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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이승만 정부(제 1공화국) 의 시작과 붕괴까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잠시 1공화국 시기의 경제분야 이야기도 해보면

일단 이승만 정부는 농지개혁으로 토지를 유상몰수 유상분배 해서

지주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자영농의 비율을 높여

농업안보를 확보했고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은 남한지역을 점령했을때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땅을 나눠준다 했지만

대한민국 농민들은 이미 자신들의 돈으로 자신의 토지를 구매한 경험이 있었던 자영농들이라

북한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협조하지 않았고

당시 공산 · 사회주의 경제 역시 경제적인 부분에 여러 모순을 보여줬기에

북반구에서 공산주의 경제가 실험 되며 점차

사람들은 공짜점심은 없다는 것을 이미 체감했고

이런 상황들로 인해 북한은 남한의 공산화에 실패했습니다

 

농지개혁을 주도한 초대 농림부장관 '조봉암'

 

하여튼 한국전쟁이 끝나자 남한 북한 할 것 없이 전쟁으로 전 국토가 파괴되

많은 산업시설들이 모두 파괴됬는데

 

이전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은 한국지역에서의 수탈을 위해

따뜻한 남한지방에서는 목화(면) 를 재배하게 하고

추운 북한지방에서는 가구당 5마리의 양을 키우게 하는

'남면북양정책' 을 시행해

한국지역을 원료공급기지로 만들려고도 했고

 

북한지역에서 키워진 엄청난 양떼들

 

또 일제의 침략전쟁이 시작되자

한국지역을 '병참기지(군수기지)' 로 만들기 위해

한국지역에 일본 재벌기업을 진출시켜

발전소 및 철도 건설 등을 했고

일제는 만주를 농업 + 원료 생산기지로 만들고

만주와 일본의 중간에 있는

한국지역(한반도)을 경공업중심으로 만들으려 했고

특히 북부지방에는 수탈을 위한 광산개발 , 금속 , 화학 등의 중화학 공업들을

빠르게 육성시켰는데

 

민족말살통치기 시기 세워진 한국의 병참공장들 (만주와 가까운 북한지역에 집중되있습니다)

 

일단 일제는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을 부려먹기만 하고

대학진학 제한 및 고급기술을 배우는 것을 제한시켜

한국내에 설치된 공장은

소유주도 일본인 , 경영진과 상급기술자 및 관리자도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대부분의 최하위 노동은 한국인 위주였습니다

 

(광복직전 1945년 민족별 자산총계는

일본인 92.6% , 한국인 7.4% 였다합니다

 

제발 ~ 일본이 공장세워주고 발전시켜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같은 말도안되는 소리좀 그만했으면 좋겠는게

사회적 보호를 잘 받지 못하는 사람[한국] 을 섬에 가두고

염전노예로 힘든일만 시키며 공짜수준으로 부려먹어놓고

가끔 막걸리 하나 사주고 티비좀 보여줬다고

좋아하는 꼴이며 염전노예주[일본]들은

수색하러 온 경찰[미국]에 잡힐까봐 그냥 살림살이 두고 도망치듯 섬을 떠난건데

원래 일본에서만 식민지 근대화론이 나온거로 아는데

요즘 한국내에서도 학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조상을 욕보이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치는 것은 일본이 돈을 먹인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하여튼 태평양 전쟁기간동안 일제 식민지 치하의

한국지역은 일제에 엄청난 수탈 , 징병 , 징용 , 성노예 등 만행들을 당했으나

일본 본토지역과 달리 미국의 폭격 , 공습은 없었고

 

일제가 미국의 핵을 맞고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며

한국지역이 광복되자

한국지역 내 일본인들은 서둘러 짐을 싸서 자국으로 돌아갔고

1950년 6월 25일인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일본인들이 건설해놓은 공장 , 발전소 등이 멀쩡해서

나름 한국에 살던 일본인들도 미국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자국에

돌아가기 싫어했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다는데

 

이러한 발전소들은

'일본인들이 조선에 남겨준 유산' 이라 한 사람도 있다 하고

특히 만주와 가까운 북한지역에 공장이나 발전소가 집중적으로 건설됬기에

일제강점기에는 북한에서 만주까지 전력을 공급했다 하는데

 

하여튼 38선이 그어지자 38선 이북에 집중되있던 발전소들이어서

광복당시 한국(남한)의 총 전력설비중 88.5% 가 북한지역에서 생산됬다하고

 

각각 38선 남쪽에는 미군이 , 북쪽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자

남한 사람들이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가 전기였고

미군 역시 소련 영향력 아래 전기를 관리하던 북한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 역시 한반도 전기 사정을 돌볼만큼 여유도 없었고

