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는 미 , 일 , 독 같은 경제대국들과 우호관계를 맺어
산업화 , 경제건설 자금을 확보하려 했는데
일본에는 한국인들의 거센 반발속에서 급하게 한일수교를 맺었어
차관등을 확보했고
미국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을 파견해 미군과 협력해
미국의 신뢰를 얻고 여러 달러들을 확보했고
이 이야기들은 이전에 썼는데
이번에는 독일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박정희 정부시기부터 실업문제 해소 및 외화획득을 위해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채결하고
독일(서독 , 자유주의) 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는데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는 8395명 ,
1965년부터 1976년까지 간호사 , 간호조무사는 1만 371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근로자들이 독일에 파견됬고
1967년 당시 간호사들이 한국에 송금한 돈은
한국 상품수출액의 35.9% , 무역외수입의 30.6% 를 차지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엄청난 역활을 했고
이들은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잘 하지 않으려는
3D 업종을 도맡아 하게 됬고
남자 , 광부들은 지하 1000m 가 넘는 석탄광산에서 일하며
중노동에 시달렸고
여자 , 간호사들은 대변치우기 , 식사수발 , 시체닦이 , 틀니세척 등의 허드렛일을 했는데
한국 노동자들은 범죄나 부정에 연루되는 일들도 적었고
여자 간호사들은 절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보여주었고
독일인들 역시 한국 노동자들의 모범적인 모습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외노자라 할 수 있는 한국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파독근로자들 역시 알뜰히 돈을 부쳐 가족들을 먹여살리거나
교육에 힘쓸 수 있게 됬습니다
<김정희 독일에서 흘린 눈물2>
은행에 가서 한국에 송금하고 돌아올 때면
들뜬 마음으로 발검음도 가볍게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그 대가로 동생들이 학교와 대학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또한 착실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더욱 힘이 났다.
<황보수자 독일에서 흘린 눈물2>
(독일측에)특히 감사한 점은
독일 간호사와 동일하게 노동법에 준하여 대우하였으며
조금도 차별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일하러 오신 분들에게도
이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었으면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패전후
'라인강의 기적' 이라 불릴 정도로
괄목한 경제성장을 하게 되며 새로운 강대국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서독(독일) 의 모습에 집중했고
'우리도 한강의 기적을 이뤄보자'
라는 각오로
서독과의 우호관계 맺으려 했는데
가난한 나라여서 무시받다가 눈물겨운 구애끝에 결국 서독에
상업차관을 빌리는데 성공했고
1964년 12월 10일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서독 뤼브케 대통령 초청으로 서독에 도착했는데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한국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도 방문했고
그들의 얼굴에는 온통 석탄이 묻어있고 작업복 역시 흙투성이 였습니다
방정희 대통령을 환영하며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울음소리가 노랫소리를 덮어버렸고
박정희 대통령 역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목메이는 목소리로 연설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광부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열심히 합시다. 나도 열심히….
함께한 서독대통령도 눈시울을 적셨고
광부들은 대통령이 탄 차 창문을 붙들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통곡했다 하고
울음바다가 되버린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방문은
눈물겨운 한국의 경제성장기의 대표적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에서 일주일동안 머물며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달렸고
제철소를 견학했는데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나라의 혈맥이라 할 수도 있는
'아우토반(고속도로)' 였고
박대통령은 서독관계자에게 아우토반 건설방법 , 건설기간 , 장비들을 자세히 물었고
결국 이때의 독일 방문으로 3년뒤인 1967년 11월 7일
청와대 회의에서 박대통령은 건설부 장관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하며
직접 전두지휘하게 됬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방문 당시 울창한 독일의 산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수탈 , 한국전쟁 , 무분별한 산림훼손으로
나라가 벌겨벗겨진 민둥산의 모습이었고 사실상 그로인해
한국은 지옥의땅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산림녹화에 수많은 지시를 내렸고
이후 '국토녹화 완수 10개년 계획' 을 발표해
치산녹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산이 푸르르게 되기 전에는 독일을 가지 않겟다(혹은 다시는 유럽땅을 밟지 않겠다)'
라고 말 할 정도로 녹화사업에 열정을 쏟았고
덕분에 오늘날 대한민국 강산은 푸른 산림이 가득한 모습이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 역시 독재자의 오명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인물이지만
저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적어도 녹화사업만은 청정하고 순수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라봉봉>21살쯤인가 무언가 홀린듯
광화문 세종대왕상 오른쪽 , 미국 대사관 옆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을 찾았는데
그곳에는 파독 근로자의 모습들이 있었고
그곳에는 여러 대한민국역사 (현대사) 들의 자료들이 전시되있습니다
파독 근로자들은 독일에 정착하기도 했고
우리의 이웃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가난했던 한국 초기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한 산업역군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였으나 '경제 대통령' 이라는 다른 수식어가 있을 만큼
경제 분야에서는 뛰어나고 탁월한 안목이 있었고
그러한 그의 모습들에 당시 한국인 , 독일인 할 것없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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