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정중부의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무신들에 의해 문신들은 학살당했고
고려 지배자들은 '문벌귀족(문신)' 에서
'무신' 으로 교체됬습니다
무신들은 귀족 출신인 문신들과 달리
평민이거나 천민 출신으로서 전쟁이나 나라에 공을 세워
장수가 된 인물들이 많았고 많은 고려 요직을 차지한 무신들은
자기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이 고려의 새로운 지배세력이 되자
고려백성들은 한편으로는
'나도 ?'
하며 신분상승의 열망들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무신정권 시기 여러 농민 , 천민 반란이 일어났고
그 반란에는 고려 사회의 잘못된 부분등이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저마다 신분이 없거나 출세하고 싶다는 열망들도 담겨있습니다
무신정권 시기 첫 스타트를 끊은 반란은
공주 명학소의 '망이 · 망소이의 난' 입니다
고려에는 행정구역으로 주 · 군 · 현 이 있었고
특수구역으로 '소' 라는 것이 있었는데
소는 천민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소에서는 일반적인 농산물을 조세로 걷지 않고
공예품(도자기 · 기와) , 특산물 (명주 · 종이) , 자원(철 · 금 · 은) 등을 바치는 곳이었는데
진짜 천민들만 거주하는 곳이 아닌
엄연히 양민들도 거주하는 지역이었지만
고려시대 전쟁시기 패배한 지역이나 죄수들이 모여있는 곳 , 유배지 ,
반란으로 격하된 지역 등에
소를 설치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으며
소는 일반 백성들도 천민대우를 받으며
다른 지역들과 달리 더욱 무거운 노동과 세금에 시달려야 했고
무신정권이 들어서자 그 불만이 폭발한 것입니다
1176년 1월
명학소민 망이와 망소이는 공주를 점령했고
이에 고려 조정은 놀라 명학소를 현으로 높이고
민심을 달래려 했지만
이미 반란은 커져 충청도 곳곳으로 퍼졌고
결국 고려 조정과 무신들에 의해 진압되는데
이는 단순히 공주 명학소민만으로 이런 대규모 봉기가 가능한게 아니라
망이 망소이의 난당시 이 구실로 망이 · 망소이편에 붙어버린 백성들은
저마다 고려 조정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온 사건이라
소에 대한 차별을 철폐할 것을 주장한
신분해방운동 + 농민반란이 혼합된 형태로
고려사 신분해방운동의 의의가 있는 사건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망이 · 망소이의 난을 시작으로 고려 전국에는
각종 신분해방 , 농민봉기들이 끊이질 않았고
서경(평양)에서도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무신정변대부터 고려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며
저마다 백성들의 신분제 타파와 출세 열망등이
활발하게 생겨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1179년 9월
패기만만한 26세의 젊은 청년장군 '경대승' 은
정중부와 정중부 세력등을 살해하고
겨우 26세의 나이로 고려 실권자가 됬고
당시 임금인 명종과 비롯한 문신들은
폭정을 일삼던 정중부와 그 일당을 죽인 경대승을 위해
축하연을 벌여줬는데
그곳에서 경대승은 모든 문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경대승>선왕(의종)을 죽인 자(이의민)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대들은 술잔만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
하고 고함쳤고
26세의 이 청년장수가 소리지르자
모든 고려 관료들이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의민 역시 경대승을 두려워해
지방으로 도망가 숨어살았고
경대승은 평소 엄청나게 청렴했던 인물이라
젊은 나이에 고려 최고권력자가 됬음에도
가난하게 살았고 그는 집권이후 자신과 공을 세운 부하들이
교만한 행동을 보이자 곧바로 부하들도 숙청했고
경대승은 문신 우대정책을 펴 많은 문신들을 과거를 통해 등용했지만
이미 대세를 안 문벌귀족들은 고려 무신들과 혼인동맹을 하며
결탁해가고 있어 이미 고려는 무신들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경대승은 정중부의 집권기구였던 중방을 찍어누르고
자신의 사병집단 도방을 키워 고려를 운영해갔습니다
(고려 무신 지도자와 집권기구들의 변화는
일본 쇼군이나 막부의 원조급이라 보시면 됩니다
, 단 차이점은 신분 · 계층이 엄격히 구분됬던 일본과 달리
고려 무신집권기동안은 신분 · 계층 이동이 활발했음)
그러나 경대승은 너무 올곧은 성품때문인지
정작 무신정권에 의해 왕위에 오른 명종에게도 미움을 받았고
(당시 고려 왕이 힘은 없었지만 일단 권위는 있었음)
자신들의 부하까지 청렴하지 못하다며 숙청해버려
집권기간동안 여러 정적등의 암살에 시달려
결국 도방이라는 사병집단을 만들어 자신을 지키게 한 것이고
도방은 경대승이 화장실을 갈때까지 호위할 정도로
당시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경대승은 워낙 청렴해 아버지대에 이어진 재산들도
이미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나라에 반납한 인물이라
고려 실권자였음에도 허름한 집 한채 쌀과 말먹이 약간이 재산의 전부였고
(거의 판타지 세계의 권력자수준,,)
도방 장사들 역시 경대승의 청렴함과 올곧음 등을 존경해
그를 호위했지만 결국 월급도 제대로 못받는 등
현실적 압박에 시달려 백성(그나마 부유층을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들에 대한 약탈을 자행했고
청렴한 청년장군 경대승도 도방의 이런 모습을 알고서도
어쩔 수가 없어 큰 마음의 부담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1183년 7월
고려 최고 집권자였던 청년장군 경대승은
암살 위협등으로 마음의 병을 얻어
고작 30세의 나이로 요절(일찍 죽음)합니다
청렴하고 올곧았던 젊은 청년장군 경대승 ,
그가 죽자 고려 백성들은 그의 상여를 보고
통곡했습니다
<고려사 기록>경대승의 상여가 나가니
백성들 중 통곡하지 않는 자가 없어
그 울음 소리가 왕도(수도=개경)를 진동시키더라
경대승 사후 그의 가산들을 정리해보니
