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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전의 연잉군 영조>

[숙종의 두 아들]

[조선 신데렐라 숙빈 최씨]

[총명한 연잉군]

[궐밖에서 자란 왕자]

[세제 연잉군]

[경종 독살설]

<라봉봉>

 

[숙종의 두 아들]

자 그렇게 어리버리한 호구형님 경종이

간장게장과 감을 먹다 복통으로 급사하자

 

그의 이복동생이자 세제

(왕이 아들인 세자가 없을경우

동생을 후계자로 해서 세제로 임명함) 연잉군은

급하게 왕위를 이어

조선 21대왕이자 조선 후기 최고 명군 영조가 됩니다

 

조선 후기 명군 영조

 

경종 , 영조 형제의 아버지였던 숙종은

인현왕후 , 장희빈 , 숙빈최씨라는 세 여인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임금이고

45년간 재위하며 세 부인들을 갈아치우며

세 부인을 지지하는 신하들을 숙청하는 '환국' 을 일으키며

잔혹한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하였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경종과 영조 형제는

이복 형제였기에

어머니들끼리 서로 혈투를 벌인 것을 목격하며 성장했고

 

이로인해

온화한 성격의 경종은 정신병에 ,

냉철한 성격의 영조는 지나친 의심병 성향이 되는데

 

이렇게 숙종이 뿌려둔 악의 씨앗으로

조선 후대 왕실과 신하들의 균형은 무너지고

신하들도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거나

서로 혈투를 벌이는 등 잔혹한 형태로 정국이 운영됩니다

 

하여튼 ,

숙종의 두 아들은 모두 임금이 됬고

 

장희빈이 낳은 아들이 경종 ,

숙빈최씨(동이)가 낳은 아들이 영조인데

 

조선에서 가장 예뻤던 미인이라 하나

장희빈의 잔혹한 성격에 지친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려 살해한 후에

 

똑똑한 왕자 영조를 낳은

똑똑한 여인 숙빈 최씨에 빠져들었고

 

죽기전까지 세자이자 장희빈의 아들이었던 경종을 천대하고

숙빈최씨와 영조를 대놓고 편애하며

분란의 씨앗을 만들고 사망합니다

 

[조선 신데렐라 숙빈 최씨]

숙빈최씨는 궁녀들의 시중을 드는 무수리라는 최하위 궁녀계급 출신 여인으로서

조선시대 궁녀가 오늘날로 치면 나름 7~9급 공무원이고

무수리는 거의 비정규직 노동자 ,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최하위 계급의

궁녀들을 보조하는 여자로서

궁녀도 아닌 시녀였고

 

무수리는 이름같이 

물뜨는 일을 하거나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가장 어렵고 고된 막일을 하는 

궁궐 최하위 계급 여성으로서

 

숙종의 부인으로서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 , 최무수리는

집안도 천민이나 빈민층 출신의 한미한 궁중 여인었습니다

 

기회를 노리는 최무수리 , SBS 월화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2013)  Jang Ok-Jeong, Lives In Love

 

숙빈 최씨의 출생 이야기로서는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유중은

영광군수로 임명되 부임되는 길에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란

남루한 소녀를 발견해 집에서 데려다 키웠고

 

그렇게 민유중의 집에서 자라며

어렸을때부터 민유중의 딸 인현왕후를 모시다가

인현왕후가 왕비에 간택되 입궁할때 

동시에 입궁해

인현왕후를 모시며

평생동안 인현왕후와 친분이 두터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다 최무수리는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임금과 관계) 을 입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평생을 궁중에서 살아 잔뼈가 굵었던 최무수리는

당대 인현왕후(서인) VS 장희빈(남인) 세력으로 갈려

신하들이 두 여인을 밀며 대결하며 살벌하게 돌아가고 있던 상황에서

영민하게 처신하며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총명한 왕자 연잉군(영조)을 낳으며 그 공로로

최무수리(최시녀) 는

정 1품 숙빈자리를 받아 숙빈 최씨라 역사에 이름남게 됩니다

 

삼연속으로 숙종의 세 아들을 낳아버리며 최무수리에서 벼락출세한 조선 신데렐라 숙빈최씨

 

인현왕후가 사망하자

숙빈최씨는 곧바로 인현왕후를 지지했던 서인들과 손잡고

숙종에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것을 일름보해서

장희빈과 남인세력들을 모두 죽여버렸고

 

잠자리에서 장희빈의 저주를 일름보하는 숙빈 최씨 , 숙빈 최씨의 베개머리 송사(침대정치)

 

연잉군은 비록 미천한 어머니 + 세자가 아니었음에도

막강한 제1집권여당 서인 , 노론들의 지지를 받아

숙종 사후에도 어마어마한 권력을 누리게 됩니다

 

[총명한 연잉군]

숙종은 기본적으로 다혈질+냉정 권력자에

여혐러기질이 강한 임금이어서

기본적으로 자신의 여인들을 다 조졌는데

 

장희빈을 살해한 후

장희빈이 낳은 아들 세자 경종이

별다른 흠이 없는 아들임에도

은연중에 미워했고

 

미약한 출신이나 총명한 영조를 대놓고 이뻐했습니다

 

영조는 겨우 걸음마를 배웠을 때

숙종에 나아가서 반드시 무릎을 모아서 바르게 앉고

숙종이 물러가라 명하지 않으면

해가 저물지언정 어려워하는 표정이 없어서

 

영조 엄마인 숙빈 최씨는

영조가 오래 꿇어 앉아 발이 굽을세라 걱정해

넓은 버선을 만들어 힘줄과 뼈를 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효자였던 영조

 

