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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전투, 한쪽 눈을 잃은 당태종>


보장왕 4년

5월 당태종이 고구려 안시성에 진군하고

오랫동안 함락시키지 못했다는

다음 기록에는,,(되게 깁니다,,)


<당태종 이세민>으음,,

왜 신하들이 고구려 정벌을

뜯어 말린지 이제서야 알겠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 한명이 

주필산에서의

15만 고구려 대군보다 무섭구나,,


이때 주필산 전투때

당태종에게 항복한 고구려 장수인

고연수,고혜진등이

이세민에게 말했습니다


<고연수,고혜진>저희들이 이미 대국에

몸을 맡겼으니

정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빨리 큰 공을 이루어

우리가 처자와 만나게 하여 주기를 원합니다


안시성 사람들은

그의 가족을 생각하여

자진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빨리 함락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고구려의 10여 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깃발을 보는 것만으로

사기가 꺾여 허물어졌으며

백성들의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오골성의 욕살(고구려 지방관직)은 늙어서

수비가 견실할 수 없으니


군사를 옮겨 그곳을 공격한다면

아침에 도착하면 저녁에 승리할 것이며

도중에 있는 여타의 작은 성들은

위풍만 보고도 반드시 허물어 질것입니다


이러한 연후에 그곳의 자재와 군량을 거두어

북을 울리며 전진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평양을 지켜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또 말했습니다


<여러 신하들>장량의 군사가 사성에 있으니

그를 부르면

이틀이면 올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두려워 하고있는 툼을 이용하여

장량의 군사와 힘을 합하여

오골성을 함락시키고

압록강을 거너

곧바로 평양을 빼앗는 것이

이번 일에 달렸습니다


이세민이 이 말을

따르려 하자

장손무기가 홀로나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장손무기>천자의 원정은

보통 장수들의 정벌과는 다르다


따라서 모험을 하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지금 건안성과 신성의 무리가

아직도 10만이나 되는데

우리가 만약 오골성으로 간다면

고구려 군사들이 반드시 우리의 뒤를

추격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안시성을 점령하고

건안성을 취한 후에

군사를 먼 곳으로 진군시키는 것이 옳다

이것이 만전의 계책이다


장손무기의 말을 듣고

이세민은 곧 앞서의 계획을 중지했습니다


모든 당나라 장수들이

안시성을 급히 공격했습니다


이세민이 성 안에서 들리는

닭과 돼지의 소리를 듣고

세적에게 말했습니다


<이세민>성을 포위한지 오래되어

성 안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데,


지금 닭과 돼지 소리가 요란하니

이는 틀림없이 군사들을

잘 먹인 후에 야습하려는 것이다


군사를 단속하여 이에 대비하라


이날 밤


우리 군사 수백명이 성에서

줄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이세민이 이 말을 듣고

직접 성 밑에 와서

군사를 소집해서

재빨리 공격했습니다


우리 군사중에

사망자가 수십명이나 되었고

나머지는 도주했습니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역시

당 황제는 쉬운 상대가 아니야,,

방비를 철저히 하라 !


강하왕 도종이 군사들을 독려해서

성의 동남쪽에 토산을 쌓아서

점점 성으로 접근해 왔습니다


이에 우리,안시성 안에서도

역시 성을 더욱 높게쌓아서

굳게 방어했습니다


군사들은 당번을 정해서

하루에도 6,7회씩 교전했고


당나라 군사의 충거(성문깨는 차)와 포석(내쏘던 돌)

이 누대와 성위의 작은 담을 허물었으나

성 안에서는 그때마다 목책을 세워서

부서진 곳을 막았습니다


도종이 발을 다치자

이세민이 직접 침을 놓아주었습니다


<도종>폐하,, 망극하옵니다


<이세민>괜찮다,, 아프지 말거라


당나라 군사는 밤낮을 쉬지 않고

60일 동안 토산,흙산을 쌓았습니다


이 작업에 연인원 50만명이

동원됬습니다,,


토산이 완성되자 이 토산의 꼭대기가

성보다 두어 길(1길=10척=1척 당시 23cm면

두길,2길이면 약 4.6m)이나 높았기 때문에


성 안을 내려볼 수있었습니다


<고구려 군 1>워메 쟤네는

수나라 놈들보다 더한데 ?


