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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하야 , 물러나게 되며

제 1공화국(이승만 정부) 이 무너지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3차개헌을 통해

처음이자 마지막 의원내각제 정치체제로 변화시켰는데

의원내각제는 오늘날 일본과 같은 체제로서

즉 대통령이 아닌 총리 중심의 정치를 의미합니다

 

행정부 수반으로 국무총리 장면이 되었고

대통령은 윤보선이 됬는데 (모두 민주당)

이전 이승만 대통령에 비해 윤보선 대통령은 별다른 힘이 없었고

장면 내각 중심으로 '제 2공화국' 이라 불리는 정부가 운영됬습니다

 

윤보선 대통령 (왼쪽) 과 장면 총리 (오른쪽)

 

제 2공화국은 3.15 부정선거 관련자 및 반민주행위자를 구속했고

이승만 정부 시기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는 등

민주당 정부의 정책들이 시작됬다 할 수 있습니다

 

장면내각(민주당) 은

선건설 후평화 통일론을 내세워

당장은 통일은 어렵지만 우리가 먼저 국내 건설 , 잘살게 된 후

평화적으로 통일하자 라는 주장을 했고

내부적으로도 이와 반대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선건설 후평화통일론의 대북관은 이후

보수계열인 박정희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됩니다

 

(참고로 오늘날 보수계열 정당 자유한국당과

진보계열 정당 더불어 민주당이 있는데

자유당 , 박정희 군사정권 공화당 등의 계보를 이은 자유한국당은 보수라기보다

친대기업 및 극우적 성향이 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고

민주당은 진보적 정당이라기보다는

중소 자본가 , 중소기업과 연관된 중도 보수적 정당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실제 6.25전쟁 이후부터

대한민국내에서는 전체적으로

극단적인 반공정책 및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적대감이 심했기에

냉전 시대와 맞물려

진보적 정당이 나오기 어려웠으며 [일단 북한과 비슷한 행보를 가는것도 어려웠음]

 

한국은 미국식 자유주의 정치체계를 복사 붙여넣기 한 경향도 있기에

진보정당이 꽤나 크게 존재한 프랑스나 일본과는 달리

미국식 정치제도를 받아들이기도 했고

공산주의를 채택한 북한과의 대립이 강해서

일단 공산 ,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됬고

북한과 연관이 깊게 있었던 통합진보당 해체 사건등

한국은 중도보수 ~ 보수계열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움직입니다

 

단 그렇기에 집없는 한국 진보들은 민주당으로 유입이 많이 됬고

또 극우가 아닌 보수세력들 역시 자유한국당으로 많이 유입이 되서

한국에서는 나름 자한당은 보수계열을 ,

민주당은 진보계열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근본적으로 보면

친대기업계열의 자한당이 극우이고

중소기업계열의 민주당이 중도보수라는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해서 중도성향이나 진보 , 보수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도

어딘가 들어가야 했기에 각각 정당으로 유입되서

나름 자한당은 보수정당이 됬고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됬다고 생각됩니다

또 양당제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등에

요즘은 한국에도 바른미래당 같은 중도계열 정당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

 

민주당 장면내각 정부시기에는

4.19 혁명의 바람과 더불어 여러 진보 , 사회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는데

4.19 혁명으로 독재를 무너트리고 처음으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됬다는 것을 체감한 대한민국 국민 , 시민들은

너도나도 여러 사회적 운동을 벌였고

(군부가 의도적으로 혼란을 조장했다는 분석도 있음)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매일같이 시위 , 데모를 벌였는데

이번엔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별 사소한 일로도 데모를 벌여데 피로감을 증가시켰고 ( '1절만 하자' 의 중요성)

이에 데모를 그만하자는 데모도 일어났다고도 합니다

 

장면내각 정권출범부터 여러 사회혼란 데모가 난무했고

또 결정적으로 군부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하지 못했고

 