북한지역에서 전기대금을 요구하는 것도 제대로 지불되지 않고

고의인지 우발적인 건지 북쪽에서 송전 중단도 가끔씩 일어났고

결국 한국이 남북에서 각각 독자적인 움직임이 생겨나고

북은 전기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해가다 끝내

1948년 5.10 총선이 치뤄지고 4일 뒤 송전중단을 했고

남한 천지는 암흑천지가 됬다고도 하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적대감이 생겨나며

남북은 완전히 다른길로 갔다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북한의 공격으로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한국지역에 설치된 일제가 남긴 발전소 , 공장들은 모조리 파괴되어

휴전후 한국은 세계적인 최빈국이 되었고

각각 대한민국(남한) 은 미국 및 자유주의 국가들의 원조를 ,

북한은 소련 및 공산권 국가들의 원조를 받게됩니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는 미국이

여러 원조활동을 펼췄는데

 

미국은 지옥의 땅이 되버린 한국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소비재를 지원 , 무상원조했고

 

당시 미약했던 한국경제는

미국의 지원품을 배분하고 판매하는 원조경제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대표적인 상품들이

면방직 , 설탕 , 밀가루 였는데

모두 하얀색 상품들이기에

 

'삼백공업(삼백산업)'

 

이라고 불리고 있고

 

삼백산업 , 다행히 당시 미국경제가 호황이고 미국은 밀이나 농산물들이 엄청나게 남아돌아 미국농산물 수출 및 세계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미국은 전쟁후 폐허가 된 한국에 식량 , 소비재 위주의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습니다 (미국도 장기적으로 보고 한거지만 한국에 도움을 많이 줬음)

 

값싼 원조물자들을 독점으로 배정받아 가공판매 할 수 있던

소수의 자본가들은 순식간에 한국경제 , 시장을 독점하고

재벌로 등장했고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 초대창업주 '이병철' 회장입니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 회장

 

실제 삼성은 오늘날 이건희 회장의 삼성 '전자' 와 다르게

한국 초기 산업의 중추였던 삼백산업으로 큰 기업으로

 

당시 이병철 회장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워

공급받은 원조 농산물을 가공해 팔며 막대한 이윤을 남겼고

이전에도 대구지역을 장악한 거상이었지만

이후 서울로 올라와 미국의 원조경제시기

삼백산업에 집중해 국가 지원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인물입니다

 

하여튼 실제 이병철의 계보를 잇는

삼성쪽은 제일제당 즉 오늘날 CJ 그룹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아는 삼성(삼성전자)은 그의 아들 이건희가 독자적으로 세운 전혀 다른 삼성이라

할 수 있는거 같고

당시부터 한국 기업들은 정부 , 미국과 관련한 사업으로

크게 성장하며 재벌화됬는데

이당시 한국 기업총수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삼백산업 성장기는

 

현대 , 삼성 , LG , SK , 두산 , 롯데(음,,) 

 

등 굵직굵직한 한국 재벌기업들의 태동기이고

물론 창립은 이전부터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조그만한 가게거나 일제강점기 일제의 수탈 등으로 활동이 위축되다

본격적으로 정부가 생기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부터

한국의 기업발전사가 시작됬다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1세대 재벌들은 처음에 모두 조그만 슈퍼(오늘날 편의점) 등으로 시작하다

근면성실 노력해 한국전쟁 이후에 이승만 정부의 삼백산업 성장기때

국가의 비호아래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것인데

 

똑같은 공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누구는 동네 컴퓨터상이 ,

누구는 스티브 잡스처럼 된다는 말이 있는 것 처럼

그들의 근면한 노력 ,

대범한 생각들은 당시 일반인들의 수준 이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들은 '재벌' 이라는 말 처럼

뚜렷한 독창적인 대체불가능한 아이템보다는

일단 생필품 , 식료품 , 경공업 위주로 초기 성장하다

이후 중화학공업 , 첨단산업의 길을 가게 됬는데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는 생필품 , 인프라 , 사치품이나 첨단제품 등 까지

모두 소수 재벌 기업 상품들과 연결되있고

 

재벌의 어두운 면인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이때부터

시작됬고 이 시기부터 정부의 비호아래 성장한 한국 재벌 , 대기업들은

한국정부와의 정경유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

위에서 말한 그룹은 서로 사돈을 맺거나 하는 등

대한민국 경제 ,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다 할 수 있고

나름 대기업 속에서도

독창적이고 세계에 내놓을만한 좋은 상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많은 상품들은 문어발식 카피 상품들로 만들어졌고

