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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음악>

[미국의 음악 ?]

[재즈음악]

[로큰롤 음악]

[엘비스 프레슬리]

[자유와 반항의 상징 록음악]

[음악 전문 채널 MTV]

[마이클 잭슨]

[힙합과 랩]

[에미넴]

[팝스타 레이디 가가]

[유튜브 음악]

<라봉봉>

 

[미국의 음악 ?]

미국 음악하면 떠오르는게 뭘까요 ?

(뇌에서 생각중 1 , 2 , 3) 음 힙합 ..

 

힙합은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문화'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미국인의 정서를 담고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입니다

 

꼼꼼과 섬세의 극치를 달리며 합리주의 , 철학이 발달한 유럽문화와 달리

미국문화는 힙합처럼 엉덩이를 흔들듯이 (hip hopping) 여유있고

설렁설렁한 느낌이 있는데

그게 쿨가이스러운 미국 문화의 매력이고

뭐든 분석하려 들며 찌질 , 찐따미가 쩌는 유럽과 일본문화와 다른

막힘없는 시원한 느낌의 매력이 강한 미국문화입니다

 

 

일단 힙합은 1970년대부터 발전한 문화고

그 이전부터 미국의 음악사가 중요한데

사실 미국의 독자적인 문화는 주류인 미국 백인들은

계속해서 유럽백인들의 문화를 관음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흑인 중심으로 발달하고

흑인이 만들어 낸 것 위에 백인들이 기생하는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시작하고 만든건 흑인인데 그분야 슈퍼스타들은 백인임ㅋㅋ)

 

[재즈음악]

일단 미국건국 초기는 그냥 유럽거 복사 붙여넣기식으로 때려박았기에

여러 분야에서 문화나 예술이 발전했다기보다 한창 쑥쑥 먹고 자라는 우량아 수준이었고

19세기 후반부터 재즈음악(Jazz) 이 발달합니다

 

재즈는 흑인들 문화로 시작해

20세기 초~중반까지 크게 유행했는데

유럽 악기와 흑인 빈민들의 한이 섞여 나온 노래로

정형화된 음악이 아닌 즉흥적인 노래였습니다

 

트럼펫과 소울로 대표되는 재즈음악

 

(미국 음악이 밑바닥 흑형들이 만든 음악이라

유럽처럼 정형화됬다기보다 즉흥적면이 강합니다)

 

당시 차별받고있던 흑인들 특유의 슬픔 , 한이 있었는데

미국인들은 이것을 소울(Soul , 영혼) 이라 했고

미국 특유의 정신 및 재즈 본래의 정신을 말하며

오늘날에도 미국 길거리에서 음악하는 흑인 뮤지션들 보면

뭔가 구슬픈 감성이 ㄹㅇ 있어서 (이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움)

감동적인 음악이라면 앞에 모자에 돈을 두둑히 넣어 줍시다

 

재즈는 1920년대 크게 유행하며 대중화됬는데

흑인들만의 것이었지만

마치 흑인들이 만든 프라이드 치킨이 백인들을 사로잡았듯이

이 시기부터 점차 백인들도 재즈에 빠지게 되었고

1차 세계대전 승전후 대호황과 축제 분위기였던 미국에서는

재즈가 크게 유행합니다

 

1920년대 재즈악단

 

위대한 개츠비시대 , 잃어버린 시대는 재즈시대와 엮여있어

영화 위대한개츠비에서도 재즈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1929년부터 대공황이 시작되며

재즈 전성시대도 점차 망해갔고

단 라디오 방송이 유행하며 재즈는 그럼에도 널리 퍼졌고

힙합이 만들어기전 힙합 이미지가 재즈였기에

여러 청년들과 여성들이 재즈와 함께

흡연 , 성적인 것을 하며 반항하는게 유행했다 합니다

 

[로큰롤 음악]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대중음악은 재즈가 유행했는데

점차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어 재즈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흑인들이 고단한 삶을 노래한 '블루스' 에서 발전한

'리듬 앤 블루스 (R&B)' 음악이 유행합니다

그러다 리듬 앤 블루스는 로커빌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또 그러다 촌스러운 이미지를 빼려