허름한 집 한채 , 말먹이 , 쌀 몇섬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청년장군 경대승은 무신정권 기간동안
다른 무신들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 인물이고
이에 젊은 개혁가의 안타까운 죽음이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현실 정치력의 부재 , 이런 이유들로 인한 암살위협으로
주변 정적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 등으로
사망한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이상만 좇다가 무너진 인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26세의 나이에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당대 주변 사람들도 어리석기만 한 것은 아니었기에
젊은 청년장군 경대승의 마음속에는
무신정권으로 위기가 생긴 백성과 민족에 대한
어떤 큰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고려의 청년 대장부였던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경대승이 30세 나이에 요절하자
명종은 또다시 무인들이 일어날까봐
그냥 어짜피 일어날 무인들이니
그나마 힘있는 무인에게 미리 맡겨 안위를 보장하자라는
마인드로 경대승을 피해 경주에 숨어있었던
이의민을 불러왔고 (이미 명종도 무신정변으로 왕위에 올라
자신을 지지할 세력이 없는 인물이었고
이에 명종의 처세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의민은 경주의 천민 출신이었는데
힘이 장사여서 수박을 잘해 의종의 총애를 받아
무인이 되었고 (근데 정작 본인 손으로 의종을 죽여
배은망덕하다는 비판이 있었음)
이의민은 무신정변때 행동대장급으로
가장 많은 문신들을 죽이는 등,, (문벌귀족들의 천민에 대한 멸시에 대한
분노도 컸다고 이야기 됨)
고려 무신들 내에서 새로운 인물로 떠오르다
그렇게 경대승 사후
고려의 최고권력자가 되었고
그렇게 이의민은 고려 최고 권력자로 권세를 누리다
아예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생각했고
1193년 경상도에서
김사미와 효심이 신라 부흥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키자
역시 경상도 경주출신이었던 고려 최고권력자 이의민은
몰래 이들과 내통해 정보와 의복 , 식량등을 제공해 주었으나
금방 고려 조정에 진압됬고
그런 상황속에서 이후에도 이의민은
여러 다른 무신들의 견제를 받았지만
떵떵거리며 권세를 누리었고
그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막나갔어서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은 고려 무인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집의 비둘기를 뺏었습니다 (당시 권력자들이 키우는
비둘기는 오늘날 왠만한 집 한채값이라 함)
최충수가 돌려달라하자
이지영은 말투가 무례하다며 최충수를 잡아 가두는
무례를 주었고
천민출신에 권세를 믿고 방만하게 행동하던
고려 무신 최고권력자 이의민을
고깝게 보는 다른 귀족출신 무신들도 있었고
최충헌 집안은 대대로 음서(자손 특별채용)를 지낼정도로
명망있는 무신귀족이었는데
이러한 사태에 열이 받아서
최충헌은 동생 최충수와 함께 일어나
이의민을 죽이고 고려 조정을 장악하고
새로운 고려 무신 최고 권력자가 됬고
그의 시대부터 고려 무신정권은 엄청난 안정성이 생겨
그의 최씨 가문은 대대로 무신정권을 이어갑니다
<라봉봉>청년장군 경대승과 천민출신 이의민은
무신정권 시기 활발한 계층이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을 보면 오늘날 영앤리치(젊은 부자) 나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한 인물들도 생각나고
그들이 비록 이후의 안정적인 무신정권을 구축한 최충헌과 달리
불안정한 인생을 살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짜릿한 감정도 충분히 공감된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책을 보며 누구누구는 내나이때 이런 것을 했는데
하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오랜 기간동안 차분히 준비를 했던 인물들도 있지만
수많은 위인 , 열사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에 나선 경우들도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려 무신정권 사회가
단순한 혼돈과 무력만이 난무하는 사회라기 보다는
일본의 사무라이들 시대에는 신분질서가 명확해
신분 이동이 없다싶이 했던 것과 달리
한국 고려는 청년 , 천민 출신등이 최고 권력자가 됬을 정도로
신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가
바로 무신정권기였다 할 수 있고
한국의 개방적인 면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신정권 시기 혼란성과 잦은 정권교체 등으로
백성들의 삶은 여간 말이 아니었고
무신들도 워낙 암살 위협 , 생존문제가 많았을 때라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지위와
신변유지에 집중하던 시기입니다
무신정권시대는 신분이 활발히 움직인 시기지만
치안도 불안정했고 백성들의 고난 등
당시가 좋은 시기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린이 한국역사 > 1집 First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의 대몽항전과 무신정권의 몰락 (0) | 2019.07.24 |
---|---|
최충헌의 최씨정권 시작과 만적의 난 (0) | 2019.07.24 |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정중부의 무신정변 (0) | 2019.07.16 |
윤관의 여진정벌과 이자겸의 난 (0) | 2019.07.15 |
광종의 개혁정책과 거란의 침입 (0) | 2019.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