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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 인물들>

[통일신라최고지식인 + 6두품의 한 최치원]

[신라 말과 오늘날 대한민국]

[남의집 노비가 되어 어머니를 봉양한 효녀 지은]

[신라삼최 최언위]

[골품제때문에 당나라인이 된 설계두]

<라봉봉>

 

[통일신라최고지식인 + 6두품의 한 최치원]

최치원은 자가 고운(혹은 해운이라고도 한다)이며 경주 사량부 사람입니다

사서가 인멸되어 그의 집안 계통은 알 수가 없었고

최치원은 소년시절부터 사람됨이 정밀하고 민첩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한국 위인 최치원 , 뭔가 만화캐릭터같이 생김 ;;

 

그의 나이 12세에 배를 타고 당에 들어가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최치원의 아버지>

10년이 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가서 힘써 노력하라 !

 

최치원은 당에 도착하여 스승을 따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건부 원년 갑오(874년 , 최치원 나이 18살)에

최치원은 예부시랑 배찬의 고시(당나라 과거시험 , 빈공과)에서 단번에 급제하여 선주 율수 현위에 임명되었고 ,

치적의 고과를 통하여 승무랑 시어사 내공봉이 되었으며 ,

자금어대(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은 주머니 , 공복의 띠에 매달아 관직의 귀천을 구분)를 받았습니다

 

관료들 허리에 차는 '자금어대'

 

당나라 벽화속 관료들

 

당나라 미녀들

 

짜장년들아 한복 뺏으려 하지말고 부디 느그들 아름다운 당나라 오프숄더룩이나 부활시켜라 ~~ ^0^ , 존예이신 당나라 미녀

 

(당나라가 당시 초강대국 + 개방적인 국제국가여서 외국인들에게도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이로인해 발해와 신라 유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서로 공부로 경쟁했음)

 

이 때 (880년 , 최치원 24세) 당나라에선 황소(사람이름임 ㅋㅋ)가 반란을 일으켜 ,

고병이 제도행영병마도통이 되어 이를 토벌하게 되었습니다

 

<김부식>그 때 최치원을 불러 종사로 삼아 서기의 임무를 맡겼는데 ,

그 표장과 서계가 지금(고려)까지 전해오고 있다

 

황소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치원도 문관 + 글셔틀로 같이 참전 , 종군했는데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이라는 '황소를 토벌하는 글' 을 지어

역적인 황소에게 보냈고

이때 필력이 무시무시해서 황소가 읽다가 너무 놀라 침상에서 굴러떨어졌다고 합니다

 

꺄아아아악 !!!

 

<토황소격문>

광명 2년(881년) 7월8일에 

제도도통 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모(某 아무개)는 황소(黃巢)에게 고하노라.

대저 바름을 지키면서 떳떳함을 닦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

위기를 당하여 변통하는 것을 권(權 권세)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해서 공을 이루고 ,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서 패망하고 만다.

그렇다면 백 년의 인생 동안 생사를 기약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

만사를 마음으로 판단하여 시비를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왕사(王師 왕의 군대)는 정벌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기며 ,

군정은 은혜를 앞세우고 처벌은 뒤로 미룬다.

장차 상경을 수복하려는 이때에 우선 큰 신의를 보여 주려 하니 ,

타이르는 말을 공경히 듣고 간악한 꾀를 거두도록 하라.

너는 본시 변방의 백성으로 갑자기 사나운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는 감히 강상(常 , 윤리)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마침내 화심을 품고서 신기를 농락하는가 하면 ,

도성을 침범하고 궁궐을 더럽혔다.

너의 죄가 이미 하늘에까지 닿았으니 ,

반드시 패망하여 간과 뇌가 땅바닥에 으깨어질 것이다.

...

내가 황천(皇天)의 명을 떠받들고 백수(白水)에 맹세를 한 이상 ,

한번 말을 하면 반드시 메아리처럼 응할 것이니 ,

은혜를 원망으로 갚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네가 만약 미쳐 날뛰는 무리에게 끌려다니며 ,

잠에 취해서 깨어나지 못한 채 ,

버마재비가(사마귀) 수레바퀴에 항거하듯 하고 ,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려고만 한다면 ,

곰과 범을 때려잡는 군사들을 한번 지휘하여 박멸할 것이니 ,

까마귀처럼 모여들어 솔개처럼 날뛰던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기에 바쁠 것이다.

 

너의 몸뚱이는 도끼의 날을 기름칠하고 ,

너의 뼈다귀는 전차 밑에서 가루가 될 것이요 ,

처자는 잡혀 죽고 종족은 처형될 것이니

 

생각하건대 ,

동탁의 배꼽에 불이 켜질 때를 당하여서는

아무리 배꼽을 물어뜯어도 이미 때는 늦을 것이다.

 

(삼국지에서 역적 동탁을 죽이고 배에 심지를 꽂아 불을 켰는데

동탁이 워낙 씹돼지라 엄청나게 오래 탔다는 이야기가 유명함)

 

너는 모름지기 진퇴를 참작하고 선악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배반하여 멸망을 당하기보다는 귀순하여 영화를 누리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네가 그렇게 바라기만 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니,

부디 장사의 나아갈 길을 찾아 곧바로 표범처럼 변할 것이요 ,

우부(愚夫 어리석은 남자)의 소견을 고집하여 여우처럼 의심만 하지 말지어다.

