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북한의 대남도발(1968) 이후부터
본격적인 북한 적대 분위기 및 반공 및 공안(공공의 안전뜻이지만 한국에서는 반공의미와 비슷) 분위기를 조성시켰고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김일성의 북은 남을 적대하고
박정희의 남은 북을 적대하며
서로의 체제결속 및 정권연장에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여튼 그래도
박정희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시행해
내부적으로 지지도 얻었고
공화당 내에서도 박정희가 대통령을 2번을 했으니
다음 후계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됬는데
중앙정보부장을 맡은 인물인 김형욱은 회고하기를
<김형욱의 회고>박정희가 술자리에서 3선 욕심을 공공연히 피력하자 , 솔직히 무서웠다
라고 밝힐 정도로
박정희는 이승만같이 2번으로 하고 내려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또 박정희는 집권욕도 강했지만
경제에도 집중해서
1차 경제개발 5개년(1962~1966)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1967~1971)을 시행시켰는데
이 시기부터 식량 자급화 및 삼림녹화 , 화학 , 철강 , 기계공업같은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려 했고
이때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로 일본에게서 받아낸 달러도 투입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2차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는
'경부고속도로(서울~부산 고속도로로 1968~1970년 건설됨)' 건설인데
이전 파독 근로자를 위문하기 위해 독일에 간 적이 있었던 박정희는
패전후 '라인강의 기적' 이라 불리며 신흥 강대국으로 일어나고있는
독일의 울창한 삼림 및 광대한 아우토반(고속도로) 에서 한국경제건설의 해답을 찾았고
박정희는 새롭게 일어나고있는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불러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했고
416km 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당시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깔려 하자 많은 이들이 반발했습니다
야당의 김대중의원은 대표적으로
지역 균등발전등의 이유로 먼저 동서교통랑뚫는게 더 시급하고
한정된 재원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는 이후 까는게 낫겠다 했고
나름 합리적인 주장이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고속도로 까는거 자체에 대한 합리적 반발과 비판이 존재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박정희>공산당을 이기려면 경제 건설밖에 없다.
그러려면 경제의 핏줄인 고속도로가 필요하다
라며 건설을 독려했고
'하면 된다' 라는 자신감으로 나라의 핏줄이라 할 수 있는
고속도로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이때 건설에 참여한 도전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했던 기업가였던
현대건설의 정주영은
'주판을 엎고서 공사를 하자'
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흑자를 포기하고 비싼재료 투입 , 과감한 건축등으로
빠른 속도로 공사를 해냈고
이러한 고속도로 건설등으로 정주영회장은 정부와 사회의 큰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양반이 그렇다고 적자경영을 한 인물은 아니고 한국 최대 재벌이 된 인물이지만
멀리보며 돈을 잃어야할때와 벌어야할때를 구분하고 과감히 쓸때 썼습니다)
<정주영 회장 명언>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당시 현대그룹에 내려오는 아름다운 미담이 있는데
정주영은 박정희와 독대할때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일하느라 너무 피곤해 박정희가 말할때 깜빡 잠들고 말았고
몇 분 후 화들짝 깨어나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을 보자
너무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의 손을 잡고
<박정희>정사장 , 내가 미안하구료
라고 말했고
이에 정주영 회장은 이후부터 현장을 둘러볼때마다
졸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는 훈훈한 미담도 생겨났습니다
하여튼 정희팍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인
1970년에는 농촌 근대화 운동 , 농촌 계몽운동인
'새마을 운동' 을 시작했고
전국 농촌의 초가집들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게 되어
초가지붕사이에 살던 뱀이나 쥐들의 습격을 막게 했고
농촌 수로 , 도로들을 콘크리트를 깔거나 정비시켜 깔끔하게 포장하고
화장실등을 건설해 위생수준을 높였습니다
한국 어르신들이라면 이 노래쯤은 다들 알고 계실겁니다
<박정희가 작사작곡한 '새마을노래'>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4절
우리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
후렴
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외에도
1970년 건전가요로
'잘 살아보세' 라는 곡이 유행했고
박정희는 '하면 된다' 라는 불굴의 의지 등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해
'잘 사는 나라'
를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문제는 정희팍은 그과정에서 민주주의 무시 , 악마화라는 과오가 있지만
경제면에서는 천사의 영역의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새마을 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됬고
오늘날에도 가난한 나라나 개발도상국들에서는
한국의 새마을 운동에 집중해 배우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봉봉>나름 경제분야는 깔끔하고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인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박정희대통령 미담도 여럿 있지만
단 서민들 앞에서는 막걸리를 마시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지만
독재자 및 이중적인 사생활도 있었던 인물이며
최근 현대사람이기에 오늘날에도 박정희 세대들은 살아있으며
판단은 오늘날 우리의 몫이며 조심스러운 평가가 필요한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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