뺏긴 고조선의 옛 영토를 수복하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하여튼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기존 한나라와 다른 양상 , 문화들이 나타났는데

위진남북조시대부터 북방의 유목민들이 중국에 밀려내려오면서

한나라 시기를 거치며 보수적이며 엄격하게 변하게 된

유교적 질서에 반동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났고

나름 실용적인 유목민적 기풍들이 중국에 들어오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위진남북조 시대 당시에는 유교보다는 도교사상이 더 인기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유행했던 도교사상이 '청담사상' 입니다

 

<청담사상의 특징>

1) 사치와 탐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청렴, 결백히 살아야 함을 중요시여김

2) 허례허식에 사로잡힌 유가사상에서의 탈피

3)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들

4) 현실도피적 신선사상 유행

 

복잡한 현실에서 탈피해 자연과의 삶을 추구했던 청담사상

 

위진남북조 시기 당시 혼란스러운 시기에

정치계에서 떠나 대나무 숲속에서 거문과와 술을 즐기며

한가롭게 청담사상 이야기를 하는 일곱 선비도 있었는데

이를 '죽림칠현' 이라고 합니다

 

죽림칠현

 

이외에도 위진남북조 시대 특징으로는

역시 유교는 기존 한나라 시대에 대한 반발등으로 쇠퇴했고

도교 이외에도 불교도 크게 유행해서

남북조 시대에 북방 선비족 계열 왕조인 북위에서는

'원강석굴' 이라는 대형 불교 석굴, 불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돌을 깎아 만든 거대 석불인 원강석굴

 

북방 유목왕조들은 중국 북부지역, 화북지방에 자리잡아 여러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으나

군사력은 강했지만 중국인들보다 문화력이 부족했던 유목왕조들이었기에

한화 漢化 , 중국화 되어 민족들이 중국인으로 흡수되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를 '한화' 라고 부릅니다

 

이외에도 한나라 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의 차이점으로는

한나라 시대에는 인재 등용방법이

'향거리 선제' 라고

지방관이나 지방 유력자가 관내의 우수한 인재를 추천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삼국시대와 위진남북조 시기를 거치며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이 죽고 마을, 향촌들이 붕괴되자

향거리 선제는 힘을 잃게 되었고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이에

'구품 중정제(혹은 구품 관인법)' 가 생겨나게 됬습니다

 

<구품중정제의 특징>

1) 중정이라는 관직을 가진 사람이 각지의 지방의 인재를 찾아서 추천하게 함

 

2) 벼슬을 1품에서 9품까지 9단계로 나눔 (이는 정1품 이런식으로 한국에서도 영향을 받았고

오늘날도 ' 1급 공무원 ~ 9급 공무원 ' 하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구품중정제로 인해 벼슬을 추천하는 '중정' 의 힘이 강해졌고

귀족들 역시 구품중정제로 벼슬을 쉽게 얻으려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며

귀족적인 문화들이 나타났고

당시 '문벌귀족' 들이 나타났습니다

문벌귀족들은 저마다 자기 가문 , 집안을 높여보이려 했고

이에 또다시 권력다툼과 허례허식 문화들이 슬금슬금 나타났습니다,,

 

하여튼 중국에는 당시 이런 오랜 분열과 혼란의 시기가 있었고

이후 수나라라는 왕조가 중국을 통일하며

중국 통일왕조 수, 당나라가 등장하게 됩니다

 

<라봉봉>위진남북조 시기는 혼란의 시기였기에

크게 이야기가 되는 시기는 아니지만

여러 사상과 정책들이 나타났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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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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