모(某 아무개)는 고하노라.

 

(뒤지기 싫으면 존말로 할때 항복하렴 ^^)

 

최치원이 28세가 되자 귀국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

당희종이 그의 뜻을 알고 광계 원년(885년 , 최치원 29세)에

그로 하여금 조서를 가지고 (신라로) 내빙케 했습니다

당나라에서 출세해 금의환향하여 귀국한 그는

본국(신라)에 머물며 시독 겸 한림학사병부시랑지서서감이 되었습니다

 

최치원은 스스로 서쪽(중국)으로 유학하여 얻은 바가 많다고 생각하여 ,

돌아온 뒤에 자기의 뜻을 실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말세를 당하여 의심과 시기가 많아 이러한 생각이 용납되지 못하고

외직으로 나가 대산군(태산군 , 현재 전북 정읍시 칠보면 , 태인현의 고칭) 태수가 되었습니다

 

당 소종 경복 2년(진성여왕 7년 , 893년 , 최치원 37세) 에

납정절사 병부시랑 김처회가 바다에 빠져 죽었으므로 곧 추성군 태수 김준을 고주사로 임명했습니다

이 때 최치원은 부성군 태수로 있다가 부름을 받아 하정사(사절단)가 되었는데 ,

당나라에 해마다 흉년이 들고, 이로 인하여 도적이 횡행하여 길이 막혔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뒤에도 최치원은 당에 사신으로 간 일이 있었으나 그 시기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문집에 있는 태사 시중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르기를 ,

 

<최치원>듣건대 동해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명칭이 마한, 진한, 변한입니다. 마한은 고구려요, 변한은 백제요, 진한은 신라입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에는 강한 군사가 1백 만 명이나 되어

남으로 오, 월을 침범하고, 북으로 유, 연과 제, 노를 뒤흔들어 중국의 커다란 고민거리가 되었으며 ,

 

(이 구절때문에 요서경략설과 대륙백제설이 나옴ㅋㅋ)

 

수 황제가 세력을 잃은 것도 요동 정벌에 기인한 것입니다.

 

정관 연간에 우리 당 태종 황제가 직접 6군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천벌을 집행하니 ,

고구려가 그 위엄을 두려워하여 화친을 청하므로 문황이 항복을 받고 수레를 돌려 돌아갔습니다.

이 무렵 우리 무열대왕이 견마의 정성으로 한 쪽의 혼란을 당의 협조를 얻어 평정하고자 하였으니 ,

당나라 조정에 들어가 배알하는 일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에 고구려와 백제가 이전과 같이 흉악한 행위를 계속하므로 ,

무열왕이 당의 조정으로 들어가 향도(길잡이 , 앞잡이)가 될 것을 청하였습니다.

 

고종 황제 현경 5년에 이르러 소정방에게 칙령을 내려 10도의 강병과 누선 일만척을 이끌고 백제를 대파하고 ,

그 땅에 부여 도독부를 설치하여 유민을 모으고 한인 관리를 배치했는데 ,

활양식이 서로 달라 자주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침내 그 사람들을 하남으로 옮겼습니다.

 

총장 원년에 영공 서적(李勣 이적=이세적)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격파케 하고 안동 도독부를 설치하였으며 ,

의봉 3년에 이르러 그 사람들을 하남과 농우로 옮겼습니다.

고구려의 잔민들이 서로 모여 북으로 태백산(백두산) 아래 의지하여 국호를 발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개원 20년에 당나라 조정에 원한을 품어 군사를 거느리고 등주를 습격하여 자사 위준을 죽였습니다.

이에 명(당) 황제가 대노하여

내사 고품, 하행성과 태복경 김사란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공격케 하고 ,

우리 임금 김 아무개(성덕왕)에게 벼슬을 더하여 정태위 지절 충녕해 군사 계림주 대도독으로 삼았는데 ,

겨울이 깊어 눈이 많이 쌓여서 번(신라), 한 양군의 추위가 심했기 때문에 칙명을 내려 회군케 했습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3백여 년 동안 이 지역이 무사하고 창해가 편안하니 ,

이는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로입니다.

지금 저는 유림의 말단 학자요 ,

해외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표장을 받들고 낙토에 내조하였으니 ,

모든 정성을 토로하는 것이 예에 맞을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 원화 12년(헌덕왕 9년 , 817년)에 본국의 왕자 김장렴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명주에 상륙하였을 때 ,

절동의 어떤 관리가 서울까지 보내 주었고 ,

중화 2년(헌강왕 8년 , 882년)에는 입조사 김직량이 반란군이 일어나 길이 막혔기에

마침내 초주에 상륙하여 헤매다가 양주에 이르러 황제의 행차가 촉으로 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고 태위가 도두 장검을 보내 그를 감시 압송하여 서천에 이르렀습니다.

이전의 사례가 이처럼 분명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태사 시중께서는 큰 은혜를 베푸시어 특별히 수륙의 권첩을 주시고 ,

저희들의 소재지에 선박 , 식사 및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나귀와 말 그리고 사료를 공급하게 해주시고 ,

아울러 군장을 보내 어가 앞까지 호송하여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김부식>여기서 말한 태사 시중은 그 성명을 알 수 없다.