10대들 사이에서 널리 쓰인 속어였던 '록 앤 롤' 이라 불리게 되다

로큰롤 rock 'n' roll 음악이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1950년대부터 미국사회에서 점차 로큰롤은 전국적 인기를 누리게 됬는데

이때쯤부터 신기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당시 소문>흑인처럼 노래하는 백인 가수가 나오면 게임 끝난다

 

당시 미국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인물은

1950년대 초부터 기타를 배우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낮에는 트럭운전사로 일하고

밤에는 근처 술집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생활을 계속했고

 

로큰롤의 제왕 혹은 황제 (King Of Rock 'N' Roll)라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

 

자비로 음반을 만들다

1954년

 

'흑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가수'

 

를 찾던 스튜디오 사장이 그를 찾아냈고

엘비스는 노래를 신선하고 특이하게 불렀고

그의 노래가 라디오를 타자 수많은 청취자들의 엽서와 전화가 폭주합니다

 

그때부터 점차 엘비스는 스타가 되었고

그윽한 눈매와 냉소적 미소로 십대 소녀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며

대형 음반회사와 계약해 1956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합니다

 

그는 무대에서 노골적으로 응딩이를 흔들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로큰롤의 제왕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흔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미지

 

근데 인기가 절정이던 1957년대 말

엘비스는 징집영장을 받았는데

당시까지 미국은 징병제였지만 전시상황이 아니면

이런저런 이유로 뺄 상황이 많은 시기였고

반항아 이미지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큰롤 문화를 싫어한

미국 정부 , 꼰머할배들의 견제로 군 입대를 요구받은 것이었는데

 

나름 미국 국방부는 그를 배려해 연예 사병 근무를 제안했지만

엘비스는 외부 시선을 의식해 그냥 일반 전투병으로 복무해

서독 미군기지에서 18개월동안 근무합니다

 

군복무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

 

1960년 다시 로큰롤의 제왕은 전역 , 복귀했는데

군기가 쫙잡혀돌아와서 과거 반항아 이미지를 버리자

인기가 조금씩 떨어졌고

1960년대부터 한물 간 스타로 여겨지며 슬럼프를 겪습니다

 

그러다 그는 다시 재기에 성공했고

1970년대에도 엘비스의 인기는 여전해

1973년 하와이 콘서트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으로 생중계 되었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현대 미국 음악사를 대표하는

간판 ,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슈퍼스타 엘비스는 너무 외로워서

공연이 끝난 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티비를 3개씩 동시에 틀어놓고

하루종일 설탕이 듬뿍 뿌려진 도너츠를 엄청나게 먹었다하고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체중이 늘었고

1977년에는 100kg 까지 늘어버렸는데

 

사망하기전 비대해진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는 말년에 여러 건강악화로

각성제 , 진통제 등 엄청나게 많은 약물을 복용했고

결국 1977년 8월 16일 엘비스는 자택 욕조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향년 42세의 한창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저는 문학이 음악 위에 있는 분야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근데 음악이 문학에 비해 활동성이 필요하고

체력소모가 심한 분야라

음악가들이 건강관리를 잘 못하거나 건강이 안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얀 화려한 옷을 입고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대표하는 모습

 

[자유와 반항의 상징 록음악]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엘비스 프레슬리 시기의 로큰롤은 전성기였고

로큰롤은 자유와 반항의 상징이었고

기성 보수세대에 반발한 청년문화이기도 했기에

당시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미국 언론 , 기성사회의 계속된 견제를 받았고

 

당시가 징병제긴 했지만

전시는 아니었기에 다양한 이유로 징병을 피할 수는 있었는데

꼰머 할배들의 견제속에 엘비스 프레슬리는 반항아 물을 빼기 위해

입대당한것도 있었고

 

로큰롤은 미국 꼰머 할배들한테 계속해서 꾸준히 뚜드려 맞다가

결국 1960년대부터 로큰롤 뮤지션들의 창작력도 고갈되가고

로큰롤 음악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미국 꼰머 할배들은 미국 본토에서 로큰롤 음악이 소탕됬다 믿고 있었는데

근데 대서양 건너편에서 로큰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받은 영국의 네명의 젊은이 ,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하며 로큰롤이 부활했고

