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에 '만주국' 이라는 허수아비 국가 , 괴뢰국을 세웠는데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데려와 황제에 앉히고
일본인 관료들을 만주국 대신에 임명해 만주국을 사실상 일본 영토로 만들었고
국제 사회에서는 이에 일본에 대한 많은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일본 제국)은 계속해서 군사비 지출을 늘렸고
계속해서 야심과 망상에 빠져들어 동아시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그당시에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고
자본가와 자유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는 국민당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자금력 등으로
공산당을 중국에서 토벌하려 하고 있었고
공산당 역시 국민당에 피해다니며 다시 재기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이에 '국공내전' 이 시작됩니다 (1차 국공내전)
결국 국민당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자금력 등으로
1933년 공산당을 궤멸 직전까지 몰았고
80만 국민당 대군으로 8만 공산당을 거의 압박했고
결국 궤멸 위기에 몰린 중국 공산당은
허겁지겁 국민당에 쫓겨 거주지를 버리고 서쪽으로 대이주를 시작했고
이를 중국 근현대사의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사건인
마오쩌둥의 '대장정' 의 시작입니다
대장정은 말그대로 국토대장정이라는 말과 같이
멀고 먼 길을 떠나는 행보라 할 수 있는데
마오쩌둥은 멸망 직전의 8만 6천명의 공산당 세력을 이끌고
국민당에 쫓겨 중국 서부로 탈출했고
당시 공산당은 국민당보다 양, 질 면에서 모두 약해서
답이 없던 상황이었고
대장정 역시 처음부터 계획하고 떠났다기 보다는
무작정 쫓기듯이 떠난 중국 공산당의 절체절명의 대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마오쩌둥은 공산당 8만을 이끌고
산도 넘고 강도넘고 고생고생 하고 같이 전우애와 친목도 다지고
국민당과 교전도 벌이고 하며
같이 동거동락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산당의 큰 신임을 얻고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떠올랐고
이 대장정 기간동안 중국 공산당은 중국 국민당보다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치단결하듯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마오쩌둥은 본인이 공산당 지도자였음에도 공산당 교리나 이론들을
잘 몰랐고 대신 여러 경험과 젊었을때의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공산당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대장정은 2년동안 계속됬는데
처음 대장정을 시작한 8만 여 인원은 90퍼센트가 줄어
거의 3000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고
대신 국민당은 끝까지 공산당을 박멸하는데 실패했고
공산당은 엄청난 생존력으로 살아남았고
대장정으로 얻은 것은
공산당 내부의 일치단결 + 대장정으로 중국 시골을 누비며
공산당군들의 농민들에 대한 공산당 이념전파가 있었는데
이게 엄청나게 컸고
중국은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였기에 중국의 농민들은
사실상 당대 중국 그 자체였다 할 수 있고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사상을 떠나
옛날 유방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곳곳을 누비며
농민들의 마음 , 민심을 얻는데 성공하고
이것은 공산당의 엄청난 잠재적 자산이 되어
훗날 중국 본토 전역이 공산화 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산당 사상의 문제점들을 알고 있기에
또 공산군의 침략을 받은 대한민국의 특성상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에 공산주의가 옳고 그르다 하기도 그렇고
나름 서양에서 산업혁명을 겪으며
노동시간이 매우 길어지자 생겨난 사상이라 보고 있고
그것을 잘못 해석하거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다가 전쟁이 나고 문제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만약 장제스가 공산당이었고 마오쩌둥이 국민당이었다 하더라도
중국 농민들의 민심을 얻은 마오쩌둥이 승리했을것이라 보고있고
당시에는 저마다 이익이나 기회에 따라 움직였지
정말 순수하게 사상을 보고 일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 보고있습니다
하여튼 마오쩌둥은 대장정을 겪으며
공산당을 통일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대장정 끝~)
그리고 1936년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공산당 토벌작전을 격려하려 시안에 방문했는데
시안 군벌이었던 지도자 장쉐량은
당시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고 중국을 위협하는데
계속해서 같은 민족인 국공내전을 벌여 공산당과의 싸우는 것 등에
염증을 느끼고있었습니다
<장쉐량>아놔 지금 일본이 우리를 공격하는데
아무리 공산당 타도도 중요하지만
나라가 망하면 끝인데
이게 무슨짓거리임 ?
<장제스>음,,
그래도 공산당은 토벌해야 된당께
<장쉐량>아니 옛날에 군벌타도할때 힘 합친것처럼
지금은 국공합작을 한번 더해서 일본을 몰아내야 된당께 ?
결국 시안을 방문한 장제스가 장쉐량의 말을 듣지 않자
장쉐량은 장제스를 작고 더러운 방에 가둬버리는 '시안 사건(=서안 사건)' 이 일어났고
결국 장제스도 장쉐량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 공산당과 힘을 합치기로 결정하고
공산당과 '제 2차 국공합작' 을 맺습니다
'제 1차 국공합작' 이 군벌타도 목적이었다면
'제 2차 국공합작' 은 일본군타도 목적이었고
장제스는 못내 공산당을 박멸하지 못한게 아쉬우면서도
부하들의 반발등과 일제의 위협에 못이겨 결국 또다시
동상이몽의 '적과의 동침' 이라 할 수 있는
국공합작이 맺어졌습니다
<라봉봉>마오쩌둥의 대장정은 국민당같이 머리나 정책적으로 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 어떤 호연지기(크고 굳센 마음) 나 본능에 의거해 움직인 것으로 생각되고
일단 장제스와 마오쩌둥 두 인물의 당을 떠나서 능력치만 보면
청년시절 부지런히 독서를 했다는 마오쩌둥이 한 수 더 앞서 봤다고 생각됩니다
장제스는 거대한 국방력과 서양의 신식 기술과 무기에 의존했고
마오쩌둥은 중국통일왕조를 세운 인물들같이
전통에 충실해서 밑바닥 민심을 하나하나 살핀 인물이라 할 수 있고
중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못배운 시골 농민들이었기에
직접 발로뛰며 농민들에게 다가가 하나하나 공산당을 홍보하며
점차 세를 불렸다 할 수 있고
결국 다수는 농민이었기에 공산당은 농민들을 포섭해
다수의 힘으로 중국의 공산화 시켰다 할 수 있어보입니다
하여튼 현대 중국인들에게도 마오쩌둥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시대가 가난했음에도 그의 시대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념과 사상을 제외하고 인물적으로 옛날식으로 본다면
다윗(마오쩌둥)과 골리앗(장제스) 이나
거대한 힘을 가진 항우(장제스)와 맞서 싸운
현대판 유방(마오쩌둥)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그의 노력으로 중국 공산당은 살아남았고
일제의 위협속에 또다시 국민당과의 적과의 동침 '2차 국공합작' 을 시작했고
점차 공산당은 다시 세력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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