 

최치원은 서쪽에서 대당을 섬길 때부터 동으로 고국에 돌아올 때까지 ,

항상 난세를 만나 처신하기가 어려웠고 곧잘 비난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

스스로 불우함을 한탄하고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기로 했습니다(골품제 ㅠㅠ)

그는 산림과 강해를 소요하며 누대와 정자를 지어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놓고 책 속에 묻혀서 풍월을 읊었습니다

 

경주의 남산과 강주의 빙산과 협주의 청양사와 지리산의 쌍계사와 합포현의 별장이 모두 그가 놀았던 곳이었습니다

최치원은 최후에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면서 ,

형인 승려 현준 및 정현스님과 도우를 맺고 한가로이 은거생활을 하다가 노년을 마쳤습니다

 

그가 처음 서쪽으로 가서 유학할 때 강동 시인 나은과 알게 되었는데

나은이 자기의 재주를 믿고 스스로 잘난 체하여 쉽사리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지 않았는데 ,

최치원에게는 자기가 지은 시가 다섯 축을 보여 주었습니다

 

(따른애들은 다 ㅈ밥인데 치원이 형은 예외여 ㅎㅎ)

 

또한 동년(동갑)인 고운과도 잘 사귀었는데 ,

최치원이 (본국으로) 돌아오려 할 때 고운은 시를 지어 송별하였으니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고운의 최치원 송별시>내가 듣기로는 , 바다 위에 세 마리 금자라 있어 머리 위에 높은 산을 이고 있다네.

산 위에 주궁, 패궐, 황금전이 있고 , 산 아래 천리만리 큰 물결이 있다네.

그 곁에 점 하나 푸르른 계림 땅 , 자라산의 정기 어려 기특한 인재 났네.

열두 살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 그 문장이 중화국을 감동시켰네.

열여덟 되던 해 전사원에 횡행하여 화살 한대 날려 보내 금문책을 깨뜨렸네.

 

<김부식>'신당서 예문지' 에는

 

'최치원의 <사륙집> 1권과 <계원필경> 20권이 있다'

 

고 기록되어 있으며 , 그 주에는

 

'최치원은 고려인으로서 빈공과(당나라의 외국인 전용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고병의 종사관이 되었다'

 

고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이와 같이 중국에 알려져 있었다. 또한 문집 30권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처음 우리 태조가 흥기하였을 때 ,

치원은 태조가 비상한 인물이므로 그가 반드시 천명을 받아 개국할 것임을 알았다

이로 인하여 그는 태조에게 편지를 보내 문안을 하였는데 ,

그 가운데에

 

'계림(신라)은 누른 잎(퇴물)이오, 곡령(송악산 , 고려)은 푸른 솔(새삥)이라.'

 

는 구절이 있었다.

그의 문인들 중에는 국초에 내조하여 높은 관직에 이른 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현종이 왕위에 있을 때 치원이 태조의 왕업을 은연히 협찬하였으니 ,

그의 공을 잊을 수 없다 하여 교시를 내려 내사령을 추증했고 ,

14년 태평 2년 임술 5월(1022년)에는 문창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말기~고려초의 학자로

신라와 당나라 마지막 전성기와 쇠락을 모두 목격한 인물이자

태조 왕건의 시대까지 지켜본 대학자였고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라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도 계속 빨리던 인물이고

신라의 퇴계이황 , 율곡이이 포지션인 한국위인 + 유학 거물인데

활동하던 시기가 시기인지라

하필 돌아와보니 신라 최고 암군이라 할 수 있는 음란여왕 진성여왕 시대였고

한창 신라가 일어나던 시기 신라의 브레인이었던 유학자 '강수' 와 달리

신라왕실에 제대로된 대접은 커녕 시기와 질투만 받다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전국 곳곳에서 은거하며 글만 쓰다 간 인물이고

 

가뜩이나 능력이 있음에도 6두품이라는 한계때문에

최치원을 비롯한 수많은 엘리트 , 학자 , 지역유지(호족) 들은

신라를 증오하며 부글부글 끓다가

능력중심에 골품제와 연관 없었던 고구려계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마자 전부 고려로 붙어버렸고

 

이로인해 살아있을땐 신라 신분제때매 별다른 대접을 못받다가

죽어서야 고려에서 '똑똑한 청년' 이라 불리며 숭상되었고

 

 

완전 유학국가 테크를 탔던 조선에서는 더 평가가 후해서

신라 마지막 유학자였던 최치원을 성인급으로 여겼으며

여튼 머리가 엄청나게 좋았던 인물인데

이런 인물을 지방에서 시나 쓰게하며 썩히던게 신라 말기 조정 상황이었고

망하는 나라는 다 이유가 있고

 

백제 , 고구려가 멸망후 격렬하게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것과 달리

신라는 말기 상황이 워낙 처참하고 골품제라는 신분제의 모순때문에

장보고 , 최치원 등 수많은 문무 영웅들이 모략 , 모함 등에 그 뜻을 펼치지 못했기에

신라 백성 , 지식인 , 유지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회의를 느끼며

탈신라를 위해 노력했고

하필 북쪽에서 왕건이햄이라는

존나게 똑똑하게 착하고 센 놈이 나오니까

고대로부터 온갖 전설과 부귀영화 , 보물을 보유한 천년국가임에도 일말의 동정의 여지 없이

전부 고려로 붙어부렸고

신라는 멸망한 국가들 중 특이하게도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자국혐오가 심각한 상황이라