 

오늘날 현대대중음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비틀즈'

 

새로운 '록 음악' 의 시대가 열리게 되어

미국 젊은이 , 청년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 루터 킹 목사 암살 , 흑인폭동으로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속 록음악을 들으며 사회적 분노를 표현하고

1960년대 청년히피문화와 같이 어울려지며 자유와 사랑 , 반전 , 평화를 외치게 됩니다

 

미국의 히피들

 

근데 이때도 록은 높으신 분들 및 꼰머 할배들의 탄압대상이었고

모든 서구권은 전세계 대부분 록음악을 필두로 새로운 청년문화와 혁명에 휩싸여 있었고

1980년대부터는 점차 하드록 , 헤비메탈도 유행하다

오늘날은 다양한 실험장르 , 힙합문화와 융합시도 등이 등장하게됩니다

 

[음악 전문 채널 MTV]

198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데

1981년 24시간 음악 전문채널 'MTV'  가 생겨났고

이 시기부터 미국음악계는

점차 라디오 청취시대에서 TV로 감상하는 시대로 변화합니다

 

MTV 로고

 

MTV는 24시간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며 뮤직비디오 시대를 열었고

시청자 수가 다양해지자 점차 뮤비뿐만 아닌

여러 자체제작 쇼 , 드라마 , 애니메이션 등을 방영하는 종합 엔터테이먼트 채널로 변모하는데

1980년대 당시 고도 경제성장을 겪은 일본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한창 세계 대중문화계까지 장악해가던 시대라

미국인들은 MTV로 대동단결하며 이런 것을 맞서려는 애국주의 열풍과도 맞물렸고

 

MTV는 음악을 듣는것 뿐만 아닌 '보는 음악' 시대를 열었으며

기성세대들의 가치관에 충격을 주어

'MTV 세대' 라는 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1980년대 미국 팝스타들

 

[마이클 잭슨]

초기 MTV는 백인 로큰롤 위주 음악방송을 편성했고

이렇다보니 대다수 흑인 뮤지션들의 방송편성은 제외됬는데

MTV 사장은 로큰롤을 핑계로 흑인들을 배제시키고 있었고

흑인들은 MTV 가 인종차별이라 비난을 쏟았습니다

 

당시 흑인 뮤지션 마이클 잭슨이

빌리 진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을때도 MTV는 방영을 거부했으나

백인 아티스트 소속사들은 잭슨의 뮤비를 방영하지 않을 경우

MTV에서 보이콧(불매 , 불참) 하겠다했고

결국 MTV는 굴복해 마이클의 노래와 뮤비를 방영하게 됩니다

 

마이클 잭슨

 

이 시기부터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흑인들의 음악도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고

마이클은 백인들에게 밀려있었던 흑인 음악을 다시 주류로 올려놔

1980년대 흑인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백인들의 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에 비견될 정도로

미국 흑인 , 미국 음악을 대표하는 팝가수(대중음악 가수)가 됬고

(근데 마이클 잭슨은 음악보다 문워크 등의 춤으로 더 유명합니다)

 

인종차별을 해소시켜 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세계 팝 문화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문워크로 세계에 충격을 준 마이클잭슨

 

[힙합과 랩]

1970년대부터 뉴욕 빈민가에서 거주하는 흑인들은

새로운 문화 '힙합' 을 만들었고

원래는 디스코 , 펑크 , 재즈음악등 흑인들이 즐겨듣는 음악에

DJ 라는 선곡자가 노래를 틀면

사람들은 디제이가 틀어주는 펑키한 음악에

응딩이를 흔들며 (Hip Hop 엉덩이를 흔들다) 춤을 추고

DJ는 음악을 틈과 동시에 쇼호스트로서 파티의 분위기를 살리려

간간히 흥을 돋구려 여러 미사여구를 덧붙였는데

이러면서 MC , DJ 등이 나타나고 MC들이 내뱉는 미사여구는

문학적으로 발전되며 랩(Rap) 으로 발전합니다

 

힙합

 