총명한 아이였던 영조는 글씨와 그림은 배우지 않아도 타고나게 잘해서

사람들이 감동해버렸고

숙종 역시 영조의 천성을 아름답게 여겨

시를 지어서 총애하고

영조가 6살이 되자 연잉군에 봉해줍니다

 

숙종 명으로 그려진 21세의 연잉군 , 조선화원 박동보

 

[궐밖에서 자란 왕자]

숙종은 영조를 낳은 숙빈최씨를 총애했지만

그는 나쁜남자였기에

 

숙빈최씨가 장희빈 세력을 제거한 이후

차기 중전후보로서 서인들과 손을 잡고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는듯 보이자

여자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는 것을 원치않던 숙종은

다시금 숙빈 최씨를 궁밖의 이현궁으로 내보내버렸고

앞으론 후궁은 왕비가 될 수 없다고 법을 못박어 버립니다

 

이현궁(정조대 장용영 건물로 사용됨)

 

연잉군은 19세에

궁을 따로 짓고

어머니와 궁밖에 나가서 살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연잉군 , 영조는 사가(일반 집) 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자랐기에

백성들의 어려움을 아는 훌륭한 명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제 연잉군]

숙종사후 연잉군의 운명은 급변합니다

숙종 사후

세자로서 우여곡절끝에 왕이 된 경종이었지만

뚱뚱하고 허약한 체질에 자식도 없고

댕청하고 그저 유순하기만 했던 경종이었기에

 

정국을 장악한 서인 신하들은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으로 나뉘었고

 

경종과 연잉군

 

유약했던 경종과 소론은

다수였던 노론 신하들에게 대놓고 무시받았고

신하들 역시 대다수가 궐밖의 연잉군(영조) 을 지지했기에

 

경종은 즉위를 하자마자

신하들의 압박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했습니다

 

<경종의 연잉군 세제책봉>

효종 대왕의 혈맥(혈통)이며

선대왕(숙종) 골육으로는

주상(임금 , 나) 연잉군이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의논이 있겠는가 ?

 

영조는

자신이 증조할아버지 효종 , 할아버지 현종 , 아버지 숙종의 피를 이은 혈연적 정통성을 강조하며

이 혈통을 삼종혈맥이라 일컷습니다

 

삼종혈맥

 

그렇게 조정은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으로 나뉘었는데

 

대놓고 경종을 무시하던 노론들은

아예 경종을 시해하려고까지 하다가

빡돈 경종이 노론을 한번 조져버린 사건도 있었고

 

그 이후에는 경종이 연잉군을 반역죄로 몰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왔음에도

경종은 조선의 미래를 위해 똑똑한 이복동생 연잉군을 살려두어야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신하들의 공격에도 정적이었던 연잉군을 보호해주었습니다

 

[경종 독살설]

그러다 원래부터 몸이 허약했던 경종은 

병상에 누워서 밥도 잘 먹지 못했는데

 

형님의 건강을 걱정한 세제 연잉군은

경종에게 게장과 감을 올렸고

밥도둑이었던 게장을 좋아했던 경종은 게장과 감을 맛있게 먹었지만

게장과 감은 같이 먹으면 탈이 나는 ,

의학적으로 매우 나쁜 조합의 음식이었기에

병약했던 경종의 속에선 큰 배탈이 나게 되었고

경종은 결국 사망합니다

 

연잉군은 그렇게

경종이 갑자기 요절해버리자 왕위를 이어

영조가 되는 다사다난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연잉군이 올린 게장과 감때문에 경종이 사망한 것이기에

영조가 왕이 되자마자

영조를 반대하는 세력 , 소론들은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루머나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루머(경종 독살설)를 조직적으로으로 유포했고

특히나 경종독살설은 영조가 죽을때까지뿐만 아닌 오늘날까지

영조 음모론 , 꼬리표로 따라오는 이야기입니다

 

술렁술렁

 

평생 서인VS남인 , 노론VS소론 들의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 , 소용돌이속에서 성장한 영조는

즉위후 곧바로 소론들을 몰아냈지만

 

영조는 언제 반역죄로 죽을지도 모르는 세제시절

정적이었던 이복형 경종(온건 소론) 이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대국적인 은혜가 있었기에

온건한 소론들과는 손을 잡았고

 

숙종대부터 시작된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영조는 자신대부터는 경종의 뜻을 받들어

아버지 숙종처럼 신하들을 경쟁시키고 분열시키려는 정책이 아닌

민생의 안정과 파벌을 초월한 정국운영을 하게 됩니다

 

<라봉봉>영조는 천성적으로는 총명했지만

워낙 미약한 출생 + 피바람부는 정쟁속에 성장한 인물이었고

숙종이 사망할때까지 숙종의 병간호를 하느라

 

총명한 왕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어린시절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왕이 되고나서야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운 케이스이고

그럼에도 연잉군은 총명함 , 눈치있는 처신으로 살아남아 왕위를 잇게 됩니다

 

태어날때부터 정치적으로 아주 꼬여있었던 영조는

출생때부터 왕이 될때까지 , 되고나서도

계속되는 정쟁에 휘말린 인물이었고

이로인해 형 경종처럼 정신병 ,

 

더 정확히 말해서는

형과는 달리 의심병에 평생 시달려

아들까지 죽이는 잔혹하고 냉정한 권력가가 됩니다

 

그럼에도 영조는 왕이 된 이후 점차 정쟁이 아닌 화합과 민생에 주력하는

명군이 되었고

 

특히 아들과 신하들에겐 한없이 엄격했지만

왕자시절엔 일반적인 조선 국왕들과 달리

사가에서 백성들과 함께 살았던 인물이었기에

백성들의 어려운 형편과 사정을 잘 알아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백성들에게는 관대하고 따뜻한 왕이었기에

조선 후기 최고의 명군으로 백성들에게 사랑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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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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