기나긴 유구한 역사에도 부흥운동이 없다싶이한 나라고

 

(쪼까 있긴 있었는데 백제 , 고구려가

외국에 강제 서버종료 당해서 비분강개함이 많았던 것과 달리

신라는 자기 스스로 섭종한 나라라고 부활시켜봤자

또다시 골품제로 서열정리하면서 지랄할께 뻔해서 다들 열망이나 열정이 없었음ㅋㅋ)

 

어찌보면 멸망시기 통일신라는 국가 분위기가 비슷했던 조선시대 말기보다

더 지옥일 수도 있었던 노답인 나라입니다

 

[신라 말과 오늘날 대한민국]

최치원을 흔히 골품제의 희생양의 대표격이라 이야기하는 인물인데

참 나라에 인재가 없는게 아니라 

망하는 나라들은 인재들을 놀리는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고

반대로 흥하는 나라들은 인재가 없어도 어떻게든 키워내거나 모여들게 만든다는 생각이고

 

제가 평화주의자라

이북 자극하고 그런 글 쓰고 싶진 않은데

북한도 머리좋은 청년들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이런데 가서

최근 미국이 개최한 해킹대회에서

김책공대 학생이 800점 만점으로 1위를 먹고

1 , 2 , 3 , 4위가 전부 김책공대 ,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었다는데

 

애들 눈 또롱또롱한거 보소 , 2023년 MBN 뉴스

 

얘네들도 머리는 존나게 좋은데

하필 태어난 곳이 (;;) 조금만 지도좌표에서 200km 정도만 남쪽에서 태어났어도

삼성하이닉스 들어가서 연봉 2억씩 받거나 유학가서 구글 엔비디아 들어가서

연봉 5억 넘게 받으면서 존예 섹시 백인 미녀와 한창 열심히 흔들고 있을텐데

하필 북한에서 태어나서

비트코인이나 해킹하면서 핵개발 자금줄 외화벌이에 동원되는 상황이고

 

이게 비단 또 북한만 깔게 아니라

우리나라도 노답이라 인재들 전부 깔아뭉게고

군대도 안간 멍청한 정치인 ,

기득권 자녀들이 전부 연줄 , 낙하산으로 한자리씩 처먹고 자리만 차지하니까

빡친 인재들이 탈조선해서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고있고

과연 남북한이 모두 신라말기 상황과 지금이 무엇이 다른가 싶기도 하고

 

진짜 나라에 인재가 없는게 아니라 인재는 항상 어느시대건 태어나는데

신라말기나 현재 대한민국 역시 아인슈타인이 소끌고

김태희가 밭갈고 이런 상황이라는 생각이고

그래서 다들 엘리트 인재들이 미국 미국(당나라 당나라) 한 것이었고

 

우리도 이런 초강대국들처럼 강력한 인재 지원정책을 해서

학연 , 지연 , 혈연으로 인재 선발하는 방식 다 없애고

철저한 능력 중심으로 굉장히 균등한 방식으로 인재 선발시키고

머리 똑똑한놈들 밧줄로 꽁꽁 잡아놓고

불필요한 규제 , 행정 폐지시키고 세금 낮추고

외국인 엘리트 , 기술자들 대접해서 끌어오고

이런식으로 해야 나라가 발전하지 지금은 참 안좋은 신호밖에 안남은 나라가 되어버렸고

전 현재 대한민국이 출산율 ㅈ박고 인재들 다 탈한국+미국이민 러쉬가고

불공정한 나라가 되어서 대한민국의 앞날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고

이대로 가면 다들 신라꼴나서 와르르 무너질 수 있고

현재는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한 시기 같고

 

북한얘기는 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그냥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국가인 미국에 줄대서 좀 잘사는 북한이고

북한은 하필 소련에 줄대서 소련해체후 가난한 대한민국이 되었을 뿐이지 

사실 남북이 수준 자체도 별달리 다를바 없는 나라라는 생각도 들고

 

(ㄹㅇ 돈을 벌고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여기도 좀 따뜻하고 배부른 북한임)

 

북한깔시간에 우리 치부부터 까야한다는 생각이고

전 대한민국이 굉장히 공명정대한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이고

전 이전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꾸준히 써왔지만

여야 할 것 없이 이 나라 위정자들이

신라와 조선 멸망을 보고 ,

역사에서 도대체 무얼 배웠는지 의문이고

도대체 학습효과가 있는 사람들인가도 싶습니다

 

여튼 나라 안망하려면

적극적으로 초야에 있는 인재 발굴해서 써야하고

발굴할 능력 없으면

새로 자라나는 어린이들 바르게 교육시키고

현재 국가 , 교육환경이 불공정하다고 못느낄만큼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고

 

거지와 부자 , 흙수저와 금수저 ,

농어촌과 강남학군 출신들 ,

남자와 여자 , 어린이와 노약자

모두에게 불평불만이나 다른 말 안나올 만큼

철저하게 공정한 판을 깔아줘야지

 