<고구려 군 2>양 장군(양만춘)님만 믿고

날래날래 부셔버리자우 !


당나라 도종이 과의 부복애를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산정(산꼭대기),

토산,흙산 정상에 주둔시켜

적을 대비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산이 허물어지며

안시성을 덥쳐서

안시성의 일부가 무너지고

흙산과 안시성이 합쳐졌습니다,,

바로 이때 복애(부복애)는

사사로운 이유로 수비하던 곳,

흙산을 떠나있었습니다,,


<양만춘>이때다 !

고구려군은 출동해

흙산을 점거하라 !


우리,고구려 군사 수백명이

성의 허물어진곳으로 나가 싸워서

마침내 토산을 탈취해서

그곳에 참호를 파고 수비했습니다


<이세민>(부들부들)힘들게 쌓은

흙산을 빼앗겼다고 ?!

책임자가 누구냐 !


이세민은 흙산을 빼앗기자

노해서

흙산 책임자였던 복애의 목을 베어서

조리를 돌리고(조리돌림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하기 위하여 끌고

돌아다니면서 망신을 시키다,

여기서는 목을 베어서 병사들에게

보여주었다고 보면됩니다,,)


장수들에게 명령해서

안시성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세민>곧 날씨가

추워지기에 빨리 안시성을

함락시켜야 한다 !

총공격 하라 !


이때 천추,

가을 하늘 아래 대담한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은

이세민의 심장에 활을 겨눴고,,


<이세민>윽,,


<당나라 장수들>폐하 !,,

폐하의 눈에 맞았다 !

어의를 불러오라 !


<양만춘>아깝구나

망극하옵니다

대 당나라 황제 폐하시여 !


<당나라 장수들>모두 퇴각하라 !


,,,


도종이 맨발로 당왕,

이세민의 깃발 아래 가서

죄를 청했습니다


이세민이 말했습니다


<이세민>으윽,,

눈이 아프다,,


강하왕 도종,,

너는 부복애에게 토산을 맡겨서

토산을 고구려에 빼앗겼다,,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지만,

나는 한 무제가 왕회(유능한 한나라 장군)를 죽인 것이

진 목공이 맹명(본명 백리해, 유능한 진나라 신하)을

등용한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너는 개모성과 요동을 점령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용서한다,,


으윽,,


<도종>폐하 !!,,


<당태종>으윽,, 눈이 아프다,,

내 무리한 욕심이

낸 결과였으니

누구를 탓하랴 ?

돌아가자꾸나,,

다시는 요하를 넘지 말라


그렇게 양만춘 장군에게

한쪽 눈을 잃은

이세민은 요동지방은

일찍 추워지므로

풀이 마르고 물이 얼을것이므로


군사와 말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없으며

또한 군량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군대의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먼저 요주,개주 두주의 주민을

선발해서

요수를 건너게 하고

안시성 밑에서는 군사를

동원해서 시위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안시성 안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성에 올라가 절을 해서 작별했습니다


<양만춘>당나라 황제 폐하시여,

신의 화살이 폐하의

심장에 맞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마시옵소서


,,,


<이세민>하하,, 그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

그(양만춘)는 참으로 충신이며 대장부로다

그에게 비단을 하사하여라


으윽,, 눈이 아프다,,

빨리 돌아가자,,


이세민은 그가 성을 굳게 지킨것을

가상히 여기며

겹실로 짠 비단 1백필을 주어서

임금을 섬기는 자세를 격려했습니다


이세민은 세적(이세적)과 도종에게 명령해서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후군으로 서게했습니다


그들이 요동에 이르러 요수를 건너려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습지의 진흙 때문에

