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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5대왕 신무왕 김우징


재위기간 839년 1월 24일 ~ 839년 7월 23일로 181일


신무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우징입니다


그는 원성대왕(원성왕) 의 손자인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김균정의 아들이며

희강왕의 종제(사촌 동생) 입니다


예징 등이 이미 궁중을 숙청하고

예절을 갖추어 그(김우징) 를 맞이하고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신무왕은 장보고의 지원을 받아

반정을 일으켜서 민애왕 세력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입니다)


신무왕의 조부(할아버지) 이찬(신라 2등벼슬) 김예영(원성왕의 셋째아들)


<김부식>김효진이라고도 한다


을 추존해서 혜강대왕이라 하고

아버지(김균정) 를 성덕대왕이라 하고

어머니 박씨 진교부인을 헌목태후라 하고

아들 김경응(훗날 신라 46대왕 문성왕) 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청해진 대사 궁복(장보고) 을

감의 군사로 삼는 동시에 식읍 2천 호를 주었습니다


이홍(민애왕 파) 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 해서

처자를 버리고 산림으로 도주했으나

신무왕이 기병을 보내 추격시켜 잡아 죽였습니다


<신무왕>복수는 나의 것이다 !


<신라 신하들>평생을 백제에 대한 복수로 사셨던

태종 무열왕을 다시 보는거 같군 ,,


7월 가을

당나라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당나라로 가는 도중에

치청 淄靑 (산동지역) 의 절도사에게 노비를 주었습니다

당황제가 이를 듣고 먼 지방 사람이라고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귀국시키게 했습니다


신무왕이 병으로 누웠는데

꿈에 이홍이 신무왕의 등에 활을 쏘았습니다


<이홍>네이놈 우징아 니가 그러고도 무사할것 같으냐  ㅠ o_o ㅠ


<신무왕>헉 !! ;;;;;


신무왕이 잠을 깨어 보니 등에 종기가 났습니다


이 달 23일에 왕이 별세했습니다


시호를 신무 神武 (뛰어난 무예라는 뜻인데 장보고에게 청해진 군사

5천을 빌려 10만 신라 중앙정부군을 격파하고 왕이 된 인물이기도 한데

또 죽을 때 자신이 제거했던 반대파 세력인

이홍이 꿈에 귀신으로 나타나 신무왕에게 활을 쐈다는 것도

귀신 신자에 무예 무자로 아이러니하게 맞는 이름 입니다)


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 장사지냈습니다


<김부식>논평한다

구양자는


' 노환공은 은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자요

선공은 자적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자이며

정여공은 세자 홀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된 자요

위공 손표는 그의 임금 간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 자이다


공자가 [춘추] (춘추=공자님이 쓴 역사책) 에 그들이 임금된 것을 하나도 빼지 아니하고

일일이 사실대로 전한 것은

후인들로 하여금 이를 알고 믿게하기 위함이다


위의 네 왕의 죄는 귀를 가려도 들릴 수 밖에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사람들의 악행이 거의 없어질만도 하다 '


라고 주장하였다


신라의 언승(신라 41대왕 헌덕왕 김언승) 은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고

김명(신라 44대왕 민애왕 김명) 은 희강왕을 죽이고 즉위하였고

우징(신라 45대왕 신무왕 김우징) 은 민애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지금 그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것도 또한 [춘추] 의 의도와 동일하다


(아마 김부식님의 심정은 당대 신무왕이 너무 짧게 즉위했기에

딱히 쓸말도 없는데 대신 이런 왕위 쟁탈전이 벌어진 죄를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서 후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라봉봉>역사에서 희망 하나를 붙들고

끊임없이 매진하여 꿈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복수에 눈이 멀어 살다가 보복을 한 후

얼마후 사망하는 인물들도 있는데

아쉽게도 신무왕은 후자였습니다


희망과 절망의 공통점이라면

살아가며 얻어내거나 제거해야할 점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인간 삶의 목표이자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신무왕은 신라 후기의 왕위쟁탈전 시기를 거친 인물로서

원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닥친 절망과 시련을 제거했다면

아마 그러면 그는 왕이 아니라 부처님 같은 성인이 됬을 것입니다 ,,


결국 신무왕 스스로도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서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너무 복수에 힘을 쏟다가 기력을 소모했는지

181일이라는 짧은 재위기간만에 사망한 인물로

마지막 죽을 때 자신이 죽인 김이홍이

꿈에 나타나 활을 쐈는데 등에 맞고

일어나 보니 등에 종기가 나고 얼마후 사망했다는데


(종기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왕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고

과로,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 여러 원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무왕같이 등에 종기가 난 왕으로는 조선 세조도 유명합니다)


이후에도 신무왕은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민애왕, 김이홍 등에게

복수했다는 것으로 높게 평가가 되긴 했는데


(옛날 유교적 사관에서는 임금,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는 올바른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


정치적으로는 권력을 장악하고

이전 세력들을 숙청하고 혼란을 정리함으로서

자신의 아들과 후대 신라왕들에게 짧은 안정기를 제공한 인물이자

장보고라는 인물과의 인연 등

짧게 즉위했음에도 신라 후기에서는

비중이 큰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신무왕의 그런 행위들이 설사 정치적으로 옳다고 했더라도

삼국통일 이후 첫 왕이 됬던 신무왕의 숙청과 다르게

이미 오랜기간동안의 왕위 쟁탈전으로

백성들은 피로했고 도적이 나타났으며

장보고가 나타나기 얼마전까지에도

외국으로 떠나거나 외국에 노예로 팔려가던 상황이었기에

백성들, 지방민들 입장에서는 결국

골품제 최상위권의 서라벌의 김씨들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권력투쟁, 왕위 쟁탈전이었다고 할 수 있고

당장 짧게 즉위해서 별 기록이 없는 신무왕 기록에도

당나라에 간 신라 사신이 당나라에 노비를 주다가

당황제까지 불쌍히 생각해서 그냥 돌려보내라 했고

하여튼 이미 감동도, 의미도 퇴색되어 갔던

그들만의 왕위쟁탈전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명분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이미 기울어져 가던 나라였다고 생각됩니다

신무왕이 839년에 사망했고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이 936년까지 재위했으니

이제 천년 사직 신라 멸망이 100년도 안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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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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