머리 ㅈㄴ게 나쁜 윗대가리들이 즈그들 , 즈그들 자식들만 유리하게

판을 짜놨으니 출산률이 ㅈ박을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됬고

이게 백날 청년들 푼돈 지원해봤자

애초에 지들만 젖과 꿀을 빨 수 있게 설계해놓고

대충 쇼질이나 겉치레식 정치만 하고 본질이나 근본이 변하지 않는데

출산율이 퍽이나 오르겠고

 

옛날 성골 육두품 골품이 과연 현재도 사라진게 맞을까 싶고

수시제도나 여대 , 여성할당제로 똑똑한 청년 , 남성들 기회 제한되서

국회의원 자녀들 + 빡대가리들한테 고소득 전문직 자리 약탈당하고

여성할당제로 위기때 일인분도 못할 여자들이 군경소방에 포진되서

당장 좀 덩치큰 남자중학생도 제압 못할거 같거나

병에도 입대 못하고 혼자 군장도 못싸매들거같은 ㅈ밥 체력 여성들이 군경소방등에 포진해서

체력 좋고 좀 공부 못하는 남성들 서민 , 중산층 일자리 뺏고있고 혈세 약탈하고 있고

 

인서울 약대 55%가 여대라 남자는 아무리 공부 잘해도 지원조차 못함ㅋㅋ(+사범대 , 의대랑 로스쿨ㅋㅋㅋ) , 너무 말도 안되서 세상이 억까하는가 싶음ㅋㅋ

 

국뽕과 애국심 빼고 한국과 미국이라는 글자 빼고 사진만 보면 오른쪽 국가는 옳게된 나라고 왼쪽 국가는 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라는 생각임 (무릎붙이고 팔굽혀펴기 시험보는 한국여경 짤)

 

2023년 뉴스 , 현재는 정자세가 됬는데 여자만점기준이 31개로 줄고 남자는 61개로 더늘어버림ㅋㅋ 역차별로 대놓고 남자 청년들 버리겠단 의미인듯 ;;

 

그리고

인류 역사 + 통계적으로 여자 경제력보다 남자 경제력이 출산률에서 더 중요하고

인체구조 특성상 여자는 임신하면 밖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결국 가정이 유지되고

여자들 자체도 판검의 전문직이나 설계 , 연구직같은 최상위권 여자들 제외하면

대부분 2~300정도 버는 단순노동직에 투입되는데

 

2~300 벌면서 맞벌이 하면 대부분 애키우기도 빠듯한데

여자들도 특별히 대체불가능한 업종의 대단한 일을 하는게 아닌 이상

본인들이 몸과 마음이 편하려면

여자는 집안일 , 남자가 바깥일을 하는게 생존에 유리하고

 

남자가 외벌이를 해야

여자들 본인도 편하고 아침에 대충 남편 씨리얼이나 간편식 해주고

애기 돌보고 청소하고 세탁기물 건조기에 돌리고

낮잠좀 자다 점심에 또래 친구들이랑 모여서

브런치도 하며 수다떨다가 저녁에 된장국 끓이러 쪼로로 집에가고

 

남자들도 여자들이 집에 있어야

좀 어수룩하거나 찐따같은 남자들도 양질의 일자리 얻을 기회가 생기고

그래서 지갑이 두꺼워져서 가정에 충실할 수 있고

힘쓰는일 안하려는 여자들이 없으니 직장에서 분위기 안흐리기때문에

남자들끼리 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도 생기고

바깥 사회활동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 법에 자신있게 경제활동 ,

가정을 꾸릴 용기를 얻을 수 있는다는 생각이고

 

(남녀차별이 아니라 그냥 역사적으로부터 이어진 인간 본성을 얘기하는 중임)

 

여자 경제력과 별개로 남자 경제력이 올라가면 곧 결혼 , 출산률이 상승이 직결되는데

그렇다고 여자들 일을 강제로 뺏어도 안되지만

적어도 남녀가 공평한 루트 , 공정경쟁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줘야지

여배우나 여탕 관리자처럼 어쩔 수 없이 여자만 뽑아야하는 직업이 아닌한

일반직군의 경우 남자만 뽑게해도 안되고 여자만 뽑게해도 안되고

동일 체력 , 동일 시험으로 남녀가 공정히 해야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지금 남녀갈등 심화에 출산율이 ㅈ박고 있는 상황이고

 

극소수 엘리트 , 상류층들이 주류인 사무 , 행정직과 달리

중산층이 주류인 현장직 특성상 대체로 머리보단 몸쓰는 일이 주류에

중장비나 기본 장비 , 연장들 무게가 엄청나고

위기사태시 혼자서 80Kg 정도 사람들 번쩍 들어서 업고다닐 체력은 있어야하는데

애초에 이런 일은 [극소수 힘짱 여자들 제외한] 일반적인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딱봐도 대부분 여자 군경소방들 긴급상황시 아무쓸모없고 짐만될게 뻔히 보이고

맨날 책상에만 앉으려하고 위기시 뒤에서 사진만찍고 있으려하니깐

현장에서 희생 , 고생하는 동료들 분위기 흐리게 되고

여자도 장미란처럼 남자보다 체력 쎄면 다들 킹정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고남녀가 철저하게 공정한 똑같은 체력기준을 적용해야하는데

