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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왕 8년

양원왕은 장안성을 쌓았습니다


<고구려 양원왕과 백제왕자 부여창(백제 27대왕 위덕왕)의 싸움,

백합야(백합벌) 전투>


양원왕 9년 ??

553년에

한국기록에는 없고

일본 역사책인 일본서기 기록에는

백합야 전투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가 안원왕대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오류같고

연도상으로는 553년은 양원왕이기에

양원왕대 일어난거 같습니다,,


[일본서기 흠명 14년 553년 10월 20일]


10월 겨울

경인삭 기유(20일)에

백제 왕자 여창(부여창, 백제 27대왕 위덕왕)


<일본서기를 쓴 도네리친왕>명왕(성왕)의 아들 위덕왕이다


이 나라 안의 군대를 모두 징발하여

고구려로 향하였습니다

그(부여창)는 백합 百合 의 들판에

요새를 쌓고

군사들과 함께 먹고잤습니다


그런데 이 날 저녁 바라보니

넓은 들은 비옥하고

평원은 끝없이 넓은데,

사람의 자취는 거의 없고

개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갑자기 북과 피리소리가 들렸습니다


<북과 피리소리>두둥 두둥 두둥 !

필릴리 ~


여창(부여창)이 크게 놀라

북을 쳐서 맞대응 하면서

밤새 굳게 지켰고


새벽녘에 일어나 넓은 들판을 보니

마치 푸른 산과 같이

군기(군대의 깃발)가 가득하게 덮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자 목에 경개

(목 주위까지 두른 찰갑 札甲비늘 갑옷,작은 쇳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갑옷)

를 입은자 1기 騎 (말탄 기병 한명),

작은 징


<도네리 친왕>뇨 鐃 (징) 자는 잘 알수없다


을 꼽은자 2기,

표범꼬리로 장식한자 2기 등

모두 합해 5기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와서는

(5명의 말탄 고구려 군사들)


어린아이들이 말하기를,,(일본서기에서

고구려 군사들을 낮춰부른말로

일본은 백제편이었다는 사실과

일본서기 특유의 허세라 보시면 됩니다,,)


<5명의 말탄 고구려 군사들>우리 들판에

손님(부여창과 백제군)이 와있다


어찌 예를 갖춰 맞이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지금 속히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알고싶다


라고 말했고


이에 여창(부여창)이,,


<부여창>성은 동성 同姓 (같은성, 백제 1대왕 온조는

고구려 1대왕 주몽의 아들이므로

백제와 고구려는 같은 주몽의 후예라는 뜻)이고

관위는 간솔이며

나이는 29세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백제에서 반문(되물음)하니

또한 앞에서 같은 방식으로 대답했고

드디어 군기,표 標 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백제(부여창)는 고구려의 용사를 창으로 찔러

말에서 떨어트려 머리를 베고

머리를 창끝에 꽂아 들고 돌아와서는

군사들에게 보였습니다,,


고구려군 장수들은 격노하였고

이때 백제의 환호하는

소리가 천지를 가르는듯 하였습니다


또 부장이 북을 치며 속공(지체함이 없이

재빠른 동작으로 공격함. 또는 그런 공격.)해서

고구려왕(양원왕)을 동성산 東聖山 (평양 동북쪽 대성산 大聖山)

까지 쫒아버렸습니다


<라봉봉>일본서기는 일본인들이 썼기에

일본 특유의 감성들이 있어서

한글로 옮기는게 정말 어색하다기보다

일본스러운거 같습니다,,


이때의 기록에 이런 글귀도 있습니다


<일본서기>여창(부여창, 백제 27대왕 위덕왕)이 신라를 치려고 하였는데

노신들이 간하여,,


<노신들>하늘이 아직 우리를 돕지 아니합니다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라고 말했고

이에 여창(부여창)은,,


<여창>노신들이 어찌 겁이 많은가

나는 대국(일본,,)과 한편이다

무슨 두려울 것이 있는가 ?


라고 대답했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서기에는 일본 특유의

허세가 심한게 있기에

곧이곧대로 믿을수는 없으나

(당시 일본은 백제 중심으로

고구려,신라 한국 삼국에게

문물을 배우는

나라였습니다,,)

백합야 전투 기록을 읽어보게 되니

일본인들의 감성 역시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몇안되는 한국인의 일기토(말을 탄 무사가

일대일로 싸우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식 표현) 기록이고

이외에도 한국 역사에서 구체적인 일기토 기록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호발도의 일기토 기록이라고 합니다,,


또 백합야 전투에서 알수있는거로는

고구려에서는 나라간에 서로 싸울때

이같이 성명,관등,나이를 밝히고 표 標 (목표라는 뜻 같습니다,,)

를 세우고 시작하는게 관례였다는 거를

알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서기 특유의 허세가 있는 글이라고도 할수있으나

한국 기록에는 없는

한국인 사이의 전투였던

고구려 24대왕 양원왕대에

고구려,백제간의 전투였으나

일본서기에만 기록되있는 전투이고

내용이 생생하고 자세합니다,,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 기록에서나

우리, 한국 역사서인 삼국사기 기록 양쪽 모두

양원왕 당시의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 모두에게 압박을 받고

많이 위기에 직면했던 시기라는것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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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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