정부의 비호아래 한국상품이 보호되느라 외국상품에대한 엄격한 수출규제가 시행됬는데

정작 고위층들은 암암리에 외국에서 좋은 상품들을 수입해다 썼고

국민들은 싸구려 모방상품들을

자국산업보호 등이라는 애국심마케팅 등에 이용 , 동원됬다 할 수 있기에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갔다 할 수 있는

한국 , 재벌경제의 어두운 면입니다

 

(한국 재벌들의 이러한 문제는 IMF 때 본격적으로 터지고

많은 기업들이 정리됩니다)

 

하여튼 이승만 정부시기

삼백산업 등으로 미국의 원조에 의지한 경제가 발전했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1세대 재벌 , 경제인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밀가루 등 값싼 미국의 원조물자들이 일반 한국서민들의 삶에게까지 들어오자

밀가루가 귀해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한국사람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밀가루 음식들을 먹게 됬는데

 

한국인들은 보릿고개등을 넘기기 위해

구황식품으로 산과 들에서 나물을 캐다

곡물가루랑 반죽해 쪄먹었는데

미군의 원조로 밀가루를 얻어다 쑥등을 버무려 만들어먹거나

 

'개떡'

 

을 만들어 먹었고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음식 '개떡'

 

미군부대 근처에서는 미군이 남긴 식량 , 초콜렛 , 햄 , 소세지 등 먹을 것이 많았는데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정말 아무것도 없다싶이한

거지중의 상거지나라였고

미군들이 먹다버린 잔반 음식들을 모아다가 죽을 끓여먹었는데

이를

 

'꿀꿀이 죽'

 

이라 하는데

이름 같이 돼지나 먹을만큼 쓰레기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당시 얼마나 한국이 가난한지 보여주는 한국전쟁 이후 비참한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입니다

 

전쟁기념관의 꿀꿀이죽 설명그림

 

미군이 남긴 잔반통에서

포크나 이빨자국이 보이는 소시지나 햄 , 음식물들을 건져 끓여서 팔았는데

쓰레기통에서 뒤진 음식으로 만든 죽이다 보니

꿀꿀이죽에서는 담배꽁초나 껌 , 콘돔도 섞여나왔다 합니다

 

또 굶주림에 허덕이던 한국아이들은 미군을 따라다니며

구두를 닦고 돈을 벌거나

구걸하러 떼로 몰려다니거나 (동냥아치 , 양아치라 불림)

미군들이 지나가면 미군에게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며

 

'기브 미 초콜릿'

 

을 외쳤고

 

한국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는 착한 미군

 

전쟁후 폐허가 된 나라속 고아나 굶주리는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던 미군이 던져주는 초콜렛과 껌으로

미국인들을 동경하고 숭배했습니다

 

또 한국전쟁으로 남성들이 엄청나게 사망하자

과부들 역시 많이 생겨났는데

가난해진 여성들은 매춘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미군을 상대로 한 한국 매춘 여성들이 엄청나게 늘었는데

 

당시 미군들은 일본이나 한국 등 아시아 주둔지에서

한명씩 애인을 만드는게 유행이듯이 했고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라이따이한 문제처럼

해외파병 군인들은 외로움 , 두려움 , 성욕을 해소하려

파견지의 여성과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단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동원 , 학대였고

이거는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역시 어두운 역사입니다] )

 

당시 한국 매춘여성들은

미군들에게 몸을 팔며

자국 내에서는

 

'양공주'

 

혹은

 

'양갈보(창녀)'

 

라고 비하받기도 했고

 

양공주 , 성매매는 파는사람이나 사는사람 모두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지만 전쟁 혹은 가난한 나라들의 비애로 이야기 되는 이야기입니다

 

청년들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병신(장애인) 이 되고

처녀들은 양공주가 되고

아이들은 외국에 입양되거나 고아 , 거지떼가 되는

생지옥이 펼쳐지던 한국전쟁 직후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두 부자가 겪은 고통을 이야기한 소설 '수난이대' , 출처 : 수난이대 - 하근찬(1957)

 

한국전쟁 이후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소설 '몽실언니' , 출처 : 몽실언니 - 권정생 (1981)

 

또 이승만 정부의 독재도 시작되자

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은 희망없는 절망의 땅이라 보고 그렇게 여기었지만

한국인들은 그럼에도 당시에도 일본에도 , 공산권에도 지지 않겠다는

불굴의 정신등을 불태우고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시기부터 아기를 매우 많이 낳는 베이비붐이 시작되는데

 

(보통 베이비붐을 대표하는 세대를 '58년 개띠' 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높은 교육열을 보여

전쟁 기간동안에도 천막교실을 세우거나

전쟁 이후 학급당 80~90명의 아이들이 모여

빽빽하게 앉아 '콩나물 시루' 혹은 '콩나물 교실' 이라 불리는 등

높은 교육열을 보였고

 