지금 굉장히 잘못된 상황이라는 생각입니다

 

시청이나 군청 이런데서

남녀 소개팅 , 선 주선해준다거나

출산 장려를 위한 질조임 댄스 이런거 뉴스 나올때마다

기성세대들은 진짜 미친놈들인가 싶고 (MZ특 : 기성세대 작품임)

 

제정신 박히고 제대로 된 조직이었다면 시행전에 당장 조인트 ㅈㄴ게 깠을텐데

승인이 되고 그대로 시행됬다는게 놀랍다는 생각이고

무슨 청년들을 짐승들 교배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이딴 나라에서 국민들 단합이 될리가 없고억까당하는건가

진짜 그림자 정부인가 뭔가가

대한민국 국민들 일부로 애 더 낳지 말라고 장려하나 생각이 들 정도고

 

괜히 좀 똑똑한 청년 , 생각깊은 남녀들 그나마 한국보다는 더 공정한 미국으로 탈조하려는게 아니고

멸망기 통일신라나 오늘날 대한민국이나 참 ㅉㅉ..

 

여튼 그나마 최치원은

어느정도 머리가 좋고 좀 사는놈이니까

불공정한 신라사회에서

육두품이어도 나름 대접받고 울면서 시쓰다가 자연경관 즐기다 살았는데

통일신라 말기부터 정치가 급격히 어지러워지며

 

(골품이 대놓고 백성들 차별하는데 안어지러운게 비정상)

 

백성들 , 민초들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었고

다음은 통일신라 말기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남의집 노비가 되어 어머니를 봉양한 효녀 지은]

효녀 지은은 한기부 백성 연권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그녀는 나이 32세가되어도 시집을가지않고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하여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봉양할 거리가 없으면 어떤 때는 품팔이도 하고 

어떤 때는 구걸도 하여 밥을 구해서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러한 생활이 오래 되자,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부잣집에 가서 자청하여 몸을팔아 종이되고 쌀 10여 석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그 집에서 일을 해주고 

날이 저물면 밥을 지어 가지고 돌아와서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이렇게 3, 4일 지나자 그의 어머니가 딸에게 이르기를 

 

<지은의 어머니>전에는 밥이 나빠도 맛이 좋았는데 지금은 밥이 좋은데도 맛이 옛날만 못하고 , 

마치 살 속을 칼로 찌르는 듯하니 이것이 웬일이냐 ?

 

라고 했습니다

 

딸이 사실대로 고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지은의 어머니>나 때문에 너를 종이 되게 하였으니 차라리 빨리 죽는 편이 낫겠다

 

고 하면서 

소리를 내어 크게 우니 딸도 따라 울어서 그 슬픔이 길 가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효녀 지은

 

이 때 효종랑(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버지 김효종)이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돌아와서 

 

부모에게 청하여 자기집 곡식 1백 석과 옷가지를 실어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녀가 몸을 판 사람에게 몸 값을 보상해 주고 양민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낭도 몇 천 명이 각각 곡식 1섬 씩을 주었고

대왕(진성여왕)이 이를 듣고 또한 벼 5백 석과 집 한 채를 하사하고 ,

부역을 면제하여 주었으며 , 

곡식이 많아서 도둑이 들까 염려하여 관계자에게 명하여

군사를보내 교대로 지켜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을 효양방이라 하고 표문을 올려  

당나라 왕실에도 그녀의 아름다운 행실을 알렸습니다

 

효종(랑)은 당시 제삼 재상인 서발한 인경의 아들로서 아명은 화달이었고  

정강왕이 생각하기를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고 여겨 

즉시 형 헌강왕의 딸(계아태후)을 주어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

 

이 인연으로 김효종과 계아태후간에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가 태어났고

경순왕이 비록 신라 마지막 황제라 별다른 능력도 없고

무능한 임금 이미지는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훌륭한 인물이었고

나름 경순왕의 출생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신라삼최 최언위]

다음은 신라 삼최라 불린 신라 최씨 지식인 3명의 이야기로

최언위 열전에 신라 지식인들 이야기가 엮여서 같이 나와있는데

일단 신라삼최 중에서

당연 그중 대장은 최치원이고 위에서 썼는데

신라말기 3명의 최씨들이 글로 이름날렸고

각각 신라 , 후백제 , 고려 삼국에서 대표적인 문인으로 활동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먼저 최승우는..

최승우는 당 소종 용기 2년(진성왕 4년)에 당에 들어갔습니다

최승우는 경복 2년(893년)에 시랑 양섭의 문하에 있다가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사륙집 5권이 있는데 자신이 쓴 서문에서 '호본집'이라 했고

그 뒤에 견훤을 위하여 격문을 지어 태조(왕건)에게 보냈습니다

 

(견훤의 글셔틀이었음)

 

이번엔 왕건의 글셔틀 최언위로서..

