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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로 고구려 성들을

함락시키는 당나라군>


(*파죽지세 破竹之勢 대나무를 쪼개 듯 단호하고

맹렬하여 대항이 불가능한 기세를 말한다)


보장왕 4년

정월(1월) 봄

이세적의 군대가 유주에

도착했습니다


3월

이세민(당태종)이 정주에 도착해서

사신들에게 말했씁니다


<이세민>요동은 본래

중국의 국토인데

수나라가 네번이나 군사를 출동시켰으나

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한나라가

요동이 영토였던 고조선을 멸망시킨것을

간과하거나 부정했다 할수있고

실제로는 요동은 본래

조선,한국의 국토입니다,,]


내가 지금 동방을 정벌하는 것은

중국을 위해서는

전사한 자제들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며


고구려를 위해서는

죽은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 뿐이다


또한 사방이 평정되었는데

오직 고구려만이 평정되지 않았으니


내가 늙기전에

사대부의 여력을 빌어

이 땅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세민이 정주를 떠나며

직접 활과 화살을 차고

안장 뒤에 비옷(우의,우비)을

자기 손으로 매달았습니다


이세적의 군사는 유성을 떠나며

형세를 과장해서

마치 회원진을 향하는 것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북쪽 샛길로 진군해서

우리(고구려)가 예상치 못하던 곳으로 진군했습니다


4월 여름

이세적이 통정에서

요수를 건너서 현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성읍에서는 크게 놀라서

모두 성문을 닫고 수비태세에 들어갔습니다


부대총관 강하왕 도종은

군사 수천명을 거느리고

신성에 이르렀고


절충도위 조삼량은

기병 10여명을 데리고

직접 성문을 위압했습니다


성 안 사람들이 놀라서

감히 나오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영주 도독 장검이

오랑캐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서

요수를 건너

건안성으로 와서

우리(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수천명을 죽였습니다


이세적과 강하왕 도종이

개모성을 쳐서 빼앗고

1만명을 생포했으며

양곡 10만석을 탈취한 후

개모성을 개주로 개칭했습니다


장량은 수군을 거느리고

동래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비사성을 습격했습니다

성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있었고

다만 서문으로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정명진이 군사를 데리고

밤에 도착했는데

부총관 왕대도가 먼저 성에 올랐습니다


5월

성이 함락되고

남녀 8천명이 죽었습니다,,


이세적이 요동성 아래까지

진격했습니다


<당나라 장수들>이게 수나라와

당나라의 차이다 !

고구려 성들이 하나씩 무너져가는구나 !


<라봉봉>그렇게 1차 고구려-당나라 전쟁이

개전,시작됬고

당나라군은 파죽지세로

고구려 성들을 함락시킵니다,,


수나라때에 고구려 성들이

견고하게 방어된것에 비하여

당나라때는 허무하게 무너지게 되고


당나라 태종 이세민도

수나라 수양제의 실패를 전례삼아

단단히 벼르고 전쟁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사실 수나라를 막은것도

고구려내에서 큰 힘에 부치는 일이었고

이는 고구려에 인물이 적어서라는

문제보다는

국가의 규모,국력,체급차이가 너무 심했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수나라 피해도 막심했으나

수나라는 압도적인 인구,경제력,

자원이 있었고 금방회복할수 있었다면

고구려는 그러기가 어려웠고

침략전이 아닌 방어전이었기에

고구려 국토내에서 벌어진 전쟁이었기에

피해가 컸고


고구려는 고구려-수나라 전쟁 이후부터는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며

주변국에도 크게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수나라 멸망 이후

중국에

다시 통일제국 당나라가 들어섰고

당나라는 수나라의

거대한 문화,정치,경제력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렇게 야심가였던 이세민의 당나라 군대는

이렇게 1차 고구려 - 당나라 전쟁

초기에 파죽지세로 고구려 성들을

함락시키며 사정없이 몰아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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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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