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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 1년

2월

원성왕의 고조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아찬(신라 5등벼슬) 김법선을

현성대왕으로 추봉하고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찬 (신라 2등벼슬) 김의관을

신영대왕으로

조부 (할아버지) 이찬(신라 2등벼슬) 김위문을 흥평대왕으로

아버지 일길찬(신라 7등벼슬) 김효양을 명덕대왕으로

어머니 박씨를 소문태후로 추봉하고

아들 김인겸을 왕태자로 삼았습니다


성덕대왕과 개성대왕(선덕왕의 아버지)의 두 묘당을 헐고

시조대왕(미추 이사금 김미추로 신라 최초의 김씨왕)과

태종대왕(태종 무열왕), 문무대왕(문무왕) 및

원성왕 본인의 할아버지 흥평대왕과

아버지 명덕대왕을 5묘로 정했습니다


<신라 귀족 1> (웅성웅성)

아니 시조대왕, 태종대왕, 문무대왕은 그렇다 쳐도

흥평대왕과 명덕대왕이 5묘에 들어가는 이유가 머임 ?


<신라 귀족 2>(수군수군)

왕의 아버지니깐 그렇지,,

걍 가만히 있으세 잘못 말하면

칼맞는 세상,,


원성왕은 문무 백관(관리들) 의 작위를 한 급씩 올려주었습니다

이찬(신라 2등벼슬) 병부령(오늘날 국방부 장관) 충렴을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으로 임명하고

이찬(신라 2등벼슬) 제공을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으로 임명했다가

제공이 퇴작하자 이찬 세강을 시중으로 임명했습니다


3월

전 왕비 구족왕후를 궁 밖으로 내보내고

벼 3만 4천 석을 주었습니다


패강진(신라 북방영토로 대동강쪽) 에서 붉은 까마귀를

진상했습니다


총관을 고쳐서 도독이라 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신라 38대왕이 된 원성왕은

즉위 초부터 자신의 조상들을 높이는데

신라 하대는 37대왕 선덕왕대부터 시작되고

선덕왕부터가 내물왕계의 시작이기는 하나

선덕왕의 어머니는 태종 무열왕계 후손이라

선덕왕은 과도기적 왕이라 하고

원성왕부터가 본격적인 내물왕계의 시작이며

헌성왕은 더이상 태종 무열왕계가 왕위를 잇지 못하게

태종 무열왕계인 김주원에게 후한 대우를 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5묘에 넣어

이제부터 내물왕계가 왕위를 이을 수 있게 못박은 듯 하고

비록 태종 무열왕계를 견제했음에도

일단 신라에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의 입지는 너무커서

무덤을 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성왕은 혜공왕 말년에 선덕왕 김양상과 같이 일어나

칼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라 할 수 있고

이에 신하들이 두려워 했던 인물로 보여지고

이후부터 내물왕계가 왕위를 잇는다거나

과거제도(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방식) 의

원형이라 할 수 있었던

'독서삼품과' 를 시행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보아

고려 광종이나 조선 태종 이방원 정도의

공포정치 + 유능함 포지션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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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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