아이들로 빽빽히 들어찬 콩나물 교실

 

적극적인 교육정책은 이승만 정부의 정책이기도 했지만

 

(이승만은 독재자였으나 교육의 수혜를 받은 인물이자 

교육의 중요성을 안 인물이었고

결국 자신들이 키운 학생들에 의해 교육의 힘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선비정신 및 교육열이 강했던 한국인들의 전통과 맞물려

이때부터 이후 고속경제발전시대를 준비하는 기반이 생겨나고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승만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한국의 인재들을 미국에 유학시켜

박사들을 키워내

다시 자국에 돌아오게 해서 국가발전을 시키려 했고 (자신이 걸었던 길과 비슷)

 

북한이나 공산권 국가들에 대항하려

첨단산업이자 무서운 핵무기가 될 수도 있는 원자력 산업에도 집중해

미국과 한미원자력 협정을 체결하고

 

1959년 원자력 연구소 건물 착공식에 첫 삽을 뜨는 이승만 대통령

 

미국에 원자력 기술들을 도입시켜

원자력 기술들을 육성하는데

육성중 이승만은 부정선거 및 부패 등으로 하야했지만

이후에도 원자력 정책은 계승되

한때 박정희 정부시기 핵무기를 만들려다

미국의 강한 반대로 포기하기도 했지만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첨단 원자력 기술국가로 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원자력 기술을 보유함과 동시에

경제성장 , 산업을 뒷받침하는 전력원으로

'원자력' 을 선택하게 됬습니다

 

(사실 핵무기 자체로는 오늘날 기술로 만들기 별로 어려운 기술은 아닐뿐더러

대한민국은 어짜피 세계최고수준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거 자체로만해도

언제든지 단시간에 전략핵무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대한민국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맞고

저는 굳이 대한민국이

외국의 비판과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핵무기를 만들 필요도 없다 생각하고

만드는 거 자체도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정부에서 원자력 발전소 죽이기 및 태양광 산업 띄우기를 한다지만

한국 현실에 원자력만한 것도 없고

오랫동안 세계에서 축적해온 기술들을 날려먹는 게

외국에서 한국 정치인에 돈을 뿌린다거나

외국 스파이들의 농간이 아닐까도 싶고

현재 태양광기술은 산업에 사용할 정도까지로

제대로 발전도 안됬기에 원전기술을 포기하고

태양광을 무리하게 도입하면

한국 산업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며

태양광 자본도 중국계 자본을 활용한다기에 걱정이 큽니다 ,

 

이미지만으로는 태양광=친환경의 좋은느낌 ,

원자력=방사능 위험의 나쁜느낌

이지만 과학을 조금만 공부해도 현재 과학사에서

원자력만한 고효율[친환경과도 연관되있음] 에너지도 드물고

 

제가 현재 한국경제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뜬금없는 원자력 포기같습니다)

 

<라봉봉>대한민국 경제발전사는 따로 이야기를 해도 될만큼

깊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고

상당히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강해

세계 사회에도 여러 모범이 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20세기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경제인 정주영 회장은

이후 박정희 정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이전부터도 여러 한국 1대 대기업 총수들은 이시기부터

여러 역량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정주영 회장은

 

'전쟁만 아니면 우리 삶에 어려운 것은 모두 다 극복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진짜 전쟁이 답이 없는게

대범하고 진취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했던 한국 1세대 경제인들도

일제강점기 말기 대수탈시기나 한국전쟁 시기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모즐리도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자원입대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는 이야기 등을 보면

사회에서 날고 기던 사람도 전쟁 , 폭력 앞에서는 참으로 무력하다 할 수 있고

 

무슨 전쟁은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말도안되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이미 축적된 기술들을 무기등으로 사용하려

무리하고 급하게 꺼내는 것일 뿐이며

실제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이 아니고

 

역사적으로도 경제성장은 항상 민주주의 발달 , 안보 유지등

안정적인 환경이 제공되야 가능했으며

한국 경제발전도 한국전쟁 휴전 이후부터 시작됬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한국은 자원도 없고 정말 가진게 아무것도 없다싶이했지만

그나마 세계적으로도 특출났던게

세계적인 최빈국이었음에도 유독 교육열은 엄청나게 강했고

 

한국인들에게는

 

'우리는 자원이 없고 인적자원이 다다'

 

라는 말들이 자주 있었는데

 

이 시기부터 한국인들은 적극적으로 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은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아픔 , 어두운 시기들을 극복하고

이후 근대화 , 경제발전 , 민주화에 성공하고

역사상 유례없이

잔혹한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던 약소국 나라가

세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게 됬으며

아시아의 용 혹은 호랑이가 되어갔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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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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