수레와 말이 통과할 수 없었고

이세민은 무기(장손무기)에게 명령해서


1만명의 군사로 하여금 풀을 베어서

진흙길을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에서는 수레를 다리로 삼아서

건너도록 했습니다


이세민이 직접 말채찍으로 나무를 묶어

이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10월 겨울

이세민이 포구에 이르러

말을 멈추고

진흙길 메우는 작업을 독려했습니다


모든 군사가 발착수를 건넜습니다

바람과 눈이 휘몰아쳐서

군사들의 옷이 젖고

동사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세민은 길가에 불을 피워놓고

군사를 기다리도록 했고

현토,횡산,개모,마미,요동,

백암,비사,협곡,은산,후황 등

10개 성을 철폐하고

요주,개주,암주 3개주에서

7만명의 주민을 중국으로

옮겨갔습니다


고연수는 항복한 뒤로부터

항상 분개하고 한탄하다가

얼마후에 홧병으로 죽고

고혜진은 결국 장안에 도착햇습니다


이렇게 1차 고구려-당나라 전쟁은 끝났고

이때

신성,건안성,주필산의 세차례 큰 싸움에서

우리,고구려 군대와 당나라 군사중에

사망자가 많았고 마필(말)도

아주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세민이 성공하지 못한것을 깊이 후회하고

탄식하며


<이세민>만일 위징(당나라 명재상)이 있었다면

나로 하여금 이번 원정을 못하게 하였으리라


<김부식>논평한다,

당태종은 성명하여 세상에서 드문 임금이었다

난을 제거한것은

탕왕과 무왕에 비할 수 있고

다스림을 이룬 것은

성왕과 강왕에 가까웠다


때에 이르러서는

기이한 꾀를 냄이 무궁하여

향하는 곳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런데 동정(동쪽 정벌,고구려-당나라 전쟁)에

있어서는 안시성에서 패하여

공이 없었음을 볼때

그 성주(양만춘)은 가히 호걸이며

비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역사)에는

그(양만춘)의

성명을 전하지 않고있다

(실제로 양만춘 장군의 이름은

후대인들이 문헌에서 찾아서

추측해 낸것으로 삼국사기에서는

안시성주라고만 기록되있습니다)


이는

양자가 이른바

제와노의 대신은 역사에

그 성명이 전해지지 않는다라고

한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라봉봉>사실 당태종 이세민이

양만춘 장군의 화살을 맞고

애꾸, 한쪽 눈을 잃었다는 기록은

한국,중국 정사,정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민간이나

중국에서도 소설(당서연의),민간,

중국사극,

기록에서도

등장 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당태종이 안시성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서 애꾸눈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극적인 이야기라

한국,중국에 널리 퍼진 이야기 같고

그래서 애꾸설쪽은

창작을 하며,,

넣어봤습니다,,


이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나

이 이야기는 구전과 전승(입으로 전해짐)이

강력하고 오래됬고

중국 입장에서도 치욕의 역사여서

진실을 숨겼을 수도 있기에

진실성 역시 완벽하게

배제할수는 없다고합니다


당태종은 고구려-당나라 전쟁

이후에도

몇년 더살다죽었고

사실 한 눈을 잃은거는

크게 티가 날정도로 큰것이기에

굳이 중국측에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거 위주로 기록한다해도

숨길 이유까지 있을지는 솔직히

저도 의문이나

매우 유명한 이야기기에

당시를 생각하며 넣어보긴 했습니다,,


또 양만춘 장군의 본명도

삼국사기에서는 안시성주라고만

나올뿐 등장하지 않으나

후대인들이 중국측 기록을 찾아내서

오늘날 양만춘 장군이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 안시성 전투는

안시성 대첩이라 할수있을정도로

위협적이었던 당나라군을 막아낸

이야기라 할수 있겠습니다


고려말,조선초기 문인,시인인

목은 이색의 당태종의 안시성 싸움때

눈을 잃은 시의 구절입니다,,


<이색의 시>

(당태종이)고구려를 주머니 속의

물건으로 얘기했건만

謂是囊中一物耳

백우시(흰깃 화살)에

눈동자가 빠질 줄 어찌 알았으랴

那知玄花落白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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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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