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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때는 동네 건달들의 가랑이를 기며

이후에도 항우에게 무시받았던 한신은

유방군의 대장군이 됬고 유방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했는데

대략 요약해보면

항우는 강할지언정 백성들이 두려워 할 뿐 마음으로 따르지 않고있고

부하들도 불만이 많으니 동쪽으로 거병하면 무너트릴 수 있으며

특히나 옛 진나라의 장수들이 동쪽의 삼진지역을 지키고 있기에

쉽게 삼진지역을 평정 할 수 있다 말했고

이에 유방은 이후 삼국지시대에 촉나라의 유비가

오랫동안 촉지방에 거점을 잡아 머문것과는 달리

촉지방에 온지 몇개월만에 동진을 시작합니다

 

촉지방에 올때 항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불태워버린 가도들 말고

원래 가도 건설전 쓰이던 길로 유방군은 관중으로 출격했고

관중지역을 지키고 있던 옹왕 장한은 진나라시절 진승과 오광의 난을 진압한

옛 진나라의 명장이었지만 유방군이 촉지역과 관중지역의 유일한 길이라는

가도를 불태워버렸음에 유방군은 가도를 고치는 척하며

장한의 주의를 집중시키다 다른길로 기습해 장한을 격파하고

관중지역을 장악합니다

관중은 진나라의 수도지역이자 중국의 오랜 수도지역이자 핵심지역이었기에

'관중을 얻는자가 천하를 얻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기에

유방은 이 알짜배기 땅을 점령하고 이후부터

주변 지역들을 계속 손쉽게 점령해나갔고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세를 불립니다

유방이 제후군들을 모이게 하자 56만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대군이 모였고

이에 유방은 항우의 초나라 수도 팽성에 진격합니다

당시 항우는 제나라로 원정을 나갔는데

성의 백성들을 몰살하며 강경한 진압을 하던 항우에

제나라 백성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항우가 이곳에서 허우적댈 때 유방은 제후들을 모아

항우의 초나라 수도 팽성을 점령합니다,, (요즘말로 빈집털이)

 

이에 항우는 정예군 3만을 뽑아서 서둘러 귀환해서

승리에 도취되서 팽성에서 놀던 한나라 유방군을 급습했고

3만 vs 56만이라는 19배 차이의 중국사 대규모 회전인

팽성 대전이 일어납니다

 

팽성대전

 

56만의 한나라 군은 항우의 3만 정예병에 무너져 내려서

팽성 동쪽 곡수와 사수에서 10만 병사들이 죽었고

남쪽으로 도망치던 한나라 패잔병들도 항우군에게 수수에서 살육당해서

10만명이 물귀신이 됬습니다,,

 

유방역시 허겁지겁 도망치게 됬고

초군이 멀리서 추격해오자

유방은 수레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자신의 아들과 딸을 수레에서 던졌습니다 (;;)

이에 유방의 부하장수 하후영이 아이들을 주워왔지만

당황한 유방은 또다시 자식들을 수레밖으로 던졌고

이에 하후영은 다시 아이들을 주워왔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하후영에게 검을 휘둘러 죽이려 했는데,,

이에 화가난 하후영은 유방에게

 

<하후영>아무리 하찮은 짐승도 

자기새끼 귀한 줄 아는데 주군께서는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하고 유방을 책망했고 결국 유방은 아이들을 던지는 것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피신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유방의 아버지 태공과 유방의 아내 여치는 항우에게 잡혀버렸고

항우는 일단 유방의 가족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후 형양지역에서 버티기에 들어간 유방의 한군은

오랫동안 버티며 항우의 초군을 막아내지만

초군의 격렬한 공격에 식량이 바닥을 보이는데

한나라의 진평이라는 인물이 항우군에 이간계(이간질 계책)를 써서

항우의 책사, 참모였던 범증 등 항우의 부하들과 항우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했고

항우는 간단한 유방군의 이간계에 넘어가버려서,,

범증을 의심하다 범증은 항우의 곁을 떠나고 곧 병으로 사망합니다,,

 

범증 , 범증은 항우군의 대표적인 책사였지만 항우는 유방의 이간계에 말려들어 범증을 의심하는 등 항우는 여러 좋은 조건에서도 좋지 못한 선택들을 했습니다

 

비록 이간계는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초나라군이 강한것은 여전해서

결국 유방의 형양은 초군에게 함락됬고

유방은 도망쳐서 관중으로 피신해서 다시 세력을 재정비했고

 

그러다 원생이라는 인물의 충고를 들은 유방은

항우의 주의를 끌어 항우를 유인하고는

북진해서 성고로 들어갔는데

항우는 그럼에도 빠른속도로 다시 돌아와 성고를 포위하자

유방은 몰래 물러나서 한신이 있던 군단으로 향해

자고있던 한신의 군대를 자신의 군대로 편입시켜서

한신의 군권을 회수하게 됩니다,,

 

이후 유방은 한신에게 제나라를 평정하게 했고

본인은 항우와 교전하러 나섰는데

정충의 조언으로

보루(방어 구축물)를 높이 쌓고 참호(방어를 위해 판 구덩이)를 깊이 파서

굳게 지키기만 했고 팽월에게 군사를 줘서 항우를 괴롭히게 하자

항우는 다시 팽월군을 막고 광무에서 유방을 공격하려 했는데

유방의 한군이 산에 틀어박혀 버티기만 하자 (광무 대치)

초군 역시 오랫동안의 대치상태에 지쳐있었고 이에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 태공을 솥에 넣을것처럼 하면서

 

광무 대치

 

<항우>네 아버지가 삶아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항복해라 !

 

라고 엄포를 놨지만 유방은 이에

 

<유방>우리가 예전에 의형제를 맺었으니

내(유방) 아버지는 네(항우) 아버지이기도 하다 ! 

기왕 삶아먹는 거 네가 네 아버지를 삶은 국물을 나도 먹어보자꾸나 !

 

라고 맞받아쳤고 (;;)

 

이에 항우는 단둘이 1-1 대결로 결판을 내자했지만

유방은 본인은 힘이 아닌 지혜로 싸운다며 거절했고

이에 항우는 쇠뇌(석궁) 잘다루는 부하를 숨겨두다가

유방을 저격하게 했고

화살 하나가 유방의 가슴에 맞았는데

유방은 한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걱정하며 발을 문지르며

 

<유방>고놈 내 발을 맞쳤구나

 

하며 도망쳤고

유방은 가슴 통증으로 병상에 누웠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걱정해 일부로 군중을 돌며

병사들이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멀쩡한 척을 했습니다

 

<라봉봉>팽성대전은 56만 대 3만이라는 압도적인 19배라는 전력차에도

방심한 한군의 패배였고 중국사의 유명한 전투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로 인해 유방군은 위기에 겪게 됬지만

그럼에도 인심을 잃지 않아 계속 세를 불려가고 있었고,,

반대로 강력했던 항우군은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민심의 이탈 등 계속해서 세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유방군의 팽성대전이나 항우군과의 대치 등은

'전투에서는 계속 졌어도 전쟁에서는 이겼다' 라는 말의

표본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방도 자식을 수레에서 던지고 도망쳤다거나

아버지를 삶은 국물 한번 먹어보자 한 사례는

유방의 가족에 대한 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로 유방은 여색을 밝히며 부인 여후를 고생시키기도 했고

인덕과 뛰어난 정치감각이 있었다는 점 이외에는 가족적인 면에서는

비정한 모습을 보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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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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