일단 장면내각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나름 경제건설에 대한 구상도 펼쳐놨지만 얼마후

박정희 소장 중심의 군부의 쿠데타

'5.16 군사정변' 으로

경제개발 5개년 시행은 박정희 정부때 시행됩니다

 

당시 잦은 데모 , 군부의 동요속에도

우유부단했던 장면내각이었고

결정적으로 장면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며

재원을 마련하려 국군을 감축해 조달하려 했는데

당장 밥그릇이 사라질 걱정의 군장교들은 장면내각에 대한 극심한 반발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당시 군인들은 한국전쟁시기 미국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출신 장교들이 일반 민간 , 공무원들에 비해 현저히 많은

선진적 업무처리 능력이 높은

당시 한국내의 가장 엘리트 집단이었는데

 

(1953년 기준 대한민국의 미국 민간유학생 700명 , 미국 유학 장교 1천명)

 

처우가 매우 박해 군인 일가족이 월급으로

살기도 어려워 부정부패 , 물자횡령 , 뇌물이 빈번한 암담한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군감축까지 벌이려 하자

많은 군인들의 동요와 반발이 있었습니다

 

(5.16 군사정변은 후에 박정희 정부에 의해

4.19 혁명의 연장선이자 우국충정의 부득이한 정변이었다고 포장됬지만

일단 박정희라는 인물은 야망이 큰 남자였고

저는 5.16 군사정변은 결국 '밥그릇' 문제의 비중이 컸다고도 생각합니다)

 

당시 군부 내의 박정희는 이전부터 정권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찍힌 인물이었는데

3.15 부정선거가 터졌을때에도 자유당 정권을 전복시키려

쿠데타 계획을 세웠지만 4.19 혁명이 터지며 실패했고

나름 그전까지 군내에서 요직을 거치다

장면내각에서도 중용될뻔 했지만

장면 총리는 그에 대한 조사를 시켰더니

그의 남로당 활동이력이 알려지게 되어

 

(박정희는 이전 일제 만주군에도 들어갔다가

남로당에도 들어갔다 하는

힘의 논리에 붙는 기회주의 성향이 강했던 인물입니다)

 

군부 내에서도 요주의 인물로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는데

결국 앙심을 품은 육군소장(투스타) 박정희는

4.19 혁명 이후 뒤숭숭했던 장면내각 시기에

 

1961년 5월 16일을 거사일로 잡아

6천여 이상의 군인을 동원해 쿠데타를 계획합니다

 

장면내각 시절을 다룬 드라마 '제2공화국' , 제O공화국 시리즈는 한국현대정치사 격변기를 다룬 MBC 드라마 시리즈로서 특히 한국 현대사 주요사건들이 나오며 가장 최근 사건인 제 5 공화국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 출처 : 제2공화국(第二共和國) (1989) The Second Republic

 

<라봉봉>제 2공화국 시기는 5.16군사정변으로 너무 빨리 끝나

어떠한 정책도 제대로 한게 없어 존재감이 미약한 편이고

대신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잠시 의회정치가 일어났다는 점이나

이후 박정희 정부때 시행된 경제개발 지도가 이때 구상되었다는 의의가 있는 시기입니다

 

단 경제 개발을 추진하려 무리한 군감축을 하려다

군부의 반발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정치인들의 무능함 , 우유부단함에 결국

군부에서 정치성향이 강했던 박정희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야당 탄압등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도 강했지만

이면에는 박근혜 대통령때 공무원 연금개혁으로

많은 공무원들이 반발하기도 했던 것이 있었고

(아는 공무원 할아버지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쌍욕을 함)

 

공무원 개혁은 하기는 해야하지만

그것이 일가족 생계와도 걸린것도 있기에

상당히 어려운 것이며 합리적 ,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인데

이때나 현재나 공무원들을 건드리는 문제는

정권이 뒤집어 질수도 있는 아주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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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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