최언위는 나이 18세에 당에 유학하여

예부 시랑 설정규의 문하에 있다가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42세에 귀국하여 집사시랑 서서원학사가 되었고 , 

태조가 개국하자 조정에 들어와서 벼슬이 한림원태학사 평장사에 이르렀습니다  

죽은 뒤에 시호를 문영이라 했습니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지만

최언위는 왕건의 조서를 썼다하고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가

각각 신라 후백제 고려를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셋 다 최씨에 통일신라 말기 당나라에 유학해 벼슬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고

다르게 보면 당시 똑똑한 놈 , 좀 사는 자녀들은 다 탈신라해서 당나라에서 공부하다가

돌아와서 반란군 대장밑에 들어가 책사노릇 한 셈이고

그만큼 신라 말기 상황이 노답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골품제때문에 당나라인이 된 설계두]

이번 이야기 마지막 인물로서

우리가 골품제의 한 하면 대부분 최치원을 떠올리지고

설계두라는 안 유명한 인물이 있는데 대표적인 골품제의 피해자입니다

 

이 인물은 태종 무열왕때 인물이지만

신라국운이 왕성하던 이때도 골품제가 노답이어서

골품제가 노답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되있고

그래서 통일신라 시기 마지막 이야기 인물로 정했습니다

 

설계두도 역시 신라의 사대부집 자손었는데  

그는 일찌기 친구 네 사람과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 

그 자리에서 그들은 각각 자신의 뜻을 말했습니다

설계두가 말했습니다  

 

<설계두>

신라에서는 사람을 등용하는데에도 골품을 따지니, 

만일 그 해당하는 골품이 아니면 큰 재능과 훌륭한 공로가 있다고 해도 

일정한 계급 이상 진급할 수가 없다. 

 

나는 서쪽으로 중화국에 유학하여 

불세출의 지략을 발휘하고 비상한 공을 세워서 스스로 영화의 길을 열고 , 

고관의 복장에다 검패를 차고 천자의 곁을 드나들어야 만족하겠다

 

 

621년

그는 무덕 4년 신사에 남몰래 배를 타고 당에 갔습니다

그 때 마침 태종 문황제가 직접 고구려를 정벌하였므로,

그는 자천하여 좌무위과의가 되었습니다

 

그가 요동에 이르러 주필산 밑에서 고구려인과 싸우는데 (주필산 전투) , 

적진 깊이 들어가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으니 공이 1등이었습니다

황제가

 

<당태종>어떤 사람이냐 ?

 

고 물으니 ,

측근자들이 신라인 설계두라고 대답했습니다

황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당태종>우리 나라 사람도 죽음이 두려워 이리저리 돌아보며 전진하지 않는데, 

외국인이 우리를 위하여 국사에 죽었으니 무엇으로 그의 공을 갚으랴 ?

 

황제는 종자에게 그의 평생 소원을 듣고 ,

어의를 벗어 덮어 주었으며, 

대장군의 관직을 제수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습니다

 

여기서 설계두 이야기로 이미 신라가 한창 잘나가던 태종 무열왕시기에도

골품제가 노답임을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당태종시기에 미리 당나라로 귀화해 당 조정에 희생해서

당나라에게 신라인 , 외국인 용병 , 지식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심어주어

이후 당나라가 국제국가가 되어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유치시키고

특히 신라인들을 우대하는 풍토를 만들어준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봉봉>골품제 폐단 이야기하다가

대한민국 병폐 이야기가 갑자기 깊어졌는데

저는 지극히 남녀평등주의자에

제가 어떤면에선 굉장히 중립적이고 진보 , 좌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전 페미니즘 사상 자체가 의미있는 사상이라 역사에서 배웠고

옛날에 100년전만해도 서양 선진국들도 여자들의 참정권이 없었기에

그시절 페미니스트들이 피흘리며 싸웠기에 남녀평등시대가 왔다는 생각인데

오늘날 페미니스트라 자칭하는 그 어떤 세력들을 보면

이건 페미가 아니라 여성우월주의자일 뿐이라는 생각이고

여성단체들 보면 외국에서 진짜 대한민국 망하라고 간첩보낸건 아닌가 싶고

사상이 거의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고

 

전 지금도 왜 여가부가 나이든 가난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쌈짓돈에서 내는

피같은 혈세를 1조 이상씩 매년 받는줄 모르겠고

윤카가 언제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할지 아직도 안했나 가끔씩 뉴스보는데

맨날 안하고 있어서 답답할 지경이고

내가 원전부활 시켜서 원자력 기술 지키고

국민들 백신주사 , 입마개 벗겨준 집권 1년차까진 윤석열 압도적 지지했는데

이젠 모르겠고

 

여튼 이런 못된 여자 , 추녀들이 설칠수록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여자 , 한국의 '선녀' 들이

더더욱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생각이고

 

전 오히려 어릴때부터 지성있고 공부 잘하고 똑똑한 여자애들 보면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어릴때부터 공부 잘하는 여자애들 보면 리스펙 했는데

일반인 , 남자들이 절대 병신이 아니고

그런 똑똑한 여자애들은 남자들과 동등하거나 더 윗자리 앉아도

아무런 불만이나 다른 말 안나오는데

 

(라봉봉 특 : 이래봬도 굉장히 서윗한 남성이라

최상위권 여자의 트로피 허즈번드가 되려 노력하는 남녀평등박애주의자임 ;;)

 

문제는 이상한 질낮은 여자애들이 지들끼리 뭉쳐서

막 해괴한 소리 지껄이고 아무런 노력도 안하면서

멀짱한 남자들 일자리 뺏어먹으려하고 설치는거 보면

 