결국 힙합은 랩문화로 발전했으며

초기 랩은 강하고 빠른 비트에 흥돋구는 추임새와 가사를 빠르게 내뱉는 것이나

점차 느린 비트 , 단순한 비트도 생겨났고

여러 분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며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저도 10대때 한창 힙합만 들었습니다)

 

힙합은 가난한 흑인형들이 만든 음악이라

힙합에는 여러 흑인들의 밑바닥 삶의 애환이 담겨있고

청소년때 맨날 학교 학원다니다가 대학에서 힙합을 접하며

자전적이거나 힙찔이들이 많은 한국힙합과 달리

자기자랑 , 돈자랑 , 마약 , 술 , 차 , 여자 , 첵스 , 총

이딴 이야기가 ㄹㅇ 현실 , 일상이었던게

ㄹㅇ 미국 본토 힙합입니다

 

(단 모범생 느낌나는 한국힙합도

미국같은 거친건 없지만 미국과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돈자랑으로 유명한 본토힙합

 

힙합은 마땅히 정형화된게 없어 남의 노래를 샘플링해서 자신노래로 만들거나하는

무단 샘플링이 만연했고

힙합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하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는 풍조가 있습니다

 

이에 다른 장르보다 자유도도 높지만

정체성 논란이 심한 장르기도하고

래퍼들도 서로 느그가 하는것은 그거슨 힙합이 아니여 하며

힙찔이라 디스하는 풍조도 생기고

하여튼 저는 오늘날 가장 현대적인 음악이 힙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미넴]

힙합 역시 흑인이 만든 음악이었지만

점차 백인들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새로운 백인 래퍼의 출현을 바라고 있었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에미넴이었습니다

 

에미넴

 

에미넴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슬럼가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소위 말하는 '백인 쓰레기 (White Trash)' 출신이었고

힙합 매니아인 삼촌과 친하게 지내고

이후 백인 힙합그룹의 음반을 듣게되며

백인도 랩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랩에 몰두하기 시작해 자신의 이름 마셜 매더스의 약자에서

에미넴을 활동이름으로 짓고 17세때 학교를 자퇴하고 래퍼의 길을 걷습니다

 

잃을게 없던 에미넴 형은 이딴식으로 좆같이 살다 죽을바에

랩 하나로 우주를 강간하고

이 세상을 씹어먹어야겠다는 야심을 가지게 되었고

 

초기에는 언더에서 삶은

조잡함 , 미숙함때문에 온갖 비난과 욕을 먹게 됬고

그럼에도 계속 노력한 에미넴은

주눅들지 않고 꾸준히 노력 , 공부해

1996년 첫번째 앨범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망해버렸고

결국 에미넴은

딸의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위해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다가

1997년 LA 지역방송의 랩 올림픽에서 2위를 했는데

이때 점차 눈에 띄게 됬고

흑인 래퍼 닥터드레는 에미넴의 비범한 떡잎과 스타성을 알아보고

그를 스타로 만들려 했고 

에미넴은 높은 하이톤 목소리 , 잘생긴 금발 백인 ,

불우한 환경에서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노오오오력파 ,

흑인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 실력 , 똘끼라는

특수성에 결국 당시 힙합계에 부족한 점을 시원하게 긁어준 슈퍼루키로 빵뜨게됬고

점차 밝혀지는 그의 과거 모습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까지 더해지며

미국 힙합계의 슈퍼스타가 됩니다

 

1999년 닥터드레와 에미넴

 

에미넴의 랩은 하이톤에 엄청나게 빠른것으로 유명하며

저는 그가 한창 미국 팝스타로서 잘나가던 시기에

(2009~10년으로 기억)

Not Afraid 를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고

이 노래랑 Love the Way You Lie 를 듣고

이 사람은 보통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의 자전적 허구+실화 영화인 '8마일' 이 큰 화제였고

영화속 노래 'lose yourself' 로 인기가 참 많은 분이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기전 투지 올리려 듣는 파이팅 노래)

 

미국 밑바닥 화이트 트래시 세계 및 꿈을 위해 노력하는 영화로 유명한 영화 '8마일 (2002)'

 

미넴이 형도 꾸준히 슬럼프도 오시는거 같은데

건강하시고 계속 좋은 음악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훠훠훠

 

