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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황금의 나라라고 불리기도합니다

사실 황금의 나라라는 말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말일수도 있는거같습니다

지팡구,일본도 황금의 나라라 불렸고 스페인인들이 대항해시대때

아메리카 대륙에서 황금의 땅이라는 엘도라도를 찾으려 했던거거도 같습니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도 섞여있을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일본,신라,아메리카에서는 많은 황금이 있었던거같습니다


이븐 쿠르다드비라는 사람은 845년 쓴 지리서에서

다수 아랍인들이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금이많이나는 신라에가서

영구정착했다고합니다

10세기 사학자 알 마크디시는 신라인들은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집을 단장했다면서 밥먹을때도 금그릇을 사용했다고합니다,,

또 중세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그곳에서 나오려 하지않고 금이 너무 흔했다고합니다

일본서기에서도 눈부신 금은채색들이 신라에 많다고합니다



확실히 신라에 금이 많았던거같습니다

삼국유사,삼국사기 기록을보면 헌강왕때

 “도성 안에 기와집만 있고 초가집은 한 채도 없으며, 노래와 음악 소리가 길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또 숯으로 밥을 짓고 땔나무를 쓰지 않았다.”

라고합니다 신라인들의 태평성대를 이야기하는 이야기일까요

도성안 얘기같고 신라말기에는 흉년과 왕족들의 정치 싸움으로 백성들은 도적화되고

지역에서는 반란이 일어나는거같은데요 헌강왕때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나고

헌강왕 이후부터 신라가 망해가는거같습니다,,

도성에 금이 많아서 이런 백성들도 기와집같은게 되었을까요,,

사실 기와라는게 오늘날 현대 건축에서는 지붕무게로 부담을줘서 그렇게

ㄱㅊ은 방식은 아니라고 본거같습니다 그러나 그당시에는 초가집은

서민,백성 기왓집은 부유한 사람들이 쓰는 집이라는 인식이 있었던거같습니다

신라에는 금입택이라고 금칠한 집도 있었던거같습니다,,


경주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황금 유물이 많은거같습니다

백제 유물보다는 그 섬세하거나 세련되고 정밀한 그런거는 부족한거같은데요

이는 사실같습니다 신라유물은 실제로도 뭉특하거나 마무리가 덜된거같이 그런게 있는거같습니다

황금유물은 많은거같습니다

그많은 황금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경주지방 월성근처 형산강쪽에서

사금 즉 강가에 모래같은데 섞인 금들로 채취했다는 말도있는거같고

오늘날에도 경주쪽 강가에서 사금을 적게라도 채취할수는 있는거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적게 채취할수 있겠으나 그당시에는 강가에 오늘날보다

더많은 금들이 있었던거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부로 중국에게 안뜯기려고 국가적으로 우리나라에는

금이없다 이렇게 하고 금광산들을 숨기려한거같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한국은 세계3대 금생산지역이 되는거같습니다

조선시대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많은 금들이 채굴되고 오늘날에도

한국에 금이 있기는 있으나 옛날만 못한거같습니다 채굴하려면 경제성을 고려해야된다고합니다

오늘날에도 북한에 금광이나 다른 자원들이 있는거같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판매하는거같은데요,,북한이 평화의 길로 와야할것인데요,,


조선시대까지 경상도 창원쪽이나 성주에서도 많은 사금을 얻을수 있었다는거같습니다

신라인들은 성주나 봉화쪽에서 금을 채취했다 본거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도 금이많았는데 조선시대말기,일제강점기때 많은 금들이 일본이나

미국쪽으로 간거같습니다 그당시 금본위제라는 금을 쌓아놓고 하는 화폐제도가 있었는데

이런거에도 조선산 금이 영향이 있었을거같습니다

미국이 1950년대 한국에게 잘해준이유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게 표면적 이유이나

그이전에 조선 고종이 계속 운산금광권같은거를 미국에주면서 미국을 짝사랑했다는 얘기가

있는거같은데요 그런게 알게모르게 해서 돌아온게 아닐까요,,

오늘날에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와도 당연히 즐겁게 지내야하나

이당시 제국주의 시대에 서양국가,일본인들에게 많이 수탈당했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북한이 자원을 중국과 러시아에 판매하는거같은데요

우리는 쌀이 남아도는데 또 이산가족들이 있는데 평화통일이 되어야하는데요,,


신라황금유물은 역시 금관이 유명한거같습니다,,

신라에는 정말 황금이 많았던거같습니다

1921년 일제강점기때 아이들이 경주 무덤쪽에서 황금구슬을 주워서,,가지고 놀았는데요

그걸 일본경찰이 발견해서 그쪽을 파보았더니 금관과 유물들이 나왔다고합니다

묻힌이는 금관을쓰고 금목걸이,금허리띠,금반지,금팔찌를 차고있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금관총입니다 일제강점기때 많은 한국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갔는데요 오구라컬렉션이라는게 대표적인 조선문화재를 수집한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수집품이라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은근히 그당시에도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있었던거같습니다

금관총 유물은 그당시 경성,서울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갔으나

다시 1923년 경주에 유물을 보관하는 금관고를 지어서 다시 왔다고합니다

그래도 그당시 일제도 한국에서 발견한 유물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기록을 남긴 흔적들도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많은 문화재,자원수탈과

그런것과 식민지배의 한계그런게 있는거같습니다


경주무덤들은 잊혀질뻔하다가 사람들이 언덕이라서

나무도 심고 등산을 하기도 했다고 들은거같습니다,,

그러다 주막도 생기고,,금관총은 주막 확장??공사를 하려고 땅을 파다가 유적이

나왔다고 들은거같습니다 아이들이 금구슬같은거를 가지고놀다가

일본경찰이 발견해서 아이들에게 어디서났냐 묻자 아이들은 주막공사할때

흙에서 가져왔다 한거같습니다,,

경주무덤들은 보존이 잘되있는거라 할수있는거같습니다

백제나 고구려 무덤들은 굴식돌방무덤 즉 동굴같은데다가 만든무덤이라

무덤에 있는 물품 부장품들이 도굴된게 많은거같은데요

신라인들은 그런거를 방지하려했는지 무덤에 트릭 즉 장치를 해논거같습니다

무덤을 만들고 나무로 한번 덮고 돌들로 한번 더덮고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돌무지 덧널무덤이라고합니다

이래서 신라무덤들은 도굴이 별로없고 잘보존되있는 거같습니다


황금의 나라라고 불린 신라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경주에가면 이런 황금유물들을 보실수 있을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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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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