대한민국이 지금 '반' 의 시기를 겪고 있는게 아닐까 싶고

원래 정-반-합 사상에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들 사회진출이 쉽지 않았고

대부분 가부장적 , 남자 외벌이가정이었고

남자가 돈벌어오면 여자는 그돈으로 집안일하고 애키우고

이게 짐승세계도 동일하고

 

(암컷이 둥지에서 알품거나 젖먹이면

수컷들이 나가서 먹이 물어옴)

 

인간 수천년 역사의

'정' 의 현상이지만 또 반대로

가부장적이라 여자들 권리가 침해되고 대놓고 여자들 성희롱해도

여자들 인권이 무시되는 그런 시기였고

가난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점차 어느정도 경제력이 갖춰지며

여자들도 배려해주기 시작했고

 

결국 이로인해 오늘날 이런 '반' 의 시기가 오긴 왔는데

또 이제 너무 '반' 이 심해져서

남자들이 차별받고 출산률 꼬라박고 나라 망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고

국민들이 남녀할 것 없이 각성해서 '합' 의 과정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이고

합의 과정은 이전같이 두루뭉술하게 남자가 왕이다 , 여자를 무조건 우대해야한다가 아니라

남녀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화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왜 이 상황은 남자를 우대해야하는지 왜 이 상황에선 여자를 우대해야하는지

논리 , 이치적으로 잘 따져보며 이 제도를 시행하면

과연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까지 생각해보고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서로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제도를 시행하는게 '합' 이라는 생각이고

 

그래야 남자도 편하고 여자도 편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꿀을 빨 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고

그래야 가정이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서고 세계가 평화로워진다는 생각이지

 

지금 여튼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이대로 현상유지만 하면

대한민국 멸망은 시간문제라

제가 뭐 허튼 소리하는 것도 아니고 다 역사적 데이터와 통계를 근거로 이야기 하는 거라

신라 골품제 , 조선말기 꼴 안나려면

현재도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입니다

 

여튼 통일신라 말기 이야기까지 다 썼는데

다음 이야기부터 후삼국시대 이야기라 이제 신라이야기는 끝 뿅 이고

여튼 신라 망한 꼬라지 보면

딱히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안들고

어릴때 읽은 '마의태자' 소설에서는 막 마지막 나라의 태자의 비운 하면서

쓸쓸한 황궁터 이런 이미지도 있지만

그런 헤리티지가 엄청난 나라였음에도

백성 , 국민들이 병신도 아니고 그런 더럽고 불공정한 나라를 지지하지 않았기에

자연히 무너진 것이고

 

전통이 엄청난 나라임에도 다들 혐오하고 미워할 지경이 됬으니

자연히 사라졌고 영광의 삼국통일을 한 1000년 제국임에도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꽃이 지고나서 겨울인줄 알았습니다 ,

그립지 않습니다 ,

NO REMEMBER ,

 

국가가 되버린 셈이고

가뜩이나 무력으로만 백제 고구려를 합병해서

백제 고구려계 유민들 민심도 동요하던 상황인데

후대에 나온 고려와 달리

그들을 하나로 묶을 만한 선진적인 정신적 체계 , 합리적 사상과 제도가 종범이었던 국가가

바로 신라였고

망할 만했고

 

(진짜 웃긴게 고구려뽕 , 백제뽕은 아직도 있고

실제로 고구려 기상과 백제 기술은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리스펙하는데

신라뽕은 유독 없고 그나마 순장폐지해서 개죽음 막은 지증왕 정도가 존경할 가치가 있고

신라는 골품제때매  신라뽕은 그냥 없는게 남ㅋㅋ)

 

신라 1000년 역사 자체가

강한놈에게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외교를 전개한 국가가 신라라

한때는 그게 엄청난 고도의 전략 , 지혜로서 대단히 여겨졌지만

시간 지나며 이제 밑천도 다 들어났고

신라 민초들도 또 목숨걸고 나라 살려봤자 좋은 대접 받기 어렵다는 것을

천년간의 반복학습을 통해 체감했기에

 

적당히 똑똑하고 용감하고 착한 왕건이란 인물이 나오자

민초 , 피지배층 , 지배층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쪼로로 투항잼 해버렸고

 

(왕거니 햄에게 더 빨리 나라를 바치기 위한 선의의 매국ㅋㅋ)

 

참 적절히 좋은 시기에 왕건이 나왔다는 생각이고

왕건이 괜히 그시절 코리아 예수 , 성인 이미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고

전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가도

왕건이랑 대화해봐도 마치 좌우에 고루 존경을 받는

김구 선생님이나 중국 지도자 쑨원처럼

사상적으로도 충분히 리스펙 할 거 같고

 

오늘날도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실에서

가뜩이나 남북한 국민 , 인민들 다들 힘들고 못살겠는 판인데

이런 상황에서

신라 무열왕 , 문무왕 , 김유신 장군같은

적군 , 강대국들 대가리 뿅뿅 썰어재끼는 용감하고 무력적 인물보단

 

고려 태조왕건같이 약자들을 어루만지고

아 이사람한테 가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고

신분고하 막론하고 국민들 기회 공정히 주는

자상하고 스윗한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려 국가 기풍자체가 신라와 반대로 열린 나라라

한국사에서 유달리 서민 , 천민 , 평민들 출신 집권자가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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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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