[팝스타 레이디 가가]

이외에도 오늘날 미국 팝스타 , 팝아티스트 대표되는 인물은

가수 레이디 가가가 있고

 

레이디 가가 (초기 리즈시절)

 

본직은 가수인데 에미넴 형에게도 뒤지지 않는

똘끼와 충격적인 모습들로 큰 화제를 낳았고

뛰어난 가창력과 음악실력 , 무대장악력을 보여주며

(근데 레이디가가 누나는 ㄹㅇ 똘끼때문에 명곡과 가창력이 묻힌 안좋은 케이스입니다)

 

오늘날까지 미국 팝뮤직 , 싱어송라이터를 대표하는 여성 솔로가수이며

한창 팝스타로 날라다닐 시절에는

가슴에서 불꽃도 뿜으시고 고기드레스도 입으시고

이상한 짓을 많이하셔서 욕도 많이 드셨는데

요즘은 영화 '스타 이즈 본(스타 탄생)' 에서 청순한 신데렐라 역을 연기하시며

많이 차분해 지신듯합니다

 

최근 화제가 된 레이기 가가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타 이즈 본 (2018) A Star Is Born' 스타 이즈 본은 미국 대표적 뮤지컬영화로 여러번 리메이크된 스타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유튜브 음악]

또 오늘날에는 유튜브가 미국 음악가들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유튜브 플랫폼은

현대 정보화시대와도 맞물려있고 미국 뿐만 아닌

수십억 세계 인구가 볼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의 젊은 뮤지션들이 유튜브에서 음악을 하는 경우들이 나타나고 있고

 

오늘날 새로운 뮤지션들의 공간이 된 '유튜브'

 

캐나다 출신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저스틴 비버는

유튜브 등으로 큰 화제가 되었고

 

저스틴 비버

 

저스틴 비버는 참 옛날에

그의 노래

Eenie Meenie 할때가

노래 잘하고 순진하고 귀여운 하이틴 스타 느낌이 물씬 났는데

(딱 처음 보면 이새끼는 뜬다 이런 느낌 ?)

 

베이비로 빵떴고

나이가 들며 세상 때를 묻고 여러 논란을 뿌려서

안티도 많아져 미국과 캐나다에서 서로 니네 나라로 데려가라고 하는 말도있고

단 유튜브가 낳은 희대의 스타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라봉봉>음악사는 따로 정리된 책을 찾기가 어려워서

나름 주요 음악위주로만 썼고

이외에도 엄청 많습니다

 

보통 문학과 시가 수준이 높고

음악은 그 하류분야라는 이미지가 알게 모르게 있는데

이것은 선비들이 시읊고 기생들이 음악하던 조선시대때 생긴 이미지도 있어

사람들은 음악을 참사랑하면서도 낮게 여기는 경향도 알게모르게 있는듯 싶고

 

(반대로 문학과 시를 높게여기지만 어렵다 생각하며 안읽음ㅋㅋ)

 

비단 한국뿐만 아닌 서양에서도 이런 이미지가 있어

괴테도 슈베르트가 자신의 시 마왕으로 가곡을 만들어 보내오자

음악은 시와 글보다는 못하다면서 냉정하게 외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전에 모차르트 , 베토벤 , 슈베르트 이야기를 쓰면서

오랫만에 어린시절에 보았던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시쓰며

또 이 인물들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이러한 편견이 완전히 깨지게 됬고

 

술을 마시는 새끼가 문제이지 술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처럼

이상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의 수준이 낮을 뿐이지

음악 자체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엄연히 높은 수준의 분야이며

음악이라는 분야의 수준이 낮은게 아니라 생각됩니다

 

미국사회에서

로큰롤도 참 탄압이 거셌는데

이상하게 미국은 엄청나게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막 빨개벗고 다니는 이미지가 있는듯한데

미국 다녀온분들이나 현지인들은 다 알겠지만

원래 남눈치 안보는 문화때매 그런 이미지도 없지 않긴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의 보수 끝판왕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힙합 , 팝뮤직 등 여러 문화들이 미국에서 나왔고

참 좋은 미국 음악들을 많이 들으며 어린시절을 보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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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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